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India)
문화적 선입견에서 벗어나려 열심히 노력하고 화장실에서 휴지를 쓰는 기쁨을 포기한다 해도, 인도는 여전히 그 규모와 떠들썩함, 다양함으로 우리를 스쳐 지나고 만다. 인도에서는 이쪽의 기대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없고,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기대하지 않은 일이 다양한 형태로 닥쳐와 항상 옆에 앉아있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인도 여행은 많은 여행자들에게 일종의 테스트 같은 것으로, 몇몇 여행자들은 비행기에 올라타 그 지긋지긋한 나라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 그러나 복잡한 우주론을 탐구하는 것을 즐기고 지나치게 육욕적인 생활을 사는 보람으로 삼고 부조리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라면, 인도는 지구상에 전개되는 중 가장 복잡하고 체험해 볼만한 드라마를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다.
  • 통계 자료
  • 국명 : 인디아 공화국(Republic of India)
    면적 : 3,287,000 sq km (1,281,900 sq m) (분쟁이 잦은 국제 국경지역)
    인구 : 9억 6,800 만명 (증가율 2.1%)
    수도 : 뉴델리(New Delhi, 인구 1010만)
    인종 : 인도-아리안 족 72%, 드라비다 족 25%, 몽고족 3%
    언어 : 힌두어 및 영어, 그 외 15가지의 주요 언어와 700가지 이상의 방언이 있음
    종교 : 힌두교 82%, 이슬람교 11%, 기독교 2% 시크교 0.7% 불교 0.7% 자이나교 0.7
    정체 : 민주정 대통령 : Pratibha Patil
  • 지리 및 기후
  • 방글라데시는 벵갈만의 만곡부에 위치하며 인도에 둘러 쌓여 있고 남동쪽은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매우 평평한 평지로 갠지스-브라마푸트라-자무나(Ganges-Brahmaputra-Jamuna) 삼각주가 어울려 있다. 방글라데시의 경계선과 해양은 퇴적암 상승, 수류, 물줄기, 홍수지역, 실트 등의 애매한 지역이다. 90%이상이 충적토 평지로 해발 10m 이하이며 동북부와 남동부는 240-600m의 높지 않은 구릉이 존재한다. 대략 방글라데시의 2/3이 비옥한 경작지며 10% 정도가 삼림지역이다. 벵갈 호랑이, 표범, 아시안 코끼리(대부분 비하르에서 이주함), 소수의 흑곰, 다수의 원숭이, 아시아 남부 원숭이, 기본(아열대 지역의 꼬리 없는 원숭이), 수달, 몽구스가 서식하고 있다. 파충류는 바다 거북이, 진흙 거북이, 강 거북이, 비단뱀, 악어가 서식하며 다종의 독사가 살고 있다. 600종 이상의 조류도 분포하는데 찌르과의 새들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가장 환상적인 건 물총새다. 방글라데시의 기후는 아열대와 열대기후로 겨울은 낮 최저 평균기온이 21도, 여름은최고 평균기온이 35도다. 세 계절로 구분되는데 우기는 5월에서 10월초, 겨울은 10월 중순부터 2월말, 여름(방글라데시인은 적은 우기로 부름)은 3월 중순부터 5월 중순이다. 또한 싸이클론 계절은 5월-6월과 10월-11월이다. 방글라데시의 계절은 기온이 건조하고 신선한 겨울이 가장 좋은 시기이다. 4월은 습하고 너무 더워 피하는 게 좋다.
  • 역사
  • 인도 최초의 문명은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 강 계곡에서 1000년 가량 전성기를 누렸다. 대도시였던 모헨조다로(Mohenjodaro)와 하라파(Harappa)(현재의 파키스탄 지역에 위치)에서는 사제를 지배계급으로 하는 복잡한 문명이 꽃피고 힌두교의 기본 원리가 형성되었다. 기원전 1500년에서 200년 사이에는 중앙 아시아에서 온 아리아족 전사들이 인도 남부를 휩쓸면서 현재의 마드야 프라데쉬(Madhya Pradesh) 지역에 있는 빈드야(Vindhya) 고지 지역까지의 남부 인도를 확실히 장악했다. 그들은 드라비다인(Dravidian) 원주민들을 남쪽으로 밀어내었다. 침입자들은 그들 자신의 종교를 비롯해 소를 키우고 고기를 먹는 전통을 가지고 들어왔지만, 기원전 8세기가 되자 어느 정도는 동화되어 승려 계급은 다시 우월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는 카스트 제도 속에서 강화되었고 이 계급질서는 브라만 승려들의 지위를 보장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엄격한 규칙에 의해 유지되었다. 기원전 500년경 불교가 일어났고 카스트 제도를 비난함으로써 브라만 힌두교에 강력하게 도전했다. 불교가 힌두교를 강력하게 밀어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황제에 의해 수용되면서였는데, 무굴 제국이 성립되기까지 이후의 그 어떤 지배자도 아소카 황제만큼 인도 전역을 통제하지 못했다. 마우리아 왕조의 멸망 이후 많은 제국이 일어나고 무너졌지만 그중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나라는 굽타(Gupta) 제국으로 기원후 4세기에서 606년까지 지속되었다. 굽타 제국 시기는 시, 문학, 예술의 황금기로 아잔타(Ajanta), 엘로라(Ellora), 산치(Sanchi), 사르나트(Sarnath)에 있는 예술 작품 중 많은 부분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 힌두교는 다시 부흥했고 불교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훈족(Huns)의 침입은 굽타 왕조의 종말을 알렸고 인도 북부는 많은 힌두교 왕국으로 분리되었다. 이 왕국들은 이슬람교도들이 들어올 때까지 다시 통일되지 못했다. 인도 최남부는 북쪽 왕국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지 않았고 이 지역의 힌두교는 불교나 자이나교의 위협을 받지 않았다. 남부의 번영은 이집트, 로마, 남동 아시아와의 오랜 교역 유대에 기반한 것이었다. 남부에서 일어난 대제국으로는 판드라스(Pandyas), 체라스(Cheras), 차루카스(Chalukyas), 팔라바스(Pallavas), 촐라스(Cholas) 등이 있다. 힌두 왕국이 남부를 지배하고 북부에서 불교가 수그러드는 동안 중동의 이슬람 세력이 서서히 인도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1192년 이슬람 세력은 영구적인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20년이 흐르는 동안 갠지즈 분지 전체가 이슬람 세력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델리의 이슬람 술탄 왕조는 내분이 심했고, 이슬람 세력은 남부를 손아귀에 넣는 데는 실패했다. 이 지역은 기원후 1000년에서 1300년까지 호이살라(Hoysala)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현재의 카르나타카(Karnataka) 지역에서 두 대제국이 발달했는데, 하나는 햄피(Hampi)에 아름다운 수도를 건설했던 강력한 힌두 왕국인 비자야나가라(Vijayanagar) 왕조였고 다른 하나는 각각 베라(Berar), 아흐메드나가르(Ahmednagar), 비자푸르(Bijapur), 골콘다(Golconda), 아흐메다바드(Ahmedabad)에 중심지를 둔 다섯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던 바흐마니(Bahmani) 이슬람 왕국이었다. 무굴 황제들은 인도 역사의 거인들이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펀잡(Punjab)으로 진군해 와 1525년 파니팻(Panipat)에서 델리 술탄들을 패배시키고 건축, 예술, 문학의 또다른 황금시대를 열었다. 무굴 제국은 빠른 속도로 권력을 잡았지만, 그 쇠퇴 역시 빨라서 사실상 여섯 명의 위대한 황제가 있었을 뿐이다. 낮은 카스트 출신이었던 시바지(Shivaji)의 영웅적인 업적 덕분에, 17세기 동안 마라타(Maratha) 제국이 성장했고 서서히 무굴 제국의 영역 대부분을 차지했다. 마라타 제국은 최후의 대 제국 세력이었던 영국에게 패배할 때까지 중앙 인도의 통제권을 굳게 쥐고 있었다. 인도에서의 영국 세력은 처음에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행사되었는데 이 회사는 1612년 구자라트(Gujarat)의 수라트(Surat)에 무역 거점을 확보했다. 영국은 17세기에 인도에 손을 뻗쳤던 첫번째 유럽 국가도, 유일한 유럽 국가도 아니었다. (무굴 제국이 인도를 점령하기도 전인) 1510년 이후 포르투갈은 고아(Goa)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 덴마크, 네덜란드 역시 무역 거점을 확보하고 있었다. 영국의 세력은 클라이브(Clive)가 캘커타를 다시 확보했던 1757년에서 영국이 제 4차 마이소르(Mysore) 전투에서 승리한 1799년 사이 점차 확대되었다. 마라타 제국과 영국사이의 긴 싸움은 결국 1803년에 마무리지어졌고, 인도의 거의 모든 지역이 동인도회사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영국은 인도를 주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장소로 생각했고, 인도의 문화, 신앙, 종교는 손대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영국인들은 철광과 석탄 광산을 확장하고 차, 커피, 목화를 재배하는 플랜테이션 농장을 발전시켰으며 인도의 광대한 철도 노선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은 부재지주 제도를 장려했는데, 부재지주제가 운영과 징세의 부담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가난하고 소유 토지가 없는 농민들이 양산되었고 이 문제는 오늘날도 비하르(Bihar)와 서부 벵갈 지역에서 만성적인 골치거리가 되고 있다. 1857년 북인도에서 일어난 인도 폭동은 동인도 회사의 소멸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인도의 관리는 뒤늦게 영국 정부의 손에 넘겨지게 되었다. 다음 50년은 소위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황금기였다. 영국 통치에 대한 저항은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인도에 어느 정도의 자치를 허용해주기 위해 설립된 의회가 이제 진정한 자치를 위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의회 밖에서는 피끓는 개인들이 보다 폭력적인 수단으로 독립을 추구해나갔다. 결국 영국은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와 마찬가지로 독립을 위한 방침을 세워준 셈이 되었다. 1915년 남아프리카에서 변호사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은 간디가 돌아왔고 자신의 능력을 독립 문제에 집중시키면서 사티야그라하(satyagraha)라 불렸던, 영국의 지배에 대한 소극적 저항 정책을 채택했다. 2차대전은 식민주의와 유럽의 우월성 신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고 인도의 독립은 필연적인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인도 내에서 그 수가 많았던 이슬람 소수민족들이 독립 인도는 힌두교 중심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지방 선거는 지방 자치주의가 위험하리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무하마드 알리 진나(Muhammad Ali Jinnah)가 이끄는 이슬람 연맹은 압도적 다수의 이슬람교도들을 대변하고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가 이끄는 의회 정당은 힌두교도 국민을 대변하는 상황이 되었다. 분리된 이슬람 국가를 이끄는 권력을 원했던 진나의 독선적인 시도는 영국이 독립을 허락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임이 분명해졌다. 정치적 냉전과 급증하는 긴장 속에서 총독 루이스 마운트배튼(Louis Mountbatten) 경은 어쩔 수 없이 인도를 분할하는 결정을 내리고 독립을 위한 신속한 예정표를 마련했다. 불행히도 이슬람교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두 지역은 서로 동떨어진 반대지역에 있었다. 