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Romania)
마차들이, 빨리 달리는 차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그 차 안에서는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돈 얘기를 한다. 농부들은 중세 풍 농가 뒷 뜰에 있는 접시 모양 위성 안테나를 통해 배이와치(Baywatch)를 시청하며... 루마니아는 스스로를 깨고, 차우셰스쿠 시대(Ceausescu era)의 흔적에서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벗어나가고 있다. 그러한 변화과정이 쉽지는 않으며, 때로는 매우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돈이면 뭐든 되고, 옷은 알마니(Armani)를 입는 성장 속으로 급격히 내닫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나라의 일부는 뒤쳐져 있다. 그러나 1996년 신 공산주의 정부가 국민투표로 밀려나고 순수한 개혁을 표방하는 당이 정권을 잡아, 나라는 희망을 잃지 않게 되었다. 루마니아에는 웅장한 성, 중세 풍 마을, 훌륭한 하이킹코스와 야생동식물, 그리고 드러나지 않았던, 이전 동구권 지역에서의 값싼 스키장이 많이 있다. 또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하긴 하지만, 루마니아인들은 다른 관광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여행객 상대의 사기에는 재주가 없는 사람들이다. 루마니아가 어떻게 다른지 몸소 체험하겠지만, 루마니아도 다른 서유럽국가와 같은 꿈을 쫓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통계 자료
  • 국명: 루마니아
    면적:237,500 sq km (91,799 sq mi)
    인구: 2천3백만
    수도: 부카레스트(Bucharest - 인구 2백만)
    인종: 루마니아인 (89%), 헝가리아인 (6.9%), 집시 (1.8%), 독일인, 우크라이나인
    언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종료: 루마니아 정교, 로마카톨릭, 개신교
    정체: 공화국
  • 지리 및 기후
  • 타원형의 루마니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제외하고 동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루마니아는 흑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서부로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세르비아), 헝가리, 우크라이나, 몰도바와 접해있다.숲이 우거진 카르파티아(Carpathian)산맥이 국토의 1/3을 차지하고,; 또다른 1/3은 언덕과 고원으로 과수원과 포도밭이 가득하며 ; 나머지 1/3은 비옥한 평원으로 곡류, 채소, 약초를 재배한다.차우셰스쿠 통치하에서 사람들은 견뎌내지 못했지만, 곰들은 이겨냈다! 그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곰 사냥을 금지시켜, 그 결과 현재 유럽 곰의 60%가 카르파티아 산에 서식하고 있다. 숫사슴, 멧돼지, 오소리, 사슴, 여우, 푸른 딱다구리, 어치, 회색올빼미와 더불어 유럽 늑대의 40%가 역시 그곳에 서식하고 있다. 루마니아에서 가장 이목을 집중시키는 곳은 다뉴브 삼각주로, 전 세계 60%의 작은 피그미 가마우지와 회백색 백로, 흰꼬리 독수리의 서식지이다.이 잘 보호된 삼각주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천연 그대로인 갈대 숲이 있다. 카르파티아 산맥은 유럽에서 가장 훼손되지 않은 숲을 자랑하는데, 너도밤나무, 플라타너스, 단풍나무, 포플러, 자작나무등이 풍부하며, 황색 양귀비, 매발톱꽃, 바위취, 에델바이스등 약 1350여종의 꽃식물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마니아에는 카르파티아의 레테자(Retezat)산을 포함해 11개의 국립공원이 있으며, 500개가 넘는 자연 보호구역이 있다. 루마니아에서 날씨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남쪽지방과 해안지역에서의 연평균 기온이 11도씨 정도이고, 산악지역에서는 2도씨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루마니아의 겨울은 12월에서 4월까지로 매우 춥고, 안개가 끼며, 눈이 많이 온다. 흑해 연안지역의 여름은, 일반적으로 덥고 해가 쨍쨍한 날씨이다. 강수량은 봄에 집중되는데, 산악지역에서 가장 많고, 다뉴브 삼각주 지역에서 가장 적다.
