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France)
장미 빛 인생과 까망 베르치즈, 보브와르와 드뷔시 그리고 에펠탑 등 몇 개만 대도 세계의 주목을 받는 프랑스이므로,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나라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을 드러낸다 해서 누가 거기에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비록 리바이스와 빅맥 햄버거집이 여기저기 눈에 띄어 문화순수주의를 비난하고 싶을지라도, 프로방스에서 1년을 지내던가 파리에서 1주일만 있어 보면 왜 대부분 외국여행자들이 시라노(Cyrano)거리들을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마네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잔디밭에서 피크닉 하기를 꿈꾸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쨌든 오랫동안 '낭만'의 상징인 되어 온 프랑스이므로, 파리에 있던지 피레네나 꼬뜨다쥐르를 여행하던지 혹은 유스호스텔에 있던지, 지나친 환상은 자제하고 기대치에 맞게, 삶의 기쁨을 찾아 여행하는 것을 염두에 두도록
  • 통계 자료
  • 국명 : 프랑스 공화국
    면적 : 551,000 sq km (214,890 sq mi)
    인구 : 5,830만 명
    수도 : 파리(Paris-인구 1,300만 명)
    인종 : 92% 프랑스인, 3% 북아프리카인, 2% 독일인, 1% 브르타뉴인, 2% 기타(프로방스, 카탈로니아, 바스크인 등)
    언어 : 프랑스어 (플라망어, 알사스어, 브르타뉴어, 바스크어, 카탈로니아어, 프로망스어, 코르시카어 등)
    종교 : 90% 로마카톨릭교, 2% 신교, 1% 이슬람교, 1% 유대교, 6% 사교
    정체 : 민주주의
  • 지리 및 기후
  • 캘리포니아보다 약간 더 넓은 프랑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유럽에서 넓은 나라이다. 영국해협이 북서쪽으로, 대서양은 서쪽으로 접해있으며, 남쪽으로는 피레네산맥을 건너 스페인이 있고, 코르시카를 포함한 지중해가 남동쪽으로, 동부알프스와 쥬라산맥이 스위스와 이탈리아에 뻗어있다.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평평한 프랑스의 북동쪽 국경은 독일과 룩셈부르크, 벨기에와 접하고 있다 .1790년 프랑스는 약 6100sq km마다 데빠르뜨망(department)이라는 행정단위를 나누어 현재 96개의 데빠르뜨망이 있고 이 외 5개의 해외프랑스령이 있다. 해외 데빠르뜨망으로는, 카리브해의 과들루쁘(Guadeloupe)와 마르띠니끄(Martinique), 태평양 섬인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 타히티(Tahiti) 그리고 프렌치 폴리네시아(French Polynesia), 남미의 프렌치 기아나(French Guiana), 마다가스카르 동부 인도양에 있는 레위니옹(Reunion) 그리고 뉴펀들랜드(Newfoundland)남부 대서양에 있는 쌩 피에르(Saint Pierre)와 미클롱(Miquelon) 등이다. 프랑스 알프스지역인 4800m의 몽블랑은 유럽에서 최고봉이다. 프랑스 고대산맥 중 가장 장엄한 것은 마씨프 쌍트랄(Massif Central)로, 국토의 6분의 1을 차지할 정도의 방대한 프랑스 중부지역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으로는, 르와르강(Loire)으로 마씨프 쌍트랄에서 대서양까지 장장 1020km에 달한다. 이 외 수로역할을 하는 주요 강으로는, 쎄느강(Seine), 론강(Rhone), 갸론(Garonne)과 라인강(Rhine)이 있다. 3200km에 달하는 해안선이 노르망디의 백악절벽과 브르따뉴의 고지대에서부터 대서양을 따라 있는 해변가까지 뻗어 있다. 남동부 지중해연안은 자갈과 바위해변이 많으나, 랑그독(Languedoc)과 루시용(Roussillon)에 있는 해변에서는 낭만의 모래성도 쌓을 수 있다.여러 기후와 영토가 섞여 있어 프랑스에는 다양한 동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농사기술과 도시계획화, 오염 등으로 종의 균형이 깨져, 피레네 아이벡스 염소, 코르시카 사슴, 갈색 곰, 늑대, 수달 등은 현재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부 동물과 조류들- 샤무아 영양, 큰 아이벡스종, 비버, 황새, 독수리 종 - 은 국립공원의 소생프로그램에 힘입어 아직도 야생에서 살고 있다. 너도밤나무와 오크나무, 소나무가 빽빽한 숲은 국토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숲 지대는(방대한 습지대와 마찬가지로) 대다수 포유류와 조류의 생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프랑스는 온난기후가 주류를 이루며, 산악지대와 북동부를 제외하고는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날씨가 이어진다. 북서부는 대서양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습도가 높고, 때로 극심한 서풍이 불며 강수량도 많다. 북동부 지방은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를 보여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로 뚜렷한 계절차이를 보인다. 앞의 두 지역 중간에 있는 파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낮은 강수량을 보이며 그나마 비도 불규칙적으로 온다. 파리의 연평균기온은 12도 정도이나 1월에는 영하로 내려갈 때도 있으며 8월에는30도 이상을 넘을 때도 있다. 남부연안 평지대는 쾌적한 지중해 기후가 주류를 이루는데, 서리는 거의 내리지 않으며, 봄과 가을에는 짧지만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 반면 여름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남부는 북서풍 지역으로 1년에 100일 정도는 론(Rhone)계곡 저지대에서 불어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을 맞아야 한다. 특히 봄에는 혹독하고 가차없이 불어와 심할 경우 사람도 날려버린다.