이는 새로운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이 적대적인 인도로 가로막힌 동부와 서부 양쪽으로 나뉘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국경선이 발표되자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엑소더스가 일어나 이슬람교도들은 파키스탄으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는 인도로 자리를 옮겼다. 이러한 이주는 대부분 야만적인 폭력 행위를 수반했다. 이 혼란 속에서 1000만 이상의 사람들이 거주지를 옮겼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250,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독립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또 한 차례의 비극이 있었다. 1948년 1월 30일, 분리와 그에 뒤따른 유혈 사태로 인해 깊은 낙담에 빠져 있던 간디가 힌두교도 광신자에 의해 암살당했다. 분리의 상처에 뒤이어, 인도의 초대 수상이었던 자와할랄 네루는 비종교적 정치 체제, 사회주의 중심의 정치 계획, 엄격한 비동맹 정책을 옹호했다. 인도가 일반적으로 이전의 식민통치 모국과 충성 관계를 계속 유지했고 영연방에 참가하는 쪽에 투표하기는 했지만, 이는 사실상 구 소련쪽으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중국과의 갈등 때문이었고 또 부분적으로는 철천지원수인 파키스탄에 미국이 원조를 해 주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는데, 파키스탄은 이슬람교도가 많은 카슈미르 지역에 대한 요구로 인해 인도에 특히 적대적이었던 것이다. 1965년과 1971년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에는 무력 충돌이 일어났는데 처음에는 카슈미르 문제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는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 때문이었다. 인도의 다음 수상은 네루의 딸이었던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로 1966년 선출되었다. 인디라 간디는 여전히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지만, 그녀가 1975년 국가 계엄령을 선언함으로써 인도가 민주적 기반을 갖추는 것에 쓸데없이 개입했다고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간디 여사는 1984년 자신의 시크교도 보디가드에 의해 암살되었는데, 이는 암리차(Amritsar) 황금 사원에서 시크 과격파들을 몰아내기 위해 인도 군대를 동원하기로 한 그녀의 부적절한 결정에 대한 보복이었다. 간디 왕조의 인도 정치 장악은 인디라 간디의 아들로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인도 항공 조종사였던 라지브(Rajiv)가 권력을 향해 다가가면서 계속되었다. 라지브는 인도에 새롭고 실용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외국인 투자와 현대 기술의 이용이 장려되었고 수출 제한이 완화되었으며 많은 새로운 산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확실히 인도를 1990년대로 끌어올렸고, 부분적으로는 스스로 자처한 것이었던 고립주의로부터 인도를 깨어나게 했다. 그러나 이는 인도의 거대한 농촌 지역에는 거의 자극을 주지 못했다. 라지브는 타밀 나두(Tamil Nadu)로의 선거 여행 동안 스리랑카의 타밀 타이거즈(Tamil Tigers) 지지자에 의해 암살당함으로써 모친과 같은 운명을 맞았다. 라지브 간디 이후 인도에는 세 명의 지도자가 있었고 그들 모두가 인도를 계속 끌고 나가 세계 경제 속으로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인도에서의 지방 자치주의의 위험은 1992년 힌두교도 폭도들이 날뛰며 라마의 탄생지에 지어졌다고 그들이 믿었던 모스크를 파괴한 아요다(Ayodhya) 소요 동안 명백하게 드러났다. 힌두교도 민족주의자들 중심의 브하라티야 자나타 당(Bharatiya Janata Party, BJP)은 이러한 기회를 민첩하게 이용하고자 했다. 인도 국민의회파(Congress party)의 타락은 비종교적이고 관용적인 인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믿을만한 정치적 대안을 내놓는 것에 장애가 되었다. BJP는 가능할 것 같지 않던 소규모 정당들의 제휴로 인해 권력에서 밀려났는데, 이 제휴는 연합 전선(United Front, 그러나 13인의 패배자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국민의회파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1997년 11월, 국민의회는 후원을 철회했고 로크 사바(Lok Sabha)는 해체되어 1998년 2월에는 선거가 치러졌다. 선거에서는 BJP가 이끄는 제휴세력이 승리했고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Atal Bihari Vajpayee)는 두 번째로 수상이 되었다. 지방자치주의적인 정치 성향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BJP의 전통적인 힌두교 입장은 현대적인 외부 세계의 영향이 급속히 밀어닥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투표자들의 마음을 끌었던 것이다. 힌두어로 더빙되고 인공위성을 통해 인도로 송출되는 "119 해양구조대"를 보면 인도인들이 우려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BJP의 극단적인 정책은 다양한 위치의 정치적 동맹자들에 의해 완화될 것이라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대가 잘못되었음이 증명된 것은 BJP가 인도는 선거이후 몇 주안에 핵무기를 가지게 될 것이라던 공약을 실제로 실천에 옮겼을 때였다. 국제적인 분노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는 핵무기 실험이 대규모의 축제와 함께 치러졌고 이는 BJP 지지자들이 늘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일주일도 긴 기간이라는 금언을 증명하듯 1999년 4월 바즈파이는 의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잃었고 불신임 투표에 회부되어 한 표 차이로 패배했다. 라지브 간디의 미망인인 소니아 간디(Sonia Ghandi)가 정치 변방에서 3년을 보낸 국민의회파를 승리로 이끌어 간디 정치 왕조를 재건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그러나 인도 의회의 당파와 분열로 인해 소니아는 다수 의석을 차지할 만한 정치적 동맹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인도는 다른 때처럼 세 번째 선거를 치뤄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여당인 브하라티야 자나타 당(BJP)이 다시 정권을 쥐었지만 현격하게 지지도가 떨어졌고 BJP는 동맹자들에게 더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바즈파이와 BJP는 승리했다기보다는 반대당과 인도 정치라는 괴물에 대한 통제력 상실로 인해 패배한 것이었다. 인도의 선거가 끝나고 며칠만에 파키스탄에서 무혈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세계는 바즈파이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를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과거 파키스탄에 대한 그의 강경정책이 대중의 지지를 얻는데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이 많았으므로 그는 아마도 자신의 지도력을 검증받기 위한 무력 행위를 취하고 싶었을 것이다.
  • 경제
  • 국내 총 생산 GDP : US$ 1조 2천 억 달러
    1인당 국민총생산 GNP : US$ 978 달러
    연간성장률: 5%
    인플레이션: 5%
    주요 산업: 농업(쌀, 밀, 차, 고무), 직물, 석탄, 철강
    주요 교역국: 독립국가연합, 미국, 일본, EU
  • 문화
  • 종교는 인도 생활의 모든 면에 스며들어 있다. 비종교적 민주정체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사회적, 종교적 구조가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이며, 이는 침략, 박해, 유럽국가의 식민정책, 정치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4000년 이상 지속되었다. 현대 기술이 사회 구조 속에 점점 스며들면서 불가피하게 변화가 일어났지만, 기본적으로 인도 농촌의 많은 부분은 지난 수천년 동안과 마찬가지이다. 인도의 사회 및 종교 제도는 그 탄력성으로 급속한 변화 혹은 파괴의 시도를 완화시키고, 무시하고, 뿌리치고 있는 것이다. 힌두교는 인도의 주요 종교로 인구의 약 80%가 힌두교 신자다. 신자의 숫자로 보자면 힌두교는 아시아에서 가장 강성한 종교이며 현존하는 신앙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한다. 힌두교에는 무수한 신이 있으며 성스러운 책도 여러 가지 있다. 힌두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여러 번의 탄생과 부활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영혼의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가정한다. 매번 태어날 때마다 사람은 최후의 구원에서 가까워지거나 멀어질 수 있으며, 이를 결정하는 요소는 각자의 카르마(karma, 業)라는 것이다. 힌두교에는 세 가지 기본 관습이 있다. 첫째, 푸자(puja, 예배), 둘째, 죽은 자를 화장하는 것, 셋째, 카스트 제도에 따르는 지배와 규율이다. 사람들이 개종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힌두교는 개종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힌두교도로 태어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기원전 500년경 북인도에서 창시되었고 아소카 황제가 불교를 채택하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지만, 이후 서서히 힌두교에 융합되었다. 오늘날 힌두교는 부처를 힌두교 신 비쉬누(Vishnu)의 또다른 환생으로 간주하고 있다. 현재 인도에는 660만의 불교도가 있지만 보드가야(Bodhgaya), 사라나스(Sarnath, 바라나시(Varanasi) 근처), 쿠시나가르(Kushiagar, 고라크푸르(Gorakhpur) 근처) 같은 북인도의 주요 불교 성지는 중요한 참배 지역으로 남아있다. 자이나교 역시 브라만 중심 힌두교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로 시작되었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같은 시기, 같은 이유로 나타났던 것이다. 오늘날 자이나교 신도는 450만에 지나지 않고, 주로 인도 서부와 남서부에 몰려 있으며 인도 외의 나라에는 신도가 없다. 자이나교에서는 우주는 무한하며 한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믿는다. 자이나교 역시 부활과 자이나교 예언자의 행로를 따름으로서 가능한 궁극적인 영혼의 구원을 믿는다. 인도에는 1억 이상의 이슬람 교도가 있어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슬람 국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교는 이웃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에서도 가장 유력한 종교이며 자무(Jammu)와 카슈미르(Kashimir)에도 다수의 이슬람 교도가 있다. 인도에서 이슬람교의 영향은 특히 건축, 예술, 요리 등의 분야에서 강하다. 인도에는 1800만의 시크(Sikh)교도가 있으며 펀잡 지방에서 그 세력을 떨치고 있다. 시크교는 원래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장점을 모아 가져오려 시도했었다. 기본적인 교리는 힌두교와 유사하지만, 중요한 차이는 시크교는 카스트 차별에 반대한다는 점이다. 시크교의 성전은 암리차에 있는 황금 사원(Golden Temple)이다.
