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아(Georgia)
온도와 지형적으로 동서양이 만나는 곳인 유럽, 중앙 아시아, 중동의 길목에 위치한 그루지아는 오랫동안 문화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충돌 지역이었다. 역사는 강대국의 흥망성쇠에 따라 침략, 학살, 전쟁이 일어났지만 그루지아는 자연, 문화, 음식의 아름다움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루지아는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했고 개방정책은 안정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하고 있다. 그루지아는 새로이 독립한 국가로 생활조건이 향상되고 있지만 정부의 소망처럼 서양의 수준에는 못 미치고 있다. 여행 시설은 수도인 티빌리시(Tbilisi)를 제외하면 발전이 미비하고 선진국처럼 양질의 서비스를 기대하긴 어렵다. 북부지역은 분리주의자의 통제하에 있고 테러리스트의 활동과 대량의 지뢰로 인해 여행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그루지아의 오래되고 다양한 영향을 받은 문화,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사람들, 미각을 돋구는 음식은 그루지아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다.
  • 통계 자료
  • 국명 : 그루지아
    면적 : 69,700 sq km
    인구 : 5.2 million
    수도 : 티빌리시(Tbilisi)
    인종 : 70% 그루지아인, 8% 아르메니아인, 6% 러시아인, 6% 아제리
    언어 : 71% 그루지아어, 9% 러시아어, 7% 아르메니아어, 6% 압카즈
    종교 : 60% 그루지아 정교, 10% 러시아 정교, 11% 이슬람
    정체 : 대통령제 공화국
  • 지리 및 기후
  • 그루지아는 중앙과 동부의 코카서스 지형을 차지하고 있다. 주변국가는 북부에 러시아, 동부에 아제르바이잔, 남부에 아르메니아, 남동부에 터키가 위치한다. 산악지역으로 대 코카서스 산맥이 북쪽 국경으로 이어지고 소 코카서스 산맥은 남부 국경이고 두 산맥의 중앙으로 330km의 평지가 흑해로 연결된다.작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동서양 기온의 조화로 인해 다양한 식물이 서식한다. 산맥은 기온의 변화를 막아 그루지아는 지리적으로 환경적으로 상태학 시스템이 격리되어 특유한 다양성이 분포한다. 산림지역은 2.7백만 헥타의 크기로 국토의 38%를 차지하며 100여종의 동물, 330여종의 조류, 48종의 파충류, 11종의 양서동물, 160여종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기온은 지역에 따라 습한 아열대기후부터 빙하지형까지 다양하다. 아열대기후는 서부지역에 분포하며 동부보다 적은 비가 내린다. 티빌리시(티빌리는 현지어로 따듯하다는 의미임.)의 평균 겨울 기온은 1월에 1도이며, 여름에는 25도로 쾌적한 온도다.
  • 역사
  • 흑해와 카스피아해의 지협인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에 위치해 오랫동안 각 방향에서 온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인종분포를 보이는 곳이다. 그루지아는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와 함께 코카서스 지역 국가에 속해 있으며 신생국가이다. 3개국이 처음으로 통일된 것은 10-13세기였으나 해체됐다가 18세기에 들어 재편성 되었다. 그루지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로 서 그루지아가 처음으로 침략 받은 것은 기원전 8세기 그리스로부터 였다. 터키의 아나톨리아 족은 1세기 후 동부지역으로 옮겨와 르베리아 왕국을 건설했다. 기원전 550년에서 300년 사이에는 페르시아 아케메니아, 마케도니아, 셀루시드의 침략을 받다가 189년에 로마제국이 셀루시드를 물리치고 독립 아르메니아를 건설했다. 백 년 후 동부의 로마제국은 카스피아해에서 중부 터키까지를 차지해 현재 그루지아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400년경에는 서 아르메니아와 서 그루지아가 비잔틴 제국에 의해 지배를 받았고 르베리아의 동부는 7세기 중반 무슬림 아랍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페르시아가 점령하고 있었다. 아랍과 비잔틴의 다툼은 1060년 아르메니아를 점령한 셀죽 투르크에 의해 끝나고 투르크의 지배를 받는다. 다수의 우수한 그루지아 기독교인들이 피난을 갔는데 이 당시는 그루지아가 르베리아란 이름으로 결합해 있던 시기다. 1122년 아랍제국에 의해 티빌리시가 회복되던 시기는 그루지아의 황금시기로 아제르바이잔의 서부와 터키의 동부까지 영토가 확장돼 있었다. 안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그 후 800년간 몽고, 페르시아 사파비드, 오스만 투르크가 이 지역을 관할했다. 