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Honduras)
온두라스는 원래 과일수출이나 차관으로 유지되는 조그만 나라로 중미에서 가장 덜 개발되고 산업화된 나라 중 하나이다. 혼란스러운 정치적 역사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에 잠시 미국 비밀 작전의 온상으로서의 역할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른 나라에게 알려진 것이 없는 초라한 나라이다. 느린 개발 속도와 자연의 아름다움, 눈에 띄지 않는 여행 산업으로 인해 벌레와 싸우며 발길이 뜸한 곳을 찾아 다니는 여행자들에게는 특별히 매력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20세기의 가장 강한 허리케인 중 하나인 허리케인 미치 때문에 전국이 황폐화된 이후에 아직도 원조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 통계 자료
  • 국명: 온두라스 공화국(Republic of Honduras)
    면적: 112,492 sq km
    인구: 580만명(인구 성장율 3%)
    수도: 테구시갈파(Tegucigalpa, 인구 785,000)
    인종: 90% 메스티조, 7% 인디언
    언어: 스페인어, 크리올 영어, 인디언 언어
    종교: 카톨릭이 주류이며 다른 기독교 분파와 토착 신앙도 존재
    정체: 입헌 민주주의 Constitutional democracy
  • 지리 및 기후
  • 온두라스는 중미의 무릎 위치에 있는 나라로 남쪽으로는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서쪽으로는 과테말라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644km 길이의 카리브해와 보잘 것 없는 124km의 태평양 연안을 가지고 있다. 카리브 베이 아일런즈(Caribbean Bay Islands)와 멀리 더 북동쪽에 있는 스완(Swan) 제도도 온두라스의 영토이다.이 나라의 3/4은 300m에서 거의 2850m 높이까지 이어진 울퉁불퉁한 고원과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지대는 오직 해안과 주요 강 계곡을 따라서만 볼 수 있다. 한해에 약 3000sq km 넓이가 벌채로 인해 사라지고 있으며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앞으로 20년 안에 이 나라는 나무가 한 그루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모스끼띠아(Mosquitia) 지역 같이 손대지 않은 지역이 널리 존재하고 있다. 이 나라에 사는 동물로는 재규어, 아르마딜로, 멧돼지, 원숭이, 악어, 그리고 투칸, 왜가리, 물총새 같은 풍부한 조류들이 살고 있다. 온두라스의 기후는 산악 지형의 내륙에서 태평양과 카리브해 연안의 해안 저지대까지 다양하다. 내륙은 다습한 연안보다 훨씬 서늘하며 테구시갈파의 기온은 최고 온도가 25도에서 30도 사이이다. 우기는 5월에서 10월까지 지속된다. 따라서 내륙과 태평양 연안이 상대적으로 건조한 시기는 11월에서 4월이지만 카리브 연안은 항상 비가 내린다. 카리브 연안에서 가장 습기가 높은 달은 9,10월에서 1,2월 사이이다. 카리브 연안의 여행 성수기는 2월에서 4월까지로 미국의 겨울 동안이다. 이 때가 여행에 적당하기는 하지만 싼 가격이나 여행자들이 덜 밀리는 여행을 원한다면 이 시기를 피하는 것이 좋다. 온두라스는 1998년 11월 허리케인 미치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 역사
  • 온두라스 서부의 코판(Copan)에서 적어도 BC 1000년 전 마야 거주지의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다른 마야 도시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AD 900년경에 의문스럽게 버려지고 말았다. 콜럼부스가 미 대륙 본토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1502년 북부 온두라스의 트루힐로(Trujillo)였고 이 나라를 카리브 연안의 깊은 물을 따서 온두라스라고 불렀다(온두라스는 '깊은 곳'의 뜻이 있다). 스페인인들은 1525년에 트루힐로에 정착하였지만 곧 더 시원한 고원지역의 식민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1537년 온두라스 중앙의 코마야과(Comayagua)에 수도를 세웠고 1880년테구시갈파가 수도가 되기까지 이후 350년간 정치, 종교적인 중심지로 남았다. 