    인도는 언어에 있어 바벨탑과 비슷한 세계다. 원래 '인도어'란 존재하지 않았고, 부분적으로는 이로 인해 영국이 인도에서 물러난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영어가 폭넓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 의해 인정된 공용어는 18가지이지만 1991년의 조사에 따르면 1600가지가 넘는 소수 언어와 방언이 있었다. 많은 국경선이 언어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에, 언어는 매우 정치적으로 논란이 많은 문제이다. 힌디어를 국어로 정하고 점차적으로 영어를 몰아내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이 계획의 문젯거리는 힌디어가 북부에서는 우세한 언어지만 남부의 드라비다계 언어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남부에서는 힌디어로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인도의 상류계급은 교육받은 엘리트들의 언어이며 지위의 상징으로 자랑할 수 있고 국제 비즈니스의 세계로의 입장권이기도 한 영어에 집착한다. 사실, 인도인의 3%만이 영어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인도 예술은 기본적으로 주제와 발전에 있어 종교적이며 인도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인도 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고전 인도 무용, 힌두교 사원 건축, 조각(어느 부분이 한 작품의 끝이고 다음 작품의 시작인지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무굴 제국의 군사 및 도시 건축, 세밀화 그림, 최면술적인 인도 음악 등이 인도 예술의 하이라이트이다. 인도 음악은 관광객들이 즐기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는데, 서구 기준의 화음이라는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밀쳐 둘 필요는 없다. 인도인들은 영화를 사랑하며 봄베이가 중심이 되는 인도의 영화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매력적이다. 만들어지는 영화의 대부분은 세 가지 핵심 요소, 즉 로맨스, 폭력, 음악에 기반한 촌스러운 멜로드라마이다. 거리에 많이 늘어서 있는 괴기스럽게 손으로 그린 길거리의 영화 간판을 보면 영화가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과 세실 B 드밀 감독의 성서 역사물을 배경으로 람보가 뛰어다닌다고 상상하면 절반쯤은 맞아떨어진다. 인도 영화는 싼 값에 오페라 비슷한 현실 도피를 할 수 있고 귀에는 극도로 자극이 강하며 다시 보고 싶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의 믿음과는 달리 모든 힌두교도들이 공식적으로 채식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어디서든 채식주의자를 만날 수 있기는 하지만, 엄격한 채식주의는 남부(이 지역은 고기를 먹는 아리아족과 이슬람교도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와 구자라티(Gujarati) 지역에서 가장 강성하다. 기후 조건과 역사적 영향으로 인해 북부와 남부 사이에는 상당한 지역적 차이가 있다. 북부에서는 고기를 훨씬 많이 먹고 음식도 중동이나 중앙 아시아의 요리와 비슷한 "무굴 스타일"인 경우가 많다. 향신료에 중점을 두고 매운 맛은 덜하며 곡류와 빵이 쌀보다 인기 있다. 남부에서는 쌀을 더 많이 먹고 채식주의 요리가 더 많으며 카레는 더 맵다. 남부 채식주의 요리의 또다른 특징은 먹는데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손가락으로 음식을 뜨면 되지만, 왼손은 사용하지 않는다.
  • 축제 및 행사
  • 인도에는 수많은 축제가 있고 그 중에는 아주 볼 만 해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보러 가지 않는다면 바보짓이라고 할만한 축제도 많다. 매해 첫 축제는 1월 델리에서 열리는 비종교적 리퍼블릭 데이(Republic Day) 축제로 코끼리와 행진, 군대 퍼레이드가 있고 인도 왕가의 화려함이 넘친다. 2월의 홀리(Holi)는 북인도에서 가장 화려한 힌두 축제 중 하나다. 이 축제는 겨울의 끝을 알리며 하룻동안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색깔있는 물과 붉은 가루를 뒤집어씌우는 전통이 있다. 10일간 계속되는 시테 무하람(Shi'ite Muharram) 축제는 모하멧의 손자의 순교를 기리는 것이다. 이 축제 기간 동안은 대규모 퍼레이드가 있고 헌신적인 회개자들이 종교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이런 광경은 인도의 중요한 시테 도시인 러크노우(Lucknow)에서 가장 잘 볼 수 있고, 매 2년마다 4/5월에 열린다. 대규모의 쿰브 멜라(Kumbh Mela) 축제는 신들과 악마들이 주전자(kumbh)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던 고대의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전투 동안 주전자에서 신의 술 네 방울이 흘러 알라하바드(Allahabad), 하리드와르(Haridwar), 나식(Nasik), 우자인(Ujjain)에 떨어졌다고 전해진다. 멜라는 3년마다 이 네 도시에서 돌아가면서 열린다. 지난번 멜라는 1998년 2월 1일에서 5월 11일까지 하리드와르에서 열렸다.라스 야트라(Rath Yatra) 자동차 대축제를 자동차 경주와 혼동하지 않도록 하라. 6/7월에 퓨리(Puri)에서 벌어지는 이 장관은 자가나스(Jagannath) 신이 거대한 신전 자동차를 타고 연례행사인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수천명의 열광적인 신자들이 뒤를 따른다. 케랄라(Kerala)의 대규모 연례 행사 중 하나는 네루 컵 스네이크 보트 경기(Nehru Cup Snake Boat Races)로, 알라푸자(Alappuzha, Alleppey) 강에서 8월 둘째주 토요일에 벌어진다. 8/9월에 열리는 가네쉬 차투르티(Ganesh Chaturthi) 축제는 코끼리 머리를 한 인기있는 가네쉬 신을 찬양하는 축제이다. 이 축제는 대규모로 열리지만 특히 마하라시타(Maharashtra)에서 열광적이다. 신전이 세워지고, 폭죽이 터지고, 진흙 인형이 강이나 바다에 담궈지고 사람들은 모두 달을 쳐다보는 것을 피한다. 9/10월은 쿨루(Kullu)에서의 즐거운 신들의 축제를 보기 위해 언덕으로 향하는 때이다. 이는 두세흐라(Dussehra)의 일부로, 마이소르와 아흐메다바드에서 제일 볼 만 하다. 11월은 라자스탄의 푸쉬카르(Pushkar)에서 거대하고 화려한 낙타 축제(Camel Festival)가 열리는 때이다. 디왈리(Diwali, 혹은 디파발리(Deepavali))는 힌두교 달력에서 제일 행복한 축제로 11월에 5일간 행사가 열린다. 많은 신들에게 경배하기 위한 과자, 기름 램프, 폭죽 등이 이 축제의 중요한 부분이다. 싫증나는 구닥다리 장면일지도 모르지만, 고아의 해변 파티는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위한 유일한 장소라 할 수 있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인도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비자가 있어야 한다. 비자 기간은 15일에서 6개월까지 다양하며 1회 입국용과 복수 입국용이 있다. 6개월짜리 여행자 비자만이 연장이 가능하다. 비자의 유효기간이 입국시점부터 계산되는 것인지 발행시점부터 계산되는 것인지 주의해서 확인해두라.건강상 위험: 콜레라, 뎅그열, 이질, 간염, 말라리아, 뇌막염(트레킹 지역에 한정), 장티푸스. 인디아의 대도시 대부분은 오염이 심하며 호흡기 만성질환이 있는 여행자는 미리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
    시간대: 협정 세계시에 5시간 30분이 더해짐.
