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Mexico)
멕시코는 극단적인 다양성을 가진 나라이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휴양지의 겉모습뿐인 화려함과 동시에 경외심을 자아내는 고대 도시가 있고, 눈 덮인 화산을 따라 내려가면 소나무 숲과 사막 그리고 시원한 해안까지 그 모든 것이 이 나라 안에 모여 있다. 폭발적인 거대 산업도시인 멕시코시티는 인디안 반군들이 지배 세력의 준 군부대와 빈번하게 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풍부한 자원을 지니고 있는 남부 치아파스 주에서 비행기로 한시 간 거리이다. 북쪽 국경을 따라 멕시코의 혼란스런 흥분의 전통은 캘리포니아, 아리조나, 뉴멕시코 그리고 텍사스 등의 시원한 미국 에어컨 문화와 동화되고 있다.
  • 통계 자료
  • 국명 : 멕시코 합중국 (Estados Unidos Mexicanos)
    면적 : 1,972,000 sq km (769,080 sq mi)
    인구 : 9천6백만 명 (인구 성장율 2%)
    수도 : 멕시코시티 (2천만 명)
    인종 : 대략 80%가 메스티조 (인디안 후손과 유럽인들의 혼혈)이고 10%가 토착원주민(아메리카 선주민이나 인디안 ? 나우아 (Nahua), 마야 (Maya), 사포떽 (Zapotecs), 믹스떽 (Mixtecs), 또또낙 (Totonacs), 따라스코 (Tarascos), 뿌레뻬차 (Purépecha) 등을 포함)
    언어 : 스페인어와 50여 종의 토착 주민들의 언어
    종교 : 90% 가 로마 카톨릭이며 6% 는 개신교
    정체 : 전국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일당(PRI)에 의한 민주주의
  • 지리 및 기후
  • 거의 200만 평방 킬로미터(800,000 sq mi)에 이르는 광대한 국토의 멕시코는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휘어진 모양을 하고 있으며 떼완떼뻭 지협(Isthmus of Tehuantepec)으로 점점 좁아져서 유카탄 반도까지 이어진다. 멕시코 서부와 남부는 태평양과 캘리포니아 만(바하캘리포니아 반도와 대륙 사이)에 접해 있다. 동쪽 해안은 멕시코 만에 접해 있고 유카탄 반도의 동쪽 해안은 카리브 해에 면해 있다. 육지에서의 멕시코는 미국(북쪽으로)과 과테말라, 벨리세(남동쪽)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멕시코는 알띠쁠라노 센뜨랄(Altiplano Central)로 알려진 광대한 중앙 고원 그룹을 형성하는 두 산맥이 남북으로 이어진 산지 지형 국가이다. 남쪽에 있는 시에라 마드레 델 수르(Sierra Madre del Sur)는 게레로(Guerrro)와 와하카(Oaxaca) 주를 가로 질러 떼완떼뻭 지협까지 이어진다. 이 지협에서 좁은 저지대가 태평양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과테말라까지 펼쳐져 있다. 이들 저지대의 등줄인 치아파스 고지대는 북부 과테말라까지 죽 이어진 무더운 열대 우림 지역과 합쳐진다. 편평하고 낮은 유카탄 반도는 열대 사바나가 뻗어 가다가 반도 끝에서 건조한 사막 같은 지역으로 변한다. 온대 지역과 열대 지역 사이를 잇는 멕시코는 세계적으로 사막이 몰려 있는 위도에 놓여 있으며 변화 무쌍한 자연환경과 여러 식생 지대를 포함하고 있다. 울퉁불퉁하고 산이 많은 지형은 곧 수없이 많은 미세한 기후들을 만들어 낸다. 엄청난 생태학적 다양성이 잠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끼친 영향 역시 막대하다. 스페인 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국토의 2/3가 숲으로 덮여 있었으나 오늘날은 남부와 동부에 겨우 1/5만이 녹지로 남아있을 뿐이다. 동물들을 가축화하여 방목하기 시작한 이후 커다란 동물들, 예를 들어 푸마, 사슴, 코요테 등은 고립된 지역으로 밀려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르마딜로, 토끼, 뱀 등은 흔히 볼 수 있으며 점점 사라져 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남부와 동부의 열대 숲에는 거미원숭이나 짖는 원숭이, 재규어, 오셀롯(스라소니의 일종), 맥(tapir), 개미핱기, 페카리(남북미산 멧돼지), 사슴, 마코앵무새, 투칸(큰부리새), 앵무새, 브라질 보아 같은 열대 파충류 등이 살고 있다. 멕시코는 지형에 따라 기후가 크게 변한다. 양쪽 해안 평원을 따라서는 무덥지만 과달라하라(Guadalajara)나 멕시코시티처럼 내륙 고지대는 훨씬 건조하고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덥고 습기 찬 계절은 5월부터 10월까지로 멕시코 대부분에서 7,8,9월은 가장 덥고 다습한 달이 된다. 그리고 해발 고도가 높은 내륙 지역보다 해안 저지대에서 더 많은 강우량을 기록한다. 12월에서 2월 사이는 일반적으로 선선한 달이지만 북풍이 불어오는 북부 멕시코는 확실히 쌀쌀하며 온도도 때때로 급격히 내려간다.