  • 역사
  • 고대 루마니아에는 시라시안(Thracian)족이 살고 있었다. 기원전 1세기, 그리스는 로마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그곳에 데시아(Dacia)라는 국가를 세웠고, 서기 106년 데시아는 로마에 항복하여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서기 271년 고트족의 공격에 직면한 황제 아우렐리안(Aurelian)은 다뉴브 남쪽 지역에서 로마군을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나 이미 로마화된 블라치아(Vlach) 소작농들은 데시아에 남아 루마니아족을 이루었다. 10세기에 이르러, 소 루마니아국들이 탄생했고, 그들의 통합이 몰다비아(Moldavia), 왈라치아(Wallachia), 트란실바니아(Transylvania.)공국의 탄생을 가능케했다. 10세기 이후 마자르족이 트란실바니아로 밀려 들어왔고, 13세기에 이르러 헝가리 왕조의 통치하에 놓인 자치 공국이 되었다.14세기에 헝가리 군사는 왈라치아와 몰다비아도 그들의 손아귀에 넣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14세기, 15세기에 걸쳐 왈라치아와 몰다비아는 오스만 제국의 침입에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이 저항과정에서 영웅이 된 왈라치아의 왕자 블라드 테페는, 일명 '말뚝대왕'으로도 알려졌는데(훗날 드라큐라로도 알려진), 그 이유는, 식사때마다 그의 앞에서 터키인 한 명씩을 말뚝에 꽂아 괴로워하는 광경을 보며 식사를 했다고 하는데서 전해진다. 그 시대 또 하나의 영웅으로 몰다비아의 왕자 스테판 셀 마레(Stefan cel Mare)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오늘날 루마니아와 몰다바의 거리 표지판에서 수없이 만날 수 있다. 트란실바니아는 16세기, 오스만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 왈라치아와 몰다비아는 터키에 공물을 바치는 군신의 관계를 맺으나 자치권은 지켰다. 1600년, 루마니아의 세 국가는 왈라치아 왕자, 미하이 비티즐(Mihai Viteazul)의 지휘하에 통일되었고, 그후 그는 몰다비아와 트란실바니아의 왕자들과 힘을 합하여 터키에 대항하였다. 통일국가는 1년밖에 지속되지 못했고, 그후 그는 합스부르크-트란실바니아 연합군에 패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트란실바니아는 합스부르크(Habsburg)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왈라치아와 몰다비아에서 터키의 지배는 19세기까지 이어졌다. 1775년 몰다비아와 부코비나(Bucovina) 북부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Austria-Hungary)에 편입되었다. 이어 1812년 그 동부 영토인 베싸라비아(Bessarabia)는 러시아에 편입되었다. 1828-29년까지의 러시아-터키 전쟁후, 공국에서 오스만의 지배는 막을 내리게 된다. 1848년 이후 트란실바니아는,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어, 무자비한 마자르족의 지배가 이어졌다. 1859년 알렉산드로 이오안 쿠자(Alexandru Ioan Cuza)가 몰다비아와 왈라치아의 왕좌에 앉게 되면서 하나의 국가를 탄생시켰고, 이것이 1862년 루마니아로 불려지게 된다. 캐롤 1세가 1866년 그 뒤를 이었고, 1877년 도브르바(Dobruja)가 루마니아의 일부가 되었다. 루마니아는 1881년 캐롤1세를 왕으로, 하나의 왕국을 선언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사망했고, 그의 조카 페르디난도 1세(Ferdinand I)가 그 뒤를 이어, 삼국협상(Triple Entente)편에 참전하였다. 그의 목적은 오스트리아-헝가리로부터 트란실바니아의 독립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1918년 드디어, 베쌀라비아, 부코비나, 트란실바니아는 루마니아의 영토가 되었다.제1차 세계대전 후, 루마니아에는 파시스트 철군으로 더 잘 알려진 Legion of the Archangel Michael을 비롯한 수많은 정당들이 출현하게 된다. 코르넬리유 코드리뉴(Corneliu Codreanu)가 이끈 이 정당은 1935년 정치사를 이끌어갔다.페르디난도 1세의 왕좌를 이어 그의 아들 캐롤 2세가 1938년 왕권독재를 선언하면서 모든 정당들은 붕괴되었다. 1939년 그는 철군(Iron Guard)(한때 그가 적극 지원하였던)을 탄압하였고, 코드리뉴와 다른 군사들을 암살하였다. 1940년 소련연방공화국이 베싸라비아(Bessarabia)를 점령하였고, 루마니아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명령에 의해 북부 트란실바니아를 헝가리에 양도하게 되었다. 남부 도브루야(Dobruja) 또한 불가리아(Bulgaria)에 넘어갔다.이러한 패배로 인해 각지에서 데모가 일어나게 되었고, 왕은 이러한 집단 히스테리를 진압하기 위해 마샬 이온 안토네수(Marshall Ion Antonescu)장군을 불러들였다. 안토네수는 캐롤을 부추겨 그의 아들 마이클을 위해 왕위를 사임하게 한 후, 그 자신을 리더로 하는 파시스트 독재를 강요하였다. 1941년 그는 히틀러의 반소비에트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1944년 소련군이 루마니아 국경에 접근해 오자 루마니아는 태도를 전향했다. 소련에 의해서 트란실바니아는 루마니아에 반환되었고, 그것은 모스크바가 지지하는 공산당이 1946년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년후 국왕 미셸은 사임을 강요받게 되었고,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테러가 계속되는 가운데 전쟁 전의 모든 지도자, 총망받는 학자, 반체제 인사들은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투옥되었다. 1950년대 후반 루마니아는 소련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게오르기 게오르규-데이(Gheorghe Gheorgiu-Dej) (1952-65)와 니콜라이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 (1965-89)의 지휘하에 독자 외교 노선을 펼치게 된다. 