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칼레도니아(New calenonia)
종족과 카페오레; 노예로 팔린 사람과 산호초; 멜라네시아인 학살과 메누스 두 주(menus du jour)- 뉴 칼레도니아는 한 사람의 호화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지는 잘 보여주는 나라다. 프랑스는 세상의 한 부분을 강하게 짓밟았으며,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해 해병을 수 차례 파병했다. 칼도체, 메트로와 카낙인은 '태평양 무능력자의 상'을 위해 서로 경쟁해 뉴 칼레도니아를 혼동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은 80년대의 지속적인 무감각한 폭동을 종식하려는 최소한의 노력과 함께 현재 서로를 더 격리한 채 생활하고 있다. 원시의 산호초에서 다이빙에서 프랑스 요리까지, 훼손이 안된 열대우림에서의 트레킹에서 클럽 메드에서의 밤의 파티까지 여행자를 위한 선택은 다양하다. 주민들은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현지인 풍습을 유지하며 열린 마음과 유머에 대한 감각으로 인해 뉴 칼레도니아 여행은 잊지 못하게 될 것이다.
  • 통계 자료
  • 국명 : 뉴 칼레도이아와 속령(New Caledonia and Dependencies)
    면적 : 19,000 sq km
    인구 : 196,870 명
    수도 : 누메아(Noumea)
    인종 : 멜라네시아인(44.1%), 유럽인(31.4%), 태평양 섬 주민과 인도네시아인
    언어 : 프랑스어, 멜라네시아어-폴리네시아어 방언
    종교 : 로마 천주교(70%), 개신교(16%), 토착신앙, 이슬람
    정체 : 프랑스 해외령, 프랑스에 의해 통치됨
    국가 수반 : 필립 코메즈 (Philippe Gomes)
  • 지리 및 기후
  • 뉴 칼레도니아의 본 섬인 그랑 테레(Grande Terre; 큰 땅)는 터키옥색의 바다에 니켈이 매장돼 있으며 먼지의 줄무늬로부터 떨어져있으며, 시계바늘이 오전 10시에 영원히 멈춰있는 것 같다. 인접국가인 여러 개의 섬을 갖고 있는 바누아투(Vanuatu), 솔로몬(Solomons)과 달리 뉴 칼레도니아는 비교적 적은 숫자의 섬으로 이루어진다. 그랑 테레, 로얄티 섬(Royalty Islands), 드 팡 섬(Ille des Pins), 작은 벨렙 섬(Ille Belep)과 일부 흩어져 있는 산호초와 화산에 의한 작은 섬이 전부다. 건조한 땅인 뉴 칼레도니아는 웨일스보다 조금 크며 미국의 뉴저지 보다 조금 작은 크기다. 그랑 테레는 안개 가득하고 깊고 비가 많이 오는 중부 산악지역과 서부 해안보다 유럽인 정착지가 적은 야생의 동부 해안을 갖고 있다. 서부지역은 비의 그늘에 놓여 있고 더욱 건조하며 바람이 많이 부는 해안의 평지는 광업과 방목 산업으로 인해 최악의 손상을 입었다. 뉴 칼레도니아를 덮고 있던 산림의 80% 가까이 공업과 방목으로 인해 훼손됐으며, 대부분의 농업은 아보카도, 쌀, 오렌지, 파인애플 수출을 위해 경작된다.
    다른 많은 섬들과 마찬가지로 뉴 칼레도니아도 다양한 지방특유의 식물군(약 80%)과 동물군(약 30%)가 분포한다. 그랑 테레의 중부 산악지역은 미기후를 만들고 지형이 떨어져 있어 오래 전부터 식물과 동물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자연 보호구역은 특별 식물원 또는 동물 보호구역과 한 개의 공원 특별지구가 있으며 보호의 정도는 공원에 따라 다양하다. 현재 52,000 헥타의 해양지역이 보호되고 있다. 섬은 열대지방의 가장자리에 놓여있고 온도 변화가 거의 없는 봄 기온이 연중 분포한다. 온도가 가장 많이 변하는 시기는 11월 중순에서 4월 중순으로 따듯하고 습하며 겨울인 7-8월은 봄 같은 기후가 나타난다. 평균 최고기온은 22도에서 28도 사이다. 사이클론은 12월에서 3월 사이에 발생하며 사이클론 기간을 전후한 한 달은 쌀쌀하다. 일반적으로 기온은 큰 변화가 없으며 일광시간도 매일 오전 6시에서 오후 6시까지 일정하다.