  • 역사
  • *선사시대
    9만-4만년 전, 구석기시대 중반에 프랑스지역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BC 2만5천년 경 석기시대에 크로마뇽인들은 동굴벽화와 조각품들로 그들의 존재를 알렸다. 또한 프랑스에 신석기시대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BC4000-2500년으로 추정되는 거석과 고인돌이다. 청동기시대가 도래하면서, 구리와 주석의 수요로 BC2000년 즈음에는 프랑스와 그 외 유럽국가들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고대와 중세
    프랑스 원주민은 원래 리구리아인이었는데, 켈트족 고울인들이 기원전 1500년-500년에 이주해 와 그들을 정복하고 동화시켰다. 고울족은 로마시대에 북쪽으로 진출하려는 로마인들을 맞아 수 세기에 걸쳐 싸워왔으나 결국 줄리어스 씨저에 의해 정복당하고, 그 후는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로마문화를 흡수하고 2세기에는 기독교를 도입하게 되었다. 게르만인들이 로마영역 밖에서 침략을 일삼고 있을 때인 5세기까지도 프랑스는 로마통치하에 있었다. 게르만 중에서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진출한 것은 동게르만인이었는데 이들이 로마제국을 멸망시키면서 라틴족과 혼합된다. 게르만의 이동과 로마인들과의 융합, 통화과정 후 프랑크족이 유럽에서 대통합의 왕국을 건설했는데 그것이 바로 프랑크왕국이다. 프랑크족은 5세기 경 전 유럽을 통합하여 프랑크왕국을 세워 약 400년동안 로마교황과 손을 잡고 서유럽을 통치했다. 프랑크왕국의 주요구성원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게르만족,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고울족(현재 프랑스적인 요소에 영향을 끼친), 그리고 로마문화를 계승한 이탈리아지역의 라틴족이었는데, 이들은 각각 인종, 문화, 전통이 달라 갈등을 겪다 결국 동프랑크(현재 독일과 동유럽국 지역), 서프랑크(현재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로 3분된다.새로운 질서 속에서 안정을 되찾은 유럽은 다시 한번 격동에 휘말리는데, 8-9세기에 사라센이 동남쪽에서 침입하고 마쟈르인(아시아계로 현재 헝가리인)이 동쪽에서 침입하고 게르만의 일파인 노르만인이 침입한 것이다. 노르만족에게 시달리던 서프랑크왕국(프랑스)은 융화책으로 현재의 세느강주변 땅을 그들에게 주는데 바로 노르망디 지역이다. 이들은 프랑스에 동화되었으나 후일 노르망디공국을 세우게 된다. 987년 귀족들이 위 까페(Hugh Capet)를 왕으로 선출하면서 까페왕조가 들어서는데, 프랑스 역대왕조는 이 까페가에서 비롯되었으므로 현재 프랑스의 국가적 기원이라 할 수 있다.한편 노르망디를 지배하고 있던 윌리암은 1066년 영국을 점령하고 영국에 프랑스제도를 이식한다. 12세기 중엽 헨리2세가 영국과 노르망디를 모두 지배하게 되었고 나아가 현재 프랑스 영토의 3분의 1을 지배하게 된다. 그 후 이 프랑스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프랑스와 영국 300년동안 계속 갈등을 겪다가 결국, 어머니가 까페왕조의 혈통인 영국왕 에드워드 3세에 이르러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1337-1453)을 치루게 된다. 1348년 흑사병이 온 나라를 흽쓸었을 때에만 잠시 중단되었던 이 전쟁 중에 17세기 시골소녀 잔다르크가 등장한다. 그녀에 의해 역전된 전세는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고, 1453년 깔레를 제외한 프랑스의 모든 영토에서 영국인들은 추방당하게 된다.
    *르네상스
    15세기 말경,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사상과 미학이, 군사전략상 이태리에 머물렀던 프랑스귀족들에 의해 일부 소개되었다. 이 영향은 프랑소아1세 때 지대하게 미쳤고 퐁텐블로(Fontainbleau)와 슈농소(Chenonceau)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종교개혁
    530년대 유럽을 휩쓸던 종교개혁의 바람은 랑스에서도 강하게 일었다. 프랑스에 종교개혁의 바람을 일으킨 사람은 제네바로 망명한 캘빈(John Calvin)이었다. 1562년 1월칙령이 발표되자 구교도(주로 귀족)들은 심하게 반발했다. 그들의 이런 반발은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측면도 다분히 있었다. 1562-1598년 사이의 종교전쟁은 세 집단이 관련되면서 더욱 복잡해진다. 프랑스 신교도인'위그노', 기즈당이 이끄는 구교도, 군주 중심의 구교도로 갈라진 전쟁은 왕권을 약화시키고 프랑스를 분열시켰다. 1572년 8월24일, '성 바톨로뮤 학살'이 일어났는데, 결혼축하를 위해 파리에 갔던 3000명의 위그노들을 구교도가 학살한 사건이었다. 이 학살은 지방에까지 확산되었는데, 이 후로 프랑스에서 신교도세력은 급격히 약화되고,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구교도가 대부분이다. 그 후 실권을 잡은 구교도들의 내분으로 앙리 3세는 암살당하고, 위그노였던 나바르의 왕 앙리는 구교로 개종한 후 앙리4세가 된다. 그는 598년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와 시민권 보장의 내용을 담은 '낭트칙령'을 선포하는데, 100년도 채 안되 1685년 루이14세에 의해 폐지된다.
    *루이14세롸 구제도(Ancient Regime 앙시엥 레짐)태양왕 루이14세는 1643년 5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1715년까지 통치했는데, 긴 통치기간 동안 프랑스 군주의 권력을 옹호하는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프랑스의 권위를 높이고 프랑스의 문화예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도록 만들지만 영토를 확장하기위해 전쟁을 많이 일으켰으며 베르사이유궁전같은 사치스러운 건물을 짓느라 엄청난 국고를 낭비해(지금은 관광수익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지만) 그의 후계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 그 뒤를 이은 루이15세와 16세는 매우 무능했다. 루이15세는 오스트리아와 연합해 영국, 프러시아에 대해 7년 전쟁을 벌였는데, 전쟁에 패해 서인도제도의 식민지와 인도를 영국에게 빼았겼다. 그러나 이 패배는 미국혁명이 몰고 온 급진적 민주사상을 프랑스에 유포한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1780년대까지도 무능하고 결단력없는 루이16세와 그의 아내 마리앙뜨와네뜨는 개화파에서 보수파에 이르는 사회 모든 계층을 멀리한 채 지냈다. 1789년 루이16세가 삼부회에서 개혁파들의 세력을 약화시켜 보려했으나 거리에는 파리의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였고 드디어 그 해 7월14일 구제도 붕괴의 상징인 바스띠유 감옥이 붕괴되고 말았다. 1793년 1월 루이16세는 지금의 파리 콩코드광장 단두대 위에서 급진파와 시민들에 의해 처형되었는데, 1794년 중반까지 참수형으로 무려1만 7000명이 처형되었다. 말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베스삐에르를 포함한 초기혁명 지도자들이 단두대에서 처형되기도 했다.
