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
중앙 아시아의 공화국 중에 가장 기묘한 투르크메니스탄은 아랍해의 돈없는 국가와 비슷하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 아시아 국가 중에 두 번째로 큰 나라이지만 국토의 4/5가 개발되지 않은 기름과 가스를 매장하고 있는 카라쿰(Karakum)이라고 불리는 달 과 같이 황량한 사막으로 되어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인구가 희박하며 투르크인은 겨우 한, 두 세대 전에 유목생활에서 벗어났다. 쿠르크인이 실제적인 국가를 형성하지 않고 자신들의 도시에 다른 민족들이 널리 거주하도록 함으로써 투르크메니스탄은 하나의 나라라기 보다는 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투르크인은 그들의 유명한 전통적인 문양의 카펫, 의식, 친절함, 아칼-테케(Akhal-Teke)종의 말에 근거한 농촌생활을 존중하고 있다.
  • 통계 자료
  • 국명: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
    면적: 488,100 sq km (302,620 sq mi)
    인구: 4백 2십만명
    수도: 아쉬가바트(Ashghabat)(인구 45만명)
    인종: 투르크인 73%, 러시아인 10%, 우즈벡인 9%
    언어: 투르크어
    종교: 수니 이슬람
    정체: 공화국
    대통령: Gurbanguly Berdimuhamedow
  • 지리 및 기후
  • 서쪽으로 카스피해와 동쪽으로 아무-다리아강에 접해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488,100평방킬로미터(190,360평방마일)로 옛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공화국중에 카자흐스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나라이다. 인구는 매우 희박하며 그 주된 이유가 국토의 4/5가 물이없는 사막지역이기 때문이다. 카라쿰(검은 사막)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사막의 하나로 중부지방 전체가 거대한 초승달모양의 모래언덕과 쩍쩍 갈라져 말라붙은 흙표면으로 덮여있다. 남쪽으로는 카라쿰 사막이 이란과 함께 좀 더 동쪽의 아프가니스탄과 1500킬로미터(930마일)의 광대한 천연 국경을 형성하고 있는 지진발생지역인 코펫 댁(Kopet Dag)(많은 산들)로 연결되어 있다. 카라쿰 사막의 북서쪽 지역은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아무-다리아강외에 건조지역에 생명을 주는 몇몇 귀중한 물길이 있기도 하다.투르크메니스탄의 야생생물은 중동적인 경향을 띠고 있으며 국토의 일부가 타쉬켄트에 가까운만큼 바그다드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해할만하다. 표범, 호저가 바싹마른 언덕에 서식하고 있다. 또한 사막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가젤, 들다람쥐, 모래쥐, 날쥐(작은 나는 설치류), 바란 즉 '모래악어'로 실제로 큰 도마뱀류가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또한 독사와 코브라를 포함하여 독이있는 커다란 뱀류로도 알려져 있다. 남부의 산악지대에는 야생 호두와 피스타치오 나무로 된 오래된 숲이 있다.사막국가로서 투르크메니스탄에 비가 부족하고 모든 것을 시들게하면서 내리쬐는 태양과 높은 기온이 특징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름에는 낮기온이 남동부의 카라쿰 사막은 섭씨 50도(화씨 122도)까지 올라가고 섭씨 35도(화씨 95도)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다. 이와 반대로 겨울에 아프간과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산악지대인 쿠쉬카(Kushka)에서는 기온이 섭씨 영하 33도(화씨 영하 27도)까지 내려간다. 수도인 아쉬가바트(Ashghabat)에는 영하로 얼어붙는 날이 며칠되지 않으며 4월이면 태양의 열기가 이미 불쾌할 정도다.