  • 역사
  • 식민지 이전 역사
    처음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은 콜룸부스보다 대략 20,000년 정도 전에 살기 시작했다. 그들의 후손들은 BC1200년 경부터 AD 1521년까지 번창하던 뛰어나고 고도로 발전된 문명을 건설하였다. 이들 중에는 마야와 아즈텍 문명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에르난 코르테스 (Hernán Cortés)는 현재의 베라크루스에 1519년 4월 21일 11척의 배와 550명의 병사 그리고 16필의 말을 이끌고 이곳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인디안들은 호의적이었으며 곧 아즈텍의 수도인 떼노치띠뜰란 (Tenochtitlán) 으로 ‘물위를 떠가는 탑’을 타고 온 하얀 피부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당시의 아즈텍 왕이던 목테주마 2세 (Moctezuma II)에게 전해졌다. 아즈텍의 달력에 따르면 1519년은 케찰코아뜰(Quetzalcóatl)신이 동쪽에서 돌아오기로 되어 있는 해였다. 스페인 인들은 당시의 아즈텍 지배에 불만을 품고 있던 마을로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게 되었고 이 인디안들과 첫번째로 동맹을 맺었다. 6,000명의 인디안들과 코테스는 당시 스페인의 그 어느 도시보다 커다랗던 아즈텍의 수도 섬으로 다가갔다. 목테주마는 그들을 자신의 왕궁으로 초대했고, 그러자 스페인인들은 곧바로 그를 인질로 잡아들였다. 마침내 1521년 8월 13일 아즈텍의 저항이 끝을 맺고 말았다. 스페인의 침략을 받은 인디안들의 처지는 비참하게 악화되었는데 이는 식민 통치자들의 거친 지배 때문만이 아니라 스페인 인들이 가져온 질병으로 인한 전염병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인디안 인구는 침략 당시 2,500만으로 추산되는데 1605년에 접어들면 겨우 1백만 명 조금 넘는 사람만이 살아 남았을 뿐이다.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멕시코에서는 일종의 인종 차별 정책이 있어서 이 시기 동안 멕시코 내의 권력 투쟁이 격화되도록 부채질했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식민지 개척자들은 뻬닌술라레스(peninsulares) 또는 조롱하는 의미에서 가츄삐네스(gachupines) 등으로 불리었으며 인구의 극소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스페인에서의 원래 신분이야 어쨌든 간에 뉴스페인(당시의 멕시코를 부르던 이름)의 귀족으로 대우받았다. 18세기에 이르러 스페인인 부모를 둔 뉴스페인의 크리오요스(criollos)들은 광산, 상업, 목장, 농업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하게 되자, 당연히 자신들의 부에 걸맞는 정치적 권력을 찾기 시작했다. 크리오요스 보다 아래에는 스페인인과 인디안 또는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들 사이에서 태어난 메스티조가 있었고 가장 밑바닥에 인디안이나 아프리카 인들이 놓여졌다. 180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스페인의 대부분을 점령하게 되자 뉴스페인에 대한 스페인의 직접 통치가 어렵게 되고 뻬닌술라레스와 크리오요스 사이의 견제가 강화되었는데 이것이 촉매가 되어 반란이 일어났다. 1810년 9월 16일 교구 사제인 미구엘 이달고 이 코스띠야 (Miguel Hidalgo y Costilla)는 성당의 신도들에게 설교하며 유명한 돌로레스의 외침(Grito de Dolores) 을 통해 반란을 촉구했다. 산발적인 전투가 1821년까지 계속되었고 마침내 스페인은 멕시코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독립 후에 22년간 만성적인 국가 불안이 이어졌는데 이 시기에 국가 원수가 36번이나 바뀌었고 멕시코 영역이었던 많은 땅들이 미국에 빼앗겨지게 되었다. 1845년 미국 의회는 투표를 통해 텍사스를 병합하도록 결정했는데 이것이 멕시코-미국 전쟁을 이끌었으며 결국 미국이 멕시코시티를 포위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전쟁이 끝날 무렵 과달루뻬 이달고(Guadalupe Hidalgo, 1848) 조약으로 멕시코는 현재의 텍사스, 캘리포니아, 유타, 콜로라도 그리고 대부분의 뉴멕시코와 아리조나 등을 미국에 할양했다. 1862년까지 멕시코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에 거대한 빚을 지고 있었고 세 나라는 연합군을 편성해 이 빚을 돌려 받으러 쳐들어 왔다. 잔인한 나폴레온 3세 시대의 프랑스는 더 나가 멕시코를 식민지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또 다른 전쟁이 벌어졌다. 1864년, 나폴레온은 오스트리아 대공인 함부르크의 막시밀리안을 초대해 멕시코의 황제로 만들었지만 이 지배는 금새 끝나고 말았다. 1911년까지 33년간 멕시코를 지배했던 독재자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íaz)의 시대는 비교적 안정을 되찾았다. ‘질서와 전진’이라는 슬로건 아래 그는 멕시코를 산업시대로 이끌었고 60년간이나 멕시코인들을 괴롭혔던 지긋지긋한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반면에 평화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정치적 반대나 선거, 언론의 자유 등이 금지 되었고 잔혹한 군대에 의해 지배가 계속되었다. 디아스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퍼져 가면서 파업이 계속되었고 이로 인해 멕시코 혁명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혁명은 억압과 자유 사이의 분명한 투쟁이 아니라, 10년 동안 계속해서 안정적인 정부와 평화를 창출해 내려는 시도가 새로운 투쟁의 발발로 무너지는 가운데 난립한 여러 지도자에 대한 충성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자유 개혁론자들과 대농장의 토지를 농부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싸운 에밀리아노 사파타(Emiliano Zapata)같은 급진적인 지도자들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적 차이는 혁명의 성공을 어렵게 만들었다. 10년에 걸친 과격한 내전으로 150만에서 2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는 당시 멕시코 인구의 1/8에 이르는 수치이다. 혁명이후 정치적 목표는 시골 학교나 도로, 수력전기 발전소와 관개시설 등의 국가의 하부구조를 다지고 발전시키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PRI(The Party of the Institutionalized Revolution)는 1934년 정권을 인수해 아직까지 집권하고 있으며 개혁과 토지 재분배 등의 여러 정책을 도입했다. 1966년에는 보수적인 디아스 오르다스(Díaz Ordaz) 정부에 대해 멕시코시 대학생들의 분노가 표출되면서 다시 사회불안이 가중되었다. 1당 독재 체제, 제한된 언론의 자유, 과다한 정부의 권력 등에 대한 불만이 머리를 들며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거대한 데모로 번졌고 시위자들이 무장군에 의해 학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70년대의 석유 붐은 멕시코의 석유 수익을 증대시키고 산업과 농업 투자를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1980년대의 석유 과다 공급으로 유가가 하락하자 멕시코는 몇 십 년 만에 최악의 불경기를 맞았다. 당연한 결과로 경제 위기는 좌, 우익 양쪽의 정치적 반대 세력이 증가되는 결과를 이끌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85년 9월 19일의 지진은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8을 기록하였으며 40억 US$의 손실을 입혔다. 