    *나폴레옹
    나라는 더욱 혼란해졌고 이를 틈타, 프랑스군인 지도자들이 사회에 불만을 품기 시작하는데, 이 때 나폴레옹이 역사에 등장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불가능은 없다'며 알프스를 건너 오스트리아를 격파하면서 국민적 인기를 얻게 되고 그는 이 힘을 몰아 독립적 정치세력을 키우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나폴레옹이 제1제정을 맡았으나 1802년 국민투표로 종신제정을 선포하고 그의 생일은 국경일이 되었다. 1804년 황제로 즉위한 그는 더 많은 지지와 세력확보를 위해 많은 전쟁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프랑스는 유럽 대부분을 정복하고 1812년 대륙의 마지막 라이벌인 짜르를 정복하러 러시아로 향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에 물러서고 말았고 이 틈을 타 나폴레옹의 적들이 파리로 쳐들어오면서 나폴레옹은 엘바로 유배되고 만다. 1915년 그는 엘바를 탈출해 군을 모아 다시 파리를 탈환하나 원털루전에서 패하고 결국 남태평양의 외딴 섬 세인트 헬레나에서 1821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어쨌든 전쟁의 영웅인 그가 이룩한 '나폴레옹 법전'은 오늘날까지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국가 법체계의 근간이 되고 있다.
    *19세기
    19세기 프랑스는, 어리석은 정부와 쓸모 없는 전쟁이 난무한 혼돈의 시기였고, 공화국으로서 나라가 설립되는 제3공화정이 1870년 출범된 의미 깊은 때이기도 하다. 제3공화정에 도덕적,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힌 것은 1894년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유태인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첩보원으로 누명을 써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으면서 이 사건이 시작되었는데, 군 통치부, 우익정치가들, 구교도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다시 심의되어 결국 그의 결백이 증명되었다. 이 사건은 군대와 교회의 불신감을 더욱 강화시켰고 결과적으로 시민에 대한 군의 통제는 더 심해졌으며 1905년 교회와 정부는 법적으로 분리되었다.이 시기에, 아프리카 식민지를 두고 경 관계에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 간에 앙땅뜨 꼬르디알(Entente Cordiale)이라는 협약이 체결되어 이 후 둘은 협조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세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프랑스는 230만의 사상자와 폐허가 된 많은 영토, 산업의 붕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에게 장악되는 등 상황은 더 악화되었고 비굴한 비쉬정권이 나타났다. 한편 프랑스가 전쟁에서 항복하자 당시 부차관이었던 샤를르 드골(General Charles de Gaulle)은 런던으로 건너가 망명정부를 세웠고 독일과의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지하 레지스땅스를 만들었다. 1944년 중반,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치면서 프랑스는 해방되었다. 드골은 전쟁이 끝나자 파리로 돌아와 임시정부를 세웠고, 1846년 1월 대통령직을 사임하지만 그의 복귀를 원하는 대중들의 요구로 제4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적극적인 미국의 우너조로 프랑스 경제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그러나 인도차이나 식민통치의 재시도는 실패했고, 백만 프랑스인이 거주하는 알제리아에서는 아랍민족주의자들이 그들의 독립을 얻기 위해 폭동을 일으켰다. 제 4공화국은 1958년 끝났으나 알제리아 폭동에 대한 패배에 분노한 극우파들의 쿠데타 음모와 시민폭등을 저지하기 위해 드골은 권좌에 다시 복귀했다. 1962년 제리협상으로 알제리전쟁은 끝났으나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75만의 '삐에 느와르(검은 발이라는 뜻으로 알제리태생의 프랑스사람) 가 프랑스로 들어와야 했다. 이 시기 아프리카에 있는 다른 프랑스 식민지와 보호국들도 독립을 찾기 시작했다.정부와 온 나라에 전면적인 변혁을 가져온 것은 1968년 '5월 혁명' 이었다. 시작은 데모하는 대학생들과 경찰의 충돌 정도 였으나 이것은 점점 확산되어 9백만 파리시민들이 파업에 동참하는 등 전국을 거의 마비상태로 몰아넣었다. 드골은 무정부상태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위기를 넘겼고, 안정이 되어 갈 즈음 교육제도개혁을 포함한 중요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1969년 드골은 드골파인 죠르쥬 뽕삐두에게 자리를 넘긴다. 1974년 발레리 쥐스까르 데스뗑이, 198년 에는 사회당인 프랑소와 미테랑(Francois Mitterand)이 자리에 오른다. 미테랑은 1988년 재선에 당선되나 1986년 의회선거에서 쟈끄쉬락이 이끄는 우파가 다수당이 된다. 임기 마지막 2년 동안 미테랑 대통령은 반대당 내각과 전례 없는 보혁 공존(cohabitation꼬아비따씨옹)을 하게 되며 결국, 1995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당을 앞서며 국무총리였던 쉬락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놀라운 것은 쟝 마리 르뺑(Jean-Marie Le Pen)이 이끄는 반 이민 국민전선(FN)은 20%도 득표하지 못하였다. 1995년 7월 빠리와 리용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는데 이것은 정부의 알제리 지원에 반대하는 테러집단에 의한 것으로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초기에 쉬락은 EU에서의 확고한 입지와 유고슬라비아 전에 대한 대처로 국민의 신임을 얻었으나, Mururoa의 폴리네시아섬에서 핵실험을 시행한다는 결정을 하면서 프랑스와 외국으로부터 많은 반발을 샀다. 마지막이라고 표방한 이 실험으로 쉬락정부의 프랑스와 태평양주변국과의 외교관계는 악화되었고, 타히티를 포함한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있는 프랑스의 식민지들에서는 독립의 원성이 높아졌다. 한편 국내에서는 복지비를 제한한다는 쉬락의 정책발표로, 1968년이래 최대의 시위가 일어났다. 1995년 말 3주 동안 빠리의 공공 써비스는 마비되었고, 이로 인해 경제가 악화되면서 유럽경제와 화폐통합에 대한 프랑스의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게 되었다. 쉬락은 화폐통합에 대한 국민투표라는 명목하에 1997년 임시투표를 하게 되지만, 변덕스러운 프랑스인들은 쉬락의 RPR당을 저버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녹색당의 연합을 지지하게 된다. 아직도 대통령의 권좌에 있는 쉬락이 넘어가야할 두 단계는, 현 사회주의당 국무총리인 리오넬 죠스뺑(Lionel Jospin)과 평균치에 걸려있는 화폐통합이다.
