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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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78,772 평방 km (30,414 평방 mi)
인구: 510만 명
수도: 에딘버러(Edinburgh (인구 408,000)
인종: 켈트족, 앵글로 색슨족
언어: 영어, 게일어
종교: 스코틀랜드 장로교, 기타 장로교, 영국성공회, 카톨릭
정체: 의회 민주주의
국가 원수 : 엘리자베스 2세
수상: 토니 블레어(Tony Blair)
국내 총생산 :US$900억
1인당 국내 총생산 : US$18,000
연성장률 : 3%
인플레이션 : 3%
주요산업 : 금융, 철강, 운송시설, 석유, 가스, 위스키, 관광
주요 교역국 : EU & USA
EU가입여부 : 회원국
- 지리 및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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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는 대략 영국의 절반으로 그 3분의 2가 산과 황무지 지대이다. 지리상으로 볼 때 3지역으로 구분된다. 남부 산지(Southern Uplands), 중부 로우랜드(Central Lowlands) 그리고 북부 하이랜드(Northern Highlands)와 섬지역이다. 남부 산지는 비옥한 평야와 잉글랜드와 경계짓는 산이며, 중부 로우랜드는 에딘버러에서 글래스고까지 포함되는 산업지대로 대부분 인구가 거주하는 곳이다. 하이랜드는 사암과 화강암의 산악지대로 영국에서 가장 높은 Ben Nevis도 여기에 속한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790여개의 섬 중 130개에 사람이 거주하며, Inner Hebrides, Outer Hebrides, Orkneys , Shetlands.군도 들이 있다.
대부분 국토가 칼레도니아 삼림지역에 속하며, 스코틀랜드 소나무와, 오크, 실버 자작나무, 버드나무, 오리나무, 마가목, 히드류가 자란다. 그러나 이런 삼림의 경치는 최근 자생식물로 인해 줄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의 4분의 3이 개간할 수 없는 바위와 히드지대이고 그 중 8십만 헥타르가 산성 토탄지대이다.
붉은 사슴은 어디서나 널리 볼 수 있고, 한때 거의 멸종위기에 있었던 야생멧돼지도 서식하고 있다. 수달은 보기 드물지만, 밍크는 많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사냥새들과 뇌조는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로우랜드에는 수 백만 마리의 잿빛 오리들이 서식한다. 바다표범도 자주 눈에 뜨이며, 세계각처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그 명성 높은 스코틀랜드 연어도 빠질 수 없다.
스코틀랜드의 기후는 가지각색이다. 서해안과 동해안은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이고, 하이랜드 지역은 언제라도 이상기후를 경험할 수 있는 가증성이 있다. 동해안은 시원하고 건조한 청량한 기후권이다 강수량은 평균 650mm 정도이고 북해의 바람이 매섭게 느껴질지라도 실제 겨울 기온은 0도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서해안지방은 1500mm 이상의 강수량을 기록하고 여름의 최고 평균 기온 19도를 보유하는 등 보다 온화한 동시에 습하다고 할 수 있다. 5월과 6월은 그 중 건기라고 할 수 있지만 어느때고 비는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여름에 스코틀랜드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낮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이를테면 셰틀랜드 군도는 한여름의 해를 10:30pm까지 잡고 있으니. 반면 에딘버러에선 저녁의 어둑어둑한 상태로 장시간 있어야 할 것이다.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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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최초의 정착민은 6000년 정의 사냥꾼과 어부들이라고 여겨진다. 그 다름에 켈트족 중 픽트족이 하이랜드의 씨족구조로 18세기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그들은 로마인들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았으며, 후퇴하여 북쪽지방을 최초로 분리된 곳으로 여겨 하드리안 성벽을 건설했다. 새 켈트부족인 게일(또느 스콧)족은 6세기 북아일랜드에서 유입되었다. 이들은 결국 9세기에 북쪽섬지방과 서해안지역을 점령한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픽트족과 결합했다. 노르만족이 영국땅을 밟을 때까지 스코틀랜드의 대부분은 캔모어(Canmore)왕족 치하에서 약하게 결속되어 있는 상태였다.