    전기: 230-240V, 50 Hz
    도량형: 미터법(도량형 환산표)
    관광산업: 일년에 200만의 관광객이 방문
  • 경비 및 환전
  • 통화 : 인도 루피(India rupee)
    일반경비
    저렴한 현지 식사 : US$1 일반 레스토랑에서 식사: US$2-5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US$10 이상 저렴한 숙소: US$3-10 (더블) 중급 호텔 : US$15-25 (더블) 최고급 호텔: US$100-200

    싼 호텔에 묵고 항상 2등 열차만 타고 달(dhal)과 쌀밥을 먹고 사는데 익숙해진다면 하루에 US$10만 있으면 인도를 여행할 수 있다. 욕실이 있는 소박한 개인실, 다양한 음식, 장거리 이따금 1등 열차를 이용하는 등의 약간 더 편안한 여행을 원한다면 하루에 US$20-25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중급 호텔에 머무르고 꽤 괜찮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가끔은 기사 딸린 자동차를 빌리려면 하루에 US$30-35 정도 예산을 잡는다. 마하라자(maharaja)의 궁전이었던 곳이나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을 지나치고 싶지 않다면 서구를 편안하게 여행하는 경우나 비슷한 비용을 생각하면 된다. 인도로 입국할 때 인도 화폐를 가지고 들어가거나 출국할 때 가지고 나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루피는 충분히 환전할 수 있으며 암시장이 많지는 않지만 "돈을 바꾸시라"는 제의에 계속 시달리게 될 것이다. 도시에서는 대부분의 주요 외국 화폐 및 인지도 있는 회사의 여행자 수표를 환전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의 폭을 다양하게 해 준비하는 것이 좋고, 미국 달러나 영국 파운드, 토마스 쿡이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여행자 수표만을 고집한다면 난처한 궁지에 빠질 수도 있다. 사실 여러 나라의 통화로 여러 회사의 여행자수표를 준비하는 것이 좋은데, 각 은행의 각 지점마다 특색이 있어서 예컨대 영국 파운드로 표시된 X회사의 여행자 수표는 받지 않는다던가 미국 달러로 표시된 Y회사의 여행자 수표를 받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돈을 바꾸려면 성자의 인내심과 경리직원급의 서류작성 기술이 필요하고 특히 작은 마을에서는 더하다. 비결은 큰 금액을 환전해서 가능한 한 환전 횟수를 줄이고 가급적 대도시의 큰 은행을 찾는 것이다. 은행이나 공식 환전상에게서 환전을 하면 환전 증명서를 받게 되는데, 일부 호텔에서는 인도 루피로 돈을 지불하기 전에 먼저 환전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곳도 있다. 인도에 넉달 이상 머무를 예정이라면 소득세 정산을 위해 이 증명서 여러 장을 계속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신용카드는 인도의 도시와 큰 마을에서 널리 사용되고 특히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다이너스 클럽, 마스터카드, 비자 등이 많이 쓰인다. 신용카드를 이용해 루피로 현금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바로다(Baroda) 은행은 이런 거래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가장 효율적이다. 인도 지폐는 서구에서보다 훨씬 오랜 기간동안 유통되고 특히 소액 지폐는 매우 더럽다. 정부가 위생상 경고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찢어지거나 더러운 지폐로 돈을 내려고 하면 상대가 거부하는 일이 종종 있을 것이다. 오래된 지폐는 모든 은행에서 새 지폐로 바꿀 수 있고 저금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좀 더 독창적으로 팁으로 주어버리는 방법도 있다. 가게 주인들에게 잔돈으로 더러운 지폐를 받지 말라. 그냥 돈을 돌려주면 보통은 쓰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상태는 되는 좀 더 나은 지폐를 준다. 팁을 주는 행위는, 대도시의 허세부리는 장소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인도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바크시시(baksheesh)라는, 팁만이 아니라 좀 더 많은 것을 함께 의미하는 용어는 널리 퍼져 있다. 인도에서는 훌륭한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서만이 아니라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 팁을 주게 된다. 적절한 바크시시는 닫힌 문을 열어주고 잃어버린 편지를 찾아주며 다른 작은 기적들도 일으킨다. 여행자용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는 종종 봉사료 10%가 계산서에 붙어서 나온다. 팁을 주건말건 마음대로인 작은 가게에서는 계산서 금액에 따라서가 아니라 몇 루피만 팁으로 주면 충분하다.

  • 여행 시기
  • 인도의 기후 요소는 워낙 다양해서 날씨를 생각하면 어느 시기가 가장 방문하기 좋다고 확실하게 못박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10월에서 3월까지가 제일 여행하기 좋은 시기라고 이야기되고 있기는 하다. 남쪽 끝에서는 몬순기후로 인해 1월에서 9월까지가 더 상쾌하고, 시킴(Sikkim)과 북동 인도 지역에서는 3월에서 8월까지가 더 낫다. 카슈미르와 히마칼(Himachal) 프라데쉬의 산악지역은 5월에서 9월까지가 괜찮다. 라자스탄의 사막과 북서 인도 히말라야 지역은 몬순기간 동안이 제일 낫다인도 히말라야의 트레킹 시즌은 대략 4월에서 11월까지이지만, 코스와 고도와 지역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스키 시즌은 1월에서 3월까지이다. 여행 시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별한 축제 시기는 축제 및 행사 부분에 나와 있다.
  • 주요 여행지
  • 델리(Delhi)
  • 델리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인도에 처음 온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방문자들은 이 도시의 매력을 알아채기 전에 오염, 인파, 악취, 소음, 끊이지 않는 말다툼 등을 먼저 보게 된다. 그러나 델리는 참을성을 발휘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이 도시의 매혹적인 역사가 방문자들의 주변에 그대로 흩어져 있다. 파하르간지(Paharganj)의 시장은 인도 배낭여행의 근사한 입문지라 할 수 있다. 델리의 기념물들은 인도에서 건축학적으로 가장 놀라운 건물에 속한다. 음식 역시 근사하다. 델리는 인도의 수도이며 북인도 여행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델리에 머무르면서 아그라(Agra)와 타지마할(Taj Mahal)을 구경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며 라자스탄의 색채가 가득한 자이푸르(Jaipur) 역시 다섯시간도 떨어져 있지 않다. 만약 히말라야를 향해 북으로 가거나 바라나시 산맥을 향해 동으로 갈 생각이라 해도 역시 델리를 지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이를 갈면서 숨을 참고 델리라는 도시 속으로 돌진해 보라.
  • 뭄바이(Mumbai)
  • 뭄바이는 볼리우드 영화(*봄베이(뭄바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인도 영화를 지칭), 주말 광장의 크리켓, 초우패티(Chowpatty) 해안의 벨푸리(bhelpuri), 붉은 2층 버스의 매력으로 가득한 곳이다. 또한 악명높은 홍등가의 새장,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슬럼가, 지방자치주의 정치, 강력한 마피아 보스 등으로도 유명하다. 도시의 영혼을 위한 이러한 혼전은 번영했던 19세기의 영국 산업 도시를 연상하게 하는, 아라비아 해변에 존재하리라 기대했던 것 이상의 빅토리아 풍 도시 조경과 더욱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 고아(Goa)
  • 캘커타는 서부 벵갈의 수도로 후글리(Hooghly) 강의 동쪽 제방을 따라 질서없이 뻗어 있다. 한때는 영국령 인도의 영광스러운 수도였던 이 도시의 악명높은 더러움과 궁핍함은 분할과 그로 인한 엄청난 피난민 행렬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용기있는 도시는 자신을 "기쁨의 도시(City of Joy)"로 끌어올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약간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캘커타는 스스로가 인도 전체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시이며, 인도의 지적 중심지이고 정치, 예술의 번영하는 장임을 보여줄 것이다.도시의 '광장'은 마이단(Maidan)이라 하며, 캘커타 주민들은 이 곳에서 휴식, 크리켓, 축구, 정치 회합, 요가 수업, 가축 방목까지 한다. 이 지역은 그 안에 거대한 윌리엄 요새(Fort William)를 포함하고 있을 만큼 넓은데, 이 요새는 오늘날도 사용되고 있지만 여행자들은 특별한 허가증이 없으면(거의 발급되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마이단의 남쪽 끝에는 흰 대리석으로 된 거대한 빅토리아 기념비가 서 있고 그 앞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지저분한 조상이 세워져 있어 영국령 인도의 역사적 유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켈커타의 행정 중심부는 BBD 바흐(BBD Bagh, 달하우지 광장(Dalhousie Square))이다. 이 광장에는 별스러움과 잔인함이 공존한다. 광장 한쪽 끝에 있는 필기자 건물(Writers' Building)에서는 필기자(서기의 별스러운 완곡 어법)들이 카프카이스크(Kafkaesque) 미로같은 회랑과 거대한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벽을 따라 다섯 배의 서식과 카본지 사본이 쌓여 있다. 다른 끝에는 전설적인 "캘커타의 블랙홀" 지역에 지어진 GPO가 있다. 1756년 어느 습기찬 밤 140명 이상의 영국인들이 지하 대피소로 피난했다가 그중 많은 사람이 밤사이 질식해 죽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시바(Siva)신의 아내의 시신이 잘려질 때 손가락 하나가 지금 칼리(Kali) 신전이 있는 지점에 떨어졌다고 하며, 이 지역은 구경거리가 될 만큼 더럽지만 순례의 장소로 남아 있다. 아침이면 피에 굶주린 여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기에서 염소 한 마리가 목잘려 도살된다. 캘커타에는 다른 관광지도 많다. 구경할 가치가 있는 인도 박물관(Indian Museum)은 인도에서 가장 크며 아마도 가장 뛰어난 박물관일 것이다(하지만 기금 부족으로 더럽고 낡았다). 보타니컬 가든(Botanical Gardens)에는 200년 묵은 벵갈 보리수가 있으며 뻗은 가지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다고 주장한다(가장 넓은 것은 안드라(Andhra) 프라데쉬에 있다). 전통 외팔보 양식의 호우라(Howrah) 다리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다리일 것이다. 배낭여행자 숙소나 싼 음식점과 술집은 호우라 다리 남쪽 차우링히(Chowringhee) 지역에 많다. 차우링히 로드 근처의 서더(Sedder) 스트리트는 배낭여행족들의 중심지이다. 이 지역에는 캘커타의 예술영화나 헐리우드 최신작, 아니면 볼리우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많다. 캘거타는 쇼핑객들의 천국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데, 거리정화 캠페인으로 도보에서 노점상들을 다 몰아낸 탓이다. 그렇지만 서더 스트리트 북쪽의 뉴마켓(New Market)은 옷가지에서 등나무 제품까지 가격을 흥정하기에 좋은 곳이다. 캘커타는 국제운송의 중심지이며 차우링히 근처의 항공사 사무실에서 싼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캘커타의 인디안 에어라인(Indian Airlines)는 델리, 방가로르(Bangalore), 체나이(Chennai), 뭄바이, 러크노우 등 인도 주요 도시로 가는 비행편을 자주 운행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버스보다는 기차로 여행하는 것이 낫지만 버스를 탈 경우 길가의 버스 정류장에서 "로켓 서비스(Rocket Service)"같은 의심스러운 회사명을 잘 확인하고 타야 한다. 시외로 가는 기차를 타고 싶으면 후글리 강의 서부 제방 위에 있는 호우라 역에 면 도시로 가는 기차를 운행하고, 반대편 실다(Sealdah) 역으로 가면 다질링(Darjeeling)이나 다른 북쪽 지역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
  • 아그라(Agra)
  • 사랑을 위해 지어진 가장 사치스러운 건물이라 묘사되는 타지마할(Taj Mahal)은 사실상 인도 관광 산업의 상징이다. 가슴을 찡하게 하는 이 무굴 시대의 영묘는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자신의 두 번째 아내였던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추억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그녀는 1631년 출산 중에 죽었고 가슴이 찢어진 황제는 밤 사이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렸다고 전해진다. 타지마할 공사는 그 해에 바로 시작되었지만 1653년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타지마할은 어느 각도에서 보건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아하지만, 가까이 가서 세부를 살펴보면 정말로 놀랍다. 준보석들이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라 알려진 공법으로 아름다운 패턴을 이루며 대리석 벽에 박혀 있다. 타지마할의 설계와 건축에 기울인 정밀함과 주의는 타지마할을 강 건너에서 볼 때나 바로 눈앞에 두고 볼 때나 똑같이 감동적이다. 타지마할은 월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아그라의 다른 주요 관광지로는 거대한 붉은색 사암으로 된 아그라 요새(Agra Fort)가 있는데, 역시 야무나 강 방죽에 있다. 귀모양을 하고 있는 요새의 엄청난 이중 방벽은 높이가 20m(65피트) 이상이며 총 거리는 2.5km(1.55마일)이나 된다. 방벽 주위는 냄새나는 해자로 둘러싸여 있고 요새 안에는 장려한 집회장, 모스크, 사무실, 정원 등이 늘어서 도시 안의 작은 도시를 이루고 있다. 불행히도 모든 건물이 관광객 상대로 개방되어 있지는 않고 흰 대리석으로 된 진주 모스크(Pearl Mosque)도 마찬가지인데, 이 건물은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평을 듣는 건물이다. 또다른 볼거리는 이티마드-우드-다울라(Itimad-ud-daulah)를 비롯한 무굴시대의 보석으로, 이 보석의 디자인이 타지마할의 건축에 이용되었다. 시캔드라(Sikandra)에 있는 아크바르(Akbar) 영묘도 볼만 한데, 이 건물은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기독교의 모티프를 모두 섞어놓아 아크바르 자신이 발전시키려 시도했던 혼합 종교 철학과 많은 점이 비슷하다. 아그라는 델리에서 가까우므로(200km, 125마일)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므로 비행기, 버스, 기차 중 원하는 교통수단을 택해서 탈 수 있다.