  • 경제
  • 국내 총생산 GDP : US$ 2조 8,530 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41,511
    연성장률 : 4%
    인플레이션 : 2%
    주요 생산품 : 정유,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농산물, 사치품, 화학품, 자동차제조, 에너지 생산품 등
    주요 교역국 : EU, USA
  • 문화
  • 문화란 개념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프랑스인들은 그것을 전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비록 현대 세계시장에선 이제 구석자리로 밀리는 경향이 있지만. 프랑스인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다른 나라사람의 취향과 생각에 부합되지 않을지라도, 그들이 얼마나 프랑스적인 것에 도취해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가장 먼저 튀는 것은 프랑스 건축물로 12세기 중반 북부 프랑스에서 기원된 고딕양식이다. 이 양식은 샤르트르(Chartres)와 렝스(Reims), 아미엥(Amiens)의 성당 양식으로 이어진다. 그 후 15세기 말 샤를르 8세가 이탈리아를 수회 침입할 무렵, 르네상스가 프랑스 전역에 퍼졌고, 이는 건축, 시각예술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시대라블레(Rabelais)와 몽테뉴같은 작가들에게는 이것이 프랑스문학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16세기말에서 18세기후반까지 지속된 바로크시대에는 회화, 조각, 고전건축이 한층 정교하고 세련되며 우아해졌다. 프랑스 바로크 음악은 국내뿐만 아니라 널리 유럽에도 영향을 끼쳤다.이 시대 프랑스 연극은 당대 최고의 희극작가 몰리에르(Moliere)로 인해 웃음이 주류를 이루었다.1789년 혁명 지도자 중 하나인 쟈끄 루이 다비드(Jaques Louis David)는 나폴레옹에게 발탁되어 공식적인 국가의 화가가 되었고 실상 미술분야의 독재자역할을 하였다. 그의 방대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혁명독재자였던 마라(Marat)가 욕실에 누워 죽은 그림이다. 이 시기 문학은 볼테르(Voltaire)와 루소(Rousseau) 등 철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음악에서는 프랑스음악에 르네상스바람을 일으키며 오페라와 교향곡을 작곡한 현대관현악의 창시자 베를리오즈가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의 영향하에 가브리엘 포르(Gabriel Faure)와 인상파음악가 끌로드 드뷔시, 모리스 라벨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탄생하였다.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노트르담의 꼽추(Notre-Dame de Paris)와 함께 시로 널리 인정받은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이 외 유명한 작가로는 스탕달(Stendhal)과 마리 앙리 베일(Marie Henri Beyle), 방대한 프랑스 사회역사를 다룬 소설 '인간의 희극(La Comedie Humaine)'을 쓴 오노레 드 발작(Honore de Balzac) 그리고 조르쥬 상드로 더 잘 알려진 오로르 뒤뺑(Aurore Dupain), 몽테크리스토백작의 알렉쌍드르 뒤마(Alexandre Dumas) 등이 있다. 19세기중반 낭만주의가 소설과 시에서 새롭게 대두되었는데 이 주류의 세 거장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그리고 에밀졸라(Emile Zola)가 있다. 시인 랭보(Arthur Rimbaud)는 불후의 명작을 두 편을 남겼는데,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s)과 지옥의 계절(Une Saison en Enfer)이 그것이다. 조각가 로댕(Auguste Rodin)도 이 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로, 미술역사상 가장 정교한 초상화화가로도 평가되고 있다. 인물화는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와 들라크루와(Eugene Delacroix)가, 풍경화는 밀레(Jean-Francois Millet)와 바르비종 학파, 그 뒤로 마네(Edouard Manet)와 사실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마네의 후기작품들은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인 모네(Claude Monet)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의 제자들 중 피사로(Camille Pisarro)와 드가(Edgar Degas)를 꼽을 수 있다.후기인상주의는 20세기 획기적이고 많은 양식을 파급시켰다. 그 중 특히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와 파블로 피카소의 입체파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 후 1차 세계대전의 부정적인 반향으로 허무주의가 나왔고, 대표적으로 마르셀 뒤샹은 실생활의 물건들을 작품으로 전시하는데, 예를 들면 소변기를 전시해 놓고 'Fountain and signed'란 타이틀을 붙여 논 것이 유명하다.문학에서 20세기초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있다. 2차대전 후에는 실존주의가 일어났고 쟝뽈 사르트르, 시몬느 드 보브와르 그리고 알메르 까뮈같은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1950년대 후반 젊은 소설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와 1984년 '연인(L'Amant)'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마르그리트 뒤라(Marguerite Duras)도 참신하고 개성있는 작가들이다. 1950년과 60년대는 프랑스 영화의 혁명기이다. 이 시기 새바람을 일으킨 영화감독의 선두주자는 쟝뤽고다르(Jean-Luc Godard), 프랑소와 트뤼포(Francois Truffaut) 그리고 루이말르(Louis Malle)등이다. 이 감독들은 1970년대까지 독주하였는데, 이후는 새 바람의 실험적인 선을 넘지 못하였고, 불란서 영화에 대한 고정적인 틀(수준 높고, 엘리트하며, 솔직하고 지루한 기획이라는)이 생기게 되어 더 이상 앞서지 못하였다. 1980년과 90년대 가장 성공적인 감독들의 영화는, 특이한 소재와 이상한 스토리, 독특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근본적이고 시각적으로 눈에 두드러지는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주목 받는 감독으로는 디바(Diva)와 베티블루(Betty Blue)의 쟝쟈끄베네(Jean-Jacques Beineix) 그리고 제5원소와 니키타, 프로페셔날을 직접 쓰고 감독한 뤽베쏭(Luc Besson) 이 있다. 종교는 로마카톨릭이 다수인데 실제로 교회생활은 거의 없고, 예배참석률도 매우 낮다. 1905년 정부와 교회가 분리됨에 따라 일반적으로 신앙도 세속적이 되었다. 이어 이슬람교도가 많으며 그 뒤로 신교, 유대교 등이 있다. 프랑스 음식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는데, 간요리, 로크포르 치즈, 달팽이 요리, 과일 파이 등 많은 독특한 요리들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끌어당길 것이다. 그러나 달팽이요리와 포도주만 먹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의 북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 요리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형적인 프랑스사람들의 아침식사는 카페오레 한 사발과 크루와쌍, 버터와 쨈을 바른 빵 한 조각이다. 점심과 저녁은 거의 비슷하게 먹는데, 주로 전채요리는 떼뜨빠떼(돼지머리를 젤라틴화시킨 것)나 생선수프의 일종인 부이야베스(Bouillabaisse), 그리고 주요리로 송아지나 양고기로 요리한 화이트소스 스튜(블랑켓트(Blanquette)) 그리고 후식으로 치즈나 사과 파이등이 대표적이다. 식사 전에는 키르(kir)라고 하는 달짝지근한 화이트 와인이 나오기도 하며, 디제스티프(digestif)라고 하는 소화촉진제로 꼬냑이나 아르마냑 브랜디가 식사 후에 나오기도 한다. 식사 후 소화를 돕고 얘기를 더 하기 위해 마시는 것으로는 에스프레소나 맥주, 파스티스(pastis)같은 술류 그리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랑스산 와인 등이다.