인디언은 스페인 지배에 저항했고 일부에서는 스페인 세력을 본토에서 거의 몰아내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렌카(Lenca)족의 족장인 렘피라(Lempira)는 30,000명의 인디언을 이끌고 스페인에 대항했으나 1538년 평화회담에서 속임을 당하여 살해되었고 다음해 인디언의 저항은 끝이나고 말았다. 금과 은이 1570년 테구시갈파 근처에서 발견되어 영국과 네델란드 해적들이 트루힐로 지역에 몰려들었다. 1600년경 스페인은 로아탄(Roatan)에 5000명의 영국인 해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트루힐로는 1643년 네델란드 해적에서 약탈을 당한 후 1787년까지 재건되지 못했다. 스페인이 내륙에 힘을 쏟고 있는 동안 영국은 카리브 연안의 섬들에 있는 마호가니 목재에 이끌렸으며 자메이카와 다른 서인도 제도의 흑인 주민을 데려다 이 나무들을 벌목하였다. 미스키토 인디언 족장의 희망에 따라 영국은 온두라스에서 니카라과에 이르는 전체 연안 지역에 대해 영국 보호령을 선포했다. 이것은 이 지역이 온두라스에 양도된 1859년까지 지속되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은 1821년 이루어졌다. 온두라스는 간단히 독립한 멕시코의 일부가 되었지만 이후에 중미 연합국에 합쳐졌다.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연합국 내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온두라스는 1838년 독립을 선포했다. 이후부터 온두라스의 정권은 보수와 자유, 두 당파사이를 번갈아 오가다 이후 군사 정권으로 이어졌으며 그 사이에 수많은 쿠데타, 반란, 부정 선거, 권모 술수가 뒤따랐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은 1860년 미국인 약탈자 윌리암 워커(William Walker)의 침입으로 중미를 정복하려는 그의 불운한 시도는 트루힐로에서 패배함으로써 막을 내렸다.윌리암 워커가 미국을 위해 온두라스를 지배하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미국 과일 회사는 성공했다. 19세기 말, 온두라스의 비옥한 북쪽 연안의 토지는 미국 남부에 바나나를 선적하기 위해 미국 회사에 후한 가격으로 사들여졌다. 세 미국회사(Standard Fruit, Cuyamel Fruit, United Fruit)은 결국 온두라스 바나나 과수원의 75%를 소유하였다. 바나나는 1913년 온두라스의 전체 수출량 중 66%를 차지하였고 이 세 회사는 온두라스 정치에 있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각 회사는 스스로 온두라스 내의 정치세력과 연합하였으며 세 과일 회사에 의한 경쟁은 곧 20세기 초의온두라스 정치 양상을 결정하게 되었다.1969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축구 전쟁으로 알려진 짧은 전쟁을 치렀는데 이 결과 엘살바도르의 군대가 온두라스의 영토를 침범하여 온드라스 공항에 폭격을 가하였다. 양국 간의 경기가 열리던 월드컵 기간 중에 일어난 이 전쟁은 온두라스 내의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에 대한 학대에 의해 촉발되었다. 전쟁은 100시간 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양국 간의 간계는 10년이 넘게 소원해졌다. 1980년대에 온두라스는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의 소요로 둘러싸였으며 산디니스타(Sandinista)가 니카라과의 독재자를 무너뜨리자 소모사 인민 근위병(콘트라로 알려져 있다)의 피난처가 되었다. 이 기간동안 온두라스는 미국에 있어 이 지역의 정책과 전략적 거점이 되었으며 미국의 강한 영향과 온두라스에 지원된 원조, 군사적 도움 등으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막대한 자금과 수천 명의 미군이 이 나라로 쏟아져 들어왔으며 미국은 온두라스에 그들의 은밀한 작전 기지와 니카라과 난민촌을 설치하며 니카라과의 불안정을 유도하는 도발적인 작전을 개시하였다. 미국은 또한 온두라스 안에 있는 살바도르 난민촌에서 살바도르 군대를 훈련시켰다. 대중의 항의와 정치적인 불안정,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발각, 12,000명의 콘트라반군이 온두라스에서 운영되었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테구시갈파에 60,000명이 운집한 반미 데모가 열렸다. 