  • 바라나시(Varanasi)
  • 2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영원의 도시(eternal city)" 바라나시는 인도의 종교적 중심지였다. 신성한 갠지즈 강 강둑에 세워진 이 도시는 다른 모든 순례지의 장점을 합쳐놓은 곳이며 여기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사람은 어떤 종교를 믿었던 얼마나 큰 죄를 지었던가에 상관없이 천국으로 바로 간다고 말해지고 있다. 우타르 프라데쉬 최동부에 있는 바라나시는 학문의 요람이며 소설가, 철학자, 고전어 학자들의 본거지이다. 이는 인도의 국어라고 이야기하기에 가장 적절한 힌디어의 발전에 바라나시가 한 역할을 보면 명확해진다. 바라나시에는 100군데 이상의 목욕과 화장을 위한 강가의 층계(ghat)가 있지만 그 중 마니카르니카(Manikarnika) 강층계가 가장 신성한 곳이다. 이 곳은 가장 주요한 화장터이며 힌두교도가 화장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시신은 찬달(chandal)이라 불리는 부랑자들에 의해 다루어지며 그들은 옷가지로 둘러싼 대나무 운반대에 시신을 얹어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 사이를 지나 성스러운 갠지즈강으로 옮긴다. 강 층계 꼭대기에는 장작더미가 쌓여 있고 화장 비용을 산출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각 통나무의 무게를 잰다. 마니카르니카에서는 죽음도 다른 일상적인 일과 마찬가지이므로, 화장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상관없지만 사진 촬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서성거리며 강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강층계는 다사스와메드(Dasaswamedh) 강층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목욕 의식을 행할 뿐 아니라 요가를 하고 축복을 준다. 판(paan)을 사고 꽃을 팔고 마사지를 받고 크리켓을 하고 수영을 하고 면도를 하며, 거지에게 동냥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운을 좋게 하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뱃사공들의 경쟁이 치열한 곳이므로 배 여행을 흥정하기에도 좋다.강을 따라 늘어선 강층계 외에도 바라나시에는 즐길 거리가 많다. 우선 황금 사원(Golden Temple)이 있는데, 지붕이 있는 안뜰과 아주 아름답게 도금된 탑이 세워져 있다. 장식 놋쇠제품, 옻칠 장난감, 숄, 비단, 시타르(라비 샹카(Ravi Shankar)가 바로 이 도시에 살고 있다) 등으로 유명한 시장에서 쇼핑을 하는 것도 좋다. 강층계에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놀랄 만큼 좁은 미로같은 골목길에서 헤매볼 수도 있다. 가까운 사라나스(Sarnath)의 불교 중심지에 가 보는 것도 좋고 새벽녘에 배로 갠지즈 강을 천천히 내려오는 것도 꼭 한번 해볼 만 하다. 바라나시는 아그라에서 동쪽으로 580km(360마일), 델리에서 남동쪽으로 780km(485마일) 가량 떨어져 주요 여행 루트 상에 있으며 비행기, 버스, 기차를 이용해 쉽게 갈 수 있다.
  • 심라(Shimla)
  • 영국령 인도의 "여름 수도"였던 이 도시는 남부 히마칼 프라데쉬의 해발 2100m(6890ft)가 넘는 초생달형 산봉우리를 끼고 뻗어 있다. 이곳은 독립 이전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고지 주둔지였으며 영국인들의 평원의 따가운 태양을 피해 몰려드는 여름 동안 심라의 사교 생활은 전설적인 것이었다. 무도회, 브리지 파티, 퍼레이드가 가쉽, 음모, 로맨스와 함께 펼쳐졌다. 오늘날은 장교, 행정관료, 귀족 여인들의 자리를 행락객 무리가 메우고 있지만 심라에는 영국적 과거의 메아리가 강하게 남아있다. 유명한 주거리인 몰(The Mall)은 여전히 산의 높은 부분을 따라 뻗어 있고 위풍당당한 영국풍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 고톤 캐슬(Gorton Castle), 요새같은 전(前) 총독 관저(Viceroyal Lodge) 등이 영국적 향취를 더해준다.키플링(Kipling), 버튼(Burton), 머천트-아이보리(Merchant-Ivory) 등을 생각하며 몰을 돌아다닐 때면 산꼭대기에서 화려한 시장까지 가파르게 이어져 있는 좁은 거리들도 탐험해 보라. 원숭이 신 하누만(Hanuman)에게 바쳐진 자쿠(Jakhu) 사원으로의 산책도 흥미롭다. 이 사원은 산봉우리의 가장 높은 지역 근처에 자리잡고 있어 계곡과 눈덮인 봉우리로 둘러싸인 마을의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다. 근처의 또다른 경치 좋은 곳으로는 70미터 높이의 채드윅 폭포(Chadwick Falls), 피크닉 장소인 프로스펙트 언덕(Prospect Hill), "조국은 당신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던 키치너(Kitchener)경의 저택이었던 와일드플라워 홀(Wildflower Hall) 등이 있다. 쿠프리(Kufri)의 스키 리조트도 동쪽으로 15km(10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최근에 적설량이 너무 적어 관광객 상대의 운영을 중단할 계획이 있다. 눈이 좀 왔을 때의 슬로프는 초보자들이 스키를 타기에 좋고 두꺼운 바지와 적당한 비닐 봉지만 있다면 누구든 즐길 수 있다. 눈은 1월에서 2월 사이에 제일 많이 오는 편이다.심라는 히말라야의 다른 도시들처럼 항공 노선이 잘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두세개의 여행사가 비행편을 운행하고 있다. 부족한 항공 노선은 많은 기차와 버스 노선으로 보충된다. 국가 소속, 개인 소속, 히마칼 프라데쉬 관광 발전 회사(Himachal Pradesh Tourist Development Company, HPTDC) 소속 등 세 종류의 버스가 심라와 델리 사이를 잇고 있고 매일 여러 편이 운행된다. 심라의 소위 장난감 기차도 북쪽의 칼카(Kalka)까지 운행하는 것은 문제없고, 칼카에서 더 크고 편안한 뉴델리 퀸 호로 갈아타고 뉴델리까지 갈 수 있다.
  • 자이푸르(Jaipur)
  • 라자스탄(Rajasthan)의 수도인 이 도시는 오래된 건물의 황토빛 분홍색 벽과 총안 무늬의 도시 성벽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핑크 시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라지푸트 족 (Rajputs)은 분홍색을 환대와 관련된 색이라고 생각했고, 1853년 영국 왕자 알프레드의 방문에 대비해 이 도시를 핑크빛으로 칠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러한 전통과 자이푸르의 우호적이고 느긋한 분위기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자이푸르의 도시 이름과 건설, 주의깊은 도시 계획은 위대한 전사이자 천문학자였던 마라하자 자이 싱 2세(Maharaja Jai Singh II, 1699-1744) 덕분이다. 그는 앰버(Amber) 근처에 있던 언덕의 답답한 요새를 1727년 평원의 새로운 터로 옮김으로서 기울어가는 무굴 제국의 세력을 이용했다. 그는 고대 힌두교의 건축에 대한 논문인 실파-샤스트라(Shilpa-Shastra) 에 규정되어 있는 도시 계획을 따라 주변에 성벽이 둘러지고, 여섯 구역의 직사각형 블록이 있는 자이푸르를 설계했다.오늘날 자이푸르는 넓은 도로와 놀라울만큼 조화된 건축물이 펼쳐진 도시로, 불모의 언덕으로 둘러싸인 마른 호수 바닥에 세워져 있다. 자이푸르는 대단히 색채가 풍부한 도시로 밤의 조명 속에서는 따뜻하고 마술적으로 빛난다. 현재 인구는 150만으로, 원래의 성벽이 둘러싼 지역 밖으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대부분의 관광지는 도시의 북동부, 벽으로 둘러싸인 '핑크 시티' 안에 밀집되어 있다. 오래된 도시의 일곱 문이 남아 있고 그 중 하나는 유명한 보석 시장인 조하리(Johari) 시장으로 이어진다. 이 오래된 도시의 가장 뚜렷한 이정표는 이스와리 미나르 스와르가 술(Iswari Minar Swarga Sul, 천국을 꿰뚫는 광탑)으로 도시를 내려다보기 위해 세워졌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하와 마할(Hawa Mahal, 바람의 궁전)의 5층짜리 정면을 장식한 놀라운 예술적 기교이다. 이 궁전은 1799년 왕실의 여인들이 거리의 생활과 행렬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복잡한 도시 궁전의 일부로 구 도시의 심장부를 이루고 있다. 자이푸르 타워즈(Jaipur Towers)에 근거지를 둔 국제 항공사가 많지만, 국내선을 예약하려면 큰 여행사를 통하는 것이 쉽다. 델리로는 매일 비행기가 운행되고 조드푸르(Jodhpur), 우다이푸르(Udaipur), 아우랑가바드(Aurangabad)를 거쳐 뭄바이까지 운행하는 비행기도 많다. 라자스탄 스테이트 트랜스포트 시스템(Rajasthan State Transport System)이 라자스탄의 주 도시를 거의 경유하면서 아주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차로도 대부분의 지역에 갈 수 있다.