러시아는 캐서린 대왕의 군대를 이끌고 터키가 점령하던 그루지아 서부지역으로 이동해 왔고 1870년에는 터키로부터 그루지아의 완전한 통치권을 빼았았다. 그루지아의 사회주의 국가주의자 운동은 제 1 그룹, 제 2 그룹, 제 3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고 가장 진보적인 제 3 그룹은 로시프 드주그쉬비리(Losif Dzhugshvili)가 속해 있었는데 그는 나중에 이름을 철의 남자로 바꾼 스탈린이다. 트랜스코카서스는 1918년 모스크바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바로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으로 분리됐고 그루지아는 1920년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점령돼 주변국가들과 함께 트랜스코카서스 소련 연방(Transcaucas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TSFSR)으로 소련의 일부로 편입된다. 스탈린은 그루지아에 국가주의자 십 만 명을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1936년 트랜스코카서스 소련 연방이 해제돼 그루지아는 그루지아의국명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소련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철의 장막이 걷히면서 1990년 여러 당이 참여한 선거가 실시됐고 압카지아(Abkhazia)와 남 오세티아(South Ossetia) 지역에선 독립 다툼이 일어났고 1992-92년의 내전 기간은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기도 했다. 소련의 독재자 세바르드나제(Schevardnadze)가 1997년 정부를 안정시킨 그루지아는 경제 회복 중에 있다.
  • 경제
  • 국내 총생산 GDP: US$ 127 억
    1인당 국민 총생산GNP : US$ 2,355
    경제 성장률: 11%
    인플레이션: 13.3%
    주요 산업: 중공업(철강, 항공, 기계 공구, 기관차, 크레인, 차, 트럭), 원단, 나무 제품, 와인
    주요 교역 상대국: 러시아,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불가리아
  • 문화
  • 그루지아는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로에 위치해 천 년이 넘는 동안 다양한 문화가 발전해왔다. 고대 전통에 따르면 신이 인간에게 땅을 줄 때 그루지안인은 먹고 마시는데 너무 바빠 늦게 도착했다. 신은 그루지아인에게 너희에게 줄 땅이 남아 있지 않다고 했고, 그루지아인은 신에게 우리가 신의 건강을 증진시킨다며 신을 초대했다. 신은 그루지아인의 환상적인 음식에 감탄해 신이 자신을 위해 갖고 있던 모든 땅을 그루지아인에게 줬다고 한다. 현지인에게는 문화 행사의 진수인 그루지아의 음식은 관광객에게 가장 큰 매력이다. 가족의 식탁은 그루지아인에게 일반적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아주 특별한 것이다. 복잡한 의식이 진행되는데 식탁은 식사 기간 동안 전통적인 축배를 제안하는 타마다(tamada)에 의해 이끌린다. 이방인은 모든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까지 기다려야 되며 맥주를 마실 때 축배를 제의하는 건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소련의 지배기간 동안 그루지아 식당은 소련 전역으로 퍼져 지금도 러시아와 구 소련의 독립국가들의 미식가들은 그루지아 식당을 찾는다. 그루지아의 각 지역은 독특한 음식을 갖고 있는데 매운 향료에서 맛을 내지만 허브와 마늘이 더 많이 쓰인다. 관광객은 음식을 사는데 어려움을 겪는데 그 이유는 현지인들이 음식을 잘 팔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그루지아 음식과 전통 유럽 음식을 팔고 있으며 킨칼리(khinkali), 카밥(kabab), 바비큐, 카차푸리(khachapuri) 같은 전통 음식도 패스트 푸드점에서 먹을 수 있다. 미국식 패스트 푸드 점은 핫도그와 햄버거 같은 평범한 음식을 판매한다. 아침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카치(khachi, 위, 소 발굽을 마늘과 함께 끓인 스프)를 한 번 먹어 보라. 콜라와 환타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루지아의 광천수와 과일 주스는 유명하며 특별 상점에서만 판매한다. 그루지아의 와인은 세계적인 품질을 자랑하는데 독특한 기온과 토양으로 인해 수 천년 동안 와인의 주요 생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국가는 카릴 문자를 사용하지만 그루지아는 독특한 33개의 알파벳(모음 5개, 자음 28개)을 사용하는데 너무 독특해 다른 어떤 문자도 흉내 낼 수가 없다.