  • 역사
  • 5천년 전 동남아에서 이주해 서 태평양 지역에 정착했던 오세아니아인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게없지만, 기원전 7천년에서 5천년 사이에 동남아에서 추가로 이주한 사람들은 농업, 카누 제작, 도자기를 전래했다. 그들은 그랑 테레와 드 팡 섬에 고분을 그랑 테레에 암벽선화를 남겼다. 섬에는 현재의 폴리네시아인과 사모아인이 11-18세기에 추가로 이주해온다. 16세기 후반에는 스페인이 신비스런 테라 오스트랄리스를 찾기 위해 섬 주변을 돌아다녔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그 뒤를 잊는다.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그랑 테레를 1774년에 발견하고 로마 제국이 칼레도니아라고 부르던 스코틀랜드의 고지대와 닮았다고 생각해 뉴 칼레도니아로 이름을 짖는다. 14년 후 루이스 16세는 꼼뜨 드 라 페루스가 지휘하는 원정대를 보내지만 사이클론으로 인해 솔로몬의 바니콜로에서 실종된다. 3년 후 페루스 원정대를 찾아 나선 브루니 엥뜨레카스뜌스 함장 일행은 섬에 도착해 그랑 테레를 걸어서 횡단한다. 섬에 오랫동안 정착했던 유럽인은 영국인과 미국인 포경선원들로 1840년 로얄티 섬의 리푸(Lifou)에서 원유추출을 위한 시설을 설치한다. 백단 목재을 벌목하기 위한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서로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포경선원과 벌목꾼은 유럽인 사회에서 서로 융화되지 못했다. 1853년 군사적인 요충지를 찾던 나폴레옹 3세는 영국이 먼저 발견한 그랑 테레를 프랑스의 임무를 방어한다는 목적으로 공격한다. 프랑스가 진격해 들어오고 군사정부에 의한 통제가 19세기까지 이어진다.
    프랑스 임무가 더 강해지면서 전통적인 풍습이 약화되고 섬의 생활방식이 위협받게 된다. 노예를 위해 완곡어법으로 쓰여진 '노예로 팔린 사람'은 20세기까지 이어졌으며 알려지지 않았던 질병들이 등장해 인구를 더욱 감소시킨다. 프랑스는 태평양을 그들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한 좋은 장소로 생각하고 1864년 5월부터 죄수들을 강제이주 시키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 코뮌으로 발생한 정치범들이었으나 후에 '낙원의 불행한 사람'으로 알려진 부랑자와 도둑들도 포함돼 있었다. 강제이주가 금지된 1897년까지 21,000명의 죄수가 뉴 칼레도니아로 보내졌다. 니켈의 발견과 프랑스로부터의 자유로운 정착이 시작되면서 유럽인이 소수민족의 땅을 잠식하면서 인종간의 문제가 불거진다. 1878년에 발생한 프랑스에 반대하는 7개월간의 반란으로 인해 200명의 프랑스인과 1,200명의 카낙(kanak)인이 사망했다. 진압으로 인해 카낙 문화는 더욱 약해진다.
    세계대전 동안 많은 카낙인이 징병됐으며 2차 대전기간에는 미국인 4만 명이 뉴 칼레도니아의 기지에서 작전을 수행한다. 미국인 기지에 근무했던 카낙인은 흑인과 백인간의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처음으로 적당한 임금을 받는다. 전쟁 후 식민지의 위치는 프랑스의 해외 특별지역으로 변한다.
