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Russia)
정치적 우상과 이데올로기는 무너졌지만, 외국인들은 아직도 러시아의 생활에 대해 어렴풋하게만 추측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최근, 시장경제의 붕괴로 인해 범죄, 매춘, 마약, 엄청난 실업, 식량 부족 등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이러한, 러시아의 불확실한 이미지는, 우울한 분위기와 의기충천한 분위기, 무례함과 친절함, 비밀주의와 솔직함이라는 기묘한 조합으로 더욱 고조되는데, 이는 전형적인 러시아인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통계 자료
  • 국명: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
    면적: 1,710 만 sq km
    인구: 1억 5천만 명(인구증가율 0.2%)
    수도: 모스크바(Moscow - 인구 9백만 명)
    인종: 러시아계 80% 타타르계 및 핀우그릭계 4%, 그 외 다양한 소수민족이 있음
    언어: 러시아어
    종교: 러시아정교, 이슬람교, 정령신앙
    정체: 연방제
  • 지리 및 기후
  • 제국은 붕괴되었다 해도, 러시아의 땅은 여전히 거대하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 접한 국경으로부터 시작해, 서쪽으로는 터키에 접하고 카자흐스탄, 몽고, 중국과도 국경이 닿아, 6000km나 이어져 태평양에 닿는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펼쳐지는 평원에는, 해발 1900m를 넘지 않는 우랄(Ural)산맥과 극동의 산맥들만이 두드러져 보인다. 주요 수맥이라 할 만한 세 개의 강, 즉 드네프르(Dnepr) 강, 돈(Don) 강, 볼가(Volga) 강은 모두 우랄산맥 서쪽에서 흐르며, 모스크바에서 400km 이내의 거리에서 남쪽으로 흘러가 흑해와 카스피해에 합쳐진다. 러시아의 극동은 시베리아(Siberia) 지역으로 그 이름에서는, 동토(凍土), 스텝대초원, 산맥, 유배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떠오른다. 그 크기에 비례해, 러시아에는 다양한 환경대가 존재한다. 북쪽의 소나무와 가문비나무숲에는 순록과 늑대, 갈색곰이 서식하며, 낙엽수와 침엽수로 섞여있는 숲에는 사슴과 스라소니, 시베리아 호랑이(블라디보스톡 교외를 돌아다닌다고 알려짐)가 산다. 검은 토질의 스텝대초원은 아시아의 곡창지대다. 눈표범, 치타, 호저, 가젤영양, 야생 염소, 샤무아 영양이 중앙 아시아 사막에 서식하지만 환경오염과 모피사냥꾼들로 인해 많은 종이 멸종 위기에 있다. 러시아에는 140개 이상의 국립 보호구역이 있으며, 보호구역의 번식 프로그램 덕분에 유럽 들소를 비롯한 많은 동물종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여름 평균기온은 비슷해 섭씨 24도 정도다. 모스크바는 11월말부터 얼어붙기 시작해 4월초까지 눈이 남아있고 1월의 평균기온은 영하 12도 전후이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여름에는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 반면, 겨울에는 하루 다섯시간 정도만 낮이 지속된다. 여름 평균 기온은 덥다기보다, 따뜻한 영하 8도 정도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봄이면 대해빙이 일어나며, 도로에 차량들이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일상적인 대혼란도 다시 시작된다. 러시아의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는 러시아 극동의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온화한 기후가 지속된다. 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 13도 정도로,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 중 가장 춥다고 하는 북동부의 오이미아콘(Oymyakon)에 비하면 아주 기분 좋은 온도라고 할 수 있다. 오이미아콘의 겨울 온도는 영하 65도까지 떨어진다고 하는데...