  • 우다이푸르(Udaipur)
  • 우다이푸르는 라자스탄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이며 아름다운 피콜라(Pichola) 호수 주변에 세워져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1568년 마하라나 우다이 싱(Maharana Udai Singh)에 의해 세워진 이 도시는 흰 건물, 대리석 궁전, 호숫가의 정원, 사원, 하벨리스(havelis, 전통저택) 등이 조화롭게 뒤섞여 있다. 우다이푸르는 부러움을 살 만한 예술적 유산, 예술 중심지로서의 명성, 상대적으로 풍부한 수자원 등을 자랑하며, 이로 인해 우다이푸르는 단조롭고 건조한 지역의 다채롭고 문화적인 오아시스 역할을 하게 되었다. 피콜라 호수는 도시의 중심이다. 호수 안의 섬에는 아름다운 두 궁전, 자그니와스(Jagniwas)와 자그만디르(Jagmandir)가 있는데, 이 궁전들은 라지푸트 족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그니와스 궁전은 현재에는 사치스러운 호텔이 되어 있다. 거대한 도시 궁전의 탑은 호수를 굽어보고 있으며 발코니, 탑, 둥근 지붕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궁전 안에는 박물관, 정원, 더욱 사치스러운 호텔 몇 개가 더 있다. 또다른 관광지로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 시가로 통하는 문과 매력적인 골목길, 17세기 중반에 세워진 인도-아리안 풍의 훌륭한 자그디쉬(Jagdish) 사원, 한때는 왕가의 영빈관이었지만 지금은 문화센터가 되어 있는 호숫가의 바고르 키 하벨리(Bagore ki Haveli) 등이 있다.이처럼 관광지와 볼거리가 많지만, 우다이푸르에서 맛볼 수 있는 진정한 즐거움은 호숫가의 쾌적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내 묵으면서 지붕으로 올라가 강층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을 구경하고 빨래하는 여자들이 빨래를 두드리면서 내는 리듬있는 "퉁(thwomp)!"소리를 듣고 하루가 천천히 저물어갈 때 수면에 비치는 빛이 조금씩 스러져 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인디안 에어라인(Indian Ailines)은 매일 델리, 자이푸르, 뭄바이, 아우랑가바드를 운행한다. 주(州) 버스도 우다이푸르에서 델리, 아흐메데바드(Ahmedebad) 및 다른 지역 중심지까지 자주 운행한다. 버스의 경우 직행을 타지 않으면 목적지에 닿는데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우다이푸르로의 노선은 현재 미터 계량으로만 되어 있다. 장거리 계량으로 바뀔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그렇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대부분의 경우 버스를 타는 것이 훨씬 빠르다.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타고 되지만 타기 전에 협상 기술을 발휘하여 가격을 깎아야만 한다.
  • 마이소르(Mysore)
  • 마이소르는 매력이 넘치고 느긋한 도시로 규모가 적당하고 기후가 상쾌하며 과거의 유산을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발전시켰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마이소르는 비단으로 유명하고 백단나무가 잘 자라는 덕에 향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이소르에서 다른 도시보다 더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독립 이전까지 마이소르는 오늘날 카르나타카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군주국이었던 마이소르 왕국 마하라자의 거주지였다. 마하라자의 인도-사라센 풍 궁전은 스테인드 글라스 만화경, 장식 거울, 조각된 마호가니 천장, 모두 은으로 만들어진 문, 엄청나게 화려한 색감 등으로 마이소르의 주요 볼거리라 할 수 있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데바자라(Devajara) 과일 야채 시장은 인도에서 가장 활기있는 시장에 속한다. 또다른 관광지로는 차문디(Chamundi) 언덕 근처에 있는 1000개의 층계가 있는데, 이 층계 꼭대기에는 거대한 차문데스와리(Chamundeswari) 사원이 있다. 층계는 유명한 5미터(16ft) 높이의 난디(Nandi, 시바신의 소)가 새겨진 바위벽을 끼고 있다. 10월 초 열흘동안 계속되는 두세흐라 축제는 화려하게 장식한 코끼리, 제복을 입은 하인, 기사, 브래스밴드, 꽃으로 장식된 힌두 신상 등이늘어서는 장대한 행진으로 그 절정에 달한다. 마이소르로 가는 비행기는 없으며 버스와 기차만이 유일한 교통편이다. 15분마다 방가로르로 가는 버스가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박쥐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출발하며, 반디푸르(Bandipur) 국립 공원을 포함한 주변 지역으로 가는 버스도 많다. 개인 버스를 타면 한결 안정감 있는 속도로 뭄바이, 고아, 체나이, 하이드라바드(Hyderabad)로 갈 수 있다. 마이소르 역에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이 늘어서는 경우가 별로 없으며 하루에 방가로르로 가는 급행열차가 네 편 출발한다. 에어컨이 달리고 속도가 빠른 샤탑디(Shatabi) 급행은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2시 10분에 출발한다. 샤탑디는 체나이까지 운행한다.
  • 코치(Kochi, 코친(Cochin))
  • 항구도시인 코치는 섬들이 밀집해 있고 좁은 반도가 펼쳐진 지역에 있다. 도시의 오래된 부분은 드물게도 중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시골 마을이 열대의 말라바르(Malabar) 해안에 펼쳐진 모양이다. 이곳에서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500년전 세워진 포르투갈식 주택이 꽉 차 있는 구불구불한 거리, 외팔보식 중국 고기잡이 그물,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 분산)까지 그 근원이 올라가는 유대인 공동체, 16세기에 세워진 유대 교회,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벽화가 있는 궁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타칼리(Kathakali) 댄스-드라마 공연 등을 볼 수 있다. 페리가 코치의 여러 지역 사이를 왕래하며 항구에서는 가끔 돌고래도 보인다. 역사 유적 대부분은 코친 요새나 마탄체리(Mattancherry)에 있다. 싼 숙소는 본토의 에르나쿨룸(Ernakulam)에서 찾을 수 있다. 인디안 에어라인이 방가로르, 뭄바이, 델리, 고아, 체나이로 매일 운행한다. 비용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없다면 코치에서 바다쪽만 빼고 어디로든 이어지는 버스가 많다. 주(州) 버스이건 개인 버스이건 잡아타고 쉽게 다른 도시로 갈 수 있지만 예약 시스템은 없다. 버스에 올라타 스크럼 안으로 밀고 들어가 운좋게 자리가 있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싫다면 기차역으로 가 해안을 따라 달려 주요 목적지까지 가는 기차를 타면 된다. 매일 출발한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다질링(Darjeeling)
  • 서부 벵갈 북쪽 끝에 있는 고도 2100m(6890피트)가 넘는 산 위에 위치한 다질링은 1800년대 중반 군단을 위한 R 'n' R센터로 세워진 이래 영국인들이 선호했던 산악 기지였다. 다질링은 계속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다질링에 가면 불교사원을 방문하거나 차 재배농장을 구경하거나 부산한 시장에서 쇼핑을 하거나 북쪽의 산악지역을 트레킹 할 수도 있다. 히말라야의 다른 장소처럼, 다질링도 그곳에 가는 여행 자체가 재미이며 유명한 미니 기차가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평지에서 다질링까지 올라오는데 그을음과 연기를 내며 10시간 걸리는데 지그재그형 산악 도로를 통해 올라왔다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다질링의 하이라이트는 패신저 로프웨이(Passenger Ropeway)이다. 인도에 건설된 최초의 체어 리프트로 다질링과 훨씬 아래쪽에 있는 리틀 란지트 강(Little Ranjit River) 주변의 싱글라 시장(Singla Bazaar)을 잇는다. 아주 재미있는 여행이지만 현기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권하기 힘들다. 불행히도 로프웨이는 항상 운행되지 않으므로 언제 운행하는지 미리 전화로 확인하라. 근처에는 동물원이 있는데 시베리아 호랑이와 희귀한 붉은 팬더가 산다. 동물들에게 이상적인 환경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인도인 여행객들이 무자비하게 괴롭히고 침을 뱉기 때문이다. 귀중한 눈표범은 따로 떨어진 구역에 살아서 훨씬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 복잡한 차(茶) 생산 과정을 알고 싶다면 해피 밸리 티 에스테이트(Happy Valley Tea Estate)로 연락해 보라. 인상적인 짐카나 클럽(Gymkhana Club)에서 지역 특산물들을 맛볼 수도 있는데, 이곳은 한때 왕의 오락장이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20세기를 향해 가고 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다질링에 가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지만, 다질링에서 90km(55마일) 떨어진 곳에 내려야만 한다. 공항은 바그도라(Bagdogra) 시리구리(Siliguri) 근처의 평원에 위치하고 있지만 공항에서 다질링까지 연결되는 버스가 있다. 다질링에서 출발하는 버스 선도 많다.