    전후 카낙인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요구를 하기 시작했으며, 마레의 나이셀린 의장은 프랑스 국기 아래서 두 번의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사망한 카낙인들에게 프랑스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으며 '출생지의 법안'을 준비한다. 카낙인에게 1946년 시민권이 부여됐으며 1953년엔 최초의 정당인 유니온 칼레도니엔(Union Caledonienne)이 설립됐고 1957년에는 투표권까지 부여된다. 1960년대의 니켈 붐은 누메아(Noumea)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고 독립에 대한 의식이 고무된다. 1968년의 파리 학생시위를 목격했던 프랑스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뉴 칼레도니아로 1960년대 후반 돌아와 정치적인 자각과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카낙인의 땅에 대한 독립과 복원이 1977년의 선거 안건에 채택됐으나, 카낙인은 자신의 영토에서 소수민족이 되어간다. 독립운동의 전환점이던 1984년부터 레 에베네멘트(Les E've'nements- The Event)로 간단히 불리는 2년간의 혼동이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프랑스 사회주의 정부의 재편에 대한 공허한 환상을 버리고, 몇 개의 독립정당들은 쟝 마리에 지바우(Jean-Marie Tjibaou)를 지도자로 해 카낙 사회주의 국가 해방전선(FLNKS; Front de Lib'eration National Kanak et Socialiste)를 형성한다. 해방전선은 1984년의 특별지역 선거를 보이콧하고 폭력투쟁을 전개해 국가를 흔들어 놓는다. 해방전선의 급진적인 지도자가 라 포(La Foa) 인접지역에서 민간경비대에 의한 총격으로 사망한 후 폭동은 전 지역으로 확대된다. 프랑스는 낙하산부대를 투입했고 6개월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선거 보이콧이 다시 발생했고 암살과 폭발이 누메아 중심을 흔들어댔으며 그 이후 협정이 조인된다. 프랑스는 1986년 뉴 칼레도니아를 자치허용 국가 리스트에 허용함으로서 독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호주와 유엔과 싸운다. 프랑스는 내정을 간섭할 목적으로 운동을 전개했고, 독립진행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던 호주 총영사를 누메아에 추방시킨다. 해방전선이 1988년의 평화협정을 팔았다고 믿던 세분된 카낙인 조직에 의해 지바우가 암살 당한다. 90년대에 들어 폭력은 감소하고 있으며 우파와 독립을 지지자간의 조화와 평화를 위한 협상이 이어지고 있다. 빠르면 2013년까지 독립을 연기한다는 1998년 초의 누메아 협정은 독립운동 지지자들에게 타격을 줬다.
  • 경제
  • 국내 총 생산 GDP : US$ 80억 달러
    1인당 GDP : US $10,000 달러
    인플레이션 : 1.7%
    주요 산업 : 니켈, 농업
    주요 교역 대상국 : 호주, 뉴질랜드
  • 문화
  • 카낙인들 사이에서 춤은 고도로 발달된 예술의 형태다. 출생, 결혼, 사이클론, 전쟁을 위한 준비를 들려주는 전통적인 필루(Pilou)는 1951년 높은 에너지와 무아지경 상태로 인해 무용수를 포함해 필루가 식민지 통치자에 의해 금지되기도 했었다. 음악은 모든 전통적인 행사의 기초적인 요소이며 소라 조개, 리듬악기, 대나무 플롯을 포함해 다양한 악기가 사용된다. 칼도체(Caldoches) 또는 백인 뉴 칼레도니아인은 대부분 프랑스 죄수의 후손으로 자신을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의 메트로폴리탄 보다 호주나 미국의 시골 문화와 비슷한데 로데오와 국가행사가 인기 있다. 메트로(M'etros)는 근래에 프랑스에서 이민 온 사람들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최신 유행하는 옷을 쇼핑하는 것 즐긴다.
    프랑스어가 공식적인 언어로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부 영어를 쓰는 누메아를 제외하면 프랑스얼 할 줄 알면 도움이 된다. 뉴 칼레도니아에는 27개의 카낙어가 공존하지만 프랑스인이 도착한 이래 사용이 줄어들어 언어간의 공통된 요소가 전혀 없다. 집단을 중시하는 종족은 전통적인 카낙 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종족간의 의식, 예절,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코드인 라 꾸툼(la Coutume)은 현재 카낙인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본질적인 요소로 개인적인 조상들과 연결돼 유지된다. 카낙인은 파푸아인과 호주 원주민과 연관된 서 태평양에서 사는 흑인 말라네사아인으로 자신들을 티바웨르(Ti-Va-Ouere) 또는 '지구의 형제'라고 부른다.