  • 역사
  • 862년, 유틀란드의 바이킹 루릭(Rurik)이 노브고로드(Novgorod)를 건설했는데, 이를 러시아라는 나라의 시발로 보고 있다. 20년 후 루릭의 후계자인 올레그(Oleg)는 키에프(Kiev) 공국의 지배자가 되었고 키에프 공국은 10세기와 11세기, 주변 지역을 지배했지만 무역로의 변화로 인해 상업적인 침체를 겪게 된다. 노브고로드 상인들은 결국 키에프 공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발트해 및북해 무역을 지배하는 도시국가 연합인 한자동맹의 일원이 된다.번영과 성장의 시대는, 13세기, 몽고계 타타르인의 침략으로 갑작스럽게 종결되고 이러한 동요는 1480년까지 계속된다. 16세기에 러시아는 영토를 확장하지만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의 통치기간 동안 볼가 지역을 침략해 주변국인 폴란드 및 스웨덴과 반목하게 됨으로써 이후, 대가를 치르게 된다. 700년간 이어진 루릭 왕조는, 표도르(Fyodor) 왕이 후계자를 두지 못해 끝나게 되자 복수심에 가득찬 스웨덴인과 폴란드인들이 침입해 러시아 왕좌를 놓고 혈전을 벌였다. 이 문제는 1613년에 이르러서야 해결을 보는데, 16세의 미하일 로마노프(Mikhail Romanov)가 즉위하여 1917년까지 지속되는, 로마노프 왕조를 열은 것이었다.로마노프 왕조의 가장 강력한 왕은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로, 그는 러시아를 세계적인 강국으로 만들었다.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에 대한 승리를 축하하고자, 스웨덴으로부터 뺏은 땅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는데, 그 도시가 바로 상트 페테르부르그이다. 아름다운 새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그는 황당한 세금들을 많이 도입했는데, 관, 수염, 하층계급 성인남성의 영혼에까지 세금을 부과했던 것이다.
    비공식적인 이야기
    나폴레옹 덕분에 총탄으로 시작한 19세기는 불길한 혼란과 함께 끝났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농노들이 1861년 해방되었고,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짜르 지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농부들은 그들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땅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에 분개했고, 자유주의자들은 서구 유럽의 제도를 본 딴 정체개혁을 주장했으며 테러리스트들은 1881년 알렉산더(Alexander) 2세를 암살하는데 성공했다. 많은 급진파들이 외국으로 망명했고 그중 가장 유명한 이는, 후에 예명인 레닌(Lenin)으로 더 잘 알려진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Vladimir Ulyanov)였다.젊지만 유약했던 니콜라이(Nicholas) 2세 치하에서 겪었던 러일전쟁(1904-1905)에서의 치욕스러운 패배는, 계속된 사회적 불안을 불러 일으켰고 더 나은 노동조건을 청원하던 군중들에게 군대가 발포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피의 일요일'로 알려진 이 사태는 대규모 파업, 폭동, 지주와 사업가들의 피살로까지 이어졌다. 사회 민주주의 운동가들은 노동자 연맹, 즉 소비에트(soviet)를 구성했고, 1905년 10월의 총체적 파업으로 인해 정부는 무릎을 꿇게 되었다. 짜르는 마침내 굴복하여 러시아 최초의 의회(두마(duma)) 구성을 승인했지만, 의회 내 좌파의 요구를 증오하게 되면서 곧 의회를 해산시켜 버렸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는 제대로 싸우지 못했고 그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었다. 독일인들은 200만 러시아인들의 시체를 넘어 전진했고 엄청난 땅이 독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군대와 경찰 역시 폭동을 일으켜, 식량 배급을 기다리는 시위 군중에게 발포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새로이 소집된 두마는 교육받은 상업 엘리트 대표로 구성된 정부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 및 병사들의 소비에트(Soviet)도 구성되어 2중 권력 구조가 이루어졌다. 짜르의 퇴위 요구를 위해 양자는 통합했고, 1917년 3월 1일 짜르 니콜라이는 그들의 요구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 10월 25일 사회민주당의 한 분파(망명 중인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Bolshevik))가 권력을 잡았고 소비에트에 권한을 부여해 지배 의회로 만들었다. 레닌이 영도하고 트로츠키와 그루지야 출의 스탈린이 지지하는 소비에트 정부는 빠른 속도로 개혁을 추진했다. 