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룬디(Burundi) |
Warning(여행불가능) 평화협정이 이어졌다 끊겼다 하는 부룬디는 1999년 초부터 새로운 시발점에 서있다. 하지만 민간 외교는 아직 미비해 후투와 툿시가 중요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민족간의 폭력은 세계에서 가장 밀집한 인구가 분포하는 부룬디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64년 독립 당시부터 정권을 잡은 소수 족인 툿시는 1972년 200,000명의 후투를 살해했고 100,000명을 인접국가로 피난하게 했다. 국제기구의 개입이 없어 아직도 동일한 상황이 연속되고 있어 민족간의 폭력이 지속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권력 공조를 위한 작은 진전이 있었으나, 천주교 교회와 다수 후투에 동조한 그룹에 대해서 엄격한 조치를 다시 취했다. 또 다른 잔인한 학살이 1988년에 발생해 4,000명에서 24,000명의 목숨을 잃었고 국제기구가 시체확인 작업을 했다. 다수당에 의한 선거가 1993년 실시돼 후투 지향 정당이 당선됐지만 4개월 후 대통령 느다다예(Ndadaye)가 암살 당한다. 혼동은 수년간 이어졌고 1994년에 대규모의 민족간의 전쟁으로 인해 100,000명이 사망하고 400,000명이 르완다로 피난하게 됐다. 새로운 대통령이 1994년에 죽고 전쟁이 더 깊어져 2년 동안 100,000명(대부분 후투)이 툿시 군대에 의해 생명을 잃는다. 현재 평화협상의 그늘 아래 놓여있지만 소수족 툿시 군인 지도자인 피에르 부요야(Pierre Buyoya)를 타도하기 위한 후투 반군의 폭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전쟁은 더 악화돼 후투는 툿시에 동조한 후투에 대해서도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양 그룹 모두에게 새로운 환경인 국제 경제 봉쇄 조치가 완화되고 후투 대통령인 느다다예를 암살한 툿시인 다섯 명이 기소됐지만 아직도 상황은 혼미하다. 전쟁은 외각 지역에서 심각하며 수도인 부줌부라(Bujumbura)에도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부룬디 군대는 콩고 민주 공화국의 전쟁에도 개입이 됐으며, 병원의 80% 이상은 에이즈 환자로 태워져 전쟁보다 더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