    뉴 칼레도니아의 일반적인 음식은 생선, 코코넛, 바바나, 타로, 고구마와 얌이다. 럽스터, 코코넛 게, 듀공, 거북이 역시 전통적인 음식으로 사용되며 큰 박쥐인 루세뜨(roussette)도 요리된다. 불행하게도 많은 전통적인 음식은 통조림이나 1회용 식품으로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타로, 양, 고구마, 바나나를 혼합한 것과 닭고기, 게 또는 럽스터를 바나나 잎으로 싸서 오븐에 구운 부그나(bougna)를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식당에서 기본적인 프랑스 음식을 판매하며 베트남음식, 중국음식, 인도네시아음식은 적당한 가격에 레스토랑에서 판매된다. 프랑스 사람이라면 당연한 커피와 와인은 흔하고 매우 훌륭하다.
  • 축제 및 행사
  • 카낙의 가장 중요한 축제는 3월 중순에 열리는 관광객이 참여할 수 없는 얌의 페스티발(Festival of the Yam)이다. 프랑스인이 있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7월 14일의 프랑스혁명 기념일(Bastille Day)을 뉴 칼레도니아도 축하한다. 가족들과 아이들이 혁명기념일 전날 해질녘에 랜턴을 들고 모여 코코띠에르 플레이스(Place des Cocotiers)로 걸어 이동한 다음 불꽃놀이를 즐긴다. 기념일 오전에는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5월 중순에서 말까지는 네쎄(Nece)와 마레(Mar'e)에서 수확을 즐기려는 아보카도 페스티발로 바쁜 시간을 보내며, 누메아의 안스 바타(Anse Vata)를 따라 장식을 물에 띄워보내는 라 레가트 드 투퀘(La Regate des Touques)와 태평양 전지역에 참여하는 3일간의 음악축제인 패시픽 템포(Pacific Tempo)가 열린다.
    포이르 드 부아일(Foire de Bourail)은 8월말에서 9월초의 로데오, 가축 쇼, 경마, 미인대회가 열리는 국가적인 행사다. 9월 24일의 뉴 칼레도니아의 날은 1853년 아우구스트 페브리에 데스포인트(August Febvrier Despointe) 제독이 뉴 칼레도니아를 프랑스 땅으로 주장한 날을 기념하는 것으로 카낙인들이 애도하는 하루를 보내는 동안 백인들은 휴무를 즐긴다. 에뀌녹스(E'quinoxe)는 2년마다 열리는 현대 무용, 음악, 연극 축제로 누메아에서 10월에 열리며, 같은 달 후반 또는 11월초에 인기 있는 빛과 소리의 공연이 라 포의 포트 트렘바(Fort Tremba)에서 열린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 EU, 스위스,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호주, 이스라엘, 미국인은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하며 3개월간 체류가 가능하다.
             나머지 국가의 여행자는 프랑스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입국 전에 비자를 취득해야한다.
    보건위생 : 뎅구열, 식수로 안전하지 못한 로얄티 섬에 있는 오베아(Ouv'ea)에서의 물
    시차 : GMT + 11시간
    전압 : 220V, 50Hz
    도량형 : 미터법(도량형 환산표 참조)
  • 경비 및 환전
  • 통화 : 태평양 프랑(Dour de Franc Pacifique; F 또는 CFP)
    일반 경비
    저렴한 현지 식사 : US$7-10
    중간 가격대의 레스토랑 식사 : US$15-25
    최고급 레스토랑의 식사 : US$30 이상
    저렴한 숙소 : US$12
    중급 호텔 : US$40
    고급 호텔 : US$100 이상

    뉴 칼레도니아는 구두쇠를 위한 곳은 아니며 태평양 지역에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다음으로 비싼 여행지다. 대부분의 음식이 수입되며 가격이 높으며 현지에서 생산된 식품도 수입품과 가격이 거의 동일하다. 만약 호스텔에서 자고 시장에서 산 빵, 치즈, 과일을 먹고 해변으로 히치하이킹에 이동하는 일을 한다면 하루 US$20도 가능하다. 하지만 저렴한 호텔에서 자고 스낵 바와 아겐트(argent)에서 식사를 한다면 하루 70달러는 쉽게 쓰게된다. 매일 밤 외식을 하고 비싼 호텔에서 자고 투어를 하는데 쓰는 돈을 신경 안 쓴다면 하루 200달러 이상이 필요하다. 모든 은행은 현금(프랑스 프랑 제외) 또는 여행자수표 환전 시 US$5가 수수료로 부과된다. 수수료가 없는 유일한 곳은 누메아의 아멕스(American Express) 사무실이다. 현금인출기(ATM)는 대부분 누메아에서 찾을 수 있고, 마스터, 비자, 유로카드, 까르트 브루 카드가 사용이 가능하며 일주일간 인출 한도는 최대 350달러다. 누메아에 있는 면세점, 항공사, 호텔, 레스토랑에서 주요 카드를 사용할 수 있으나 수도를 벗어난 지역에선 큰 호텔에서만 카드를 받는다. 팁은 존재하지 않는다. 멜라네시아의 팁에 관한 풍습은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선물을 다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유럽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거스름돈을 팁으로 놓고 간다면 종업원이 당신의 얼굴에 돈은 되 던질 것이다. 시장에서 가격흥정에 대한 능력이 없거나 주인이 원하는 대로 돈을 준다면 가격을 깎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게 된다.