  • 자이살메르(Jaisalmer)
  • 파키스탄과 인접한 라자스탄 국경에 가까운 이 사막 요새는 아라비아의 요정 이야기에서 그대로 빠져나온 것 같다. 12세기에 인도와 중앙 아시아 사이 낙타 대상을 위한 경유지로 건설된 자이살메르는 총안이 있는 도시 성벽, 장대한 요새, 아주 정교하게 조각된 석재와 나무로 된 하벨리스 등이 늘어선 황금빛 사암 도시이다. 해질녘에 멀리서 바라보면 이 도시는 신기루 같은 빛깔로 빛난다.자이살메르의 인상적인 요새는 80m(260ft) 높이의 언덕 꼭대기에 있으며 이 도시의 40,000시민 중 1/4가 요새 벽 안에 거주한다. 여러 세기 동안 바뀐 것은 거의 없으며, 얼마나 많은 집, 사원, 궁전이 한정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세계 기록을 세우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요새는 구불구불한 골목길, 엄청나게 맡은 사잇길, 마하라자의 궁전, 의식이 거행되는 안뜰, 아름답게 조각된 자이나교 사원 등으로 가득차 벌집 모양을 이루고 있다. 자이살메르의 부유한 상인들이 지은 하벨리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패트원 키 하벨리(Patwon ki Haveli), 살림 싱 키 하벨리(Salim Singh ki Haveli), 나트말 키 하벨리(Nathmal ki Haveli) 등이다. 정경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자이살메르가 위험한 지경까지 망가지고 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붕괴에 대처해 지역 주민, 정부, 여행자, 고고학자 등의 집단이 모두 뜻을 모았고 "위기에 처한 자이살메르(Jaisalmer in Jeopardy)"라는 이름의 캠페인이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낙타 트레킹은 자이살메르에서 큰 사업이며 사막을 체험하는 근사한 방법이다. 돈을 지불할 때는 어떤 조건인지를 확실하게 하라. 실망할 일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트레킹은 3-4일 정도 걸리며 가장 좋은 시기는 10월에서 2월 사이이다.라자스탄에는 상당히 믿을만한 버스 노선과 광대한 철도 노선이 있어 자이살메르에 가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를 더 빨리 연결하기 위한 철로 공사로 철도 노선이 불통되는 수가 있으니 각 지역에서 갱신된 최신의 열차 시간표를 확인하라. 부유한 사람들의 생활을 맛보고 싶다면, 왕의 노선에 따라 자이살메르를 지나가는 '바퀴 위 의 궁전(Palace on Wheels)'을 예약하라. 이것은 움직이는 호텔로 전통적인 마하라자의 마차처럼 장식되어 있고 비싸지만 호화스럽다. 자이살메르는 델리에서 795km(490마일) 떨어져 있다.
  • 레(Leh)
  • 한때 중앙아시아로 여행하는 야크(Yak) 행렬의 출발점이었던 레는 인더스 계곡 바로 북쪽에 있는 작은 계곡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 이 마을은 부분적으로는 군사적 전략지이고 부분적으로는 관광지이다. 레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레 궁전(Leh Palace)이다. 이 궁전은 16세기에 지어졌으며 현재는 버려진 상태이며 심하게 손상을 입었는데, 이는 지난 세기 카슈미르와의 라다크(Ladakh) 전쟁의 잔해이다. 궁전으로 올라가는 주된 이유는 지붕에서 바라보는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전경 때문이다. 인더스 강을 넘어 잔스카르(Zanskar) 산맥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라다키(Ladakhi) 왕족은 이 궁전을 인도 고고학 연구소(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에 팔았으며 야심찬 개조 공사가 지금 진행중이다. 보존되고 있지만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중앙 기도실을 열어줄 수도승을 찾아보라. 공예품 가게와 배낭여행자 음식점에서 벗어나 구시가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으며 관광객들을 받아들이기 전 이 도시가 어떤 모양이었을지 생각해 보는 것도 꼭 한번 해보라. 레에서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인기 있는 곳으로 20km(10마일) 떨어진 틱세 곰파(Tikse Gompa)가 있다. 인더스 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의 경치 좋은 장소로, 티벳 스타일의 책과 뛰어난 예술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종교 의식을 구경할 수도 있다. 레에서 45km(30마일) 떨어진 헤미스 곰파(Hemis Gompa)는 라다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도시이다. 이 도시는 헤미스 축제로 유명한데, 매년 6월 하순이나 7월 초에 열린다. 정교한 가면무용이 이틀간 계속되며 열광한 관중들이 이를 지켜본다. 그냥 라다크에 가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안되는 사람들은(교통편 및 현지 교통편 부분을 보라) 레에 있는 많은 여행사를 통해 인더스 강을 타고 내려가는 급류 래프팅에 참가할 수 있으며 마카와 인더스 계곡으로 트레킹도 갈 수 있다.레로 여행하는 것은 타이밍의 문제다. 6월에서 9월 사이에는 비행기로 여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겨울 동안은 이야기가 다르다. 날씨가 나쁘지 않으면 델리, 장무르(Jangmur), 스리나갈(Srinagar)에서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다. 레를 출발하는 버스 노선은 두 노선 밖에 없고 그나마 정해진 운행규칙이 없다. 버스가 나타나지 않아 출발하기 전 저녁 무렵까지 표를 사지 못할 수도 있다. 비행기가 뜨지 않고 버스가 다니지 않는 경우에는 장거리 지프나 택시라는 수단이 항상 있는데 버스보다 비싸지만 확실히 가 닿기는 한다.
  • 레(Leh)
  • 한때 중앙아시아로 여행하는 야크(Yak) 행렬의 출발점이었던 레는 인더스 계곡 바로 북쪽에 있는 작은 계곡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 이 마을은 부분적으로는 군사적 전략지이고 부분적으로는 관광지이다. 레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레 궁전(Leh Palace)이다. 이 궁전은 16세기에 지어졌으며 현재는 버려진 상태이며 심하게 손상을 입었는데, 이는 지난 세기 카슈미르와의 라다크(Ladakh) 전쟁의 잔해이다. 궁전으로 올라가는 주된 이유는 지붕에서 바라보는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전경 때문이다. 인더스 강을 넘어 잔스카르(Zanskar) 산맥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라다키(Ladakhi) 왕족은 이 궁전을 인도 고고학 연구소(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에 팔았으며 야심찬 개조 공사가 지금 진행중이다. 보존되고 있지만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중앙 기도실을 열어줄 수도승을 찾아보라. 공예품 가게와 배낭여행자 음식점에서 벗어나 구시가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으며 관광객들을 받아들이기 전 이 도시가 어떤 모양이었을지 생각해 보는 것도 꼭 한번 해보라. 레에서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인기 있는 곳으로 20km(10마일) 떨어진 틱세 곰파(Tikse Gompa)가 있다. 인더스 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의 경치 좋은 장소로, 티벳 스타일의 책과 뛰어난 예술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종교 의식을 구경할 수도 있다. 레에서 45km(30마일) 떨어진 헤미스 곰파(Hemis Gompa)는 라다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도시이다. 이 도시는 헤미스 축제로 유명한데, 매년 6월 하순이나 7월 초에 열린다. 정교한 가면무용이 이틀간 계속되며 열광한 관중들이 이를 지켜본다. 그냥 라다크에 가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안되는 사람들은(교통편 및 현지 교통편 부분을 보라) 레에 있는 많은 여행사를 통해 인더스 강을 타고 내려가는 급류 래프팅에 참가할 수 있으며 마카와 인더스 계곡으로 트레킹도 갈 수 있다.레로 여행하는 것은 타이밍의 문제다. 6월에서 9월 사이에는 비행기로 여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겨울 동안은 이야기가 다르다. 날씨가 나쁘지 않으면 델리, 장무르(Jangmur), 스리나갈(Srinagar)에서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다. 레를 출발하는 버스 노선은 두 노선 밖에 없고 그나마 정해진 운행규칙이 없다. 버스가 나타나지 않아 출발하기 전 저녁 무렵까지 표를 사지 못할 수도 있다. 비행기가 뜨지 않고 버스가 다니지 않는 경우에는 장거리 지프나 택시라는 수단이 항상 있는데 버스보다 비싸지만 확실히 가 닿기는 한다.
  • 카주라호(Khajuraho)
  • 북부 마드야(Madhya) 프라데쉬의 이 고요하고 온난한 회색 마을은 사원으로 가득하다. 사원이 경배하는 대상은 다양하다. 태양의 신, 신성한 소, 보다 인상적인 것으로는 섹스도 있다. 아프라사스(apsaras) 혹은 '성스러운 처녀(celestial maidens)'의 돌 조각이 입을 삐쭉 내밀거나 플레이보이지 모델처럼 포즈를 잡고 있고 관능적인 조각상인 미투나(mithuna)는 카마 수트라(Kama Sutra)에 나오는 모든 체위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조각들은 아주 호색적이며, 부분적으로는 그로 인해 카주라호 사원은 전 세계에 유명해졌다. 다른 이유는 이 조각들이 찬드라(Chandela) 시대의 뛰어난 수공예로 자유롭게 장식되어 있기 때인데, 찬드라 왕조는 이슬람의 침략으로 멸망하기 전 5세기동안 지속되었다. 3월마다 열리는 댄스 페스티벌도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데, 전국 최고의 고전 무용수들이 이 페스티벌에 모여든다. 조명을 받은 사원은 이 행사의 멋진 배경막이 되어준다.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사원들은 경치가 아름다운 서쪽 지역에 있다. 밖에서 보면 사원은 작은 탑들이 송이로 많이 매달려 커다란 중심 봉우리 주변에 작은 봉우리들이 솟아있는 산을 연상시키는 곡선의 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벽 주변에는 두 줄, 혹은 세 줄로 서로 육감적으로 끌어안고 있는 신, 여신, 왕, 영웅, 고급 창부 등이 늘어서 있고 때로는 다양한 수간 장면이 나타나 있는 경우도 있다. 내부 역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트인 주랑 현관이 메인 홀로 이어지고 그 뒤에 있는 대기실은 서 있는 조각상이 들어찬 내부의 성소다. 사실 조각과 건축이 완벽하게 융화되어 있어 각 건물이 한 사람의-성적 욕망이 매우 강한- 대가에 의해 계획되었던 것처럼 보인다.카주라호에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카주라호는 주요 도시로 가는 길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작은 마을을 계속 경유하는 긴 버스 여행을 해야 한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낫다. 에어 인디안 에어라인(Air Indian Airlines)은 매일 델리-아그라-카주라호-바라나시를 운행하지만 예약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가능한 한 일찍 예약하는 것이 좋다. 버스는 아그라, 간시(Ghansi), 잔시(Jhansi)에서 운행된다. 기차를 탄다면 잔시에서 내려 버스로 카주라호까지 가야 한다.