  • 축제 및 행사
  • 프랑스는 한마디로 '축제의 장'이다. 수많은 도시에서는 매년, 음악, 춤, 연극, 영화, 예술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들이 개최된다. 시골마을은 나름대로 그 지역 성인에서부터 농사 수확물까지 여러 주제로 다채로운 전시와 축제가 펼쳐진다. 프로방스지방의 쌩뜨 마리 드 라 메르(Saintes-Maries-de-la-Mer)에서는, 집시의 수호자인 사라(Sarah)를 경배하는 화려한 집시축제가 매년 5월 열린다. 열광적인 노래와 춤이 이 행사의 특징이다. 주요 국경일로는, 노동절인 May Day (5월1일-이 날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준다고 하는 뮈귀예[muguet:백합꽃의 일종]를 친구들에게 선물한다.)와 바스티유의 날(Bastille Day (7월14일-친구들에게 폭죽을 던지며 경축한다.)이 있다. 지역 행사로는 파리의 쁘레따뽀르떼 패션쇼(2월초), 깐느 영화페스티발(5월중순), 스트라스부르그 국제 영화페스티발(6월 3주동안 열림), 아비뇽 연극페스티발(7월중순-8월중순), 낭시 째즈페스티발(10월9일에서 24일까지) 등이 있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 대한민국여권소지자는 비자 없이 3개월간 여행할 수 있다.
    보건위생 : 햇빛에 의한 화상, 발의 물집, 벌레물림, 과음, 과식 등 기본적인 사항들이다.
    시차 : 한국이 프랑스보다 8시간 빠르다.
    전압 : 220V, 50Hz
    도량형 : 미터제를 사용(도량형 환산표 참조[영문])
    외래 관광객 : 연 6,050만 명
  • 경비 및 환전
  • 통화 : 유로 (EURO)
    일반경비:
    저렴한 식사 : US$5-15
    중급 레스토랑 : US$15-30
    최고급 레스토랑 : US$30 이상
    저렴한 숙소 : US$25-35
    중급 호텔 : US$35-60
    최고급 호텔 : US$60 이상
    커피 한잔에 US$5정도인 이 곳이 유럽에서 저렴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쉴 만한 장소로 은행을 찾아야만 할 정도는 아니다. 최저로 경비를 쓴다면 하루 US$40정도 예상하지만, 이 경우 식사는 매일 공원에서 치즈와 바게트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편안한 침대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다니려면 최소 US$80은 잡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생과 노인을 위해서는 여러 곳에서 할인요금이 적용된다. 프랑스에서는 여행자수표가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회계관리방법이며 거의 모든 종류의 여행자수표가 사용 된다. 대도시와 관광지에서는 특히. 은행과 환전소에서는 현금보다 여행자수표를 더 환율 우대한다. 방끄 드 프랑스(Banque de France)가 일반적으로 가장 좋은 환율을 제시한다. 현금인출기에서는 모든 주요신용카드와 은행카드가 사용가능하며, 신용카드로 물건 구입 시 보다 좋은 환율을 적용 받을 수 있다. 팁을 주는 것은 미묘한 문제로, 식당과 숙박지 같은 경우는 계산서마다 10-15%의 팁이 요구되는데, 일반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써비스가 만족스러울 경우 동전 몇 개를 놓고 간다.
  • 여행 시기
  • 프랑스 최고의 계절은 뭐니 뭐니 해도 봄이다. 해변 휴앙지들은 5월에 문을 열어 관광객 맞을 준비를 한다. 가을도 쾌적하긴 하지만 기간이 짧아 10월말쯤에는 '꼬뜨 다쥐르'에서 일광욕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추워진다. 겨울은 알프스, 피레네 그리고 여러 산악지대에서 겨울레저를 즐기기에 좋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방학에는 많은 학생들로 스키장이 대만원을 이룬다. 7월 중순에서 8월 하순까지는 대부분 도시인들이 해변으로 산으로 외딴지역으로 그들의 5주 휴가를 떠나기 때문에 휴양지의 호텔과 야영지는 공급이 턱없이 모자라는 반면, 한적한 도시의 상점, 식당, 극장, 호텔 등은 외국 여행객들이 많이 머무르긴 하지만 대부분 문을 닫고 여름을 지낸다. 2, 3월 방학기간도 마찬가지이다.
  • 주요 여행지
  • 파리(Paris)
  • 광범위하게 따져 인구 1300만 명이 거주하는 빠리는, 대표적인 명물 노틀담과 에펠탑, 일출, 일몰 그리고 밤마다 변하는 세느강과 강변의 황홀한 아름다움 등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아무도 19세기의 넓은 가로수 길과 아름답고 인상적인 건물, 박물관과 공원, 정원, 산책길 등 빠리 곳곳에서 풍기는 웅장함과 독특한 분위기를 만족스럽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계절 모두 매력적인 도시인 빠리를 걷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귀에 익었던 샹송을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것이다. 행정상 빠리는 20개의 구(arrondissements아롱디쓰망)로 나뉘어져 있다. 빠리 주소에는항상 구번호가 적혀 있는데, 1er는 1구, 19e는 19구를 뜻한다. 주소의 다섯자리 우편번호에도 구가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75001은 1구, 75014는 14구이다.빠리의 전철시스템은 아주 편리하며 교통수단이 교차되는 곳 500m이내에는 항상 지하철역(Metro)이 있다.
  • 쌩 말로(Saint Malo)
  • 항구도시 쌩말로는 브르따뉴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로, 랑스(Rance)강 입구에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름다운 해변은 세계에서 가장 조수간만의 차가 큰 해변 중 하나로 밀물과 썰물 때 해수면의 높이가 13m까지 차이를 보인다. 쌩말로 북쪽에는 '에메랄드 해안(Cote d'Emeraude 꼬뜨 데메로드)'이 있다. 쌩말로는 17, 18세기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 중 하나로, 영국을 대상으로 한 많은 상선들이 이곳을 근거로 활동했었다. 2차 세계 대전인 1944년 8월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한 전투에서 구시가지의 80%가 파괴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주요 유적지들은 복원되었지만 나머지는 17, 18세기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이 곳의 볼거리로는 11세기의 쌩 뱅쌍 성당(Cathedrale Saint Vincent)과 수세기를 지내오면서 거의 그대로 보존된 성벽(이 곳에서 보는 파노라마가 일품이다) 그리고 이 도시의 역사가 전시된 구시가박물관(Musee de la Ville뮈제 드라빌)과 거대한 수족관(Le Grand Aquarium) 등이 있다. 쌩말로에서 몽생미쉘(Mont-Saint-Michel)을 당일로 갔다올 수 있다.