  • 역사
  • 카스피해와 아무-다리아강 사이의 타는듯한 황무지는 고대시대에 군대가 보다 풍요로운 지역으로 가는길에 진을 침으로써 본의아니게 한 제국에서 다른 제국으로 넘겨지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로 가는 길에 도시를 건설하고 로마인들은 오늘날의 아쉬가바트 부근에 정착하며 11세기 셀쥐크 투르크인은 알렉산더가 세운 옛 도시인 메르브(Merv)를 아프가니스탄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근거지로 이용하게 된다. 2세기후에 셀쥐크 제국의 중심은 징기스칸이 유럽을 위협하기 위해 스텝지역에서 트랜스-카스피아(카스피해 동쪽 지역)로 침략하게 될 때 짓밟히고 만다.셀쥐크 제국 건설자들이 투쟁하는 동안 말을 기르며 유목생활을 하는 투르크족이 그 틈을 타 알타이 산맥에서 표류해오게 되고 카라쿰 사막가를 따라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로 지나치면서 페르시아, 시리아, 아나톨리아도 지나게 된다. 16세기에 티무르 제국이 기울어 감에따라 이 지역은 봉건적인 투르크인이 곳곳에 산재한 오지가 된다. 그들의 오아시스 요새에서 투르크인들은 노예를 약탈하거나 다른 민족과 충돌하면서 무질서하게 오가는 카라뱐들을 약탈하게 된다.투르크인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점점 강화되는 짜르제국에서 온 러시아인을 납치하면서 시작된다. 여태까지 야생 상태로 통제할 수 없던 민족을 격파하기 위해 군대가 트랜스-카스피아에 파송되며 1881년 러시아인들이 게옥-테페(Geok-Tepe) 요새로 진군해 오고 약7000명의 투르크인들이사살된다. 또한 8000명 이상이 사막을 통과하여 도망치다 죽게 된다. 러시아가 거의 많은 저항도 부닫치지 않고 1894년까지 모든 트랜스-카스피아지역이 짜르에게 복속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1차 세계대전과 볼세비키 혁명이 러시아를 혼란에 빠뜨렸을 때 일단의 반혁명주의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짧은 기간 지배하게 된다. 소규모의 영국군이 북부 페르시아에서 아프가니스탄 지역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어 소련공산당과 전투를 벌이지만 1919년 철수하게 되고 투르크 소련 사회주의자 공화국(Turkmen Soviet Socialist Republic)(SSR)가 1924년에 설립된다. 소련은 투르크인들을 정착시켜 집단농장화하고 종교를 금지시키려고 시도함으로써 유목생활을 하는 투르크인들을 자극하여 1936년까지 게릴라전이 계속된다. 백만명 이상의 투르크인들이 사막이나 북부 아프가니스탄으로 도주했으며 그들 대신에 투르크 소련 사회주의자 공화국을 현대화하기 위해 러시아인 이주민들이 점차 밀려오게 된다. 현대화 계획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면화였으며 빳빳한 화이트 셔츠들을 위해 거대한 관개 사업이 아무-다리아강과 아랄해를 쥐어짜게 된다.투르크메니스탄은 1980년대에 다른 소련 공화국들에 비해 정치적인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더뎠다. 공산당(CPT)의 첫 번째 도전은 1989년 일단의 지식인들이 사회, 환경적으로 진보당인 아그지비르릭(Agzybirlik)(Unity(통일))당을 형성하였을 때이다. 공산당이 1990년 8월에 주권을 선언했음에도불구하고 아그지비르릭이 아주 많은 지지를 확보하는 표시가 나타났을 때 이 당은 금지되고 만다. 1990년 10월 들리는바에 따르면 사파르무라드 니야조프가 반대없이 투표자의 98%의 지지를얻으면서 새롭게 생긴 대통령직에 선출된다. 1년후에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투르크메니스탄은 독립을 하게 된다.독립후 여러해 동안 옛(변경된 방법없이) 공산당이 적절하게 채택한 새로운 이름인 민주당(Democratic Party (DPT))의 권위적인 지도자인 니야조프 대통령이 임기를 맡게 된다. 모든 이용가능한 주축대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 도시는 그의 이름을 따 지어지고 세계의 미술관에 초상화를 채우면서 니야조프는 레닌이 초라하고 퇴색할만큼 개인숭배의 중심이 된다. 그는 이제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장 점잖은 타이틀(모든 투르크인의 지도자)을 차지하고 있으며 의회는 2002년까지그의 임기를 연장했다. 반대당과 신문은 금지되고 불만의 목소리가 있지만 니야조프는 실제로 상당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기름과 가스로 경제가 풍요롭게 되지 못함으로써 마구 퍼지는 부패와 함께 텅빈 상점에 미치는 영향으로 이러한 대중적인 지원이 줄어들 수도 있다.