이 지진으로 멕시코시티의 수백 채의 빌딩이 파괴되었고 수 천명의 주민이 집을 잃었으며 8,000여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Carlos Salinas de Gortari)는 1988년 그가 다수 표를 얻지 못했다고 믿어지는 논쟁꺼리가 많은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멕시코의 경제를 마비시키는 국채를 재타협하고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성공한 듯이 보이자 대중적 지지기반을 획득하게 되었다. 대대적인 사유화 정책과 국제 금융시장의 유입으로 멕시코는 자유 시장 경제의 모범으로 국제 여론에 선전되었다. 살리나스가 추진한 경제 개혁의 절정은 나프타(NAFTA, 북미 자유무역 협정)로 1994년 1월 1일부터 발효되었다. 나프타가 인디안 농부들의 빈곤을 증대시킬 것이라는 의구심은 곧 사파티스타들에 의한 남부 치아파스주의 폭동으로 이어졌다. 나프타가 발효된 날, 2,000명의 농부들이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San Cristóbal de Las Casas)와 다른 지방 도시들을 점령하고 멕시코의 억압받는 인디안들을 위한 사회 정의를 요구하여 멕시코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반란군과 멕시코 군대가 정전을 하기 전까지 최소한 145명이 죽었다. 수브코만단떼 마르코스(Subcomandante Marcos)로만 알려진 털모자를 쓴 모습의 반란군의 지도자는 전국적인 농민들의 영웅이 되었다. 1994년 3월, 살리나스가 고른 후계자,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Luis Donaldo Colósio)가 암살당하였다. 그를 대신해서 출마한 43세의 에르네스토 세디요(Ernesto Zedillo)가 선거에서 겨우 49%의 지지만으로 당선되었다. 멕시코의 정치 체제와 젊은 경제에 대한 확신이 모험적으로 낮은 상태에서 경제 위기가 가중되었다. 세디요가 취임 선서를 한지 몇주일만에 페소는 극적으로 곤두박칠쳤고 물가도 상승하기 시작해 멕시코는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으며 비상상황으로 미국과 국제 금융 기구에 의한 500억 US$의 신용 원조에 의존하게 되었다. 멕시코는 이 원조에 대한 담보로 멕시코 자급 의존의 중요 상징인 석유 수지를 바쳐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디요는 순수하게 민주주의에 흥미를 가진 듯 보여 집권 기간 중 지방 선거에서 마침내 야당이 승리하였고 선거 감시 문화도 발전되었다. 사파티스타들도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운영되어 스스로의 내부 조직 역시 자유선거를 통해 선출하였다. 그러나 반군과 멕시코의 호전적인 경찰병력 양쪽에 의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학살이나 게릴라 스타일의 활동은 이러한 이상적인 성공을 부지불식간에 약화시키고 있다. 경제와 정치 양쪽에 있어서의 개혁이 멕시코의 국가 의제임은 의심할 나위 없는 것이다. 세디요의 어려운 과제는 정치적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는 멕시코를 혼란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서 집권 여당인 PRI가 휘두르는 철권 통치를 서서히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새롭게 자리잡은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며 모든 평판에서 볼 때 멕시코 의회는 최근 기억 중 가장 훌륭한 의회이다.
  • 경제
  • 국내 총생산 GDP : US$ 1조 859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8,479
    연 경제 성장률 : 2%
    인플레이션 : 35%
    주요 산업 : 제조업, 석유, 농업 식량 생산
    주요 교역 상대국 : 미국, 캐나다, 일본, 유럽
  • 문화
  • 밝은 색을 좋아하는 멕시코인들은 스페인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예술에 재능이 있어왔다. 오늘날 멕시코는 무랄(벽화)로 덮여 있고 현대예술이나 옛날 예술작품들을 소장한 갤러리들이 여기적기 놓여있는데 이것들이 많은 여행자들에게는 볼만한 구경거리가 된다. 멕시코인의 창조성은 또한 이 나라의 생생한 민속 예술 전통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스페인인 이전 시대의 예술품은 주로 돌 조각, 프레스코화 그리고 벽화나 도기 등의 작품이다. 예술은 혁명이후 멕시코를 재건하는데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되었고 멕시코 최고의 예술가들, 예를 들어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다비드 알파로 시께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호세 클레멘떼 오로스코(José Clemente Orozco) 등은 사회, 역사적인 주제를 가지고 중요한 공공 건물에 커다랗고 생생한 무랄들을 장식하도록 의뢰를 받았다. 리베라의 부인, 프리다 깔로(Frida Kahlo)는 고뇌에 찬 자신의 초상화와 기괴하고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들을 그렸는데 그녀가 죽은 지 몇 십 년이 지난 1980년대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유명한 멕시코의 작가들로는 까를로스 푸엔떼스(Carlos Fuentes), 호르헤 이바르구엔 고이띠아(Jorge Ibargüengoitia) 그리고 199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등을 포함한다. 멕시코에서는 후안 룰포(Juan Rulfo)가 일반적으로 국민적인 최고 소설가로써 대접받는다. 그의 소설 뻬드로 빠라모 (Pedro Páramo)는 '멕시코가 무대가 되고 카프카가 썼을만한 폭풍의 언덕’ 으로 묘사되곤 한다. 스페인어가 멕시코의 지배적인 언어이지만 멕시코인들의 스페인어는 스페인의 공식 국어인 카스띨랸 스페인어와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 멕시코에서는 카스틸랸의 혀짤배기 발음이 다소간 없어지고 수많은 인디안 단어가 들어왔다. 멕시코의 인구 중 대략 5백만 명의 인디안들이 50여 가지의 인디안 언어를 사용하며 이들 인디안 중 15% 정도가 스페인어를 쓰지 않는다. 혁명 이후 멕시코 정부가 공식적으로 종교를 후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 인구의 95%가 카톨릭을 믿는다. 토착민들의 대부분도 기독교인들이지만 그들의 기독교는 보통 다른 민속 신앙들과 섞여있다. 모든 민속 신앙의 신들도 때로 기독교의 삼위 일체나 성자와 함께 등장하고는 한다. 1531년 이후 기독교와 비기독교의 인디안 세계를 연결한다고 여겨지는 검은 피부색의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 기독교의 가장 튼튼한 상징이 되어왔다. 멕시코의 요리는 또르띠야스(tortillas), 튀긴 콩, 칠리 등 세가지 주요 성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또르띠야는 옥수수나 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만들어 프라이팬에 요리한 얇고 둥근 빈대떡 같은 것이다. 콩은 끓이거나 튀기거나 아니면 수프, 또르띠야 그 외 여러 가지에 넣어 다시 튀겨 먹는다. 길거리 노점상 어디에서든 먹을 수 있는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신선한 과일 주스(후고스,jugos)들도 즐비하지만 멕시코는 또 술로도 유명하다. 메스깔과 테낄라는 그 중 특히 유명한 술이다. 뿔께는 약한 알코올 음료로 용설란의 즙에서 직접 짜낸 음료이다.