노르만족은 몇몇 약한 왕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였음에도 북구하고 스코틀랜드를 한번도 정복하지는 못했다. 비옥한 땅이 많은 중요한 로우랜드(저지대)는 북북 잉글랜드에서 모셔온 프랑스어 사용 귀족들이 다스렸다. 하이랜드 씨족들은 굳건하게 켈릭족으로 이어지고 북부 군도는 노르웨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한 곳, 즉 중앙으로 권력이 모여질 수 없었다. 끊임없는 국경선 분쟁에도 불구하고 캔모어왕가의 왕위계승분쟁 때야 비로소 에드워드 1세에 의해 스코틀랜드 정복이 시도되었다. 결국 1296년에 시작한 이 분쟁은 1328년 로버트 브루스가 영국군을 격파하여 독립국가로 인정받아 왕이 되면서 매듭이 지어졌다. 사실 그의 조상을 살펴보면 스코틀랜드인이라기보다는 노르만족이지만 여하튼 프랑스와 동맹을 더욱 확고히 하여 4000년간 정치세계를 복잡하게 만들게 된다.
1371년 왕계가 Fitzalan가문으로 옮겨갔다. 횟짤란가는 정복자 윌리엄공과 그 후손들의 재정담당자로서 일해왔다. 이제 스튜어트가는 왕족 가계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1503년 제임스 4세는 튜더가와 스튜어트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튜더왕계의 첫 군주였던 영국의 헨리 7세의 12살 난 딸과 결혼한다. 그러나 이 노력도 프랑스가 제임스로 하여금 그의 처가를 쳐부수려 전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의 10000명의 부하들과 함께 한 플로든 힐 전투에서 죽는다. 16세기까지 스코틀랜드는 유럽과는 가까이 지내는 반면 영국은 미워하는 민족 중심주의 사회였다. 영국엔 대학이 단지 2개밖에 없었을 때에도 이들은 세인트 엔드류스, 글래스고, 에딘버러, 애버딘에 이미 대학이 설립되었다. 이런 활발한 지적 기후는 중세 카톨릭 교회에 대한 비판과 프로테스탄트주의 발생 등 개혁 사상을 탄생시키는 비옥한 바탕이 되었다.
1542년 제임스 5세가 그의 2주밖에 안된 딸 메리를 여왕의 자리에 앉혀 놓고 죽는다.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메리가 그의 며느리가 되게 하려고 군대를 파견한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이것을 ‘강제 구혼’이라 부른다. 메리가 15살이 되었을 때 프랑스 황태자와 결혼을 해 스코틀랜드 여왕이자 프랑스의 여왕이 되었다. 더 나아가 그녀는 신교도 사촌인 엘리자베드 여왕의 정통성도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구교도인 메리가 프랑스에 있는 동안 스코틀랜드 개혁이 존 녹스의 주도하에 진행되고 있었다. 1560년 스코틀랜드 의회가 라틴미사와 교황권을 폐지시키고 로마와 군주로부터 독립된 프로테스탄트교회를 등장시켰다 절세 미인이었던 메리는 18세가 되었을 때 남편의 사망으로 스코틀랜드로 돌아오게 된다. 에딘버러에서 그려는 헨리 단리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가정적인 행복은 오래자기 못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건 중에 남편 단리가 메리의 이태리인 비서 리찌오(메리의 정부였다는 설도 있음)의 살인에 연루되자 단리 그 자신도 살해되었는데, 메리와 그녀의 정부이자 후에 남편이 된 보스웰 백작에 의해서라는 추측도 있다. 이러한 일로 메리는 퇴위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메리는 타출하여 엘리자베스에게 피신하였는데 안전상의 위협을 인식한 엘리자베스는 그녀를 런던타워에 가둬버린다. 19년이 지난 후, 44세 나이에 엘리자베스를 죽이려 했다는 음모죄로 결국 참수당한다. 1603년, 자식이 없는 엘리자베스가 죽었을 때 메리의 아들이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8세로서 등극해, 스코틀랜드 왕위와 잉글랜드 왕위가 최초로 연합되었다.