정부는 결국 미 군사기지로서의 역할을 재검토하여 미국과의 새로운 군사 협정에 서명하길 거부하고 콘트라 반군에게 온두라스를 떠나도록 명령했다. 1990년 챠모라(Chamorra)가 니카라과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콘트라 전쟁이 끝을 맺었고 콘트라 반군도 온두라스를 떠났다. 이때부터 온두라스의 문제는 대체적으로 수출 감소나 외국 차관의 증가, 1인당 GNP의 감소 등 경제에 관한 것으로 집중되었다. 온두라스가 더 이상 미국의 중미 정책의 기점이 되지 못하면서 미국의 원조도 줄었다. 유럽과의 무역은 미국보다 두배이지만 온두라스는 아직도 바나나와 커피 가격의 잦은 변동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자유당의 카를로스 플로레스 파쿠세(Carlos Flores Facusse)는 1997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플로레스는 미국과 깊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라 트리부나(La Tribuna) 신문의 공동 경영인이다. 1998년 11월 국제 원조와 구조반이 허리케인 미치가 쓸고 간 중미 여러 나라를 돕기 위해 몰려왔다. 온두라스는 미치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나라였다. 3일간의 비로 생긴 산사태와 홍수는 마을을 덮고 전국적으로 100여 개가 넘는 다리를 파괴했다. 또 촐루테카(Choluteca) 강이 범람하면서 수도인 테구시갈파 역시 피해를 입어 많은 것들이 강으로 떠내려갔고 남은 것이라고는 바다 진흙뿐이었다.
  • 경제
  • 국내 총생산 GDP: US$ 140 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1,635
    인플레이션: 11%
    주요 산업: 커피, 바나나, 소고기, 사탕수수, 담배, 임업
    주요 교역국: EU, 미국
  • 문화
  • 스페인어가 주요 언어이며 전국적으로 쓰여지지만 아일랜드만에서는 영어(강한 카리브해 액센트를 동반한)도 쓰인다. 남아 있는 인디언들은 그들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가장 지배적인 종교는 카톨릭이지만 다른 기독교 분파도 존재하여 몰몬, 여호와의 증인, 제 7일 재림교, 침례파, 성령 강림교, Assemblies of God, 복음주의 등등 다양하다. 토착민들은 그들만의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종종 아프리카, 인디언 동물 숭배사상, 조상숭배 등의 요소가 기독교와 혼재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온두라스의 공예품으로는 목공예(특히 목각 악기), 바구니 공예품, 자수, 직물, 가죽 공예, 도기 등이 있다. 이 나라의 음식은 콩, 쌀, 또르띠이야, 구운 바나나, 고기, 감자, 크림, 치즈 등이 많이 쓰인다.
  • 축제 및 행사
  • 모든 도시에는 성도 기념일을 축하하는 축제가 있다. 온두라스의 수호 성인인 비르헨 데 수야파(Virgen de Suyapa)의 축제는 테구시갈파에서 남동쪽으로 7km 떨어진 수야파에서 2월 처음 둘째 주 동안 치러진다. 이 때의 종교 의례와 축제는 중미 전체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온다. 라 세이바(La Ceiba)의 축제는 5월 셋째 주에 행진과 화려한 의상, 거리의 음악과 함께 치러진다. 다른 유명한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는 코판 루이나스(Copan Ruinas, 3월 15일에서 20일), 텔라(Tela, 6월 13일), 트루힐로(6월 24일), 산 페드로 술라(San Pedro Sula, 6월 마지막 주), 다늘리(Danli, 8월 마지막 주말) 등이 있다. 중미의 국제적인 공예품과 여행 산업 축제인 페리아 센트로 아메리카나 데 투리스모 이 아르테사니아(Feria Centroamericana de Tourismo y Artesania)는 매년 12월 6일에서 16일 사이에 테구시갈파에서 열린다. 다른 문화 행사가 12월 15일에서 21일까지 코판 루이나스에서도 열린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대부분의 서유럽국가,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미국 국민은 비자 없이 30일간 체재가 가능하다. 비자 연장은 90일까지 할 수 있다.
    보건 위생: 콜레라, 간염, HIV/AIDS, 말라리아
    시간: 한국보다 15시간 늦다.