토지는 그 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에게 재분배되었고 독일과의 휴전조약이 조인되었으며 반대파와 싸우기 위해 비밀 경찰 세력(Cheka)이 구성되었고 트로츠키의 통제하에 붉은 군대가 창설되었다. 1918년 3월 볼셰비키당은 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수도 역시 페트로그라드(Petrograd, 독일풍 이름인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새 이름)에서 모스크바로 옮겼다. 전 짜르 및 그 가족의 살해 역시 조직적인 체포, 고문, 처형 사태의 일환이었다. 공산주의 체제에 적대적인 사람들이 남부와 동부에 거점을 두었고, 그들을 통칭해 백군(the Whites)이라 불렀지만, 백군이 유일하게 기댈 것이라고는 단결뿐이었다. 3년간 지속된 내전 결과 약 150만의 러시아인이 해외로 망명했다.내전은 경제적으로 참혹한 결과를 가져와 1920년에서 21년 사이, 극에 달한 기근으로 400만에서 500만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이 1922년 건국되었고, 1924년 1월 레닌이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인 스탈린(Stalin)에 의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동족 박해의 기록이 세워졌다. 그는 집단 농장 체제를 도입하여 농민 계급을 몰락시켰을 뿐 아니라 그들의 생계수단까지 망쳐놓았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저항했고, 수백만이 처형되거나 시베리아 및 중앙 아시아의 수용소로 유배되었다.러시아와 독일간의 불가침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배경이 되었으며, 히틀러와 스탈린은 양국 사이에 있는 나라들을 마치 사과 따듯이 정복해나갔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1941년 히틀러가 바르바로사(Barbarossa)작전을 실천에 옮겼을 때로, 이로 인해 유혈의 전쟁과 고난이 시작되었고, 결국은 인구 1/6에 해당하는 260만에서 280만 러시아들인이 사망하는 결과를초래했다. 레닌그라드(Leningrad, 이전의 페트로그라드) 전투와 스탈린그라드(Stalingrad, 오늘날은 다시 볼고그라드(Volgograd)로 알려져 있음) 전투는 특히 오래 끌고 지겨웠던 전투였다.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상징적으로 중요했던 레닌그라드를 지키기 위해, 소비에트 군 백만명이 희생되었다.2차 대전 이후 소련의, 소위 동유럽 '해방'은 잘못된 명칭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동유럽 대부분 지역에 대해 러시아의 지배권을 확대하는 것은, 세력을 회복하고 세계의 두 강대국 중 하나로 등장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스탈린은 예측할 수 없는, 숙청이라는 예전의 방침을 다시 확립했고 냉전이 진행됨에 따라 서구의 이데올로기 및 영향을 국가 공통의 적으로 만들어버렸다. 1953년 스탈린이 죽자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Krushchev)가 새로운 지도자로 떠올랐고 그는 조심스럽게 당에서 스탈린의 영향력을 떨쳐내려고 시도하면서 한편으로는 베짱좋게 쿠바(Kuba)를 무장시켰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스탈린을 다시 국가 초석의 자리에 놓은 보수적인 브레즈네프(Brezhnev)와 미 케네디 대통령의 외교 정책(극단 정책)에 의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억압이 가중되는 와중에 반체제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는 공산당 엘리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방식에 대한 분노로 더 힘을 얻었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진행되는 중이었고 러시아 공산주의의 가난한 이미지는 소련의 인습 타파주의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ov)에 의해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고르바초프는 정치적, 경제적 개혁(페레스트로이카)에 나섰고 이는 대개방(글라스노스트)이라 불렸다. 그는 1988년, 권력을 공산당에서 신정부로 이양하는 문제를 투표에 붙여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억압이 줄어들자 발트해 공화국들을 비롯한 15개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했다. 세력 범위가 줄어들고 경제 위기가 심화되자 고르바초프는 내분에 휩싸이게 된다. 199년 8월의 반동 쿠데타는 그의 지위를 약화시켰고, 결국 보다 급진적인 후계자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권력과 자산은 서서히 소비에트에서 러시아의 손으로 옮겨갔다. 새로운 독립국가연합(Confederation of Independent States, CIS)이 새로운 독립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옐친을 내세우며 나타났다. 