  • 샹보르 성(Chateau de Chambord 샤또 드 샹보르)
  • 프랑소와 1세에 의해 1519년 건축되기 시작한 샹보르 성은 르와르지방에서 가장 크고 가장 방문객이 많은 성이다. 르네상스풍의 건물과 장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왕의 초대를 받아 앙브와즈(Amboise(이곳에서 45km 남서쪽))에서 1516년부터 3년 후 그가 죽기까지 살았다고 한다. 프랑소와1세의 창조물인 샹보르에는 해그의 상징인 'F'자와 광폭한 성질을 가진 도롱뇽 무늬가 건물 내 대다수 방에 새겨져 있는데, 800명의 노동자와 예술가들이 15년간 샹보르성의 건축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몰리에르는 이곳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두 작품을, 루이14세 및 청중들 앞에서 처음 상연하였다. 성에 있는 나선형 계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간주되며, 화려한 초창기 르네상스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성의 440개 방 중, 단지 10개만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옥상 테라스에서는 이 지역의 인상적인 스카이라인을 볼수 있다.
  • 비아리쯔(Biarritz)
  • 이 고급스런 해변도시 비아리쯔(인구 3만명, 그러나 여름엔 4배가 된다)는 베이욘느(Bayonne)에서 서쪽 8km거리에 있다. 나폴레옹3세가 그의 부인 유제니와 함께 찾아오곤 했던 19세기 중반무렵부터 휴양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부유한 영국인들이 많이 찾아왔으며 빅토리아여왕과 에드워드 7세도 방문했는데 방문을 기념해서 그들의 이름을 딴 길도 생겼다. 멋진 해안과 유럽에서 손꼽히는 파도타기 지역으로 유명하다. 여름철마다 각종 텐트가 줄지어 있는 그랑드 해변(Grande Plage)는 19세기 중반 나폴레옹3세와 그의 부인 유제니를 위한 별장으로 건설된 곳이다. 그랑드해변에서 남쪽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자줏빛 절벽과 만나는데 Rocher de la Vierge라는 바위섬으로 꼭대기에는 성마리아의 하얀 조각상이 있다. 비아리쯔의 해양박물관(Musee de la Mer)에는 24개 탱크의 수족관이 있으며 다양한 물고기와 물개, 상어 등이 전시되어 있다. 비아리쯔는 물가가 비싸서 여행예산에 심한 타격을 줄 수도 있는 곳이지만, 베이욘느나 앙글레(Anglet)에 있는 호스텔에 묵으면서 하루 정도 들러 볼 만한 곳이다.
  • 싸를라 라 까네다(Sarlat-La-Caneda)
  • 보통 싸를라(Sarlat)라고 불려지는, 뻬리고르지역의 이 아름다운 르네상스도시는, 수세기에 걸친 전쟁과 재난에도 불구하고 16세기와 17세기의 석회암건축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쌩 싸쎄르도 대성당(Cathedrale Saint Sacerdos)은 원래 9세기에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지어진 것이었으나, 그 후 몇 세기가 지나면서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증축, 재건축된 것이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쪽으로는, 싸를라의 중세 공동묘지 쟈르뎅 데 뻬니땅(Jardin des Penitents)과 12세기에 성 베르나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벌통모양의 탑 랑떼른느 데 모르(Lanterne des Morts:죽은 자의 빛)가 있다. 라리베르떼 광장(Place de la Liberte)에서 열리는 토요시장도 볼 만하다. 싸를라에 있는 여행사에서 남쪽의 베제르(Vezere)계곡과 라스꼬 제2동굴 등 인근의 여러지역으로 가는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 샤모니(Chamonix)
  • 인구 1만명인 샤모니는 프랑스 알프스에서 가장 멋진 경관을 가진 곳이다. 알프스 주변의 웅장한 경관은 거의 히말라야 산맥과 흡사한데, 골짜기 바닥에서부터 3.8km 수직으로 솟아있는 몽블랑(Mont Blanc)과 얼음으로 뒤덮인 뾰족한 봉우리들, 그리고 수 km의 빙하계곡들이 장관을 이룬다. 늦봄과 여름에는 빙하들이 약간씩 녹아 꽃과 나무로 가득한 주변의 초원과 언덕에 촉촉한 물기를 제공한다.샤모니 지역에는 330km에 달하는 등반로가 있고, 겨울에는 최고의 스키지역으로 200km의 다운힐과 크로스 컨트리 스키장이 있다.에기유 뒤 미디(Aiguille du Midi)는 몽블랑 정상에서 8km 떨어진 한적한 바위꼭대기로, 샤모니에서 이곳으로 오는 뗄레페리끄(telepherique)는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있는 케이블카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빙하와 눈 덮인 평원, 바위산 등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대개 아침 일찍 올라가야 시야도 좋고 비 맞을 확률도 적다. 5월 중순에서 9월까지는 Aiguille du Midi에서, 이탈리아 국경부근에 있는 봉우리 뿌엥뜨 엘브로네(Pointe Helbronner(3466m))와 이탈리아 휴양도시 꾸르마예르(Courmayeur)로 갈 수 있다.계곡 서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르브레방(Le Brevent 2525m)은 몽블랑과 계곡 동쪽을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샤모니에서 뗄레꺄빈(telecabine)과 뗄레페리끄로 올 수 있는 이곳에는, 다양한 루트의 하이킹코스도 있다.알프스에서 두 번째로 큰 빙하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 얼음의 바다)는 길이 14km 폭 1950m로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1913m의 정상까지는 등반기차로 쉽게 오를 수 있는데, 기차는 샤모니의 몽땅베르 기차역(Gare du Montenvers)에서 출발한다. 아를르(Arles)인구 5만2천의 아를르는 꺄마르그(Camargue)충적평야 북쪽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시저가 폼페이를 도와 마르세이유를 침략, 점령하던 BC49년부터 번영하기 시작했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어 중요한 무역도시로 발돋움하더니1세기 말엽에는 2만석 규모의 원형극장과 1만2천석 규모의 극장건물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아렌느(Arene)와 떼아트르 앙띠끄(Theatre Antique 고대극장)으로 불리우는 이 두 건물들은 아직까지 투우경기와 문화행사를 위해 사용되는 곳이다.12세기 지어진 쌩트로핀 성당(Cathedrale Saint Trophine)과 쌩트로핀 종탑은 로마네스크 건물로, 반 고호가 해바라기같은 그의 유명한 작품을 이곳에서 그렸다는 사실로 더 유명하다.아를르 시내광장은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곳으로, 긴 콧수염을 휘날리며 광장에서 뻬땅끄(petanque 프랑스 구기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천천히 목을 축일 수 있다.