  • 여행 시기
  •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 떠나라. 사이클론이나 모기를 두려워한다면 11월에서 4월 사이는 여행을 피하고, 여행 중에 페스티발 한두 개를 보고 싶다면 아보카도 페스티발(5월 중순 또는 말), 8월말 또는 9월초에 3일간 열리는 포이르 드 부아일(Foire de Bourail), 10월에 열리는 에뀌녹스(E'quinoxe) 기간을 이용하라. 다이빙을 한다면 산호를 동반한 빛의 반란을 볼 수 있는 이른 여름이 적합하다.
  • 주요 여행지
  • 누메아(Noumea)
  • 니켈 붐으로 인해 비견할 수 없는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던 누메아는 80년대 이해로 폭탄과 폭동으로 신음한다. 정치적인 행렬은 오늘날 프랑스 지배에 대한 종식에 대한 요구보다 과잉과 서비스를 단절하려는 시위의 성격이 강하다. 누메아의 가장 원시적인 해변인 남부의 안스 바타(Anse Vata)부터 북부의 교외인 쿠티우(Koutiou)와 야훼(Yahoue)까지 불과 15km가 안 되는 타운이다. 시의 중심가는 바이 드 라 모셀(Baie de la Moselle)을 따라 서쪽으로 퍼져있고 크루즈 선박, 어선,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는 좋은 전망을 갖고 있다. 서쪽으로 가면 식민지시대 최초의 죄수들 정착지인 누빌(Nouvielle)은 현재 니켈 제련업자들에 다수를 이루고 있다. 중부 누메아의 북쪽은 흥미 없는 거주지역이 위치한 공업지역이며 공업적인 교외지역이 바로 인접한다. 반도의 동쪽 끝에는 물과 접하고 있는 교외인 쌍뜨 마리에(Ste Marie)와 오에모(Ouemo)가 위치한다.
    쟝 마리에 지바우 문화센터(Jean-Marie Tjibaou Cultural Center)는 누메아에 새로이 등장한 흥미로운 시설로 도심에서 10km 떨어져있다. 카낙인의 땅과 연관된 불가결함을 반영해 디자인 된 건물로 현대적인 건축양식과 토착적인 문화의 믿음을 성공적으로 표현해 냈으며 카낙 유산과 오세아니아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식민지시대 양식인 비브리오떼크 베른하임(?Biblioth'eque Bernheim)은 누메아의 주 도서관이며 책 빌리기 좋은 장소다. 주변의 차량흐름에도 불구하고 쾌적하고 조용한 곳이지만 차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면 안스 바타에 있는 누메아 수족관으로 가라. 희귀하고 평범하지 않은 해양생물을 전시하고 있다.
    도심의 동쪽은 발레 데스 콜론(Vall'ee des Colons)은 카낙인과 폴리네시아 이민자가 거주하는 교외지역이다. 누빌은 죄수들의 유적과 수영에 적합한 숨겨져 있는 쿠엔두 베이(Kuendu Bay)가 볼 만하며 해안에서 스노클링도 가능하다. 꽈띠에르 라틴(Quartier Latin)은 파리의 복사본으로 도시 중심가의 남쪽인 포트 모셀과 인접해있다. 중심가의 북쪽에서 눈을 아프게 만드는 '도니암보의 화로'인 도니암보 니켈 제련소(Doniambo Nikel Smelter)는 놓치기 아까운 곳으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안스 바타는 최고 호텔시설이 들어선 곳으로 5-스타 호텔과 함께 일부 싼 숙소도 있다. 도시 중심가에 있는 호스텔은 바이 드 라 모셀의 아름다운 전망을 갖고 있는 누메아에서 가장 싼 숙박시설이며 다양한 종류(스파탄에서 호화스러운)의 숙소가 타운 주변과 바이 데스 씨트롱(Baie des Citrons)에 위치한다. 저렴한 먹거리는 꽈띠에를 라틴과 바이 데스 씨트롱에서 찾을 수 있으며, 타운에는 많은 스낵 바가 있고 맥페스트도 먹을 수 있다.