챠우세스쿠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소련의 '개입'을 비난하였고, 이로 인해 서방세계로부터 칭송과 경제적 원조를 얻었다. 그는 외교술에 능한 반면 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무능했다. 그의 거창한 대부분 사업들은(다뉴브-흑해간 '죽음'의 운하 건설, 부카레스트의 거대한 인민 궁전, 그리고 조직화등)비싼 대가를 치룬 실패작이었다. 그의 비밀 경찰들은 사람들을 감시했고, 거대한 밀고자망을 조직했다.1980년대 후반, 미하일 고르바쵸프의 등장으로 미국은 더 이상 루마니아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가장 친애하는 국가'로서의 위치를 철회했다. 차우셰스쿠는 불어나는 국가 채무를 갚아나가기 위해 루마니아의 식량을 수출하기로 결심했고,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 앨레나(그의 제일 국무총리)가 호의호식하는 동안 국민들은 근근히 삶을 이어갔다. 빵, 계란, 밀가로, 기름, 소금, 설탕, 고기, 감자 등은 배급되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고기는 구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1987년 브라소브(Brasov)에서의 항의 폭동은 일단 진압되었다. 그러나, 1989년 12월 15일,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국가들이 하나하나 붕괴되면서, 라즐로 토케목사(Father Laszlo Tokes)는 그의 티미소아라(Timisoara)교회에서 차우셰스쿠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였고, 그날 저녁 그의 집 앞에는, 토케목사의 지위를 박탈하려는 루마니아 개혁교회의 결정에 항의하는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시위자들과, 경찰, 군대의 충돌은 그후 4일간 계속되었다. 12월 19일 군대는 시위자들 편에 가담하였고, 12월 21일 부카레스트 노동자들은 대규모 집회에서 차우셰스쿠에 대한 야유를 퍼붓는 등, 군대와 경찰, 민중들간의 충돌이 수도에서도 시작되었다. 다음날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에서 도망치다 붙잡혀, 시민 재판에 회부되었고, 크리스마스 날, 사형집행부대에 의해 처형당했다. 차우셰스쿠가 처형된 후 루마니아 정부를 이어받은 구국전선은, 이전 몇 달간 체제 전복을 계획해 왔었으나 1989년 12월 데모로 그 계획이 앞당겨진 것으로 알려진다. 처음에 과도정부로 시작했던 정부는, 아이온 일리에스쿠(Ion Iliescu) 지도하에 1990년 힘을 얻게 되었다. 과거 공산정권 지도자들에 대항하는 학생 시위대들은, 폭동 진압을 위해 쥬 탄광(Jiu Valley)에서 데려 온 20,000 광부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광부들은 1년 후, 개혁성향을 띤 페트로 로만(Petre Roman) 수상을 사임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부카레스트로 불려진다. 일리에스쿠와 구국전선은 1992년 재선되었으나, 치솟는 물가, 실업, 정부부패 등으로 인해 1996년 일리에스쿠가 물러나고, 대신 개혁 성향의 루마니아 민주 대표자회의(Democratic Convention of Romania) 지도자, 에밀 콘스탄티누스(Emil Constantinescu)가 선출되었다. 당선된 후 그는, 물가 안정, 사회복지 증진, 소수 민족들간의 불만 완화에 노력했고, 헝가리와의 관계 개선에도 힘을 쏟았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루마니아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것이다. 젊은 루마니아인들은 그들의 고향을 떠나기 보다, 약속된 미래로의 기회를 활용하는 쪽을 택했다.
  • 경제
  • 국내 총생산 GDP : US$ 2,000억
    1인당 국내 총생산 GNP : US$ 7,697
    연 성장률: -6.6%
    인플레이션: 151%
    주요생산품: 농업, 제조업
    주요교역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 문화
  • 부코비나의 수도원들은 세계 최초로, 외부를 프레스코화로 치장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이 프레스코화들은 종교예술의 범주를 넘어, 종교적 메시지뿐 아니라, 정치적인 메시지까지 전한다. 유리와 나무에 그려진 전통적인 농민 예술품들은 17세기 이후 루마니아 전역에 퍼졌으며 오늘날에도 보편적인 예술의 형태이다.루마니아 문학은 핍박받으며 살아온 식민국으로서의 치열한 역사와 함께 그 나라의 풍부한 전통 문화 유산을 표현했다. 15세기에 구전 서사시가 출현했으며, 루마니아어로 쓰여진 작품은 1420년경 나타나게 된다. 현대문학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루마니아 작가로는, 부조리극을 창시한 극작가 유진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1912-94)가 있다. 1947년 이후 문학은 공산주의의 도구가 되었다. 1990년 이래로 공산주의 시절의 공포를 증언하는 많은 작품들이 출판되었다.민속 음악과 춤은 루마니아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둥그렇게, 반원으로, 혹은 한 줄로 추는 커플춤이 있다. 현대 집시음악이 이것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직업적인 집시 음악가들은 마을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연주했다.루마니아어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다른 어떤 언어보다도 정통 라틴어에 가까우며, 라틴어의 문법적 구성이나 기본 어족이 잘 유지되어 있다. 그러므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하는 사람들은 루마니아 구어는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문어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루마니아어는 음성학적이기 때문에 일단 몇가지 주요 규칙을 배우고 나면 발음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루마니아는, 로마 카톨릭교의 영향을 받지 않고 로망스어(라틴계통의 언어)를 가진 유일한 국가이다. 