이후 보수적인 옛 인사들과의 갈등은 다소의 유혈사태와 함께 해결되었고새로운 정치체제가 통과되었다. 현 상태의 민족주의자 및 공산주의자 집단과 개혁주의 정당 사이에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역학관계가 발전했다. 오늘날, 끈덕지고 지저분한 내전이 체크냐(Chechnya)에서 질질 끌고 있는 동안 러시아의 국내 문제는 더 골이 깊어지고 있다. 부패한 장교, 사업가, 재정가, 경찰, 철저한 범죄자(마피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들의 잘못된 거래 관행이 사회 구석구석 모든 계층까지 퍼져 있다. 마약 남용이 늘어나고 있으며 살인률은 미국의 두 배이고, 경제는 폭력단원들에게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상황이 가까운 미래에 아주 좋아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개혁의 속도와 성과에 대한 대중의 실망이, 다양한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반영되지는 않았다. 1996년 중간 선거에서 러시아인들은 어쩔 수 없이 우유부단하고 독재적인(술까지 많이 마시는) 옐친에게 다시 투표할 수밖에 없었다. 1999년, 상황은 더 불안정해 보였다. 옐친이 이미 죽었고 현재의 옐친은 진짜와 유령처럼 꼭 닮은 사람이라는 소문이 엄청나게 나돌았고(내각을 자주 갈아치우는 것은 평소 옐친의 방식 그대로였는데도), 경제는 점점 더 우울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998년 8월 루블은 사실상 변동환율제로 바뀌어 곧 엄청나게 추락했다. 1999년 5월 옐친은 수상 예프게니 프리마코프(Yevgeny Primakov)를 비롯한 내각 전체를 해고했고 하원은 옐친을 탄핵하기 위한 투표를 준비했다.
  • 경제
  • 자유 시장 경제로의 개혁은 러시아에 그다지 우호적인 결과를 불러오지 못했다. 변화의 일보와 고질적인 풍토병인 부패에 대한 의구심 사이의 혼란은 불확실성을 야기시켜, 생산과 투자는 엄청나게 감소하고 말았다. 4000만 가량의 사람들이 빈곤기준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국내 총생산 GDP: US$ 1조 6,078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US$ 9,075
    연간성장률: -4.0%
    인플레이션: 187%
    주요 생산품: 석유, 석탄, 철광석, 목재
    주요 교역국: 독일, 동유럽
  • 문화
  • 19세기 러시아의 문화 유산은 압도적이며 문학, 건축, 발레, 작곡, 연극 등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성과를 보였다. 상트 페테르부르그 왕립 발레 학교(St Petersburg Imperial Ballet school)는,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 바슬라브 니진스키(Vaslav Nijinsky) 같은 무용수와,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 미하일 포킨(Mikhail Fokine) 같은 안무가를 배출했다. 1909년 발레 루스(Ballets Ruse)는 파리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영광은 키로프(Kirov) 발레단과 모스크바의 볼쇼이(Bolshoy) 발레단으로 돌아갔지만, 일련의 이탈사태로 발레단의 수준이 떨어지기도 했다. 콘서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성과는, 림스키 코르사코프(Rimsky-Korsakov),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등 귀에 익은 이름들 덕분에 가능했다. 러시아의 가장 독특한 건축 양식은 양파 모양의 돔이 있는 교회로. 북쪽의 나무 교회가 벽돌과 화려한 타일로 된 건축물로 바뀌면서 나타났다. 미술 쪽에서는 성상, 미래파 작품, 혁신적인 그래픽 아트 등이 러시아적 형태로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역시 항상 중요한 예술 형태이자 여가 취미이기도 했다. 세르게이 에이젠쉬타인(Sergey Eisenstein)의 '전함 포템킨(Battleship Potyomkin)'과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에는 혁명시기가 잘 묘사되어 있고, 보다 최근의 경험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상징적 작품들에 나타나 있다. 민속예술은 그루지야 국립 무용단(Georgian State Dance Company)의 씩씩한 발구르기 춤과, 각 지역의 수예품과 목조각, 러시아 인형과 동쪽의 조각 목조 주택으로 대표된다.러시아어는 정부의 공식언어이며 인구의 절반 정도가 모국어로 사용하는 언어이다. 중앙 아시아 거주민들은 터키어를 사용하며 이슬람 교도들이다. 공산주의와 종교는 최고의 동료라고 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살아남았고 오늘날의 러시아에서도 점점 세력을 더해가고 있다. 불행히도 유태인들은 비타협적인 반유대주의로 인해 해외이민을 선택해야 했다.