  • 경제
  • 국내 총생산 GDP : US$ 1백 8십억 달러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5,189 달러
    경제 성장 율 : 0.1%
    인플레이션 : 600%
    주요 생산품 : 기름, 가스, 면화, 가축
    주요 교역국 : 러시아, 기타 구 소련 국가, 독일, 폴란드, 체코 공화국, 터키
  • 문화
  • 투르크 문학의 아버지는 시인이자 사상가인 프라기 마크툼쿨리(Fragi Makhtumkuli)(1770-1840)로 그의 말은 코란보다 더 숭배되고 있다. 지금은 이란의 일부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남서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태어난 그는 비극적인 인물이었다. 사랑없는 결혼을 하면서 그는 병으로 두명의 어린 아들을 잃게 되고 후에 그의 전 작품이 페르시아에 의해 몰수될 뿐만 아니라 그가 증언을 설 때 그의 귀중한 필사본을 실었던 낙타가 실족하여 강으로 떨어져 떠내려가게 된다. 그의 글에서 마크툼쿨리는 여행하는 시인들에게 주로 그의 인기가 생기면서 고전 형식을 평범한 지혜와 언어의 단순성으로 일축하게 된다. 투르크 문학이 단순한 모방자의 일람표가 된 것은 그의 영향이었다. 이 위대한 작가의 그늘에서 가까스로 분투하고 있는 사람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중에는 풍자적인 리듬으로 지배적인 원형구조를 수정한 19세기의 작가인 케미네(Kemine)와 인기있는 서정시인인 몰라페네스(Molapenes)가 있다.유목민인 투르크인에게 소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가구는 카펫이다. 쉽게 운반할 수 있는 카펫은 바닥 깔개뿐만 아니라 단열효과와 함께 장식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유르트의 벽 안감으로도 사용된다. 투르크인의 직물기술은 수백년동안 매우 상업적으로 되었으며 투르크인이 만들지만 대부분 부카라에서 판매되기 때문에 '부카라' 카펫이라고 불린다. 요즘에는 멋진 아쉬가바트 카펫 박물관(Ashghabat Carpet Museum)이나 톨쿠츠카 시장(Tolkuchka market)이 이러한 붉은색의 기하학적인 문양의 아름다운 카펫을 볼 수 있는 좋은 곳이다.투르크메니스탄이 주로 수니 이슬람 국가이지만 종교는 그렇게 엄격하거나 호전적이지 않다. 오랜 세월에 걸친 민족에 대한 충성심은 적어도 이슬람만큼 중요하며 심지어 대부분의 도시 투르크인은 자신의 민족에 대해 충실하며 한편 좀더 외진 지역의 민족주의는 각 민족이 방언, 의복 양식, 보석이나 카펫에 수놓은 문양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지배적이다. 모든 중앙 아시아의 민족중에서 투르크인이 가장 전통적인 복장을 하고 있다. 체형에 맞는 바지와 폴리에스터 자켓과 함께 남자들은 이중창을 댄 무릎길이의 부츠에 불룩하게 푸른색 바지를 집어넣고 붉은 체리색과 금색줄이 들어간 실크 자켓아래에 흰색 셔츠를 입고 털이 텁수룩한 울모자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여자들은 좀 덜 화려하며 번쩍이는 줄무늬 바지를 가리면서 붉은 와인색과 적갈색의 무거운 발목길이의 실크 드레스를 입는다. 여자들의 머리카락은 항상 뒤로 묶어 스카프로 감싸고 다닌다국토의 대부분이 경작되지 않는 사막인 나라에서 더 많이 흥미있는 투르크 요리가 야채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다. 나물로 채운 패스트리와 맷돌에 간 옥수수로 만든 팬케익은 시장에서 쉽게 볼수 있다. 콩이나 맷돌에 간 옥수수, 호박과 함께 쌀이나 우유, 요구르트로 만든 죽은 한끼 식사가 거뜬히 된다. 투르크인들은 또한 말린 과일을 가지고 고기없이도 맛좋은 플로프(필라프)를 만들기도 한다. 경제 및 정치적인 침체가 투르크메니스탄의 식품공업에도 주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식당은 거의 없으며 음식값은 일반적으로 엄청나다.