스튜어트가 사람들은 낭만적인 인물이지만 왕권을 유지하는 능력면에서는 심히 의심스러웠다. 찰스 1세가 종교적인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하면서 스코틀랜드 국민들이 Church of Scotland총회의 완전한 독립을 재승인하는 국가 국민 개혁당을 조직하도록 유발시켰다. 그의 이런 유도는 결국 무장 충돌까지 이끌었으며 의회와 왕 사이에 내란을 발생시켰는데, 성공적인 혁명을 거둔 크롬웰을 지지하는 종교개혁 당원들도 합세하였다. 1660년 크롬웰 사망이후 스튜어트가는 왕위를 되찾았지만 그들의 달콤한 꿈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마치 제임스 2세가 이 왕권을 일부러 포기하려는 듯 많은 실수를 범하엿다. 그 중 카톨릭 신자인 그가 종교개혁 지지자로, 즉 신교도로 개종하여 예배를 드리자 치명적인 분노를 샀다. 다른 카톨릭 왕도 프로테스탄트들에게 너무 우호적이고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 결국 그들은 왕권을 넘기기 위해 제임스 왕의 조카이자 그의 맏딸과 결혼한 네덜란드인 William of Orange를 모셔왔다. 그는 작은 군대를 이끌고 상륙하였고 제임스는 폐하여 프랑스로 도망갔다. 글랜코이의 MacDonalds가의 장군이 데드라인까지 윌리엄과의 동맹관계를 지키지 못하자 켐벨가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40여명의 남녀노소를 칼로 찌르는 등 글랜코이에서의 대학살이 일어났고, 오늘날까지 그 반향이 울리고 있다.
1707년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 의회가 두 국가의 연합을 이뤄 단 하나의 의회와 단 하나의 왕만 있도록 하자는 제안에 동의하도록 설득하자, 스코틀랜드인들은 무역의 잇점을 취하는 대신 독자적인 교회와 법제도를 포기하고 연합국을 이루기로 하였다. 이런 결정 초기에는 비우호적이었으며 추방당한 스튜어트가 사람들이 그것을 무효로 하겠다고 펄펄 뛰었다. 하지만 의회가 앤 여왕 뒤를 이을 신교도 계승자를 찾아 하노버가에게로 등을 돌리자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래서 찾은 이가 죠지였는데, 그는 제임스 1세의 증손자이지만 독일계통으로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이었다. 스코틀랜드는 스튜어트를 지지하는 쟈코뱅의 총산이었는데 이 시기에 두 개의 주요혁명이 1715년과 1745년에 일어났다. 그러나 Bonnie Prince Charlie는 카톨릭 하이랜드지방의 클랜을 넘어서는 지지세력을 더 이상 확장할 수 없었고 그의 혁명도 실패로 돌아갔다. 자코뱅 혁명당의 대의 명분도 Culloden전투에서 마침내 묻혀버리고 잉글랜드는 하이랜드 의상과 무기, 군역종사를 금지하면서 씨족 체제를 무너뜨리기 시작하였다.
옛 스코틀랜드는 18세기 중반까지 재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으며 대신 상당한 경제적 성장과 산업혁명의 전조가 보이고 있었다. 18세기의 스코틀랜드는 회의적이고 교육수준이 높은 사회였는데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잘 담고 있는 인물 중에 철학자 Daivd Hume, 경제학자 Adam Smith, 그리고 시인 Robert Burns가 있다. 영주들이 그들의 토지를 늘리려고 꾀하고 있을 때 대대적인 하이랜드 제초작업이 시작되자 양을 키우는 것이 남아도는 소작인들보다 훨씬 이익이 많다고 여겨져서 거주하던 소작인들은 어딘가로 가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신흥공업도시(특히 글래스고와 던디)의 우후죽순으로 자라고 있는 슬럼가로 스며들어 갔다.