  • 축제 및 행사
  • 멕시코의 빈번한 피에스타(축제)는 정열로 가득찬 아주 현란한 행사로 때로 며칠 동안 계속되어 생활에 굉장한 짜릿함을 더해주곤 한다. 거의 매달 주요한 국경일과 축하 행사가 있으며 이것에 더해 각 마을마다 수호 성인의 날이나 축제가 열린다. 2월 하순이나 3월 초순 정도의 재의 수요일 전 주나 그 근처에 열리는 까르나발(carnaval, 카니발)은 40일간의 사순절 전까지 커다란 축제가 된다. 11월 2일의 디아 데 로스 무에르또스(Día de los Muertos, 죽은 사람의 영혼이 세상에 다시 돌아온다고 믿겨지는 날)는 아마 멕시코의 가장 특징적인 축제일 것이다. 가족들은 집안에 제단을 설치하고 화환과 선물을 들고 조상의 묘지에 참배를 간다. 사람 뼈를 닮은 단 음식들을 거의 모든 시장에서 판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그리고 실제로 모든 서유럽 국가들 국민은 관광시 비자가 필요없다. 그러나 대사관 또는 국경을 넘을 때 제공되는 멕시코 정부의 투어리스트 카드(tarjeta de turista)를 받아두어야 한다.
    보건위생 : 콜레라, 뎅그열(dengue fever), 간염, 말라리아. 척수성 소아마비(polio),광견병, 파상풍, 장티푸스 등을 주의해야 한다. 또 12월에서 5월까지 멕시코시티의 공기 오염은 극단적으로 심하다.
    시간대 : 대부분의 멕시코는 한국보다 9시간 앞(한국 1시에 멕시코시티 10시)이다. 바하 캘리포니아 수르(Baja California Sur)와 다른 북서부 몇몇 주들은 8시간 앞, 바하 캘리포니아 북쪽 일부분은 7시간 앞이다.
    전압 : 110V, 60 Hz
    도량형 : 미터법 (도량형 환산표 참조)
    여행객수 : 연간 추정 1650만 명
    주의 사항 멕시코시티는 폭력 범죄가 눈에 띌 만큼 증가한 것을 비롯해 범죄율이 위험 수위까지 다다랐다 .가장 흔하게 보고되는 범죄는 택시 강도, 무장강도, 소매치기 그리고 지갑 날치기 등이며 여성에게 저질러지는 성 관련 범죄도 상당히 일어나고 있다. 때때로 난폭해 지는 치아파스 주로 여행하려는 사람들은 주요 관광지만으로 여정을 제한하도록 해야 하며 여행을 시작하기 전 멕시코시티에 있는 대사관에 연락해 두고 스스로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경비 및 환전
  • 통화 : 페소 (Peso)
    일반 경비:
    저렴한 현지 식사: US$3-4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US$8-12
    저렴한 숙소 : US$8-15

    경비는 또한 어디를 갈 것인가에 따라 달라지는데 멕시코의 대도시나 해안 휴양지의 경우는 시골 지역보다 훨씬 비싸다. 이들을 섞어 여행할 경우 검소한 여행자는 하루 US$25까지 절약해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적당히 안락하게 여행하고 중급 호텔 이상의 숙소에 묵으며 더 비싼 식당에서 끼니를 때울경우에는 하루에 US$60 정도를 각오해야 한다. 물론 고급호텔에서 묵고 때로 차를 렌트할 생각이라면 이보다 훨씬 더 돈을 들여야한다. US$로 표시된 여행자 수표나 미국 달러를 현찰로 가지고 가는 것이 가장 좋다. 환전은 은행이나 까사 데 깜비오(사설 환전소, casas de cambio)에서 할 수 있다. 은행의 환전 업무는 오전 9,10부터 정오나 오후 1시까지만 열 때가 많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환전율은 은행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주요 신용카드들은 항공사, 렌터카 회사 그리고 조금 비싼 호텔들이나 레스토랑에서 받아준다. 아카풀코(Acapulco), 깡꾼(Cancun), 꼬수멜(Cosumel) 같은 극도로 관광지역화 된 곳들은 호텔과 식당에서 미국 달러를 페소처럼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물론 환전율은 아주 나쁘게 쳐줄테지만). 멕시코에서는 페소를 나타내는 기호로 $를 사용하므로 미국 달러를 나타내는 US$나 USD를 같이 섞어서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멕시코는 15%의 부가가치세를 부여하지만 법으로 표시된 가격 안에 이 세금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보통 고급 호텔들에 의해) 세금을 빼고 가격이 표시되는 경우도 있다. 관광지 식당에서의 팁은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15%에서 20% 정도이다. 이런 곳들을 제외하고는 중간 정도 또는 괜찮은 식당들에서 10%정도면 충분하다. 보통 더 작고 싼 식당에서는 직원들이 팁을 바라지 않는다. 시장이나 미터기를 달지 않은 택시는 흥정을 해야 한다. 이런 흥정들은 죽자 살자 깎기 보다는 재미있는 사교적 대화 수준으로 여기고 임하는 것이 좋다.