  • 드 팡 섬(Ile des Pins)
  • 그랑 테레를 제외하고 여행자들이 유일하게 방문하는 섬인 드 팡은 매우 뛰어난 해변과 만들로 유명하다. 주민들은 대부분 카낙인이며 80년대 최악의 폭력사태가 섬에 발생했었다. 이로 인해 아마도 섬 주민들은 여행자들을 환영하고 친절하게 대할 것이다. 섬에서 최고의 해변인 쿠토(Kuto) 역시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다. 많은 숙소와 식당이 쿠토 주변에 위치하며 현지인들은 해질 때가 되면 낚시를 하기 위해 바이 드 쿠토(Baie de Kuto)로 온다. 형벌 식민지의 통치자 주거지, 젠다메리(gendarmierie), 감옥 유적, 피추방자 공동묘지(Cimeti'ere des D'eport'ees)가 볼 만하다. 45분의 등산으로 픽 가(Pic N'Ga)의 262m 정상에 오르면 맑은 날은 섬 전체의 경관을 볼 수 있다. 드 팡 섬에는 동굴들이 풍부한데 웸얀이 동굴(Grotte de W'emwanyi)가 가장 유명하며, 오얏치아 동굴(Grotte d'Ouatchia)은 인상적인 바위 지형을 볼 수 있는 작은 지하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매우 아름다운 터키색의 무릎 깊이의 물로 덮여진 어귀인 바이 오로(Baie d'Oro)는 섬의 이름을 상징하는 소나무들이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다. 드 팡 섬은 누메아에서 항공기, 페리, 승객을 태우는 화물선이 이동하며 그랑 테레에서 남동쪽으로 50km 떨어져있다.
  • 히엥헨(Hiengh'ene)
  • 히엥헨은 1984년의 10명의 독립운동가가 학살된 곳으로 유명하며 해발 60m까지 돌출해 있는 검정색의 석회암 절벽인 린데랄리크 크리프(Lind'eralique Cliffs)가 있다. 크리프의 정상부위는 면도기로 깎은 듯 뾰족한 바위들과 제비와 큰 박쥐들이 서식하는 많은 동굴들을 볼수 있다. 히엥헨 남부의 클럽 메드는 호화로운 숙소와 귀엽게 만든 메라네시아 빌리지 모형을 제공한다. 작은 고아 마 브와핫 문화센터(Goa Ma Bwarhat Cultural Center)는 일시적인 음악과 연극의 전설을 들려주는 공연이 열린다. 그랑 테레의 중부 산악에서 서부 해안으로 3일이 걸리는 등산코스인 체민 데스 아라브(Chemin des Arabes) 등산도 가능하다. 히엥헨은 그랑 테레의 북동부 해안에 위치하며 포장된 길을 따라 산을 가로지르고 해안의 환상적인 경관을 지나친다. 누메아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가장 좋은 교통수단이다.
  • 부라일(Bourail)
  • 인구가 4,350명인 부라일은 생기 넘치는 식민지시대 정착지로 뉴 칼레도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아랍 묘지와 뉴질랜드 태평양전쟁 묘지는 차분한 느낌을 준다. 사냥과 낚시가 초기의 칼도체사회에서 중요한 것들이었으며 이상하게 생긴 바위지역인 라 로체 페르세(La Roche Perc'ee)가 유명하다. 현지인들은 얼굴(술에 취했거나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가능할 만하다) 형태라고 말하며, 수위가 낮을 때 정상까지 등반이 가능하다. 일찍 등반을 한다면 바이 데스 토투(Baie des Toutues) 주변에서 거북이를 볼 수 있다. 가장 좋은 해변은 프라그 드 포에(Plagu de Po'e)로 하얀 모래와 화려한 조개가 있으며 스노클링에 좋다. 포장된 도로인 RT1은 누메아의 북서로 약 150m 거리인 부라일까지 연결하며 버스 또는 차로 이동할 수 있다.