루마니아 인구의 86%는 로마 정교이고, 5%는 로마 카톨릭, 3.5%는 신교, 1%는 그리스카톨릭, 0.3%는 회교, 02%는 유대교이다. 교회가 앞장 서 정부에 대항했던 다른 과거 공산국과는 달리, 로마 정교는 정부를 추종했으며, 그 도구 역할을 했다. 오늘날 대사제가 이끄는 로마 정교는 계율을 잘 지키며 부유하다. 루마니아인들은 매우 친절하며,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는 정성껏 대접하고 그 보답으로, 우정 외엔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그러니 그런 경우 뿌리치지 말자! 먹는 낙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루마니아는 좀 재미없는 곳이다. 음식점에서는 똑같은 음식만 내놓는데; 구운 돼지고기, 돼지 간, 구운 닭고기, 엉터리 수프에 느끼한 감자 등등등... 루마니아에서 가장 훌륭한 요리는, 옥수수 가루로 딱딱하게 혹은 부드럽게 만든 음식인 마마그리가(mamagliga)로, 끓이거나, 굽거나 튀겨져 나온다. 대부분의 루마니아 가정에서는 이것이 주 요리이다. 또 다른 루마니아의 주 요리로는 치오르바(ciorba)라는 스프가 있다.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형적인 디저트인 플라친타 (파이), 클라리테(크레페), 사라일레(시럽을 묻힌 아몬드 케잌)등을 먹어보자. 루마니아의 와인은 싸고 맛도 좋다. 투이차 (자두 브랜디), 파린차(투이차와 같이 세 번 증류한)는 식사를 시작할 때 먹는, 자극적인 주류이다.노록(건배)! 어디서든 마실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종류의 음료는 피하고, 찻잔 바닥에 커피 가루가 그대로 남아있는 터키식의 진짜 커피인, 까페 나투랄라(Naturala)에 설탕을 한스푼 듬뿍 타서 마셔보자!
  • 축제 및 행사
  • 루마니아에는 다양한 민속 축제가 있다. 전통을 그대로 유지한 작은 규모의 축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아 여행자들이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 정기적인 축제로는, 전통 제켈리(Szekely)민속축제이자 종교 축제인 '성령 강림 축일 제켈리 순례'(Whit Sunday Szekely Pilgrimage)가 있는데, 미에르큐리아 치윅(Miercurea Ciuc)에서 거행되며 최대규모의 축제이다. 브란(Bran)근처 훈다타마을에서는, 6월에 훈다타 축제(Fundata Fair)가 열리는데, 이것은 원래 양치기들이 미래의 신부감을 만나기 위해 열었던 전통 민속 축제이다. 브라소브와 브란에서는 7월에 국제 실내악 축제가 열린다. 8월에는 시기소아라(Sighisoara)에서 2주간에 걸쳐 중세의 예술과 수공예품, 음악등을 선보이는 '중세의 날' 행사가 열리며, 프리슬로프 파스(Prislop Pass)에서는 민속 춤 축제인 Hora de la Prislop행사가 있다. 삼브라 오일러(Sambra oilor)는 양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기념하는 양치기 축제로 9월에 브란지역에서 열리며, 12월에는 브라소브에서 드 라 코린드 라 스티 크리스마스 축제(De la Colind la Stea Christmas festival)가 열린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보건위생: 공수병, 장티푸스, 뇌염발생 가능지역으로 예방접종을 고려해 보도록.
    시간대: 한국이 루마니아보다 7시간 빠르다.
    전압: 220V, 50Hz
    외래관광객: 연간 283만명
  • 경비 및 환전
  • Currency: Romanian leu(plural: lei)(L)
    통화: 루마니아 리유(leu(L) - 복수는 레이(lei)

    일반경비:
    저렴한 현지식사 : US$5
    레스토랑에서 식사 : US$5-10
    최고급 식당 식사 : US$20 이상
    저렴한 숙박지 : US$20-40
    중급호텔 : US$45-90
    최고급 숙소 : US$130 이상
    루마니아여행에서 가장 큰 경비는 숙박비일 것이다. 부카레스트(Bucharest)에는 저렴한 숙소가 흔치 않다. 시 중심가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대부분 호텔은, 더블룸, 공동화장실을 기준으로, 적어도 25달러는 지불해야 한다. 지방에서의 민박은 아침식사를 포함해 10달러 정도부터 구할 수 있다. 외식 비용은 비싸지는 추세이다. - 루마니아인들은 외식할 형편이 되지 않아 대부분 식당들이 돈많은 외국인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카레스트에서는 알콜 음료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1인당 5달러 이하로 식사하기가 무척 힘들다. 수도지역 이외에서는 음식값이 조금 싼 편이고, 질 좋은 루마니아 와인 한 병은 1달러50정도면 살 수 있다. 영화나 연극관람은 1달러, 박물관 입장료는 20센트정도이다. 대중교통은 서유럽 국가에 비하면 싸다. 1.7달러 정도면 버스로 대략 100km 정도, 또는 편안한 고속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 휘발유는 리터당 40센트 정도이다. 여행자 수표는 환전하기 쉽지만, 잃어버린 것을 재발급 받기는 쉽지 않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만이 부카레스트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 재발급이 가능하다. 비자/마스터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현금 자동 지급기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호텔, 음식점, 상점 등에서는 크레디트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차를 렌트할 때도 신용카드가 유용하다. 아니면 미리 돈을 다 지불해야 하므로. 낙서가 되 있거나, 찢어지거나, 너무 오래된 여행자수표는 환전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돈을 가지고 있건 잘 보관해 둘 것. 루마니아에서는 팁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지만, 500레이 정도까지는 반올림하는 것이 좋다. 벼룩시장에서는 흔치는 않지만, 물물교환이 이루어진다. 택시 운전사들이 가끔 바가지를 씌우는 수도 있으니 항상 흥정하는 것을 잊지 말자.