  • 축제 및 행사
  • 그루지아는 각 도시의 탄생 기념과 관련해 축제를 여는데 티빌리시의 축제가 가장 크게 열린다. 티빌리시의 축제인 티빌리소바(Tbilisoba)는 매년 10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수확과 와인 생산이 시작되는 가을에 열린다. 그루지아인의 결혼식도 대부분 가을에 열린다. 전통 음악과 무용 콘서트도 축제 기간 동안 야외에서 실시된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폴란드, 불가리아, CIS 국가는 무 비자로 입국이 가능하고 나머지 국가는 1개월 유효한 비자를 그루지아 대사관에서 발급 받아야 한다. 공항에서도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지만 추천할 만한 사항이 아니다.
    보건위생: 그루지아에는 의료기구가 부족하다. 의사에게 직접 받은 주사기를 휴대하는 게 좋고 건강한 상태로 출국 하는게 바람직하고 광견병 예방접종도 필요하다. 그루지아의 병원서는 진료 후 바로 현찰 지불을 요구한다.
    시차: GMT + 4시간
    전압: 220V, 50Hz
    도량형: 미터법(도량형 환산표 참조)
  • 경비 및 환전
  • 통화: 라리(lari)
    일반경비
    저렴한 숙소: US$3-20
    중급 호텔: US$20-40
    고급 호텔: US$40-80
    저렴한 현지식사: US$2-5
    중간 가격대의 레스토랑 식사: US$5-8
    최고급 레스토랑의 식사:US$10-25

    싼 교통편과 식사, 저렴한 숙소로 그루지아를 여행하는데 하루 US$25면 가능하다. 돈을 조금만 더 쓴다면 훨씬 좋은 음식과 숙소를 즐길 수 있다. 시장, 레스토랑, 호텔과 기타 서비스에 대해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며 불과 소수의 고급 호텔과 은행이 신용카드와 수표를 받는다. 여행할 때는 미국 달러를 현금으로 소지하는게 현명한데 현지인들은 외국 여행자들이 현금을 휴대하고 다니는 걸 알기 때문에 항상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독일 마르크와 러시아의 루블도 통용이 된다. 외화는 대도시의 특별 환전소에서 환전이 가능하고 미화, 마르크, 루블이 아닌 다른 화폐는 은행에서만 환전이 가능하다. 팁은 일반적으로 안 줘도 되지만 훌륭한 서비스에 대해서는 팁을 주는 게 예의다.

  • 여행 시기
  • 그루지아는 여행의 성수기와 비수기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름에 여행하는 것이 여행의 제한을 덜 받게 되며 축제를 즐기려면 독립 기념일인 5월 후반이나 티빌리시 축제가 열리는 10월이 적합하다.
  • 주요 여행지
  • 티빌리시(Tbilisi)
  • 저층의 붉은 지붕이 있는 난잡하게 생긴 티빌리시는 인구 백 5천만명으로 경제와 문화의 중심 도시다. 티빌리시는 5세기에 세워진 시오니 성당(Sioni Cathedaral), 나리카라 요새(Narikhala fortress) 같은 역사적 유적지와 화려한 건축물로 유명하다. 파리아쉬빌리 오페라 하우스(Paliashvili Opera House)를 포함한 세 개의 유명한 극장은 루스타벨리 에비뉴(Rustaveli Avenue)에 있다.
  • 바투미(Batumi)
  • 바투미는 흑해에서 이국적으로 생긴 아열대기후 도시로 야자수, 사이프러스, 목련, 협죽도, 레몬과 오렌지 나무가 만발하고 향기로운 도시로 국경과 인접해있다. 바투미는 공업도시며 오래된 무역항이다. 다양한 문화시설과 돌고래 수족관은 시민들의 자랑거리고 식물원은 놓치기 아까운 곳이다. 그루지아의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로 터키에서 육로로 입국하기 좋은 곳인데 국경 경호원들이 불친절하고 세관 통과 시 뇌물을 요구하기도 한다. 티빌리시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걸린다.