19세기말까지는 인구가 로우랜드의 번영하는 산업도시와 마을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점차 노동계급이 현실에 대한 각성을 하게 되자 이들을 극좌파의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되었다. 1차 대전 이후 스코들랜드의 선박, 제철, 석탄, 면과 황마 산업이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2차대 전 중 회복기가 있긴 했지만 1960년 이래로 급 하강하고 있다. 1970년대 기름이 북해에서 발견되자 경제가 급 호황을 누렸지만, 대처주의는 스코틀랜드인의 마음에 들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런 경제적 호황에도 북구하고 77개 하원의석 중 지배정당인 보수당이 차지한 의석은 겨우 11석밖에 되지 않았다. 80년대와 90년대 영국정부를 이끈 보수당은 자치권을 요구하는 강력한 노동당인 스코틀랜드와 잘 화합하지 못했으나, 1997년 총선에서 결정적인 노동당의 승리로 스코틀랜드에서 보수당은 한석도 얻지못 하였고, 노동당 정부는 이미 제한적인 스코틀랜드의 권한을 인정하였다. 21세기 언젠가 독립 스코틀랜드가 탄생될 날이 멀지 않을 수도 있다.
-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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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 17.4%
주요 산업 : 시멘트, 화학약품, 식료품 가공, 수력, 광산업, 석유, 섬유, 의류, 목재
주요 무역국: 그리스, 이탈리아. 마케도니아. 미국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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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예술, 음악, 문학 분야에서 그리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과학과 철학분야에서는 강세였다. 스코틀랜드는 대수와 열역학의 제2법칙, 전기역학의 법칙들로 두각을 나타내었고, 증기력의 혁명과 아스팔트, 방수, 전화, 텔레비전, 레이다를 발명하는 결정타를 날렸다. 또한 스코틀랜드는 해부와 방부제, 페니실린발견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Adam Smith의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이론도 이에 한 몫한다. 스코틀랜드의 교육에 대한 열의가 이러한 발견들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자칭 ‘와일드 맨’이라는 Robbie Burns를 제외하면, 스코틀랜드는 개인적으로 널리 알려진 예술가는 없는 편이다. 그러나 그런 평판도 변하고 있는 것이, 이완 맥그리거, 로버트 칼라일 등이 헐리웃에서 알려지게 되었고, 작가로는 어빈 웰쉬(Irvine Welsh)가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알려진 전통문화는 단연 하이랜드 백파이프일 것이다- 이것은 빅토리아 여왕 통치시기에 가장 유행했던 것으로, 여왕은 이 백파이프 연주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격자무늬 직물 타탄은 로마시기를 기원으로 하지만, 17세기 이후는 특수부족에서만 이용되어졌다. 남자들이 입었던 킬트와 고지대 의상들은 제임스 2세 지지자들의 반란이후 금지되었지만 다음세기에 다시 이어졌다. 전통문화 중 남아있는 것 중 하나는 ceilidh로서, 일과가 끝나고 모이는 장소나 모임 등에서, 그 지역 음유시인이 옛날이야기와 민담, 노래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야기보다는 춤과 술판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종교는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다른 어느 것보다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4세기에 전파된 스코틀랜드의 기독교는 교황권이 없는 스코틀랜드 교회를 만들게 되었고 후에 이것은 개신교 중 장로교로 분파되었다. 스코틀랜드인의 3분의 2는 Church of Scotland에 속하며, 하이랜드지방과 섬 지역에는 통합장로교파가 더 많다. 글래스고에는 카톨릭 인구가 많다.
12, 13세기 전 스코틀랜드에서는 게일어가 통용되었지만, 로우랜드에서는 불어와 스칸디나비아어가 섞인 영어인 스코틀랜드 방언(Lallans)이 수 세기 동안 사용 되었다. 지금은 66,000 명 정도만 게일어를 사용하고 있다(주로 헤브라이즈와 스코틀랜드 북서부). 고유언어사용의 감소를 억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많은 게일어들이 연설에서 쓰이고 있는데, 스코틀랜드 액센트를 가지고 구사되는 영어는 외국사람에게는 물론 잉글랜드 사람이나 로우랜드 스코틀랜드사람에게조차 이해되기 어렵다.