  • 리비에르 블루 공원(Parc Territorial de la Rivi'ere Bleue)
  • 누메아 사람들이 주말을 이용해 공원을 방문하므로 주중에 공원을 방문한다면 모든 것을 혼자 즐길 수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등산객에게 최상의 장소로 아라우카리아와 카우리 소나무(수명이 천년이상 된 거대한 그랑 카오리를 포함) 처녀림과 수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다양한 도보코스를 갖고 있다. 또한 공원에는 풍부한 조류가 서식해 붉은 볏을 가진 파라켓, 검은 꿀빨이새, 뉴칼레도니아 토종인 카구 등이 살고 있다. 한때 멸종위기에 놓였던 카구는 숨쉴 수 있는 공간과 보호정책으로 공원에 가끔 나타난다. 블루 리버 파크(Blue River Park)는 포장된 RT2 도로를 따라 누메아에서 내륙으로 43km 거리이며 버스를 타고 야테(Yat'e)까지 이동이 가능하지만 공원 내에는 대중교통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라 포(La Foa)
  • 작은 마을인 라 포는 벼과 식물 논과 아름다운 블랙우드와 아라우카리아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라 포는 죄수를 이주시키던 초기부터 두 명의 해방전선(FLNKS) 지도자가 저격 당한 1985년까지 문제를 앉고있던 지역이다. 구스타브 에펠에 의해 디자인 된 역사적인 파스렐 드 마구에리트(Paserelle de Marguerite) 다리는 넓은 교량으로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바이드 테렘바(Baie de Termba)를 바라보며 평지에 서있는 포트 테렘바(Fort Termba)는 식민지 군대의 본부로 위대한 폭동이 발생한 1878년 카낙인에 의해 포위됐던 곳이다. 현재는 11월에 빛과 소리의 공연이 열리는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도로에서 3km 떨어진 파리노(Farino)는 라 포와 바다까지 환상적인 전망을 갖고 있으며 매월 둘째 일요일에는 인기 있는 시장이 형성된다. 누메아에서 라 포까지 110km거리는 버스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운영된다.
  • 포인디미에(Poindimi'e)
  • 바위가 많은 해변이지만 수영과 스노클링에 적합하다. 섬과 산호초는 타운에서 멀지 않으며 뉴 칼레도니아에서 가장 좋은 다이빙 포인트다. '현대의 건축적인 통합예술'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알고싶다면 타운의 남쪽 끝에 있는 풀 바사렐리 모자이크(Municipal Pool Vasarely Mosaic)을 확인하라. 생존해 있는 동안 유명했던 빅터 바사렐리가 디자인한 모자이크는 밝은 회색으로 도시지역을 장식하고 있다. 타운의 언덕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은 미군이 참전했던 태평양전쟁을 기념하는 곳이며 차로 RT3 도로를 따라 몇 분 거리에 있는 티에 미션(Ti'e Mission)은 1866년에 건설된 교회다. 포인디에는 누메아에서 308km 거리인 그랑 테레 북동부 해안에 위치하며 RT3 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버스를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 품(Poum)
  • RT1 도로가 끝나는 그랑 테레의 북쪽 가장자리인 품은 1,300명이 거주하는 바람이 강하게 부는 지역이다. 기후가 거칠어 품은 사람들이 자주 찾지 않는 곳으로 차를 가지고 포인트 나하리안(Pointe Naharian)으로 알려진 보드 패스(Boat-Pass)를 여행하지 않는다면 별로 볼거리가 없는 곳이다. 황량하고 황폐한 반도는 야자, 녹지, 아라우카리아 소나무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바이 바나르(Baie Banare)를 지나치는 건 매우 환상적이며 네논(Nennon)과 카자온(Kajaon)에 해변이 있다. 버스를 탈 수 있는 쿠막(Koumac)까지 누메아에서 항공기가 취항하며 쿠막에서 품까지는 약 50km의 거리다. 품은 누메아에서 북서로 340km 거리인 RT1 도로가 끝나는 곳에 위치하며 버스로 이동한다면 쿠막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 티가(Tiga)
  • 소수 여행자만이 로얄티 섬에 있는 작은 산호 환초인 티가를 찾는다. 섬을 둘러싼 지역은 풍부한 산호와 어류로 인해 다이빙에 매우 적합하다. 주인의 허락을 받아 사유지에서 캠핑하거나 숙박시설이 없어 공항에서 자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개발이 안된 해변에서의 휴식을 즐길 수 있다. 380명의 티가 주민은 섬의 북서부 코너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 지역은 대부분의 필요시설과 산호초로 접근이 용이하다. 티가의 활주로는 마을의 북쪽에 있고 마레와 리푸에서 일주일에 4번, 누메아에서 주 1회 항공기가 취항한다.