  • 축제 및 행사
  • 투르크메니스탄은 유쾌한 거리 퍼레이드로 유명하지는 않다. 공휴일에는 새해(1월 1일), 기념의 날( 1948년 1월 12일의 지진을 기념), 민족기의 날(2월 19일), 국제 여성의 날( 3월 8일), 노동절(5월 1일), 승리의 날(1945년 5월 9일 러시아에 대한 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 독립 기념일(10월 27일)이 있다.나우리즈('새로운 날들') 봄 축제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휴일의 하나로 옛-이슬람 춘분이나 만물의 소생을 축하하는 것을 이슬람적으로 응용한 것이며 전통 게임, 음악, 연극페스티벌, 거리예술, 다채로운 박람회등이 열린다. 음력에 따라 날이 정해지는 중요한 무슬림 공휴일에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단식을 하는 달인 라마단을 포함하여 라마단의 종료를 축하하는 아이둘피트르(Eid-ul-Fitr), 여유있는 사람들이 동물을 도살하여 친지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성찬제인 아이둘아자(Eid-ul-Azha)가 있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하는 모든 여행자는 국경을 통과하기 전에 비자와 초청장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초청장을 얻지 못하거나 적어도 일정에 대한 개인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면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경험은 곧바로 되돌아오면서 보게된 것이 전부가 될 것이다.
    보건위생: A형 및 E형 간염, 디프테리아, 결핵, 파상열. 현지인이 마셔도 좋다고 해도 물은 마시지 말라!
    시간대: GMT/UTC + 5시간
    전압: 220V, 50 Hz, 유럽의 두핀짜리 플러그 사용(둥근핀, 접지연결 없음) 회중전등을 가지고 라!
    도량형: 미터법(변환표 참고)
  • 경비 및 환전
  • 통화: 마나트(M)
    일반경비
    저렴한 식사: US$1-5
    중급 식당: US$10-15
    고급 식당: 찾았다면 우리에게 연락바람.
    저렴한 숙박지: US$5-10
    중급 호텔: US$25-60
    고급 호텔: 찾았다면 우리에게 연락바람.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여행지중의 하나이다. 중급 호텔에서 트윈룸에 묵고 저렴한 식당과 거리 가판대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버스와 기차로 여행한다면 일일 비용이 하루에 미화 $25-40불 정도가 들 것이다. 기차, 거리카페, 시장, 트럭 운전사용 호스텔을 이용하는 알뜰한 여행자라면 하루에 미화 $10미만으로 들 것이다. 외국인은 가끔 현지인이 지불하는 것보다 더 많이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것을 피할 방법은 별로 없다. 수입맥주와 초코렛바같이 용돈을 금방 소비하는 것들에 주의하기 바란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사실상 현금만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현지 통화는 단지 법적통화일 뿐이고 실제로 미국 달러화와 독일 마르크화가 통용되거나 심지어 일부 거래에서 요청되기도 한다. 여행자 호텔에서 통화 환율이 가장 좋을 것이며 아쉬가바트에는 달러나 독일 마르크화에 대한 암시장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식 환율보다 좋지 않다. 대부분의 환전소에서 오래된 돈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빳빳한 신권만을 받는다는 것을 주의하기 바란다. 여행자 수표는 사용이 제한되며 아쉬가바트의 브네쉐코노은행(Vneshekonobank)에서 미국 달러화로 된 여행자 수표를 바꿀 수 있지만 기대는 하지 말라. 신용카드는 가장 쓸모없게 될 물건이다.팁은 대부분의 현지인의 회교적인 호의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심지어 그들의 기분의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상점에는 고정가격이 정해져 있지만 시장에서는 가격 흥정을 할 수 있다.