  • 여행 시기
  • 루마니아 여행에 가장 좋은 시기는 5월과 6월이며, 그 다음은 9월과 10월초이다. 이 시기에 방문하면, 남부 부코비나(Bucovina)의 중세풍 수도원도, 북적거리는 여행객들을 피해 한가롭게 즐길 수 있다. 봄과 가을은 다뉴브 삼각주에서 새들을 구경하기에 적기이다. 겨울은 무척 추워, 이 때에는 포이아나 브라소브(Poiana Brasov)와 시나이아(Sinaia) 같은 스키 리조트로 관광객이 몰리며, 눈은 5월 중순까지도 계속 남아있어, 하이킹 시즌은 6월이 되어야 시작된다. 흑해 연안 리조트들은 6월말부터 8월 중순까지 관광인파로 붐빈다.
  • 주요 여행지
  • 부카레스트(Bucharest)
  • 전설속 시조인 부커라는 목동의 이름을 딴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는 카르파티아 기슭과 다뉴브 강 사이에 있는 왈라키아(Wallachia) 평원에 위치한다.1930년대에는 '동유럽의 파리'라고도 불려졌으나, 지진, 제2차 세계대전, 차우셰스쿠(Ceausescu)로 인해 전쟁전의 아름다움을 많이 잃었다. 1980년대 차우셰스쿠는 시 회관을 짓기 위해 역사적인 남부 부카레스트의 7000여개 집과 15개 교회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그 지역 사람들이 '차우시마'(Ceausima)라고 부르는 12층짜리 인문 궁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빌딩을 지으려 시도한 것이었으나, 사실은 미국 팬타곤(Pentagon)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빌딩이었다. 이것이 완성될 즈음에 처형된 차우셰스쿠는 이곳에 대통령 집무실, 중앙 위원회, 그외 모든 정부부처를 만들려고 했었다.일리에스쿠(Iliescu)정부는 이 거대한 건물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랐다. - 많은 사람들은 철거하기를 원했다- 그러다가 1994년 이곳을 의회와, 국제 회의장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가이드 투어가 있어, 내부 천 개의 방과, 멋진 외관을 감상할 수 있다.옛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아름답게 보존된 프레스코화가 있는 16세기 구법정(Old Court) 교회를 보러 부카레스트 시내로 가보자. 조지 에네스쿠(George Enescu) 박물관에는 음악가들의 작품과 개인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또한 그곳에 가면 루마니아에서 정말 오래된 에스니 팔레스(Athenee Palace) 호텔이 있는데, 20세기 초 타락의 본거지이자, 발칸 3부작에 나오는, 올리비아 매닝(Olivia Manning)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5000만 달러의 수리를 거친 이 곳은, 루마니아에서 가장 고전적이며 가장 비싼 호텔이다.부카레스트 서쪽으로는 차우셰스쿠가 잠들어 있는 겐시아(Ghencea) 시민 묘지가 있다. 니콜라이의 무덤은 꽃과 초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지만, 엘레나의 것은 그들의 폐위를 아직도 슬퍼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러한 겉치레는 없다. 그들의 아들 니쿠(Nicu) 역시 옆에 잠들어 있다(트란실바니아의 보스, 술고래, 바람둥이이자, 한때는 체조선수 나디아 코마네치의 연인이었던...).부카레스트에는 민박, 대학기숙사, 호스텔과 호텔등 다양한 종류의 숙박시설이 있다. 주로 시내중심이나 주요 기차역(북역(Gara de Nord))부근에 많이 있다.부카레스트에는 세계적인 음식을 선보이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비싼 음식점들이 순식간에 밀어닥쳤으나, 시내에서 전통음식을 맛보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나이트라이프도 빠질 수 없는 이 도시의 매력으로, 바, 나이트클럽,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오락거리가 많이 있다.