  • 여행 시기
  • 멕시코의 기후는 각 지역의 지형에 따라 변한다. 양쪽의 해안 평원을 따라서는 덥고 다습하지만 내륙은 해발 고도가 올라갈수록(예를 들어 과달라하라나 멕시코시티) 기후도 건조해지고 더 온화해진다. 덥고 축축한 계절은 5월에서 10월까지이다. 남부 해안 지역은 불쾌할 정도로 덥고 7월에서 9월까지는 무척 습기가 많다. 해변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누워있다가 가끔 퍼붓는 소나기를 피하며 보낼 생각이 아니라면 이 시기에 멕시코의 남부 해안을 여행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특히 7,8월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휴가철이기 때문에 해안 휴양지들도 관광객으로 꽉 찬다. 10월에서 5월은 상당히 건조하며 기분 좋게 따뜻하기 때문에 가장 여행하기 좋은 시기이다. 12월에서 2월은 가장 시원한 달이지만 북풍이 불어오는 멕시코 북부 내륙은 상당히 추워지며 기온도 때때로 영하 근처까지 내려간다. 멕시코의 여행 성수기는 세마나 산타(부활절 전주, Semana Santa)와 크리스마스, 정초 등으로 이 때가 되면 거의 모든 시설들의 예약이 꽉 찬다.
  • 주요 여행지
  • 멕시코시티
  • 멕시코시티는 애증이 교차되는 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대도시권역과 두 번째 큰 도시로서 여행자들이 바라는 모든 것이 이 안에 있다. 끓는 가마솥에 집어넣는 신비한 재료들처럼 멕시코시티가 퍼져 있는 높은 계곡에는 이 나라의 가장 좋은 재료와 최악의 재료들이 섞여 있다. 그 결과로 멕시코시티는 음악과 소음, 혼탁한 공기와 녹색 공원, 식민지 건축물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과 퍼져가는 빈민가들이 섞인 오염되고 바쁘게 돌아가는 거대 도시가 되었다. 멕시코시티의 역사적인 중심은 플라사 데 라 콘스티뚜씨온(Plaza de la Constitución)으로 일반적으로 소깔로(Zócalo)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광장은 1520년대 현재의 멕시코시티가 세워진 자리에 있던 아즈텍 도시인 떼노치띠뜰란(Tenochtitlán)의 사원과 궁전의 유적에서 가져온 돌로 코르테스가 초석을 깔은 곳이다. 떼노치띠뜰란은 호수 한가운데 세워졌는데 이 때문에 현재 멕시코시티의 오래된 건물들이나 교회들은 세워진 늪지 지대에서 점점 가라앉고 있다. 소깔로 동쪽을 가득 채운 건물이 빨라씨오 나씨오날(Palacio Nacional)로 아즈텍 궁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으며 예전 뉴스페인의 총독이 살던 건물이다.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과 박물관, 그리고 멕시코의 역사를 그려놓은 디에고 리베라의 박진감 넘치는 혁명 무랄이 있다. 광장 북쪽의 까떼드랄 메트로뽈리따나(Catedral Metopolitana)는 1520년대 아즈텍의 촘빤뜰리(Tzompantli) 또는 두개골의 벽(희생자들의 두개골을 놓아 두던 일종의 제단)이 있던 자리에 스페인인들이 세운 성당이다. 성당 바로 동쪽에는 아즈텍의 주요 신전이던 뗌플로 마요르(Templo Mayor)와 이 곳에서 발견된 놀라운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이 있다. 알라메다(Alameda)는 아즈텍의 시장이었던 곳으로 현재는 상쾌하고 푸른 공원이 자리해 있다. 알라메다 근처의 거리들은 식민지 시대의 저택이나 고층 건물, 활기 넘치는 카페, 식당, 가게, 시장 등으로 가득하다. 다른 꼭 보아야만 할 구경거리로는 보스께 데 챠풀떼뻭(Bosque de Chapultepec)으로 멕시코시티의 가장 큰 공원이며 많은 박물관과 유원지 그리고 대통령궁 등이 있다. 또 바실리까 데 과달루페(Basilica de Guadalupe)는 멕시코의 수호 성인이 나타났다고 전해지는 곳에 세운 교회이다. 산 아구엘(San Ángel)의 식민지 시대 건축물, 꾸이뀔꼬(Cuicuilco) 피라미드, 소치밀꼬(Xochimilco) 운하 등도 볼만한 곳들이다. 플라사 가리발디(Plaza Garibaldi)는 일자리를 못 찾은 마리아치 밴드들이 저녁에 모이는 곳이며 소나 로사(Zona Rosa)는 고급 상점과 나이트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구역이다. 가장 적당한 가격대의 호텔은 소깔로 서쪽 지역과 알라메다 남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맛있고 싼 음식들은 시내 대부분의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 멕시코시티 주변
  • 멕시코시티의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겨우 50km(31mi) 떨어진 곳에 멕시코에서 가장 큰 고대 도시인 떼오띠와칸(Teotihuacán)의 유적이 있다. 떼오띠와칸은 전성기인 6세기 경 대략 200,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던 커다란 도시였다. 떼오띠와칸은 멕시코 최초 거대 문명사회의 수도였으며 유적은 이 도시의 예전 영광을 잘 보여준다. 호객꾼들이 성가시기는 하지만 사자의 거리(Avenue of the Dead), 70m(230ft) 높이의 해의 피라미드, 그리고 달의 피라미드와 께찰 버터플라이의 궁전(Palace of the Quetzal Butterfly)등의 모습은 경이로울 뿐이다. 뚤라(Tula)는 멕시코시티 북쪽으로 65km(40mi)북쪽에 있으며 똘떽 (Toltec) 문명의 수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깜짝 놀랄만한 4m(13ft) 높이의 돌 전사상들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대략 85km(53mi) 남쪽에는 식민지 시대부터 멕시코시티에서 온화한 기후에 끌려 많은 부유층과 상류층 사람들이 찾아오던 꾸에르나바카(Cuernavaca)가 있다. 