  • 레저스포츠
  • 뉴 칼레도니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호초지역으로 다이빙과 스노클링이 환상적이다. 육지의 우기가 끝나는 여름기간의 바다는 투명하지 않지만 잔잔하고 바람이 없는 겨울은 수중 시계가 50m에 이른다. 다이빙하기에 좋은 장소로는 드 팡 섬, 포인디에, 아메데(Am'ed'ee) 섬, 마레, 그랑 테레 남부지역이다. 수영은 많은 해변 어디서건 할 수 있으며 가장 좋은 곳은 로얄티 섬의 동쪽과 드 팡 섬이다.
    발로 걷는 트레킹과 말타고 하는 트레킹이 모두 인기가 높으며 그랑 테레의 내륙지역에선 2-3일 코스의 트레킹이 가능하다. 동굴 탐험은 그랑 테레, 드 팡 섬, 로얄티 섬에서 가능하다. 존 덴버의 죽음이 당신을 신경쓰게 하지 않는다면 매우 누메아 또는 로얄티 섬에서 가벼운 비행(ultra-light flying)과 패러세일링에 도전해 볼만하다. 언덕 또는 산의 가장자리 아래로 달려 내려가고 싶다면 직사각형의 낙하산이 공중으로 이륙하기 전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의 전초지가 되기 위한 방법인 사이클링은 프랑스에서 9월에 열리는 투어 드 프랑스를 연상케한다.
  • 뉴칼레도니아로 가는 길
  • 뉴 칼레도니아로 정기적으로 취항하는 주요 항공사는 에어 프랑스, 콴타스, 에어 뉴질랜드, 에어 바누아투, AOM과 전세기를 운영하는 코스에어(Corsair)가 있다. 에어칼린(Aircalin) 또는 에어 칼레도니 인터네셔날(Air Cal'edonie International) 역시 주요 항공사지만 태평양 지역으로 노선이 집중돼있다. 일본인과 프랑스인을 이어 여행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호주인들로 인해 브리스베인, 시드니, 멜번으로 항공기가 자주 이동한다. 유럽에서 이동한다면 프랑스를 경유하거나 뉴 칼레도니아로 가는 싼 항공기를 탈 수 있는 호주 동부해안으로 취항하는 영국을 경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미의 서부 해안을 출발하는 지점은 샌프란시스코, LA, 벤쿠버다. 모든 국제노선 항공기는 누메아에서 북서로 45km 거리인 톤투타 국제공항에 착륙한다. 공항 출국세는 1997년부터 성인과 아동에게 US$11.60가 부과된다. 뉴 칼레도니아는 최근 들어 많은 크루즈 선박들이 정박하는 지역이 되고 있으며 클럽 메드의 호화선인 클럽 메드 2가 타히티로 이동한다. 크루즈 선박은 누메아의 자연적으로 형성된 수심이 깊은 항구인 바이 드 라 모셀(Baie de la Bosselle)에 돛을 내린다.
  • 국내 교통편
  • 에어 콜레도니 국내선은 그랑 테레의 여러 타운과 로얄티 섬의 각 섬들과 드 팡 섬, 벨렙 섬의 와라(Waara) 노선을 운항한다. 그랑 테레의 도로는 모두 포장돼있으며 주요 타운과 큰 마을은 모두 누메아의 버스터미널(gare roui'ere)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의해 연결된다. 렌트카 회사는 모두 누메아에 위치하며 비용이 비싸고 21세 이상이 되야 대여가 가능하다. 일부 지역에선 동물과 보행자들로 인해 운전이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