- 축제 및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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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휴일로는 1월 1일, 부활절 월요일(3월/4월), 독립기념일(11월 28일), 크리스마스, 라마단 및 바즈라 축제(이슬람 축제일) 등이 있다.
- 여행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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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비자없이 6개월동안 체류할 수 있다.
보건위생 : 특이사항 없음
시차 : 그리니치 표준시(한국이 스코틀랜드보다 9시간 빠르다.)
전압 : 240V, 50Hz
도량형 : 미터제 (단 맥주는 파인트제를 사용)
- 경비 및 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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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 파운드 스털링, 유로
일반경비:
저렴한 현지식 : US$5-10
중급 레스토랑 : US$15-25
고급 레스토랑 : US$30이상
저렴한 숙박 : US$15-30
중급호텔 : US$40-100
고급호텔 : US$100이상
스코틀랜드는 전반적으로 비싼 편이지만 배낭여행자 숙소는 많이 있는 편이다. 에딘버러가 다른 지역보다 비싸며, 하이랜드와 섬 지역도 경비가 꽤 든다. 저렴한 지역이라도 최저 1일 경비로 U$30정도 들며, B&B와 식당을 이용하며 유료관광지를 다닌다면 1일 U$65정도 소요된다. 통용화폐는 영국과 같지만 Clydesdale은행, Royal Bank of Scotland, Bank of Scotland 등 스코틀랜드계 은행들은 고유의 지폐를 발행한다(영국에서도 통용가능). 현금인출기는 많이 있지만 실수로 카드를 꺼내지 못한다면 회수하기가 불가능하다(대부분 은행은 삼켜진 카드는 반 조각 내어 자국은행으로 보내기 때문). 레스토랑에서는 아주 불만족스러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10%의 팁을 남겨놓는다. 아주 쥐꼬리만한 급여를 받는 웨이터들이 많으므로 팁으로 그것을 보충해 주어야 할 것이다. 봉사료가 계산서에 별도로 붙는 경우는 꼭 팁을 놓을 필요는 없다. 택시를 탈 때에도 10%의 팁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 여행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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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여행에 최적기는 5월과 9월 동안이며, 4월과 10월도 그럭저럭 괜찮다. 그러나 대부분 장소가 10월에는 문을 닫고 있다. 겨울에 하이랜드( Highlands)지역은 출입이 자제되지만, 에딘버러와 글래스고우는 갈 만하다. 에딘버러는 특히, 8월 에딘버러 페스티발에 최고 성수기를 이루므로 상당히 앞서 모든 것을 예약해야만 한다.
- 주요 여행지
- 에딘버러(Edinbur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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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지대 언덕 위에 세워진 에딘버러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위대한 도시이다. 진귀한 16세기 가옥에서부터 웅장한 조지안시대와 빅토리아조의 걸작품들로 들어찬 우수한 건축물의 도시로, 실제 도시건물 중 16000여 개가 건축학상으로나 역사상 중요한 건물로 지정되어 있다. 11세기 이후 왕실수도로서, 스코틀랜드 역사상의 드라마 같은 일들이 에딘버러에서 일어났다. 1707년 잉글랜드와의 합병이후에도 통치행정의 중심지로 남아 있었고 스코틀랜드 법제도를 유지해 잉글랜드와는 분리된 체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성공회가 아닌 장로교파 Church of Scotland를 계속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광명소로 발전되면서 잉글랜드와의 친밀성과 양국 상류사회의 연계성 때문에 그리고 다국적문화를 배경으로 한 인구 때문에 스코틀랜드 도시 중 가장 덜 스코틀랜드적일 수도 있다.
에딘버러 탐험을 시작하는 가장 좋은 기점은 이 도시를 굽어볼 수 있는 근사한 전망이 일품인 에딘버러 성(Edinburgh Castle)이다. 스코틀랜드 왕의 저택이었던 이 성에는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스코틀랜드의 제임스5세이자 잉글랜드의 제임스1세를 출산했던 방도 보존되어 있다. 로얄마일(Royal Mile) 서쪽 끝에 있는 에딘버러성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홀리루드(Holyrood)궁전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거리의 풍경이 16, 17세기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홀리루드 궁전은 1671년 찰스2세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왕실의 공식적인 스코틀랜드 거주지로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을 때도 있다(보통 5월말과 6월말). 에딘버러의 환상적인 전망을 감상하고 싶다면 Calton Hill로 가보자. 무료입장할 수 있는 어린이 박물관에서도 기분전환을 해 볼 수 있다. 존 녹크스의 집에서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이끌어 온 그의 행적을 볼 수 있다.