이 도시의 우아함은 대부분 가려진 벽이나 정원 뒤에 숨겨져 있지만 상당수의 저택들은 갤러리나 호텔, 레스토랑으로 바뀌어져 있다. 이곳은 가난한 여행자를 위한 곳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도시의 고급감 때문에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장소이다. 멕시코시티의 남서쪽 180km(112mi)에 있는 오래된 은광산 마을인 탁스코(Taxco)는 식민지 시대의 호화롭고 유서깊은 마을로 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과 유쾌함을 지닌 곳 중 하나이다. 가파른 언덕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미궁처럼 얽힌 좁은 자갈도로와 매력적으로 장식된 건축물, 기분좋은 광장이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도시 전체가 국립 역사 기념물로 선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
  • 깨끗하고 하얀 해변을 가진 아름다운 해안선, 평화로운 만들과 인상적인 절벽들에도 불구하고, 바하의 안쪽은 황량하고 미개발인 채로 놓여져 언제나 숨기 좋은 장소로 남아 있다. 반도는 마고니스타(Magonista) 혁명가 외국 용병들 그리고 금주법 당시의 미국에서 은신처를 찾아 온 술꾼들이 숨던 장소였다. 오늘날에는 여행객들이 바하에 숨어들어 가고 있다. 가장 볼만한 것들 중에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세운 벽지 선교 마을이던 산보르하(San Borja), 기발한 바위 작품들이 있고 최근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화산 분지인 산이그나씨오(San Ignacio) 근처의 시에라 데 산 프란시스코(Sierra de San Francisco), 그리고 아스펜과 선인장, 떡갈나무, 야자수 등이 나란히 자라고 있고 수많은 산들이 화강암 계곡으로 흘러들어가 하이킹으로도 최적의 장소인 반도 남쪽 끝의 놀라운 식물나라, 시에라 데 라 라구나(Sierra de la Laguna) 등을 들 수 있다.
  • 치와와 알 빠시피코 철도 (Chihuahua al Pacífico Railway)
  • 로스 모치스(Los Mochis)에서 치와와까지의 여정은 멕시코에서 가장 절경 중 하나로 꼽힌다. 철도는 88개의 터널을 지나고 38개의 다리를 건너면서 시에라 따라우마라(Sierra Tarahumara)의 작은 협곡을 가로지르고 우뚝 솟은 절벽을 감싸돌며 진행한다. 이 철도는 상당한 공학 기술의 위업이라 할 수 있으며 90년이나 걸려 건설되었다. 철도를 타고 가는 여행은 생동하는 여러 지질학적 이미지들을 한꺼번에 휘몰아 볼 수 있고 그 중에서도 최고 걸작은 코퍼 협곡(Copper Canyon)으로 아리조나의 그랜드캐년보다 더 깊고 웅장하다. 대담한 등산가들은 크레엘 (Creel)이나 근처의 디비사데로(Divisadero)로부터 가이드와 함께 2300m(7544ft) 깊이의 협곡을 내려오도록 계획하기도 한다.
  • 뿌에르토 바야르따 (Puerto Vallarta)
  • 야자수로 덮인 산들과 파란 바이아 데 라스 반데라스(Bahía de las Banderas, 깃발들의 만) 사이의 리오 까울레(Río Caule) 옆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뿌에르토 바야르따는 멋진 풍경과 자갈로 만들어진 거리, 하얗게 칠해진 도시로 극단적으로 부유한 사람들과 배낭족들 모두 좋아하는 곳이다. 바야르따는 하얀 모래, 야자수로 장식된 해변, 생기 넘치는 바와 식당 그리고 수북한 갤러리들과 공예품점들을 자랑한다. 이 도시는 한적한 해안 마을에서 국제적인 휴양지로 너무나 빨리 변화되었기 때문에 언뜻 망쳐진 매력들을 비웃을만한 곳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 도시의 매력과 남쪽 해변, 거대한 만, 그리고 바다 생활을 싫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만에는 일년 내내 돌고래들을 볼 수 있고 검은 고래나 회색고래도 2월에서 4월까지 볼 수 있다. 주민들은 4월에 해안에 서있으면 쥐가오리들이 짝짓기 의식으로 공중에 뛰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 과달라하라(Guadalajara)
  • 멕시코의 특징하면 떠오르는 많은 모습들과 전통들은 멕시코에서 두번째 큰 과달라하라에서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것들이 마리아치 음악이나 테낄라, 멕시코 모자 춤(Mexican Hat Dance), 챙 넓은 모자, 그리고 멕시코의 로데오 등이다. 과달라하라는 열정적인 문화, 훌륭한 박물관과 미술관, 신나는 나이트라이프 그리고 좋은 숙소와 식당과 같은 멕시코 시티와 동일한 매력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반면 문젯거리는 멕시코시티처럼 많지 않다. 밝고 현대적이며 잘 짜여진 도시인 과달라하라는 오염되지 않은 환경과 수많은 매력과 볼거리를 가지고 있어 여행자들을 심심치 않게 한다. 중요한 하이라이트로는 거대한 쌍둥이 탑을 가진 성당과 아름다운 주위의 한가운데 있는 광장, 까바냐 문화원(Instituto Cultural de Cabañas), 항상 마리아치 밴드들이 연주를 하는 마리아치의 작은 광장(Plazuela de los Mariachis), 그리고 사우사 테킬라 공장(Tequila Sauza Bottling Plant) 투어 중에 나누어주는 무료 샘플 등을 들 수 있다.