    비공식적인 이야기
    오랫동안 '양배추, 또 양배추'라는 농담의 표적이 되어온 러시아 요리는, 유명한 비트 뿌리와 양배추 수프 등 여러 종류의 애피타이저로 시작해, 뭉그러진 야채로 둘러싸여 걸쭉한 소스 속에 헤엄치는 지나치게 구워진 고기 덩어리로 이어진다. 대도시에서는 스시, 햄버거, 피자 등 밀려오는 국제요리의 물결 속에 토속 음식이 사라져가고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메뉴에 나와있는 것은 다 먹을 수 있는 샐러드바나 샌드위치 가게를 음식점 밀집 지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에는 서구식의 슈퍼가 많이 있고 그곳에는 외국에서 수입된 식품들도 얼마든지 있다. 크바스(Kvas)는 호밀 빵을 발효시킨 액체로 부드러운 알코올 음료이며 여름에는 청량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술다운 술 보드카는 스트레이트로 마시거나 후추, 과일류, 들소 풀, 사과 잎, 레몬, 생강, 정향 등을 넣어서 마시기도 한다.
  • 축제 및 행사
  •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는 한밤중의 행사와 촛불행진, 성대한 민속예술 등이 열린다. 4월에는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국제적인 고전음악 축제인 뮤직 스프링(Music Spring)이 열리고, 6월 말에는 10일 동안 백야현상이 나타나는데 이 때는 결혼식이 많이 치러지며 모두들 늦은 시간까지 즐긴다. 모스크바에서는 홀수 년도 가을마다 영화제가 열린다. 러시아 겨울 축제(Russian Winter Festival)는 상트 페테르부르그, 모스크바, 노브고로드에서 11월말부터 1월초까지 열리고 여기에는 민속 박람회와 보드카가 빠질 수 없다. 또 다른 겨울 축제로는 새해 첫 날이 있는데 선물과 샴페인, 더 많은 보드카가 축하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비자를 받아야 함
    보건위생: 디프테리아, 뇌염, A형 간염, 장티푸스
    시간대: 러시아에는 11가지 시간대가 있음, 한국은 모스크바보다 9시간 빠르다.
    전압: 220V, 50 Hz
    도량형: 미터제 사용(도량형 환산표[영문])
  • 경비 및 환전
  • 통화 :루블(Rouble)

    일반경비:
    저렴한 현지 식사 : US$4
    일반 레스토랑에서 식사: US$8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US$15
    저렴한 숙소: US$30
    중급 호텔 : US$50-75
    최고급 호텔: US$100 이상
    엄청나게 절약하고, 비행기, 택시, 국제 전화, 괜찮은 레스토랑을 무시하고 가장 저렴한 숙소에서 묵는다면 하루 $30로 여행할 수 있다. 항상 편안한 호텔에 묵고 매일 두 세끼를 레스토랑에서 먹으려면 하루 $85이상은 예상해야 한다. 모스크바에서 제일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호화로운 호텔의 보송보송한 시트에서 잠들고 싶다면 하루 $350 정도! 가능한 한 다양한 종류로 여행비용을 휴대하는 것이 좋다. 환전하기 제일 편한 것은 미국 달러이다. 위험이 배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금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 위태롭기는 하지만, 여행자수표를 환전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대도시에서는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어디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에서는 팁을 주어야 하는 곳이 거의 없다. 최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에서는 계산서에 5%에서 15% 정도가 포함되고, 포터들은 짐 하나에 $1 정도를 예상한다. 상점은 정찰제이지만 시장에서는 흥정이 필수.
  • 여행 시기
  • 7,8월은 가장 따뜻한 달이며 많은 이들의 휴가 기간이다. 그렇지만 가장 습기가 많은 달로 하루에도 세 번씩 비가 올 수 있다. 인파와 비를 피하고 싶다면 5-6월이나 9-10월이 좋다. 초가을이면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버섯과 과일을 딸 수도 있다. 겨울에는 모진 추위가 닥치지만, 극장이 문을 열고 보드카가 나오기 시작하며 건물 안은 따뜻하고 내리는 눈은 아름답다. 봄에는 눈이 녹아 진흙탕이 되어서 통상적으로 끔찍하다.