  • 브라소브(Brasov)
  • 트란실바니아의 푸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중세의 섹슨족 마을, 브라소브는 루마니아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이다. 이곳은 차우셰스쿠 통치에 반대한 시민들의 봉기가 처음으로 발생한 곳이다. 1987년 임금삭감, 긴 노동시간, 식량배급 등에 불만을 품은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기본 식량의 확보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에 차우셰스쿠는 군대를 동원하고(3명 사망), 배급을 더 많이 줄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브라소브 최고의 볼거리는, 1689년 화재로 검게 타버린 외관 때문에 이름지어진 '검은 교회(Black Church)'로, 비엔나와 이스탄불지역 내에 있는 것 중에서는 가장 큰 고딕교회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근교를 여행하기 위해 브라소브로 온다. 가장 매력적인 장소는 '드라큘라 성'으로 알려진 브란성(Bran Castle)이며, 브라소브 남쪽, 30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유명한 전설에도 불구하고 동화스러운 탑과 흰 벽을 가진 이 성은 블라드 테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뿐더러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덜 붐비지만, 더 드라마틱한 라스노브(Rasnov Castle)성이 브라소브에서 브란 성으로 가는 길에 있다.포이아나 브라소브(Poiana Brasov)와 시나이아(Sinaia) 스키 리조트는 브라소브에서 버스나 기차로 쉽게 갈 수 있다.많은 국내, 국제 노선 버스들이 브라소브를 거친다.
  • 시기소아라(Sighisoara)
  • 브라소브와 마찬가지로, 시기소아라도 트란실바니아의 언덕으로 둘러쌓인 섹슨족의 중세 마을이다. 브라소브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더 아름다운 이곳은 완벽하게 보존된 중세 건물들이 아주 많이 있다. 이 곳을 방문하는 많은 이들의 관심사는, 드라큘라에 관련된 것으로- 1431년 블라드 테페(Vlad Tepes)가 태어나 4살까지 살았던 집은 중세의 성체 안에 있으며, 지금은 바와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시기소아라의 또 다른 볼거리인 9개의 탑도 역시 성체 안에 있다. 시계탑, 역사박물관, 1566년 섹슨족의 루터파 교회였던 도미니카 수도원 교회 등도 볼만하다. 언덕 위, 고딕 교회의 172 계단을 오르는 코스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기소아라에서 북동쪽, 4km 떨어진 알베스티(Albesti)에는, 1848년 이곳 전투에서 숨진 헝가리 시인을 기념하는 페토피 산도르(Petofi Sandor) 박물관이 있다.시기소아라는 국내 및 국제노선의 버스와 기차들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 티미소아라(Timisoara)
  • 티미소아라는 헝가리 국경과 가까운 바나(Banat)지역에 있는데, 1989년 혁명이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다. 마을의 거리 벽면을 따라, 혁명 당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한 기념비가 죽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에는 아직도 신선한 꽃과 풍성한 부케가 놓여 있다. 시의 남쪽으로 혁명의 근원지인 토케개혁교회(Tokes Reformed Church)가 있다. 다른 볼거리로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세르비아정교 성당으로, 티미소아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인 피아타 유니리 (Piata Unirii)건너편에 있다.티미소아라에는 루마니아 다른 도시로 가는 시외버스가 적은 반면, 국제선 버스는 많이 있다. 국제 및 국내선 열차는 많이 있다. 티미소아라로 오는 국제선 항공편도 있다.
  • 흑해 연안(Black Sea Coast)
  • 스페인에는 베니돔(Benidorm), 호주에는 골드 코스트(Gold Coast)가 있다면, 루마니아에는 태양, 바다, 백사장, 그리고 섹스가 있는 흑해 연안이 있다.루마니아의 가장 큰 항구이자, 두 번째로 큰 도시 콘스탄타(Constanta)는 흑해 연안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이며 다른 리조트로 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축구팬이라면, 게오르기 하기(Gheorghe Hagi)의 고향인 이곳을 방문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해변은 지저분하고 북적대지만 마을자체는 아름답고, 훌륭한 박물관도 있다. 콘스탄타에서 해변을 따라 8km 정도 가면 루마니아 야자수 해변인 마마이아(Mamaia)로 가는데, 이곳에는 2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61개의 호텔이 있으며, 6월 중순부터 8월까지는 모두 꽉 찬다.