  • 여행 시기
  • 여름은 지독하게 덥고 겨울은 혹독하게 추우므로 봄(3월에서 6월)과 가을(9월에서 11월)이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봄에 사막의 단조로운 황토빛 풍경은 짧게나마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꽃으로 뒤덮히게 된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로 시장에는 금방뽑은 신선한 과일로 가득하다. 겨울을 겪어보기로 결심했다면 많은 국내선 비행기가 결항되며 겨울동안 많은 식당이 문을 닫기 때문에 음식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 주요 여행지
  • 아쉬가바트(Ashghabat)
  • 아쉬가바트는 세계의 끝이 아니라 단거리 버스로는 갈 수 없는 곳으로 느껴질 뿐이다. 아쉬가바트는 덧문을 강타하는 먼지 바람과 오후내내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불타는 푸른하늘에서 배회하는독수리가 있는 곳이다. 아쉬가바트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매력적인 상상이 일그러지면서 누구도 이 '사랑의 도시'에 대해 흥분하지 않는 것 같다. 아쉬가바트는 모스크바가 그런것처럼 눈에서 멀어지면 잊혀지는 곳이며 투르크인들은 전통적으로 이 도시를 돌보지 않고 있다. 1948년 지진으로 아쉬가바트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11만명의 주민이 죽고 5년동안 시체가 계속 발견되면서 붕괴된 잔해를 치우는 동안 외부세계에 폐쇄되었던 것이다.결과적으로 세계가 지켜볼만한 그늘진 나무집도 없으며 카메라를 들이댈만한 기념할만한 사건도없으며 여행자는 이곳에 체류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쉬가바트시의 명소로는 세실 B 드밀(Cecil B de Mille)의 수많은 다양한 배역을 끌어낸 거대한 일요 톨쿠치카 시장(Sunday Tolkuchka bazar)이 있다. 톨쿠치카 시장은 아쉬가바트시 교외의 수십에이커의 사막에퍼져 있으며 낙타와 염소, 은공예품앞에 쭈그리고 있는 붉은옷의 여자들이 있는 거리, 우즈벡인이 피스타치오에서 자동차부속까지 모든 것을 행상하고 다니는 트럭의 행렬이 있는 곳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전통적인 붉은색 카펫을 사기에 가장 좋은 곳이기도 하다. 여행자가 유명한 양탄자를살 여유가 없다면 다른 것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손으로짠 양탄자가 있는 카펫 박물관(Carpet Museum)을 방문할 수도 있다.사라진 고대 도시인 니사(Nisa)와 아나우(Anau)의 유적이 아쉬가바트 교외에 있지만 고고학자, 역사학자,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볼것이 거의 없는 곳이다. 페르시아 귀족가문의 옛 사냥터인 피루자(Firuza)는 평원의 열기에서 휴식을 찾을 수 있는 인기있는 산악 피난처이다. 정착지가 아쉬가바트 남서쪽으로 30킬로미터(19마일)지점의 골짜기에 모여 있으며 개별 여행자는이곳에서 투르크-이란의 국경을 형성하고 있는 코펫 댁(Kopet Dag)을 탐험할 수 있다. 코펫댁 산에서 접근할 수 있는 낮은 경사지에 지하로 60미터(200피트)에 파묻혀 있는 온천광물 호수는 '호수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으며 여행자가 계란썩는 냄새를 상관하지 않는다면 섭씨 36도(화씨 97도)의 물에 몸을 담글 수도 있다.