조지아 풍을 잘 음미할 수 있는 곳은 신시가의 아름다운 광장들과 테라스이다. National Gallery of Scotland에서는 유럽미술의 걸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Scottish 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는 화려했던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에딘버러는 또한, 군악연주에서부터 에딘버러 페스티발까지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B&B 에서 묵는다면 에딘버러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가까이 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유스호스텔은 시 외곽지역에 많이 있고, Royal Mile에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풍부하다
- 글래스고(Glasg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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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km거리에 있는 에딘버러의 그늘에 가리워진 글래스고에도 실상 볼거리가 많이 있다. 실업과 경제불황, 폭력의 그늘에 있긴 하지만. 전형적인 스코틀랜드 도시로서, 활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중심가는 클라이드(Clyde)강 북쪽 편에 있으며, 상점, 펍, 레스토랑이 몰려있는 Sauchiehall St 와 함께 볼거리들이 방대하게 퍼져 있다.
동쪽은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원형 그대로 유지된 고딕양식의 걸작 Glasgow Cathedral과 St Mungo's Museum of Religious Life & Art , 그리고 글래스고에서 가장 오래된 집과 15세기 Provand's Lordship 등을 볼 수 있다. 서쪽으로 돌아오면 품위있는 저택들과 18세기 Merchant City 상점들을 거닐어 볼 수 있다. Sauchiehall St에는 Charles Rennie Mackintosh의 아르누보 걸작품들이 있는데, Glasgow School of Art와 Willow Tearoom이 대표적이다. ‘시간이 멈춰 버렸나?’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Tenement House는 타임캡슐로, 20세기 중산층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Burrell Collection은 시 남쪽 5km에 위치한 폴록 컨트리 공원(Pollok Country Park)에 있다. 개인소장품들이 기증된 것으로, 중국도자기, 중세가구, 인상파화가(르느와르와 세잔)의 작픔들이 소장되어 있다.
- 세인트 앤드류스(St Andr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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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이색적인 해변마을로 중세유적지, 골프장, 바람부는 해안경치, 관광명소, 부유한 잉글랜드 지방 학부생들과 스코틀랜드출신의 신학생들이 대립된 대학교 등이 이곳의 인상이다. 세인트 앤드류스는 한 때 스코틀랜드의 종교적 수도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성당과 성, 둘 다 폐허가 된 상태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있어 이 마을은 골프의 본거지로 인식되고 있다. 이곳은 .Royal & Ancient Golf Club이라는 골프경기 이사회의 본부이며, 16세기 설계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골프코스 Old Course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애버딘(Aberd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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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버딘은 흰색의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지역이다. 거의 대부분이 화강암으로 지어진 것으로, 해가 나면(특히, 소나기가 오고 난 후) 돌 건물들은 은색으로 변하고 동화 속 그림처럼 변한다. 그러나 낮게 깔린 회색의 구름과 북해로부터 오는 비 속에서는 그 분위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곳은 원유가 주요 물자로 인식되기 몇 세기 전만 해도 북해무역과 어업의 중심지였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 중의 하나이다. 20만명의 스코틀랜드인에 다국적 유전 노동자들과, 많은 학생들이 덧붙여져 이곳의 유흥가는 번성했다. 항구 부근에는 활기찬 수산시장(fish market)과 해양박물관(maritime museum )이 있고, 도시의 주도로인 Union St에는 성문(Castlegate)과 중세후기의 Provost Skene's House , Aberdeen Art Gallery 등이 있다.