    전압: 110V, 220V
    도량형: 미터법 (도량형 환산표 참조)
  • 경비 및 환전
  • 통화: 렘피라
    일반경비
    저렴한 숙소: US$7-10
    중급 호텔: US$10-25
    고급 호텔: US$25 이상
    저렴한 식사: US$2-5
    중급 식당: US$5-10
    고급 식당: US$10 이상
  • 여행 시기
  • 5월에서 6월은 5월 셋째 주 내내 이어지는 라 세이바의 축제 같이 여러 마을의 축제나 행사를 보기에 좋은 시기이다. 연안의 저지대는 1년 내내 따뜻하지만 내륙 산악지역은 특히 5월과 10월 사이에 시원하고 비가 많이 온다. 카리브해 연안에는 사실 거의 항상 비가 오며 북부 연안에서는 때때로 홍수도 발생해서 여행을 방해한다.
    주의 사항 허리케인 미치는 온두라스를 거의 황폐화시켰고 미국무성은 여행자들이 현지 정부에 교통 상황이나 시설 이용 등에 대해 확인할 것을 권하고 있다. 많은 도로와 마을, 촌락 등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여러 지역에서 적절한 음식, 물, 의료 서비스 등이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 보건 당국은 콜레라 전염의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 주요 여행지
  • 테구시갈파(Tegucigalpa)
  • 온두라스의 수도이며 바쁘고 시끄러운 이 도시는 해발 1000m 가까이 되는 높이의 그릇 모양의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상쾌하고 기분 좋은 기후에 주의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산들은 소나무들로 덮여있다. 테구시갈파라는 이름은 '은의 언덕'이라는 현지의 사투리로 1578년 스페인인들이 이곳을 광산으로 개발한데서 유래되었다. 다행히 현지인들은 이 도시 이름을 테구스로 줄여 부르므로 외국인들은 전체 이름을 잘못 발음할 염려를 줄일 수 있다. 테구시갈파는 1880년 수도가 되었으며 1938년 근처의 개척지인 코마야구엘라(Comayaguela)가 이 시에 병합되었다. 이 시의 중심은 돔을 갖춘 18세기 성당으로 바로크 풍의 내부는 예술품으로 가득하다. 성당 앞의 파르케 센트랄(Parque Central)은 이 도시의 축과 같은 곳이다. 재미있는 건축물로는 오래된 대학이며 현재는 미술관으로 쓰이는 안티구오 파라닌포(Antiguo Paraninfo) 대학과 과장되게 지어진 현대 건물인 팔라시오 레지슬라티보(Palacio Legislativo), 카사 프레시덴시알(Casa Presidensial), 테구시갈파에서 최초로 세워진 성당인 16세기의 산프란시스코 성당 등이 있다. 이 도시는 촐루테카 강에 의해 나뉘어진다. 동쪽은 시 중심과 좀더 풍족한 테구시갈파이며 강을 건너면 가난하고 누추한 시장 지역에 많은 장거리 버스 정류장과 싸구려 모텔이 있는 코마야구엘라가 나온다. 테구시갈파에서 묶는 편이 깨끗하고 안전하며 편안하지만 가격은 코마야구엘라가 싸다. 코마야구엘라에서 묶는 경우에 밤에 시장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테구시갈파에서 검소한 숙소들이 몰려있는 주요 지역은 파르케 센트랄에서 몇 블록 동쪽에 있으며 코마야구엘라에서 가장 싼 호텔들은 8a와 9a 거리 사이의 엘 레이(El Rey)와 아우로라(Aurora)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다. 대부분의 좋은 식당들은 테구시갈파쪽에 있지만 코마야구엘라에는 싼 중국 음식점들이 많이 있다. 테구시갈파에는 모라산(Marazan)대로와 후안 파블로 II(Juan Pablo II) 거리가 주요 유흥 지역이다.
  • 테구시갈파 근교
  • 테구시갈파 근교에도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7km 떨어진 거대한 고딕 건물인 바실리카 데 수야파(Basilica de Suyapa)같이 많은 볼거리가 있다. 온두라스의 수호 성인인 비르헨 데 수야파는 수많은 이적을 행했다고 믿어지고 있다. 산타 루시아는 시에서 동쪽으로 13km 떨어진 아름답고 오래된 스페인 풍 마을로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 발레 데 앙헬레스(Valle de Angeles)는 산타루시아에서 11km를 지난 곳에 있는 스페인풍의 오래된 탄광촌으로 16세기의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있다. 라 티그라(La Tigra) 국립 공원은 시 북동쪽에 있으며 온두라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곳이다. 2270m 높이에 있으며 7482헥타르에 달하는 넓이의 원시적인 이 공원은 푸른 산림 안에 표범, 푸마, 원숭이, 케찰 등이 살고 있다.