  • 메르브(Merv)
  •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의 하나인 메르브는 고고학자의 꿈이며 여행 작가들이 와서 문명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생각하는 곳이지만 단순한 여행자에게는 약간 실망스러운 곳일 수 있다. 적어도 다섯 차례의 다른 시대에 세워진 도시의 유적이 남아 있지만 고대 건축물의 야외 박물관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행자가 볼 수 있는 것은 낙타가 풀을 뜯고 가끔 토목공사 더미와 부서진 모래벽돌 구조물이 흩어져 있으며 배수구와 수로가 남아있는 황량한 풍경뿐이다. 메르브의 근원은 추측과 로맨스로 가려져 있으며 어떤 전설은 조로아스터가 메르브를 건설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오아시스 정착지는 틀림없이 실크로드의 중간 휴식처였으며 셀주크인이 수도를 건설했던 11세기와 12세기에 가장 번성한 것이 틀림없다. 메르브에는 어떤 멜랑코리한 매력이 있으며 산자르 술탄의 모슬럼(영묘)은 크기와 견고함에서 인상적이다. 메르브는 아쉬가바트에서 동쪽으로 기차로 7시간 걸리는 마리(Mary)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가면 있다.
  • 코니예-우르겐치(Konye-Urgench)
  • 북부 투르크메니스탄과 서부 우즈베키스탄에서 아무-다리아강의 전체 델타지역을 둘러싸고 있던 고대국가 코레즘(Khorezm)은 코니예-우르겐치(옛 우르겐치(Old Urgench))에서 가장 번성하게 된다. 13세기에 짧은 기간동안 옛 우르겐치는 지도자가 징기스칸에 대립하여 몽골의 분노를 사게 될 때까지 이슬람의 심장부였다. 옛 우르겐치는 예전의 명성을 얻게되고 14세기말에 티무르가 다시 정복하게 된다. 현재의 코니예-우르겐치가 얼마나 평범한 곳인지는 금방 알게 되지만 일련의 고대 건축물때문에 방문할 만한 곳이기도 하다. 가장 훌륭한 곳으로 나지-메드-딘 쿠브라 모슬럼(Najm-ed-din Kubra Mausoleum), 토레벡 카님 모슬럼(Torebeg Khanym mausoleum),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첨탑인 67미터(220피트)높이의 쿠트룩 테미르 첨탑(Kutlug Temir minaret)이 있다. 쿠니예-우르겐치는 아쉬가바트에서 북쪽으로 480킬로미터(300마일)거리에 있다. 쿠니예-우르겐치에서 100킬로미터의 정기버스가 운행되는 다쉬코부즈(Dashkhovuz)와 아쉬가바트간에기차가 운행된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투르크멘바쉬(Turkmenbashi)
  • 항구도시인 투르크멘바쉬는 청록색의 카스피해를 바라보는 산악지대로 둘러싸여 있다. 주변을 둘러싼 사막 해안선은 모래보다는 소금으로 뒤덮힌 회색먼지로 되어 있는 것 같으며 나사(NASA)의 달표면 사진같아 보인다. 투르크멘바쉬는 중앙 아시아에서 유일한 항구로 유럽의 러시아와 연결된다. '비참함', '무료함', '황량한 모래더미'같이 다양하게 묘사되면서 투르크멘바쉬는 확실히 덥고 메마른 곳이지만 또한 조용한 지중해적인 면에서는 아주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더러움을 감수하고 먹는 것을 까다롭게 고르지 않는다면 이 단층 건물이 늘어선 파스텔톤으로 페인트된 항구도시에 하루나 이틀정도 머물면서 쉬기에 좋은 곳이며 도시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주변 산악지대로 하이킹을 할 수도 있다. 아쉬가바트에서 남동쪽으로 기차로 12시간이 걸리는 곳에 있다.