    주의사항
    외국인을 상대로 한 거리 범죄는 러시아 주요 도시의 골칫거리다. 강도들은 지하철, 밤기차, 역, 공항, 시장, 관광지 등에서 활개를 치고 있으며 사람이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는 호텔방에도 난입한다고 알려져 있다. 모든 대도시에서 관광객들은 편집증 환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부주의해서도 안된다. 체첸 공화국(Chechen Republic), 다게스탄(Dagestan), 북 오스티아(North Ossetia), 인구쉐티아(Ingushetia), 카바르다-발카르(Kabarda-Balkar, 엘부르스(Elbrus)지역 포함) 지역 및 그 접경지역은 여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러시아-체첸 전쟁 이후 불안정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체크냐(Chechnya)에서 살해된 여행자들도 몇 있지만 여행자들에게 닥치는 가장 큰 위험은 납치라고 할 수 있다.
  • 주요 여행지
  • 모스크바(Moscow)
  • 모스크바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의 수도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아니다. 이따금 알파빌(Alphaville)에서 보면 모스크바는 행정적인 거대도시로 보이고, 기념비적인 빌딩과 넓은 회색 도로가 펼쳐져 있다. 그렇지만 회색 도로를 벗어나면 스탈린 시대 이전의 모스크바가 남아 있으며, 황금빛 양파 모양 돔이 좁고 구불거리는 시내 도로 곳곳에 흩어져 있고, 수많은 아파트의 실내가 들여다보이는 빛나는 창문들도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크렘린(Kremlin)과 붉은 광장(Red Square)이다.
  • 상트 페테르부르그(St Petersburg)
  • 러시아에서 가장 유럽풍의 도시로, 궁전 근처의 수로 덕분에 '북쪽의 베니스'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표트르 대제가 세운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다행히 스탈린주의의 습격을 피했고 짜르 시대의 웅대한 유물들도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다. 핀란드만에 위치해 여러 섬과 구불구불한 네바(Neva) 강을 끼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정돈된 우아함을 갖추고 있어 지리학적으로도 경치가 좋은 곳이지만, 이 곳에서 양파형 돔은 찾아볼 수 없다. 주요 관광지는 에르미타주 국립 박물관(State Hermitage Museum) 표트르와 폴 요새(Peter & Paul Fortress) 네브스키 대로(Nevsky Prospekt) 등이다.
  • 노브고로드(Novgorod)
  • 9세기에 처음 사람들이 정착했으며, 600년간 러시아의 선구적인 예술, 정치 중심지였던 노브고로드는, 러시아 역사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190km 남쪽에 있는 이 도시는, 이반 3세에 의해 합병되어 이반 뇌제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나찌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치워졌지만 여전히 볼 것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도시의 성채 안에는 비잔틴 양식의 성 소피아(St Sophia)성당과 러시아 천년 기념비(Millennium of Russia Monument), 성상으로 가득찬 패싯실(Chamber of Facets), 연구에 기반한 역사 예술 박물관(Museum of History & Art)등이 있다. 성채 건너편 야로슬라브 코트(Yaroslav's Court) 안에는 중세 시장, 교회, 아케이드, 궁전이 남아 있다. 일리노 구원 교회(Church of Our Saviour-at-Ilino)는 아기자기한 장식과 박공, 내부의 비잔틴 프레스코 벽화로 러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이다.