  • 케랄라 백워터(Kerala Backwaters)
  • 케랄라 해변 주위에 복합적으로 모여 있는 석호, 호수, 강, 운하는 이 지역의 색다른 생활양식의 근본이 되며, 이러한 백워터를 보트로 여행하는 것은 이 지역 방문의 하이라이트이다. 보트는 중국 그물이 처져 있는 종려가 우거진 얕은 호수를 지나 좁고 그늘진 운하를 따라가면서 코코넛 섬유(coir), 코코넛 말린 것(copra), 캐슈 등을 싣는다. 주민들이 조심스럽게 경작하고 있는, 몇 미터밖에 안되는 작은 땅에 정박하기도 하며 돛이 크고 뱃머리가 용모양으로 구부러진 전통 배를 구경할 기회도 있다. 가장 인기있는 백워터 여행은 8시간에 걸쳐 콜람(Kollam)과 알라푸자(Alappuzha) 사이를 오가는 여행이지만 이 루트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구인이다. 지역 주민들과 섞여보고 싶거나 더 짧은 코스가 좋다면 알라푸자에서 코타얌(Kottayam)과 창가나세리(Changanassery)로 가는 지역 보트를 타면 된다.
    < backwater mentality>
    콜람은 자주 운행되는 티루바난타푸람(Thiruvananthapuram)-에르나쿨룸(Ernakulum) 버스 노선 중간에 있고 기차도 네 개 노선 이상이 지난다. 남부 주요 도시에서 콜람으로 가는 것은 아주 쉽지만 델리에서는 정말 멀다. 정확히 2756km(1708마일)나 떨어져 있다.
  • 안다만 니코바르 군도(Andaman & Nicobar Islands)
  • 숲이 우거진 300여개의 열대 섬이 이어진 이 군도는 인도와 미얀마 사이 벵갈 만에 펼쳐져 있으며 거의 수마트라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다. 이 지역은 인종적으로는 인도에 속하지 않으며 상당히 최근까지도 토착 부족들만이 살았다. 안다만 니코바르 군도의 섬 중 다수는 무인도이며,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고 흰 백사장과 놀랄 만큼 맑은 물이 있다. 이 지역은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을 하거나 해변에서 빈들거리기에 최상의 장소이다. 현지인 여행자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만 외국인에게는 30일간의 체류허가만이 발급되어 여행기간에 제한이 있다. 캘커타와 체나이(마드라스)에서 남 안다만의 포트 블레어(Port Blair)로 정규 비행편이 있으며 체류 허가는 도착시 공항에서 발급된다. 캘커타와 체나이에서 드물게 배가 운행되는데 안다만 니코바르 군도까지 4일 걸린다. 배로 올 생각이라면 허가증을 미리 발급받아야 한다.
  • 카흐나 국립공원(Kanha National Park)
  • 카흐나는 인도에서 가장 크고 외진 국립 공원으로, 숲과 나무가 좀 있는 목초지가 1945sq km 펼쳐져 있고 강과 시내가 많다. 키플링(Kipling)의 '정글 북(Jungle Book)'의 배경이었던 만큼 이 국립공원에는 아주 다양한 야생 동물이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표범, 치탈(chital), 사슴, 가장 유명한 호랑이 등이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는 코끼리 뒤를 따라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밀렵꾼들 때문에 호랑이를 볼 기회는 많이 줄었다. 연중 언제건 야생 동물들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3,4월의 더운 시기에 더 많이 볼 수 있는데 동물들이 나무 그늘에서 나와 물을 찾아 움직이기때문이다. 공원은 6월 1일부터 10월 31까지는 문을 닫는다.자발푸르(Jabalpur)에서 하루에 두 번 직행 주(州) 버스가 있다. 자리를 얻으려면 돈을 더 내야 하는 덜컥거리는 낡은 버스이니(적어도 만들라(Mandla) 이후는 그렇다) 짐을 많이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이 좋다.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버스로 두 시간 정도 떨어져 있지만,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타 볼만하다.
  • 인도로 가는 길
  • 인도의 주요 국제 공항은 뭄바이(봄베이)와 델리지만 캘커타와 체나이(마드라스)에도 국제선 비행기가 많이 내린다. 유럽에서 오는 비행기는 새벽 일찍 인도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거나 어둠 속에 낯선 도시를 돌아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에는 불편할 수도 있다. 델리는 인도에서 항공권을 가장 값싸게 살 수 있는 곳이고 다음으로 캘커타와 뭄바이에서도 싸게 살 수 있다. 이웃한 나라로 가는 항공권은 아주 싼 경우가 많은데, 특히 캘커타와 다카(Dhaka, 방글라데시), 델리와 카라치(Karachi, 파키스탄), 티루키라팔리(Tiruchirappalli)와 콜롬보(Colombo, 스리랑카) 사이의 항공권은 아주 싸다.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네팔로 가는 경우의 출국세는 US$3이지만 다른 나라로 갈 경우에는 US$10이다. 인도와 네팔 사이의 가장 인기 있는 육로 루트는 비르간즈(Birganj)-락사울(Raxaul), 수나울리(Sunauli)-고라크푸르(Gorakhpur), 카카르비타(Kakarbhitta)-시리구리(Siliguri)이다. 만약 카트만두(Kathmandu)나 포카라(Pokhara)에서 델리나 인도 북서부의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라면 수나울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캘커타나 인도 동부로 갈 생각이라면 비르간지가에서 국경을 넘는 것이 가장 좋고 다질링으로 갈 생각이면 카카르비타를 통하는 것이 제일 편하다. 캘커타와 다카 사이를 육로로 여행하기도 그럭저럭 쉽다.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 유일하게 열려 있는 국경 건널목은 라호르(Lahore)와 암리차 사이에 있다. 이 국경 건널목은 기차나 버스로 넘어갈 수 있다. 다른 건널목은 모두 육로로만 넘어갈 수 있다. 라호르와 델리 사이 현재 주 4회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 국내 교통편
  • 인도의 주요 국내선 항공사인 국영 인디안 에어라인(Indian Airlines)은 광대한 노선을 갖추고 있다. 인도의 국제선 항공사인 에어 인디아(Air India) 역시 뭄바이(봄베이)-델리, 뭄바이-캘커타, 델리-캘커타, 뭄바이-체나이(마드라스) 국내선 노선을 운행한다. 규제 완화로 서비스가 급속히 향상되었고 후발 항공사 숫자가 급속히 늘었지만 그중 많은 숫자가 최근 도산했다. 사하라 인디안 에어라인(Sahara Indian Airlines)과 제트 에어웨이즈(Jet Airways)가 아마도 신규 항공사 중 가장 안정적인 회사일 것이다. 인도 철도 체제는 전설이 될 만 하며 인도에서의 기차 여행은 지구상의 어떤 여행과도 다르다. 기차 여행은 종종 불편하고 짜증스럽지만, 그러한 불편 역시 인도의 기차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경험이다. 인도 기차에서의 에티켓의 핵심을 가능한 한 빨리 몸에 익히지 않으면 자신의 개인 공간을 지킨답시고 헛된 노력만 계속하게 될 우려가 있다. 기차의 좌석 등급은 다양하며 기차의 종류 역시 다양하다. 특급이나 우편 기차를 타고 싶겠지만 장난 삼아서라도 모든 등급의 기차를 타 보라. 인도의 예약 시스템은 가히 미궁이라 할 만 하며 인류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만하지만, 이 나라에서 실제로 일을 하고 있는 몇 안되는 국가 부서라는 것을 생각해 인내심을 가져 보라. 기차표를 예약할 때는 여행자 쿼터가 있는지 물어보고 그 쿼터를 이용하라. 이쪽이 자리를 확보하기가 쉽다. 버스 체제는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주요 노선에서는 여러 등급, 즉 일반, 급행, 세미-럭스(semi-luxe), 디럭스, 디럭스에어컨, 디럭스 침대차 중 선택이 가능하다. 많은 노선에는 정부 행 버스 외에 개인회사가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개인 버스가 더 빠르고 편리하면서 가격이 비싸고 긴 여행을 위한 센스를 갖추고 있다. 버스 여행은 일반적으로 붐비고 갑갑하고 느리고 불편하다. 그러나 이 정도는 좋은 소식이라 할 수 있다. 나쁜 소식은 이따금 버스를 타려고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럭비 스크럼이 필요할 정도이며, 싸구려 스피커에서 쿵쾅거리는 시끄러운 힌디어 팝 뮤직을 계속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버스는 카슈미르로 가는 유일한 수단이며 우타르 프라데쉬에서 네팔로 가기 위한 교통편으로도 제일 낫다. 버스는 비하르 북부와 라자스탄 대부분 지역에서 기차보다 빠르다. 자동차와 기사는 쉽게 세낼 수 있지만, 직접 운전하려면 강철로 된 신경과 엄청난 행운이 필요하다. 자동차는 하루 단위로 렌트되고 하루에 운행할 수 있는 거리에 제한이 있다. 기사의 일당까지 지불해야 하므로, 미리 하루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를 확실하게 해 두라. 길게 여행할 생각이라면 같이 여행할 기사의 운전 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한번 시험을 해 보는 것이 좋다. 오토바이로 인도(특히 인필드 불렛(Enfield Bullet))를 돌아다니는 것도 인기 있지만, 매우 위험한 일이며 아마추어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자전거는 도시를 둘러보는데 아주 유용하며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빌릴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약하거나 무릎이 약한 사람은 자전거로 긴 거리를 여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기 자전거를 가져가고 싶을 때는 멈출 때마다 현지인들이 최신형 10단 기어 자전거를 쿡쿡 찌르고 관찰하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볼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