  • 레페텍 사막 보호구역(Repetek Desert Reserve)
  • 섭씨 50도(화씨 122도)가 넘는 기록적인 기온과 정신을 흐리게 하는 섭씨 70도(화씨 158도)에 이글거리는 모래 표면과 함께 여행자는 카라쿰 사막에 귀여운 생물체가 서식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 넘실대는 모래마루를 집으로 삼는 동물들이 특히 의외로 많다. 이곳에 사는 수많은 곤충, 거미, 파충류, 설치류중에는 청동색 코브라, 큰 검은 전갈, 독거미, 길이가 1.5미터(5피트)이상 자라고 100미터를 돌진하며 놀랄만한 멋진쇼를 보여주는 선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는 큰도마뱀이 있다. 이런 모든 사랑스러운 생물들은 여행자 센터, 박물관, 식물 표본실을 자랑으로 삼는 레페텍 사막 보호구역의 주요한 연구 대상이다. 여행일정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중동부에 있으며 레페텍 사막 보호구역에서 북쪽으로 70킬로미터(43마일)지점에 있는 차르조우(Charjou)의 여행사를 통해 조정할 수 있다.
  • 가우르닥(Gaurdak)
  • 가우르닥은 투르크메니스탄의 동부 맨끝 코너에 아무-다리아강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가우르닥의 산악풍경은 놀랍도록 아름다우며 멋진 협곡, 폭포, 동굴이 있다.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오른쪽으로 있는 쿠기탕 보호구역(Kugitang reserve)은 지질학 연구의 중심으로 자랑거리는 수 백 개의 공룡 발자국이 남아있는 암석고원이다. 약 1억5천만년 전의 주라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암석고원은 발자국이 찍힌 젖은 모래가 태양아래 말라붙어 건조된 갯벌이었다고 한다.투르크메니스탄의 중동부에 있는 차르조우(Charjou)가 가우르닥까지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 레저스포츠
  • 많은 지역이 이란과의 민감한 국경을 형성하고 있지만 코펫 닥 산악지대에서 트레킹을 할 수 있다.가장 안전한 방법은 믿을만한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를 약속하는 것이다. 장비를 구하기 어려우므로 자신의 장비를 가져가기 바란다. 언제든지 악천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지만 가장 좋은 트레킹 시즌은 6월과 9월 사이이다. 트레킹을 조정하는 일부 여행사에서 말이나 낙타 트레킹을 예약할 수도 있다. 낙타를 타고 카라쿰 사막을 가로질러 가고 싶거나 투르크메니스탄의 유명한 아칼-테케(Akhal-Teke)말을 타고 모래 위를 질주하고 싶다면 시도해 보기 바란다.
  •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가는 길
  • 아쉬가바트까지 가는 비행기는 대개 이스탄불(터키), 아부다비(아랍 에미리에트 연합UAE), 다마스커스(시리야), 모스크바(러시아)를 경유한다. 런던에서 일주일에 한 번 비행기가 운항되며 델리에서도 운항된다. 도착하기보다 여행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면 터키에서 바쿠(아제르바이젠)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카스피해를 화물선으로 건너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바시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기차로 아쉬가바트, 부카라, 그외의 지역으로 가는 혼합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이란-투르크메니스탄 국경은 이란 북동부의 마하바드와 아쉬가바트간에 운행되는 버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외국인에게 폐쇄되어 있다.
  • 국내 교통편
  • 버스와 기차 여행은 악몽과 같을 것이다. 서비스는 거의 없으며 항상 만석으로 정거장 직원은 놀랍게도 퉁명스럽거나 심지어 적개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같은 날 출발하는 창구 앞은 완전히 스크럼을 짜게된 다. 단지 모든 것이 매진되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여행자는 팔꿈치에 막혀 여러시간을 꼼짝없이 끼어 있게 된다(반대로 예매 창구 앞은 거의 줄이 없다). 버스 운행시간표는 수시로 변경되어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체크하는 것이 좋다. 여행자가 구입한 좌석을 누군가가 차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가끔 버스가 일찍 떠나버리므로 일찍 탑승하는 것이 좋다. 여러 곳에서 자동차와 운전자를 렌트 할 수 있으며 택시와 민간시민이 도시간에 가끔 여행자를 태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