쾅쾅거리는 음악을 들으며 인파의 물결인 해변에 누워있고 싶다면, 콘스탄타 남쪽에서 17km 떨어진 에포리 노드(Eforie Nord)로 가보자. 같은 분위기의 또 다른 해변리조트로는, 넵툰-올림프(Neptun-Olimp)와 콘스티네스티(Constinesti)가 있다. 음악이 듣기 싫다면 해변에 누워, 혁명 전까지는 하루의 일과였던,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차우셰스쿠의 연설을 듣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술 깨는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되겠지만.여름엔 유럽의 전세기들이 콘스탄타로 많이 오며, 이스탄불에서는 페리로도 올 수 있다.버스는 콘스탄타와 다른 흑해지역 마을간을 운행하며, 콘스탄타에는 특히 버스와 기차편이 잘 되어 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파가라스산(Fagaras Mountains)
  • 루마니아중심에 있는 파가라스 산(Fagaras mountains)은 카파르티아 산맥 일부를 차지하며 브라소브-시비유(Brasov-Sibiu)도로 남쪽, 75km가량 뻗어 있다. 이 산에는 40여개의 방하호가 있는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은 해발 2282m에 위치한 미오아렐레(Mioarele)이다.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발레아(Balea)계곡에 그 유명한 파가라산 횡단 고속도로(Trans-Fagarasan)가 놓여있는데, 이것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로라고 알려져 있다. 루마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네고이유(Negoiu)산(2535m)과 몰도비아누(Moldoveanu)산(2543m)을 가로지르는 발리아 터널은 장장 845m(52.3mi)에 달한다.파가라스 산은, 뚜렷한 등산로와 풍부한 야생자원이 있는, 루마니아에서 가장 경관이 좋은 하이킹 코스이다. 그러나 이 산의 최대 단점은 교통편이 힘들다는 것이다. 등산로는, 브라소브-시비유 라인(Brasov-Sibiu line)상에 있는 대부분 기차역에서 남쪽으로 8-15km 거리를 가야 있고, 버스는 거의 운행되지 않는다. 등산로로 가는 가장 좋은 지점은 빅토리아(Victoria)로, 그 곳에서 북쪽으로 7km거리의 유시아(Ucea) 기차역에서 내리면 된다.차가 있다면, 왈라치아 국경 바로 너머에 있는 포이에나리(Poienari)성까지, 파가라산 횡단 고속도로(Trans-Fagarasan Highway)를 따라가 보자. 이 성은 블라드 테페(Vlad Tepes)를 위해 세워진 곳으로, 진짜라고 전해지는 드라큘라의 가죽 때문에 주목받는다. 이곳에 가려면 수력발전소 아래, 옆길로 나있는 1480계단을 올라야 한다.
  • 스코르니체스티(Scornicesti)
  • 니콜라이 차우셰스쿠의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 왈라치아(Wallachia)에는, 루마니아에 널리 퍼져있는, 독재자의 조직적 구도가 1988년에 시작되었다. 이 때 마을의 집들은 불도저로 허물어졌고, 그 자리에는 부엌하나에 10가구가 사는 아파트단지가 세워졌다. 그후, 거대한 축구 경기장이 이 콘크리트 마을에 추가되었는데, - 이는 대통령이 자신의 고향에 내린 선물이었다. 오, 감사합니다. 대통령각하! 이 정도면 됐습니다. 현재 이곳의 주요 관광지인 차우셰스쿠의 어린 시절 집은 불도저도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이곳은 마을 북쪽 끝에 위치하며, 공식적으로는 관광객에게 개방되지 않는 것이다 - 그러나 맞은 편 가판대에 있는 여성이 50센트에 티켓을 팔고, 그 집에 살고 있는 여주인에게 당신을 안내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여주인의 얼굴에서 보게 될 것이다. 분노에 찬 차우세스쿠 여동생의 얼굴을.. 겸손하게 행동하면, 차우셰스쿠가 부카레스트로 떠나 구두 견습공이 되기 전인 11살까지 살던, 이 방 두 개짜리 집안으로 안내될 것이다. Scornicesti is accessible only by car, west of the Pitesti-Craiova road.스코르니체스티는 피테스티-크라이오바(Pitesti-Craiova)도로 서쪽에 있으며, 자동차로만 갈수 있다.
  • 다뉴브 삼각주(Danube Delta)
  • 우크라이나 국경 바로 남쪽, 5800평방km(92262평방mi)의 다뉴브 삼각주는 유럽에서 지리학적으로 가장 나이가 어린 땅이며, 새를 구경하는 사람과 새들의 고향이다. 갈대 숲과, 수로가 잇는 습지대, 백합으로 뒤덮인 호수와 흐르는 모래 언덕으로 둘러싸인 다뉴브 강은, 독일의 블랙 포리스트(Black Forest)까지 닿아있다. 14,500여명의 사람들이 이 지역에 살고 있다. 삼각주의 57개 낚시 마을로 가는 주된 수단은, 전통적인 통나무 카약과 보트이다. 삼각주의 38%를 양식장, 숲, 농업지역으로 개간하려던 차우셰스쿠의 계획은 혁명 후 무산되었고,오늘날, 다뉴브 삼각주는 보호받고 있는데 그 중 273,300헥타아르는 집중 보호구역으로, 관광객과 어부 모두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야생동식물 관찰에 흥미가 있다면, 카약이나, 보트, 아니면 어부의 도움을 받아 좁은 수로를 탐험하는 것도 좋다.상점이 없으므로 모든 필요한 것은 준비해 가야 한다. 그리고 벌레약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마시길! 삼각주로 가는 관문인 툴시아(Tulcea)는, 버스와 기차 연결이 잘 되어있다. 그곳에서 보트나 카약을 빌릴 수 있고 또 어부를 포함한 여행상품도 예약할 수 있다. 삼각주로 가려면 허가서가 필요한데 툴시아의 여행사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 남부 부코비나(Southern Bucovina)
