파테푸르시크리

아그라에서 버스를 타고 남서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버려진 수도' 파테푸르시크리가 나온다.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에 가려 별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때는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아름다운 궁전과 사원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무굴황제, 악바르의 꿈이 담겨 있는 도시

파테푸르시크리는 잊히는 것에 대한 애잔한 슬픔과 영광이 동시에 깃들어 있는 도시이다. 부서지고 무너진 성곽 사이로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궁전과 사원은 이 도시에 깃든 오랜 사연들을 암묵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파테푸르시크리는 1569~1574년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악바르가 세운 도시로 십 수 년 동안 무굴제국의 수도였다. 인도 전역을 통일했던 무굴제국을 반열위에 올려놓았던 3대 왕 악바르는 오랫동안 후사가 없었다. 13년 동안이나 후사가 생기지 않아서 괴로워하던 악바르는 파테푸르시크리에 은거하고 있던 당대의 이슬람 성자인 샤이크 살림 치스티를 만나 그에게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샤이크 살림 치스티는 악바르가 3명의 자식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실제로 그 이듬해에 인도 출신의 왕비 조드바이가 훗날 제4대 무굴황제가 된 아들 자한기르를 출산했다. 아들이 태어나 너무나 기뻤던 악바르는 성자에 대한 보답으로 수도를 그가 살고 있던 파테푸르시크리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악바르는 이곳에 궁전과 사원, 학교, 목욕탕, 마구간, 연못, 성벽 등을 짓고 무굴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 악바르에게 아이를 점지해 주었던 이슬람 성자 샤이크 샬림 치스티의 무덤 앞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

Photo by Sunkyum Kim  

물 부족으로 버려진 제국의 수도

악바르 황제는 10여년에 걸쳐 벌판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수도를 아그라에서 파테푸르시크리로 옮겼다. 하지만 파테푸르시크리는 제국의 수도로서의 영광은 너무나 짧았다. 파테푸르시크리는 한 국가의 수도 역할을 하기에는 물이 너무나 부족했다. 악바르는 인공호수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했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결국 14년 만에 파테푸르시크리는 짧은 영화만 간직한 채 제국의 수도를 다시 아그라에 내준 채 버려졌다. 그리고 400년 동안 철저히 잊혀 폐허의 유적으로만 남겨졌다.

‘승리의 도시’라는 도시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이 아름다운 도시는 다른 유적에 비해 왠지 모를 허무함과 고독감이 짙게 감돌아 있다. 파테푸르시크리는 크게 이슬람 성자의 무덤이 있는 이슬람 사원, 자마 마스지드와 왕궁, 그리고 올드시티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슬람 사원과 왕궁만을 돌아보고, 아그라로 돌아간다. 파테푸르시크리는 종교 화합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한 악바르 황제가 건설한 도시답게 이슬람 양식을 주축으로 불교나 힌두교 등의 건축양식이 곳곳에 혼합되어 있다.

  ▶ 자미 마스지드의 거대한 탑

  ▶ 자미마스지드 앞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 현지인들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도시

파테푸르시크리를 돌아보는 출발점은 왕에게 아들을 점지해준 성자의 무덤이 있는 이슬람 사원인 자미 마스지드(Jami Masjid)이다. 무려 54m에 이르는 ‘승리의 문’을 통과하면 한 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드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광장의 중앙에는 샤이크 살림 치스티의 무덤이 놓여 있다. 무덤 앞에는 예언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아들을 바라는 인도 여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그들은 한손에는 꽃을, 다른 한손에는 붉은 실을 가지고 와서 꽃은 성자에게 바치고, 실은 절박한 마음을 담아 무덤의 대리석 창틀에 묶어둔다. 자미 마스지드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5분 남짓 걸어가면 왕궁이 나온다. 이곳은 국왕이 정무를 보던 것으로 건축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왕궁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은 ‘판치마할(Panch Mahal)’이다.

이곳은 황제의 개인처소로 벽 없이 176개의 기둥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일명 ‘바람의 궁전’이라고 불린다. 판치마할 앞에는 황제가 시녀들을 말 삼아서 장기를 즐겼다는 파치시 정원(Pachisi Courtyard)이 여행자를 반기고 있다. 판치마할 우측으로는 왕의 접견실인 디와니카스(Diwan-I-Khaas)가 있다. 이 건물에는 힌두, 이슬람, 기독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종교의 건축적인 특징들이 가미되어 있다. 종교에 관대했던 악바르는 이곳에서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과 국사를 논의했다고 한다. 파테푸르시크리는 언제 봐도 매혹적이지만 해가 떨어질 무렵, 붉은 노을이 사암에 비출 때가 가장 아름답다. 왕궁에 서서히 붉은 노을의 그림자가 비추기 시작하면 궁전에서 발길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글·사진 김선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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