  • 아카뿔코(Acapulco)
  • 아카뿔코는 멕시코의 태평양 연안 휴양 도시 중 최초이며 가장 유명한 곳으로 한때 신세계에서 아시아로 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재 백만 명이 넘는 주민이 살고 있으며 빠르게 성장하는 이 도시는 고층 호텔과 디자이너 쇼핑 센터, 세가지 언어로 서비스하는 레스토랑 등이 자동자 부품가게, 오염된 강들, 혼잡한 아파트들 같은 도시의 감추어진 부분들을 덮은 채 정신 사납게 섞여 있다. 아카뿔코는 확실히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모든 수상 또는 수중 스포츠 장비를 대여해 주는 도시 내의 수많은 해변에서 빈둥거리며 즐거워한다. 라께브라다(La Quebrada)의 유명한 절벽 다이빙은 1930년대부터 45m(148ft) 높이에서 겨우 발 담글 만큼의 물밖에 없어 보이는 좁은 틈으로 떨어져 내릴 때의 다이버들의 우아한 솜씨로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었다. 그리 놀랄 일이 아니게도 다이버들은 절벽 아래로 다이빙하기 전 작은 제단 앞에서 기도한다. 다이버들이 벌이는 놀라운 광경은 엘미라도르 (El Mirador) 호텔의 바에서도 볼 수 있다. 덜 밀리는 해변을 찾으려면 시 중심가에서 북서쪽에 있으며 화려한 도시에 질렸을 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 삐에 데 라 쿠에스타(Pie de la Cuesta)에 가보도록 하자. 시에서 18km(11mi) 남동쪽에 있는 뿌에르또 마르께스(Puerto Marqués)로 가는 길에서는 아카뿔코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남쪽의 해변들의 반도(Peninsula de las Playas)는 이른바 수중 신전이 있는 곳으로 과달루뻬의 성모상이 물속에 잠겨있다.
  • 와하까(Oaxaca)
  • 와하까는 스페인인들이 세운 도시로 작은 거리에 특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편안하면서 열정적이고 외진 듯 하면서도 보편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같은 이름의 울퉁불퉁한 남부 주 안에 위치해 있는 이 도시는 토착민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뛰어난 식민지 시대 건축물 사이로 인디안 시장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시의 매력거리로 들 수 있는 것으로 풍부한 이 지역 수공예품들과 들뜬 분위기의 현지 카페가 있다. 또 시에서 당일치기로 다녀 올 수 있는 거리에 수많은 매력적인 곳들 중에는 몬테 알반(Monte Albán), 미뜰라(Mitla), 야굴(Yagul), 낄라빤(Cuilapan) 등의 유적과 마을 시장과 공예 센터 등이 있다.
  • 유카탄 반도 (Yucatán Peninsula)
  • 유카탄을 향해 우스마씬타 강(Río Usumacinta)을 건너면 마야의 왕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광과 때로는 난폭한 역사를 이어받은 마야인들은 천년 전 그들의 조상이 살았던 그곳에서 현재를 살고 있다. 유카탄 반도는 수많은 고고학 유적, 식민지 도시, 해변 휴양지, 열대 조류들만으로 가득한 조용한 해안선 등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메리다(Mérida)근처의 욱스말(Uxmal)과 치첸잇싸(Chichén Itzá) 등에는 감동적인 마야 유적들이 있다. 또 해안을 낀 낀따나 루(Quintana Roo) 주는 섬들과 하얀 모래 사장이 햇빛을 찾는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산타 로살리아(Santa Rosalía)
  • 산업 고고학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산 이그나씨오에서 동쪽으로 대략 50km(31mi) 떨어져있고, 바하 사막 한 가운데 자리잡은 예전 프랑스 공장 마을, 산타 로살리아에서 거대한 동 제련소 유적을 탐험할만하다고 여길 것이다. 또 이 도시에는 비상한 주거 건축물들과 유명한 건축가인 에펠에 의해 설계된 교회가 있다. 조립식인 이 교회는 원래 서아프리카로 갈 예정이었는데 어찌어찌 하다 멕시코로 선적되게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또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유산을 남겼는데 이 곳의 빵집은 바하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프랑스 빵 바게뜨를 판다.
  • 유카탄 해안
  • 깡꾼(Cancún)에서 뚤룸(Tulum)까지의 유카탄 해안을 따라 있는 해변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들 중 몇몇이다. 에쉬카렛(Xcaret, 섬과 섬 사이의 작은 만을 의미하는 마야어)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마야 유적과 함께 열대 바다 생활로 가득찬 아름다운 작은 만(caleta)을 볼 수 있다. 잠수경과 호스 등 스노클링 장비가 있으면 반드시 가져갈 것. 몇 미터 육지 쪽으로 들어오면 석회석 동굴 안에 맑고 투명한 물 웅덩이(cenote)가 있는데 이곳도 또한 최적의 수영 장소이다. 얄쿠 (Yal-Ku) 산호는 스노클링을 위한 최고의 장소로서 표지판도 세워져 있질 않다. 따라서 그 수정처럼 아름다운 바다를 혼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 바사세아칙 폭포
  • 245m(800ft) 높이의 바사세아칙 폭포는 세계에서 두 번째 높이를 자랑하는 폭포(첫번째는 베네수엘라의 앙헬(Angel) 폭포)이다. 크레엘 북서쪽으로 140km(87mi)에 자리잡은 이곳은 가는 동안의 한시간 정도 걸리는 드라이브나 폭포까지 올라가는 거의 한시간 거리의 하이킹을 하고도 남을 가치가 있는 곳이다. 크레엘은 또 남쪽으로 22km(14mi) 떨어진 작은 카스카다 쿠사라레(Cascada Cusárare)에 가기 위한 본거지로도 좋은 마을이다.