  • 코마야과(Comayagua)
  • 코마야과는 1537년에서 1880년까지 온두라스의 수도였으며 아직도 식민지 시대 당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많은 모습이 남아있다. 이 도시의 중심에 있는 성당은 그 중에서도 단연 걸작이다. 1685년에서 1715년 사이에 지어진 이 성당은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 중 하나를 자랑한다. 이 시계는 무어인이 세빌리아의 알함브라 궁전을 위해 800년 전에 만들었고 스페인의 필립 2세에 의해 이 마을에 바쳐졌다. 중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은 1632년 코마야과의 카사 쿠랄(Casa Cural)에 설립되었고 현재는 식민지 박물관이 되어있다. 박물관에는 4세기에 걸친 식민지 시대의 종교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코마야과의 최초 교회는 라 메르세드(La Merced)로 1550년에서 1558년 사이에 지어졌고 다른 멋진 교회로는 산프란시스코(1584)와 라 카리다드(1730) 등이 있다.
  • 코판 루이나스(Copan Ruinas)
  • 빨간 타일을 얹은 지붕이 있는 하얀 어도비 벽돌집 사이로 자갈길이 뻗어있는 이 아름다운 마을은 같은 이름의 유명한 마야 유적에서 1km 떨어져 있다. 마을은 예쁜 식민지 시대 성당과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고고학적 유적은 매일 개방되며 그 중에는 대광장의 석비나 613년 당시의 코판 지도자의 초상, 경기장, 상형문자의 층계, 코판의 열여섯 왕이 조각된 멋진 부조가 있는 아크로폴리스 등이 있다. 마을에서 한시간 차로 떨어진 곳에는 온천이 있으며 가까운 곳에 그림 같은 산지 마을인 산타 리타 데 코판(Santa Rita de Copan)이 있는데 이 곳에는 아름다운 광장과 평화로운 식민지 시대의 성당이 있다.
  • 텔라(Tela)
  • 텔라는 많은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온두라스의 카리브해 해변 마을이다. 이 마을은 작고 조용한 곳으로 맛있는 해산물과 여러 좋은 숙소들 그리고 북부 연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들 중 몇 곳이 모여있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느긋하게 쉬면서 단순한 생활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2,500만 US$를 들인 텔라 만 개발 계획은 이 지역의 여행 산업 붐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아직 망가지지 않고 조용할 때에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장 좋은 해변은 마을 동쪽에 호텔 빌라스 텔라마르(Villas Telamar) 앞에 있다. 이곳에는 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와 그늘진 코코넛 나무의 과수원이 있다.
  • 트루힐로(Trujillo)
  • 작은 트루힐로 마을은 온두라스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트루힐로 만의 커다란 원호 안에 자리잡은 이곳은 아름다운 해변과 코코넛 야자수, 그리고 온화한 바다로도 유명하다. 온두라스의 가장 훌륭한 카리브해 해변 마을로서 명성을 얻고 있지만 6월 말에 매년 열리는 축제를 제외하고는 보통 관광객들이 북적거리지 않는다. 매력적인 해변을 제외하고도 이 마을에는 17세기의 성채와 윌리암 워커의 무덤,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마을 서쪽에는 가리푸나(Garifuna)사람들이 사는 바리오 크리스탈레스(Barrio Cristales)가 있는데 이곳은 음악과 춤 그리고 환락의 장소이기도 하다.