- 애비모어(Aviemore)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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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랜드의 휴양도시인 애비모어는 하이킹과 스키의 천국인 케언곰 산(Cairngorm Mountains으로 가는 거점이 되기도 한다. 영국에서 유일하게 북극고원에 위치한 이 지역에는 담비, 들 고양이, 붉은 다람쥐, 물수리(특히 Boat of Garten에서), 사슴 등의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Spey강과 인근호수에서의 연어낚시가 인기 있고, 소나무와 가문비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Rothiemurchus Estate와 Glenmore Forest Park 에서는 가이드 하이킹과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멜로즈(Mel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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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지방을 여행하는데 인기있는 지역인 멜로즈는 매력적인 시장마을로, 수도원 유적지와 옛날풍의 시장광장, 시골산책로 등이 있는 곳이다. 고딕 수도원 유적지는 석조장식이 특히 뛰어나며, 19세기에 월터 스콧 경(Walter Scott)이 복원작업을 하기도 했다. 공원과 자동차 박물관이 이곳의 볼거리를 더하고 있다.
- 아우터 헤브라이즈(Outer Hebr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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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들로 120여마일 뻗어 있는 아우터 헤브라이즈는 황량하고 외떨어진 불모지이며, 이곳의 기후는 좋지 않다. 이곳 섬들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광풍에 노출되어 있으며 1년에 250일 이상 비가 온다. 이곳에서 음울한 경치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황량함에서 풍기는 아름다움과 외딴 세계가 자아내는 독특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을 끌기도 한다. 소작생활과 갈릭문화, 신교가 널리 퍼진 곳으로, 이곳에서는 안식일이 엄격히 지켜지며, 이날은 술집도 버스도 아무 것도 운영되지 않는다.
Lewis(Ullapool에서 배편 이용, Stornoway,에서 내림)와 Harris(Skye의 Uig에서 배편 이용, Tarbert에서 내림)는 사실 가운데가 높은 언덕으로 나뉘어진 하나의 섬이다. 인구 8000명의 Stornoway는 가장 큰 마을이다. North Uist(Skye에 있는 Uig, Harris에 있는 Tabert, Leverburgh에서 페리를 이용하여 Lochmaddy에서 내림)와 Benbecula(Inverness와 Glasgow에서 항공편 이용), South Uist(Oban에서 배편 이용, Lochboisdale에서 내림)는 사실상 다리와 방죽길로 연결되어 있다. 이 지역들은 낮고 평평하며 녹음이 우거진 섬들이며 굽어진 호수들에 의해 반쯤은 잠겨 있고 바다와 하늘로 확 트여 있는 곳이다.
Barra(Lochboisdale에서와 South Uist의 Ludag에서 배편 이용하여 Castlebay에서 내림)는 이 섬들 남쪽 끝에 위치하며 들꽃과 훌륭한 백사장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 오크니 군도(Orkney Is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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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북부해안에서 6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신비스런 섬들은 극적인 해안경치(1000피트의 절벽에서 백사장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와 풍부한 해양 조류들, 그리고 Skara Brae에 위치한 4500년 된 마을을 포함한 선사유적지들로 유명하다. 만약 6월 중순에 이 지역에 있게 된다면 St Magnus Arts Festival을 놓치지 말 것! 이 곳의 70개 섬들 중 20개에는 사람이 거주한다. 6000명의 거주자가 있는 Kirkwall이 중심마을이며 Stromness가 중심항구이다. 이 두 지역 모두 Mainland로 불려지는 가장 큰 섬에 위치한다. 이곳 토지에는 소나무가 없고, 풀이 무성하며 평평하다. 이곳의 기후는 만류에 의해 따뜻해져서 놀라울만치 온화하며 4월과 5월은 가장 건조한 때이다.
- 셰틀랜드 군도(Shetland Is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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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니에서 6마일 북쪽에 위치한 셰틀랜드 군도는 1469년까지 노르웨이 통치하에 있었으며 그 후 덴마크 공주의 지참금의 일부로 스코틀랜드에 넘겨졌다. 오늘날까지도 이 외지고 바람불고 나무가 없는 섬들은 거의, 영국의 영토이면서 동시에 스칸디나비아의 이루로 여겨지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본토마을은 노르웨이의 베르겐(Bergen)이다.