  • 시베리아 횡단철도(Trans-Siberian Railway)
  •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여행하는 것은 광대한 러시아를 눈으로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이다. 태평양 해안을 따라 6일간 9446km를 여행하면, 끝없는 자작나무와 소나무숲, 통나무 오두막집 정착지, 광대한 스텝대초원을 스쳐 지나며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갈 수 있다. 열차 여행은, 함께 여행하는 사람, 가지고 간 소설책, 열차 승무원의 태도(아주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에 따라 여행이 지루할 수도 즐거울 수도 있다. 이 노선은 시베리아의 바이칼(Baikal)호도 지나는데, 이 호수는 벨기에만큼이나 크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물 바다표범이 서식하는 곳이다. 복합적인 문화를 보여주는 이르쿠츠크(Irkutsk)는 이 노선에 있는 도시 중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 할 수 있다. 울란 우데(Ulan Ude)에는 러시아의 불교 중심지 이볼긴스크 다스탄(Ivolginsk Datsan)이 있다. 열차가 정차하고 출발하는 리듬에몸을 맡기고 나무숲과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을 지나고 있으면 이 열차여행이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볼가 강(The Volga)
  • 3700km의 볼가 강(유럽에서 제일 긴 강이다)은 항상 러시아의 핵심지역을 관통하는 수로였으며, 모스크바 북쪽 야로슬래블(Yaroslavl)에서 볼고그라드까지 굽이치고, 볼고그라드에서 그 지류가 카스피해로 흘러 들어간다. 볼가-돈 선박 운하를 통해 돈 강과 이어지고 아조프(Azov)해로 통한다. 유람선과 기선이 볼가강을 정기적으로 오르내리는데 가장 타 볼 만한 노선은 볼고그라드에서 로스토프온돈(Rostov-on-Don)까지이다. 이 노선으로 여행하면,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타타르 마을에 속하며 석회암 궁전과 많은 모스크가 있는 카잔(Kazan), 레닌의 출생지로 많은 대사건이 일어났던 곳인 울리야노프스크(Ulyanovsk), 이전에는 스탈린그라드라 불렸으며 2차 대전 중 가장 중요하고 오래 끈 전투가 있었던 장소인 볼고그라드 등을 거칠 수 있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곳에 다시 세워진 이 도시에는, 적당히 험상궂은 박물관과 기념비가 늘어나고 있다.
  • 소치(Sochi)
  • 코카서스(Caucasus) 산맥을 배경으로 하는 흑해의 소치 리조트는, 오데사, 얄타와 비슷한 곳이다. 기후가 아열대성이고 바다는 따뜻하며 근처에 복합 리조트 다고미스(Dagomys)가 있음으로 해서 이 리조트는 예전부터 국가 원수, 외국인 여행객, 러시아 본국인들이 모두 좋아하는 장소이다. 이 도시의 특징은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치료 시설과, 권력자나 유명인의 다차(dacha, 시골 별장)가 많다는 것이다. 내륙으로 들어오면 폭포, 경치 좋은 언덕, 온천, 높은 산의 전망도 즐길 수 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 유명한 태평양 항구이며 해군 기지인 블라디보스토크는, 유럽권 러시아의 끝이라 할 수 있다. 2차대전 이전의 블라디보스토크는 번영하는 복합문화적 상업 중심지였으나, 1958년에서 1990년까지는 외국인에게 완전히 폐쇄된 도시였다. 그림같은 언덕과 바다의 전망 덕에 블라디보스토크의 풍경은 샌프란시스코와 비교되는 경우가 많지만,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전함 때문에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블라디보스토크 주변은 극동 해양 보호지역(Far East Maritime Reserve)과 우수리 자연 보호지역(Ussuri Nature Reserve)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수리 자연 보호지역에는 흑 곰과 갈색 곰, 시베리아 멧돼지, 우수리 호랑이, 희귀종인 아무르 표범, 수백종의 텃새와 철새가 산다.
  • 무르만스크(Murmansk)
  • 모스크바와 북극 사이의 중간지점, 북극권 200km 북쪽에 있는 무르만스크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다. 주변 모두가 동토이며 12월과 1월 대부분 기간 동안 암흑만이 계속되는 이곳은, 러시아 원자력 쇄빙선의 근거지이며, 자치 거주지로 둘러싸여 있다. 3월 마지막 주에 순록 경주와 스키 마라톤 등의 행사가 열리는 북극 축제(Festival of the North) 기간 동안은 북쪽 섬에서 온 관광객들로 무르만스크가 활기를 띈다.
  • 바이보르그(Vyborg)
  • 핀란드 만에 있는 항구로, 헬싱키-상트 페테르부르그 노선의 주요 도시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만의 바위산에는 당당한 중세 성곽이 남아 있다. 이 땅은 주인이 여러번 바뀌었다. 스웨덴에서 핀란드로 넘겨졌다가 1710년에는 러시아 영토가 되고 1세기 후에는 다시 핀란드 땅이 되었고, 1939년 스탈린이 이 도시를 다시 수복했지만 2차대전 동안 핀란드와 독일의 영토가 되었다가 다시 러시아의 영토가 되면서 모든 핀란드인을 추방하는 조처가 취해졌다. 오늘날 그 모든 사건을 겪고 남아 있는 건물들을 보면 핀란드의 흔적이 여전하며, 심지어는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아르누보식의 아름다운 건물도 마찬가지이다. 바이보르그는 어부, 조선업자, 목재 운반자 등이 많이 찾는 곳이다.