  • 베이 아일런즈(Bay Islands)
  • 세곳의 베이 아일런즈 - 로아탄(Roatan), 과나하(Guanaja), 우틸라(Utila) -는 온두라스 북부 연안 앞 50km에 있으며 벨리스 암초의 연속으로 멋진 스노크링과 다이빙 장소를 제공한다. 이 섬들의 경제는 주로 어업에 의존하고 있지만 여행산업이 계속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우틸라는 아직도 관광 설비가 미비한 채로 남아있지만 로아탄과 과나하는 점점 개발되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로아탄의 서쪽 끝으로 몰려가지만 세 섬들 중 가장 싸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은 우틸라이다. 파리가 엄청나게 많으며 우기에는 더욱 심해지므로 어떤 섬으로 가든 방충약을 충분히 가져가도록 하자. 이 섬들은 마야의 점령을 비롯한 흥미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콜롬부스는 1502년 과나하에 상륙했지만 스페인인들은 나중에 이 섬 주민을 노예화하여 쿠바의 농장과 멕시코의 금, 은 광산으로 보냈다. 이 때문에 1528년에 이르러 이 섬들은 완전히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변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 네델란드 해적들이 이 섬을 차지하였고 그 이후에는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에서 폭동이 일어난 후에 영국에 의해 가리푸나인들이 이곳으로 보내졌다. 여러 면에서 이 섬들은 아직도 온두라스 본토보다는 영국이나 미국에 가까워 보이며 주요 언어로도 카리브 스타일의 영어가 많이 쓰인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모스키티아(Mosquitia)
  • 북동부 온두라스에 있는 이 광대하고 접근하기 힘든 지역은 소수의 미스키토, 파야(Paya), 수모(Sumo)인디언 부족이 살고 있다. 여행자들은 원시적 야생 환경과 해우, 원숭이, 악어, 그리고 여러 조류 등 풍부한 야생 동, 식물에 끌려 이곳으로 온다. 기본 설비는 전무하므로 힘든 생활을 각오해야 하고 식량을 가져가 현지 주민들과 같이 먹어야 한다. 볼거리 중에는 장엄한 쁠라타노(Platano) 자연 보호구역과 여러 강들이나 석호들로 가는 보트 투어를 들 수 있다.
  • 호그(Hog) 제도
  • 카요스 코치노스(Cayos Cochinos) 또는 호그 제도는 개인 소유의 여러 작은 섬들과 암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 세이바 근처 연안에서 17km 떨어져 있다. 한때 이 섬들은 마야인들이 살았지만 이 섬들의 이름은 이곳을 경작하려 시도했던 코르테스(Cortes)에 의해 지어졌다. 섬들 주위에는 좋은 스노크링과 다이빙 장소들이 있으며 몇몇은 검은 산호초를 볼 수 있다. 섬들로 가는 배는 라 세이바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누에바 아르메니아(Nueva Armenia)에서 빌릴 수 있다. 섬들 중 한곳에는 고급 휴양시설을 갖춘 곳이 있지만 섬 주인에게 허가를 얻으면 작은 섬에다가 캠프를칠 수도 있다.
  • 마리노 뿐따 살(Marino Punta Sal) 국립 공원
  • 이 절묘한 해상 공원 안에는 망그로브 숲이나 늪지, 작은 열대 우림, 연안의 암초, 바위들을 볼 수 있다. 텔라 서쪽에 있는 이 지역은 완전히 미개발된 상태이므로 여행자들은 스스로의 음식과 텐트, 또는 해먹을 가져가야 한다. 공원으로 가는 것조차도 모험 그 자체로 버스, 트럭, 배, 도보 등을 해가며 이틀동안 가야한다. 텔라만 개발 계획 때문에 가는 일이 쉬워지고는 있지만 이 계획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고려되고 있지 않다. 할 수 있을 때 이 섬을 보도록 하자.
  • 엘 티그레(El Tigre)
  • 폰세카(Fonseca)만에 있는 783m 높이의 이 화산섬은 조용한 어촌 마을인 아마팔라(Amapala)가 있으며 두세 곳의 말쑥한 해변, 그리고 몇몇 좋은 산책로를 가지고 있다. 조용함 이외에도 다른 장점으로 훌륭한 전망과 맛있는 해산물을 들 수 있다. 조그만 배나 여객선으로 코욜리토 (Coyolito)에서 이 섬으로 갈 수 있다.