  • 카케티(Kakheti)
  • 카헤티아(Kahetia)로도 알려진 카케티는 텔라비(Telavi)에 둘러 쌓인 비옥한 지역으로 그루지아의 주요 포도 재배지다. 와인 생산은 800년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포도 농장은 카케티안 고속도로를 따라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다. 그루지아의 학자는 최근 와인에 대해 "경제, 일상 생활, 그루지아인의 특성과 비전을 자극하는 삶의 원리"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카케티의 와인은 12개 이상의 다양한 포도에서 생산되며 지하저장실에 직접 시음을 할 수도 있다. 티빌리시에서 버스나 기차로 쉽게 이동이 가능하며 50km 떨어져 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트스킨발리(Tskhinvali)
  • 그루지아의 다른 도시에 비해 모험적인 여행지지만 티빌리시에서 버스로 이동이 어렵지 않다. 독립을 원하는 남 오세티아 지역의 수도로 지난 10년간 폭력이 돌발적으로 발생했었다. 현재는 안정을 찾았고 티빌리시에서 150km 북서쪽에 있다.
  • 바르드지아(Vardzia)
  • 아칼티시케(Akhaltsikhe)와 인접한 동굴 수도원이 있던 도시로 케르트비시(Kertvisi)에서 버스나 택시가 바르드지아로 매일 운행된다. 역사적 장소를 제외하면 작고 싼 호텔, 식당뿐이며 동굴 입장료는 3달러다. 티빌리시에서 150km 거리다.
  • 레저스포츠
  •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가 준비되어 있지 않지만 그루지아의 남부와 북부의 산은 도보여행에 적합하다. 여름 기간 동안 4일이 소요되는 카즈베리-케브수레티(Kazbegi-Khevsureti) 코스를 도전해 볼 만 하며 코스를 따라 마을들이 있기는 하지만 가이드를 동반하길 강력히 권한다. 밤에는 추우므로 두꺼운 옷을 준비해야 한다. 소련의 건강 스파에 대한 평판 때문에 그루지아의 해변은 세계적인 수준일 것이라고 상상할 것이다. 불행히도 최고의 해변은 남서부인 압카지아(Abkhazia)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지뢰가 묻혀있고 위험한 지역이다. 흑해의 남부 해안에는 자갈 해변 리조트가 있어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와인 시음은 점점 인기를 얻고 있는데 특히 와인 제조장이 몰려 있는 그루지아 동부지역이 인기가 높다.
  • 그루지아로 가는 길
  • 티빌리시 공항의 잦은 정전으로 인해 공항의 유도장치가 일시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유시계 비행을 규칙으로 정하고 있다. 시계는 항상 양호해 대형 항공사고는 발생한 적은 없지만 미국 대사관은 직원에게 공식적인 업무 시 그루지아 항공을 이용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영국항공이 정기적으로 티빌리시 공항으로 취항한다. 코카시아 산맥을 경유해 압카지안 해안을 따라 러시아로 연결된 고속도로로는 입국이 불가능하며 다리알이(Daliali) 협곡을 경유하는 밀리터리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의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육로 국경으로 입국이 가능하다. 육로 국경 통과 시 뇌물을 요구하는데 여행자 수표밖에 없다고 하면 뇌물을 안내고 입국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흑해에 위치한 3대항인 바투미, 포티, 수쿠미 중에 바투미와 포티는 오데사, 소치, 트라브존, 이스탄불로 화물선이 출발하는데 화물선 무임 승선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지만 대가를 지불하면 승선도 가능하다. 배를 타고 그루지아로 입국한다면 제노아(genoa)와 피리우스(Pireaus)에서 출발해야 하고 반대로 그루지아에서 제노아나 피리우스로 가는 계획도 세워 볼 만 하다.
  • 국내 교통편
  • 티빌리시와 쿠타이시(Kutaisi), 바투미, 세나키(Senaki)간의 국내 항공 노선이 운항되며 산과 인접한 도시라면 헬리콥터를 탈 수도 있으나 요금이 비싸다. 티빌리시를 제외하면 도로 사정이 열악하고 노견이나 중앙선의 표시가 없어 밤에 운전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강도를 만나 차를 도난 당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차는 하루 US$20로 렌트 할 수 있고 기름 값은 별도다. 트랜스코카서스 철로(The Transcaucasian Railway)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와 아르메니아의 예레반을 연결하고 흑해 해안을 따라 러시아까지 뻗어있다. 현재는 압카지아의 분쟁으로 인해 철로가 끊어져 있어 북부와 서부로 기차 여행은 매우 어렵다. 버스는 티빌리시에서 주요 도시로 정기적으로 운영되며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러시아와 터키로 버스가 운행된다. 대중교통 요금은 적당한 가격이며 수도에는 지하철, 버스, 케이블 카, 트램이 운행된다. 지하철에서는 도둑에 주의해야 한다. 택시는 주로 개인 차량이 이용되지만 지정된 지역에는 등록된 택시가 운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