  • 솔로베츠키 군도(Solovetsky Islands)
  • 최북단의 도시인 켐(Kem)에서 출발하면 백해(White Sea)의 솔로베츠키 군도로 갈 수 있다. 이 군도의 수도원들은 한때 스탈린의 악명높은 굴라그(Gulag) 수용소로 사용되었으며, 중세풍의 솔로베츠키 수도원(Solovetsky Monastery)은 중세 시대부터 투옥과 유형의 장소로 이용되어 왔다. 기후가 현저하게 온화하여 섬 주변을 보트로 돌아보는 것은 재미있고 안전한 여행이 된다. 섬 안의 호수와 내부 수로에서 보트를 타는 것도 좋다.
  • 레저스포츠
  • 러시아에서의 모험 여행은 또 다른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러시아의 많은 도시와 마을마다 있는 모험 여행사에 신청하면 된다. 코카서스나 콜라 반도(Kola Peninsula)에서 트레킹이나 등산을 할 수도 있고 카렐리아(Karelia)의 삼림, 강, 호수에서 하이킹을 하거나 카약을 탈 수도 있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 사이를 자전거로 달릴 수도 있고 유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코카서스의 엘브루스 산(Mt Elbrus)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나 활강 스키를 즐길 수도 있다. 아니면, 북극으로 느긋한 탐사를 떠날 수도 있다.
  • 러시아로 가는 길
  • 유럽의 모든 주요 도시와 뉴욕, 홍콩, 기타 아시아 여행중심지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가 매일 있다. 많은 유럽 수도에서 상트 페테르부르그로 오는 비행편도 매일 있다. 유럽권 러시아로 오기 위한 서구의 철도 관문은 헬싱키, 바르샤바, 프라하, 부다페스트이다. 파리와 암스테르담에서도 베를린과 바르샤바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오는 노선이 매일 운행된다. 베를린에서 옴스크(Omsk)까지 오는 노선도 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도 탈 수 있다. 러시아와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터키, 그루지아 사이에는 많지는 않지만 유람선이나 페리도 운행한다.
  • 국내 교통편
  • 아에로플로트(Aeroflot) 항공사는 분해되어 많은 소규모 항공사로 모습을 바꾼 가운데, 사실상, 통제되고 있지 않은 하늘을 지배하면서 세계 최악의 지역 안전 기록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에서 비행기로 여행하는 것은 믿을 수 없고 예상할 수 없으며 어려운 일이다. 국내선 비행기에 자리를 얻으려고 시도하다 보면 결국은 국제선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국제선 항공사들이 국내선 전용 항공사보다 더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럽권 러시아에서는 대규모 철도 체계가 십자형으로 교차되어 퍼져 있고, 이로 인해 기차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저렴하고 편안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당히 오래 걸린다. 철도는 모스크바 시간에 맞추어 운행된다. 유일한 일반적인 예외는 교외 철도 노선으로 이 노선은 지역 시간에 맞추어져 있다.러시아버스는 현재, 외국인에게 완전히 개방되어 있으며 작은 마을 사이를 오갈 때 아주 훌륭한 교통 수단이다. 러시아에서 직접 운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유머 감각이 있고, 상당히 울퉁불퉁한 도로 상황, 주유소를 찾기 위한 악전고투, 시시때때로 길을 잃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면 러시아를 돌아보기에 효율적인 수단일 수도 있다.강을 이용하는 수상 교통은 아직도 중요한 교통수단이며, 여름철에는 러시아 국내 장거리여행에 여객선을 타는 것도 가능하다. 주요 여객선은,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 모스크바와 볼가 강 및 돈 강의 주요 거점(야로슬래블(Yaroslavl), 니즈니 노브고로드(Nizhny Novgorod), 볼고그라드(Volgograd), 아스트라칸(Astrakhan), 로스토프온돈(Rostov-on-Don))사이를 운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