  • 아를르(Arles)
  • 인구 5만2천의 아를르는 꺄마르그(Camargue)충적평야 북쪽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시저가 폼페이를 도와 마르세이유를 침략, 점령하던 BC49년부터 번영하기 시작했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어 중요한 무역도시로 발돋움하더니 1세기 말엽에는 2만석 규모의 원형극장과 1만2천석 규모의 극장건물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아렌느(Arene)와 떼아트르 앙띠끄(Theatre Antique 고대극장)으로 불리우는 이 두 건물들은 아직까지 투우경기와 문화행사를 위해 사용되는 곳이다.12세기 지어진 쌩트로핀 성당(Cathedrale Saint Trophine)과 쌩트로핀 종탑은 로마네스크 건물로, 반 고호가 해바라기같은 그의 유명한 작품을 이곳에서 그렸다는 사실로 더 유명하다.아를르 시내광장은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곳으로, 긴 콧수염을 휘날리며 광장에서 뻬땅끄(petanque 프랑스 구기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천천히 목을 축일 수 있다.
  • 깐느(Cannes)
  • 깐느는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항구, 만, 언덕, 해변가 산책로, 해변, 그리고 거기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어우러져 방문객을 흥겹게 한다. 세련된 매너로 돈을 물쓰듯 하는 부자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일 것이다. 깐느는 많은 페스티발과 문화행사로 유명하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깐느 국제 영화제(5월중순)일 것이다.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질 않지만 5월-10월이 가장 붑비는 관광철-이 때를 피해가면 지역 주민들이 좀 더 친절하고 가격도 저렴해져 스트레스 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해변가를 끼고 산책하기에 좋은 곳들이 많다. 한때는 어항이었지만 지금은 유람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구항구(Vieux Port 비유뽀르)에는 으리으리한 요트들이 많이 정박되어 있다. 이 곳의 주변거리는 여름철 해가 지면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의 색색의 네온사인으로 아주 아름다운 야경을 이룬다. 구항구 바로 서쪽에 있는 언덕 르쉬께(Le Suquet)는 맑은 날 밤에 올라 깐느 시의 훌륭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꼭대기에는 카스트르박물관(Musee e la Castre)도 있다. 불르바르 드 라 크루와젯(Blvd de la Croisette)은 전나무와 야자수가 드리워진 길로, 이곳을 걷는다면 리비에라에서 가장 멋진 길에서 산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길을 따라 고급 호텔들이 많이 있는데 이 호텔들이 해변을 거의 소유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해변은 페스티발 궁전 가까이 있는 좁은 모래 사장 뿐이다. 무료 해수욕장으로는, 쁠라쥬 뒤 미디(Plages du Midi)와 쁠라쥬 드 라 보까(Plages de la Bocca)가 있다.유칼리나무와 소나무로 뒤덮인 성 마가리트섬(Ile Sainte Marquerite)은 알렌상드르 뒤마의 소설로 유명해진 '철가면'이 17세기 말 유배되었던 곳으로, 육지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다. 면적이 넓지 않아(3.2x0.95km) 다양하게 난 길들을 따라 섬을 횡단하거나 둘러보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마가리트 섬보다 더 작은, 성 오노라섬(Ile Saint Honorat)에는, 한때 이 지역에서 명성과 영향력을 떨쳤던 5세기 수도원이 있다. 이 두 곳은 깐느에서 페리로 연결된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일 두쌍 (Ile d'Ouessant)
  • 아름답지만 야생적인 이 섬은 브르따뉴 해안에서 가장 험한 곳이다. 이 지역의 거친 특성과 험한 바위들은 무서움을 느끼게도 한다. 8km길이 집게발모양의 섬은 매년 수로로 들어오는 50,000척의 배들에게 등대 노릇을 한다. 과거의 세기들을 극복하고 이 곳은 더 이상 다른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가진 않는다. 이 곳의 집들은, 성모마리아를 위해 파랑과 하양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부목과 내부 인테리어를 구별하기 위해 초록과 하양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이 곳 할머니들이 거칠고 마디 굵은 손으로 매듭을 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남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섬 어디에서나 검은 색의 작은 양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 곳의 주요음식은 양스튜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등대와 이 지역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그리고 멋진 산책로와 경치도 빼놓을 수 없는 이곳의 자랑거리이다.본토에서 20km 떨어져 있는 이 섬은 브르따뉴 북서부연안의 르 꽁께(Le Conquet)와 브레스크(Brest)항에서 갈 수 있다.
  • 피레네 국립공원(Parc National des Pyrenees(빠르 나씨오날 데 삐레네))
  • 1967년에 생긴 피레네 국립공원은,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따라 100km까지 뻗어 있고, 460평방km의 공원에는 수 백개의 고지대 호수들과, 프랑스 피레네에서 가장 높이 솟은 3300m의 비뉴말봉(Sommet du Vignemale)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공원면적은 단지 12%정도에 불과하다. 연강수량은 2000mm이며 대부분은 눈이 내린다. 보호동물종으로는 갈색 곰(15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음)과 스라소니, 샤무아영양, 마멋, 그리고 멸종위기의 조류인 수염난 대머리수리와 황금독수리가 있다. 공원에는 암벽등반가와 하이커들이 선호하는 350km의 등반로들이 있는데, 그 중 몇 곳은 스페인과 연결되어 있다. 더욱이 이곳에는 연중 개방되는 산장들이 많이 있다.인근에 있는 뽀(Pau)에서, 가이드와 함께 이 곳을 등반하는 소규모 그룹에 참여할 수 있으며, 개별 하이킹과 자전거여행도 가이드 받을 수 있다. 루르드(Lourdes)남쪽에서 30km거리, 공원 동쪽편의 꼬트레(Cauterets)가 가장 편하고 가기 쉬운 관문이다.
  • 베즐래(Vezelay)
  • 베즐레는 작은 성곽마을로, 많은 포도밭과 해바라기 들판, 브루넷 농경지와 인상파 그림을 떠올리는 목초더미들이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루며, 부르고뉴의 아름다운 시골풍경에 자리잡고 있는 역사적인 마을이다. 원래 이곳은 방어의 목적으로 언덕지대에 세워졌는데 10세기에는 순례자들이, 그 후에는 십자군 원정 때 왕과 대공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되었다. 이 곳의 하이라이트는 9세기에 지어진 성 마들렌느 성당(Basilique Sainte Madeleine)이다. 중세기 동안, 이 곳은 막달라 마리아의 유골이 묻혀있던 장소로 여겨 그녀를 기리는 7월22일에는 순례자들이 꾸준히 이곳을 찾아 들었다고 한다. 이 전통은 꾸준히 이어져, 지금도 매년 행사에서 마을을 도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훌륭하게 복구된 교회는 부르고뉴 양식의 걸작품으로, 로마네스크 건축물에 그로테스크한 조각물, 조각된 기둥들과 웅장한 예배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 뒤에 있는 공원에서는 뀌르(Cure)강 계곡과 인근 마을들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으며, 이 마을들 어느 곳이든지 시골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산책로들이 많이 있다. 베즐레는 아발롱(Avalon)에서 15km, 옥세르(Auxerre)에서 51km 떨어져 있고, 모르방 자연공원(Parc Naturel Reginal du Morvan)구역 내에 위치해 있다.