  • 레저스포츠
  • 여러 만들과 호그 아일런즈 근처 그리고 텔라와 트루힐로의 아름다운 해변에서는 스노크링이나 다이빙, 수영 등에 좋은 장소가 많다. 도보 여행을 위해서는 산타 로사 데 코판(Santa Rosa de Copan)의 남동쪽 45km에 있는 셀라께(Celaque) 국립 공원이 좋다. 이 안에는 온두라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와 무성한 숲, 10개의 강이 시작되는 상류, 장대한 폭포 등이 있다. 또 수직으로 깎아지른 듯한 계곡은 전문적인 등반가를 위한 좋은 장소이다. 피코 보니또(Pico Bonito) 국립 공원은 라 세이바에서 남쪽으로 몇 킬로 떨어져 있으며 500 sq km의 탐험되지 않은 보호구역 가장자리에는 산길이 여러 곳 나있고 등반가를 위한 도전할 만한 정상도 있다.
  • 과테말라로 가는길
  • 테구시갈파와 산 페드로 술라(San Pedro Sula)에서는 다른 중미 국가의 수도와 북미의 여러 도시를 연결하는 직항편이 자주 있다. 출국세는 국제선의 경우 대략 US$16이다. 온두라스의 국경을 통과하는 것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에서 6시까지 가능하다. 통과료를 부과하며 약간의 비공식적인 수수료를 출입국시에 요구하기도 하는데 적은 금액이므로 너무 많이 요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냥 줘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과테말라로 가는 주요 국경 통과소는 아구아 칼리엔테(Agua Caliente)와 엘 플로리도(El Florido)에 있고 엘살바도르는 엘 마마티이요(El Amatillo), 엘 포이(El Poy), 니카라과는 엘 에스피노(El Espino), 과사울레(Guasaule), 라스 마노스(Las Manos) 등이 있다. 모든 국경 검문소까지 연결하는 버스가 자주 있지만 대부분의 버스는 국경을 통과하지 않으므로 다른 편 국경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야한다. 정글 트레일은 온두라스의 푸에르토 코르테스(Puerto Cortes)에서 과테말라의 푸에르토 바리오스(Puerto Barrios)까지 이어진 길이다. 이 여행은 이틀 걸리며 적절한 준비 없이 함부로 시도해서는 안 된다.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이 길을 잃거나 강도를 만났을 때 적절히 이곳 사정에 대응할 수 있는 예방책이 될 것이다. 온두라스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은 없지만 가끔 어선이나 화물선에 돈을 지불하고 배로 여행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이럴 때는 선장과 직접 흥정을 한다. 카리브해 연안에서는 푸에르토 코르테스, 라 세이바, 푸에르토 카스티이야(Puerto Castilla), 텔라, 또는 베이 아일런즈에서 배를 찾을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배의 목적지는 푸에르토 바리오스(과테말라), 벨리세, 푸에르토 카베사스(Puerto Cabezas, 니카라과), 카리브해 섬들과 미국의 뉴올리언즈나 마이애미 등이다. 태평양 연안에서는 산로렌소(San Lorenzo)에서 니카라과나 엘살바도르까지 가는 배를 찾을 수 있다.
  • 국내 교통편
  • 국내선은 테구시갈파, 산 페드로 술라, 라 세이바와 로아탄 사이를 오가는 비행기와 라 세이바, 베이 아일런즈와 모스키티아 지역의 마을들을 오가는 비행기가 있다. 주요 도시들 사이를 오가는 버스는 자주 있으며 동일 틀 무렵 보통 첫차가 출발해서 오후 늦게 막차가 뜬다. 유일하게 열차 여객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은 산페드로, 푸에르토 코르테스와 텔라 간의 북쪽뿐이다. 기차는 매우 느리고 원시적이며 싸다. 서비스가 오랫동안 중단되었으므로 이용하려고 계획을 세우기 전에 실제로 운행되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배는 베이 아일런즈와 특히 모스키티아를 비롯한 카리브해 연안을 따라 길이 하나밖에 없는 여러 곳 사이를 운항한다. 대부분의 마을에는 택시가 많이 있지만 미터기를 단 것은 없으므로 타기 전에 흥정을 해야 한다. 렌터카는 커다란 마을에서 빌리 수 있으며 주요 도로는 주행에도 좋게 정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그리 싼 방법이 아니며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비포장 도로에 건기에는 먼지투성이고 우기에는 상당히 미끄럽다. 히치 하이킹은 일반적으로 시골에서 쉽게 할 수 있어서 가끔 트럭이 승객을 태우기 위해 서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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