오크니보다 더 황량한 셰틀랜드는 다양한 조류와 울퉁불퉁한 해안선, 그리고 4000년쯤 된 고고학적 유물들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 15개 있으며 인구는 23,000명이다. Lerwick은 Mainland Shetland에 위치한 가장 큰 마을이며 북해유전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 이 섬들은 원유로 인해 번영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곳의 많은 지역들은 좋은 시설들을 갖춰놓고 있으며 넓은 길들은 오크니의 구불구불한 좁은 도로에 비한다면 고속도로같다. 유스호스텔은 4월에서 10월 사이에 열며 주위에 B&Bs도 많이 있다.
- 레저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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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레포츠가 가능한 땅 스코틀랜드는, 인위적으로 정해진 국립공원도, 별도로 정해진 하이킹 트레일도 없이 모든 곳이 자연 그대로 개방된 나라이다. 95마일(153km)의 West Highland Way는 최고의 Highland 경치를 제공하는 하이킹코스이다. Rob Roy지방의 중심부인 Trossachs도 하이커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하일랜드와 북서쪽 섬에서라면 와일드하고 한적한 싸이클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헤브라이즈 군도가 최고의 싸이클 지대이다. 순탄한 싸이클코스를 원하는 사람들은 중부와 남부지역의 호수와 협곡부근이 적합할 것이다. 영국에서 가장 큰 스키지역은 애비모어(Aviemore)에 있으며, Glencoe, Nevis, Glenshee, The Lecht, Nevis Range에서도 스키를 즐길 수 있다. 골프는 스코틀랜드가 자랑하는 스포츠이며 세계에서 어느 지역보다 많은 골프코스를 가지고 있다. 영국 최고의 써핑지대는 북부, 특히 Thurso지역이다.
낚시는 비싸며 단속이 엄하다. Spey강과 Cairngorm지역 호수부근이 송어와 연어낚시를 즐기기에 좋다. 서부연안과 섬 지역에서는 조류관찰하기에 좋다
- 러시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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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과 주요유럽국에서 Edinburgh, Glasgow, Dundee, Aberdeen, Inverness 나 Kirkwall까지 항공편이 있다. 북미국가에서는 Glasgow 나 Edinburgh까지 취항한다. 때로 유럽에서 런던까지 올 때는 기차나 버스보다 비행기가 쌀 경우도 있다. 비행기로 런던에서 에딘버러까지는 1시간이 걸리지만, 공항을 오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4시간 걸리는 기차여행과 거의 비슷할 수도 있다.
일발적으로 스코틀랜드로 오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장거리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에딘버러를 포함한 영국각지의 유스호스텔과 연결하는 완행버스도 있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런던에서 에딘버러까지는 4시간, 글래스고까지는 5시간이 걸리며 요금은 꽤 비싼 편이다. 스코틀랜드에서 Larne, Belfast와 Belfast 부근까지 페리가 연결된다. 여름에는 1주일에 1번 Aberdeen, Shetlands군도와 Norway가 연결되며, 그리고 1주일에 2번 Aberdeen에서 Faroes까지 연결된다. 차를 가지고 간다면 런던에서 에딘버러 까지의 600km 는 8시간 정도 소요된다.
- 국내 교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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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내를 운항하는 편수는 꽤 있으나 항공으로만 가야 하는 섬 지역을 제외하고는 탈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Haggis Backpackers 버스와 Go Blue Banana버스는 스코틀랜드 내의 유스호스텔들을 연결하며 운행한다. Citylink 투어리스트 패스를 구입하면 Citylink에서 운행하는 모든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기차를 이용하면 멋진 경관을 감상할 수 있지만 루트가 많지 않고 비싸다. 도로상태는 좋은 편이고 영국 다른 지역에 비해 붐비지도 않는다. 그러나 도로는 1차선이며 주유소가 드물게 있고 기름값이 비싸다. Oban, Mallaig, Ullapool에서 대부분 섬 지역으로 보트가 운행되며, Aberdeen 에서 Orkney나 Shetland까지 페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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