  • 빨렝께 (Palenque)
  • 녹색 정글로 둘러싸인 빨렝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고 마야 건축물과 장식도 아주 훌륭하다. 도기 파편의 증거로부터 이 장소에 처음 사람이 들어온 것은 1,500년 전이며 AD 600년에서 800년까지 번성하여 많은 광장과 정성 들여 지은 비문의 신전(Temple of Inscriptions) 피라미드 지하실을 포함한 여러 건물이 건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찌는 듯이 덥고 바람 한 점 없는 유적을 방문하려면 이른 아침 축축한 안개가 퍼져 고대 신전을 신비롭게 감싸고 있을 때가 가장 좋은 시간이다. 현존해 있는 거의 500개에 이르는 건물 중 겨우 34개만이 발굴되었는데 건물들은 모두 철기나 짐을 나르는 동물, 그리고 바퀴를 사용하지 않고 지어졌다. 대부분의 호텔이나 식당이 모여있는 새로운 마을은 유적지에서 대략 7km(4mi)떨어진 곳에 있으며 셔틀 버스가 두 곳을 매 15분마다 왕복한다. 빨렝께는 치아파스의 군사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버스로 쉽게 다다를 수 있다. 과테말라의 띠칼(Tikal)에서 국경 마을인 라 팔마(La Palma)를 거쳐 빨렝께까지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곳의 마야 유적을 버스와 배가 연결하고 있다.
  • 레저스포츠
  • 멕시코인들은 거의 트레킹 같은 야외 활동에 관심이 없지만 이들이 엄청나게 거친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곳들을 탐험하고 도전하는 대담한 여행가들이 점점 늘고 있다. 코퍼캐년이나 바하 캘리포니아 근처의 길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곳들이다. 스포츠 낚시도 태평양 연안과 캘리포니아 만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은 유카탄 반도, 바하캘리포니아 그리고 태평양 연안의 휴양지 등에서 많은 사람을 유혹한다. 내륙지역에 있는 발네아리오(balneario, 온천이나 해수욕이 가능한 곳들)는 주로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 온천을 중심으로 모여있다. 태평양 연안에는 또 서핑도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최고의 서핑 장소 중 몇곳으로 뿐타 메스끼떼(Punta Mesquite)와 바하 캘리포니아의 산타 로살리쥐따(Santa Rosalillita), (세계에서 가장 긴 파도가 친다고 주장하는) 산 블라스 근처의 바이아 데 마딴첸(Bahía de Matanchén), 익스따빠(Ixtapa) 그리고 멕시코의 파이프라인을 가진 뿌에르또 에스콘디도(Puerto Escondido) 등을 들 수 있다. 멕시코시티에 본거지를 둔 회사들 중에서 하이킹이나 뽀뽀카떼뻬뜰(Popocatépetl),이스딱시와뜰(Iztaccíhuatl), 삐코 데 오리카바(Pico de Orizaba), 네바도 데 똘루카( Nevado de Toluca), 라 말린체(La Malinche) 등의 화산을 포함해 여러 곳으로 등반 여행을 제공하는 회사들도 있다.
  • 멕시코로 가는 길
  •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비행기를 이용해 멕시코에 도착하며 캐나다, 카리브해의 여러 나라, 나머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그리고 미국을 연결하는 비교적 싼 표들이 여럿 있다. 아에로멕시코(Aeroméxico)와 멕시카나(Mexicana)는 멕시코의 가장 큰 항공사들이다. 멕시코에서 표를 살 경우 항공세가 대략 US$12정도 붙는다. 미국에서 20 곳의 공식 국경 통과 장소 중 한곳에서 육로를 통해 멕시코에 들어갈 수도 있다. 미국 버스는 국경에서 멕시코 버스와 연계되어 있다. 멕시코와 과테말라 사이에는 세 곳의 국경 통과 장소가 있다(도로와 철도). 오지 버스나 나룻배로 잘 알려지지 않았고 수풀이 무성한 정글 루트를 통해 가는 방법도 두,세가지 있다. 하나는 과테말라의 띠칼에서 멕시코의 코라살(Corazal)로 들어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테말라의 엘뻬뗀(El Petén)에 있는 포레스(Fores)에서 타바스코(Tabasco)의 떼노시께(Tenosique)로 가는 것이다. 둘 다 치아파스 주의 빨렝께에서 끝난다. 이 루트로 넘어올 경우 대사관에서 반드시 치아파스 주의 안전 상황에 대해 확인하고 시도해야 한다. 멕시코와 벨리세 사이에는 체뚜말(Chetumal)과 코로살(Corozal) 근처에 한곳의 국경 통과소가 있다.
  • 국내 교통편
  • 멕시코의 국내 비행기편은 더 이상 특별하게 싸지 않지만 더운 버스 안에서 오래 여행하는 것의 대안으로는 아직도 비행기가 괜찮은 가격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커다란 항공사들이 많은 국내 노선을 작은 항공사들에게 넘기고 있다. 그러나 새로 생긴 항공사들과 이들의 시간표는 아주 잘 변해서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새로운 항공사가 생기고 오래된 항공사들은 무너진다. 버스는 멕시코에서 가장 일반적인 교통 수단이며 노선 또한 잘 발달해 있다. 장거리 버스는 상당히 안락하며 에어컨디션도 달려있고 적당하게 빠르다. 지방 시골 버스는 좀 낡았고 고물이며 완충 장치가 없어서 포장이 안된 도로를 삐걱삐걱 달리며 폐차 처분되기만을 기다리는 차들이 대부분이다. 콤비(combi)나 콜렉띠보(collectivo), 뻬세로(pesero) 같은 미니 버스들은 지방 교통수단으로 주로 쓰인다. 미국 운전 면허증은 멕시코에서 통용되며 거친 도로 상태가 불만이기는 하지만 아름답고 외진 마을들을 돌아보려면 차를 운전해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멕시코시티는 공기 오염을 감소시키기 위해 차의 이용을 제한하는데 이용 가능 시간표는 차 번호판 뒤의 마지막 자리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번호판이 5,6으로 끝나면 월요일에는 운전 금지, 7,8로 끝나면 화요일 운전 금지 등이다. 바하캘리포니아와 멕시코 본토 사이에 승객과 차량을 태우고 오가는 배가 있다. 또 이슬라 무헤레스 (Isla Mujeres) 와 코수멜(Cozumel) 같은 카리브 해의 섬들도 배로 갈 수 있다. 멕시코 철도는 이런 저런 평가가 엇갈린다. 열차는 보통 버스보다 싸지만 비교적 편안한 차량부터 극도로 불안한 차량까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