  • 남부 부코비나는, 벽화가 그려진 수도원들로 유명한데 유럽에서 손꼽히는 예술기념물 중 하나이다. 외벽은 북부 몰다비아(Moldavia)가 터키 지배하에 있을 때 그려진 것으로, 문맹의 병사와 농부들을 교육시키고 즐기게 하기 위해, 성서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들를 만화 스타일로 그린 프레스코화이다. 어떤 프레스코화들은 450년간의 세월에 많이 손상되었지만, 짙은 색 - 수체비타(Sucevita)의 녹색, 보로네(Voronet)의 푸른색, 후모르(Humor)의 붉은색은 보존되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버스와 기차로 보로네와 몰도비타의 수도원들을 방문해, 부코비나의 대표적인 볼거리들만 구경하고 올 수도 있다. 모든 수도원을 다 보려면 3일은 족히 걸린다. 차를 빌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수도원간을 하이킹하며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관광시즌이 아닐 때 가면, 수도원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 레저스포츠
  • 다른 유럽 국가에서 루마니아로 가는 버스, 기차, 비행기편이 많이 있다. 대부분 서유럽국에서 루마니아로 가는 정기 항로가 많이 있고, 이 외의 많은 나라에서는 한 번 정도만 갈아타면 루마니아로 올 수 있다. 대부분 비행기는 부카레스트, 오토페니(Otopeni) 국제 공항에 도착한다. 티미소아라(Timisoara)와 콘스탄타(Constanta)로 도착하는 항공편도 있다. 루마니아는, 서유럽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기차편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루마니아로 오거나 이 곳을 떠날 때 기차가 많이 애용된다. 루마니아는 공영버스 시스템이 없으므로, 서유럽으로 가는 개인 버스회사들은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러니, 저렴하고 편리한 기차와는 경쟁이 안 될 수밖에. 단, 이스탄불행 버스는 예외로, 12-14시간 걸리는 버스가, 17시간 반 걸리는 기차보다 대체적으로 빠르고 저렴하다. 그리고 평소 굴뚝처럼 담배를 피워대는 루마니아인들과 터키인들이므로 버스에선 금연인 것이 다행스러울 것이다. 유럽,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터키, 몰도바, 우크라이나 그리고 그 외 지역으로부터 오는 기차가 많이 있다. 5월과 9월 사이에는 콘스탄타와 이스탄불 사이 흑해를 운행하는 페리가 있다. 루마니아를 떠날 때 출국세는 없으나, 출국 카드를 제시해야만 한다. 입국할 때 여권에 끼워준 조그만 종이 조각 말이다. 그때쯤이면 잃어버렸을 테지만…
  • 루마니아로 가는 길
  • 다른 유럽 국가에서 루마니아로 가는 버스, 기차, 비행기편이 많이 있다. 대부분 서유럽국에서 루마니아로 가는 정기 항로가 많이 있고, 이 외의 많은 나라에서는 한 번 정도만 갈아타면 루마니아로 올 수 있다. 대부분 비행기는 부카레스트, 오토페니(Otopeni) 국제 공항에 도착한다. 티미소아라(Timisoara)와 콘스탄타(Constanta)로 도착하는 항공편도 있다. 루마니아는, 서유럽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기차편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루마니아로 오거나 이 곳을 떠날 때 기차가 많이 애용된다. 루마니아는 공영버스 시스템이 없으므로, 서유럽으로 가는 개인 버스회사들은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러니, 저렴하고 편리한 기차와는 경쟁이 안 될 수밖에. 단, 이스탄불행 버스는 예외로, 12-14시간 걸리는 버스가, 17시간 반 걸리는 기차보다 대체적으로 빠르고 저렴하다. 그리고 평소 굴뚝처럼 담배를 피워대는 루마니아인들과 터키인들이므로 버스에선 금연인 것이 다행스러울 것이다. 유럽,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터키, 몰도바, 우크라이나 그리고 그 외 지역으로부터 오는 기차가 많이 있다. 5월과 9월 사이에는 콘스탄타와 이스탄불 사이 흑해를 운행하는 페리가 있다. 루마니아를 떠날 때 출국세는 없으나, 출국 카드를 제시해야만 한다. 입국할 때 여권에 끼워준 조그만 종이 조각 말이다. 그때쯤이면 잃어버렸을 테지만…
  • 국내 교통편
  • 포르투갈 국내선은 비싸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탈 이유가 없다. 기차가 훨씬 저렴하지만 버스가 더 빠르다. 특히 주요도시와 Algarver 간에 고속버스를 운행하는 버스(개인버스회사의)를 탈 경우. 포르투갈에는 십 여개의 렌터카 회사들이 있는데, 기름값이 비싸므로 심사 숙고할 것. 관광지에서는 자전거도 대여할 수 있다. 시내교통으로는 전차, 버스, 싼 택시들이 많이 있다. 리스본에는 전철과 케이블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