  • 그라쓰(Grasse)
  • 깐느에서 7km 떨어져 있는 그라쓰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주요 향수생산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있는 향수제조의 대가(흔히 네쯔(nez:불어로 '코'란 뜻)라고 불리는)들은 이 자연의 선물인 '향기'를 연구하여 6000여종 이상의 향을 만들어 내왔다. 오렌지빛 지붕으로 눈에 띄는 이 마을에는 향수의 도시답게, 쟈스민, 센티폴리아 장미종, 미모사, 오렌지색 사과꽃, 취하게 하는 나르시스 등이 재배되고 있다.4여개의 향수공장 중 3개만이 일반에게 공개된다. 그 중 하나인 프라고나르(Fragonard)는 17세기 무두질 공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투어에 참가하면, 비누더미, 향기나는 가죽다발, 향료가 가득한 상자들로 쌓여진 창고를 둘러보며 이곳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무수히 많은 꽃들에서 향료를 추출하고 걸러내어 무수한 향 테스트를 한 후 1리터의 향수가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을 다 구경한 후 나오는 사람들로부터는 향수냄새가 진동을 할 것이고 손에는 향수꾸러미가 여지없이 들려 있을 것이다.
  • 코르시카(Corsica)
  • 꼬뜨다쥐르 남동쪽으로 170km거리에 있는 코르시카는, 급류가 굽이치는 산악에서부터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안까지, 지중해에 있는 섬 들 중 가장 다채로운 지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방대한 하이킹지역뿐만 아니라 멋진 배경의 사진장소들도 많이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프랑스와 전혀 다른 언어와 요리, 생활방식으로 색다른 이국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코르시카 독립에 대한 끊임없는 움직임이 이런 이질적인 문화을 더욱 갈구한 것이다. 대부분 민족주의자 단체들은 내부의 보복살인과 재산피해를 가져오는 폭력을 자제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이곳에서의 여행자들은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항구도시 아작시오(Ajaccio)는 나폴레옹의 출생지로, 대부분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코르시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최근 현대화의 바람이 일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 파스텔풍 도시의 구시가 골목길에는 산책과 사색을 즐기기에 좋은 여유가 남아 있다. 나폴레옹의 교훈을 남기는 수많은 기념비와 박물관 외에도, 화강암 봉우리 '라 쁘웽뜨 드 라 빠라따(la Pointe de la Parata)'에서 일출을 볼 수도 있고, 마을에서 가까운 해변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섬에서 가장 알아주는 자연지역은 레깔랑슈(Les Calanche)로, 붉은색과 오렌지빛 화강암으로 된 산악지형은 악마성과 평범성을 가진 양면의 인간과 동물 그리고 빌딩 모양을 하고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지중해와 북부산악지대의 경치는 그야말로 절경을 이룬다. 그리고 근처엔 짧지만 쉽지않은 하이킹코스도 많이 있다. 코르시카 최남단에 있는 보니파시오 성( Citadelle of Bonifacio)은 길고 좁은 석회암 꼭대기에 우뚝 서 있다. 중세기동안 수회의 잔인한 공격을 받았던 마을의 좁은 골목길 등에서는 중세풍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성에서 가까운 칼비(Calvi)는 코르시카 북서쪽 해변마을이며, 북쪽 25km 뻗어있는 칼비와 루스섬(l'Ile Rousse)사이의 해안에는 아름다운 해변가들이 줄지어 있다.코르시카 여행에 최적의 시기는, 항상 태양을 볼 수 있고 꽃들이 활짝 피는 5월과 6월로 이 때는 유럽여행객들로 붐비지도 않는다. 코르시카의 마을들로 가려면 프랑스 여러 공항과 유럽 대도시에서 직항편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고, 더 저렴한 방법으로는 페리를 이용하는 것인데 페리는 종종 잦은 파업으로 노선이 끊길 때가 있고 심지어는 몇 주 동안 운항이 중단될 때도 있다.
  • 레저스포츠
  • 프랑스의 다양한 지리와 기후는 각종 많은 야외레포츠를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많은 프랑스인들이 하이킹을 취미 삼아 즐기며 그에 걸맞게 하이킹코스들도 무수히 많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들은GR(Grande Randonnee)로 표시된 길들인데, GR 5로 표시된 곳은 알프스에서 연결되며, GR4 마씨프 쌍트랄, 가장 인기있는 GR 10은 지중해와 대서양에 걸쳐있는 피레네산지와 연결된 곳이다. 싸이클은 프랑스의 또 다른 인기종목으로, 랑그독(Languedoc)지방의 라 마르쥬리드(LaMargeride)는 산악자전거지역으로 특히 알려져 있다. 이 외 알프스, 브르따뉴, 피레네 등지도 인기있는 곳이다. 스키도 빼놓을 수 없는 대중 스포츠로, 유럽에서 가장 좋은 스키지역을 자랑하는 알프스(샤모니(Chamonix) 등)와 조금 저렴한 꼬트레(Cauterets)부근 피레네지역, 그리고 크로 컨트리스키로 알아주는 마씨프 쌍트랄지역이 대표적인 스키지역이다. 수영하기에 적합한 장소로는, 대서양 연안(라 로쉘(la Rochelle)부근)과 노르망디 연안, 남부 브르따뉴, 지중해(코르시카연안을 포함한) 등 해안가와 호수지역, 즉 안느시호수(Lac d'Annecy), 제네바호수 등이 있다. 홀가분한 몸을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을 반영하는 곳이 또한 해변가로, 나체주의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특히 랑그독-루시용(Languedoc-Rousillon)지역과 꼬뜨다쥐르 해안가등에 많이 있다. 이 외 다른 것으로는, 알프스와 피레네등지에서 하는 암벽등반과 부르고뉴와 프랑스 바스크 지역에서의 승마, 프로방스 베르동(Verdon) 계곡에서의 래프팅, 비아리쯔(Biarritz)에서의 써핑, 그리고 랑그독지방에서의 행글라이딩 등이다. 몸보다 머리를 쓰고 싶다면 프랑스어와 요리수업을 수강하는 것도 가능하다.
  • 파리로 가는 길
  • 에어 프랑스와 다수 항공사들이 파리와 다른 지방 도시들로 연결된다. 국제선이 바로 연결되는 파리 이외의 도시로는, 보르도(Bordeaux), 리용(Lyon), 마르세이유(Marseille), 니스(Nice),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뚤루즈(Toulouse) 등이 있다여러 유럽도시에서 오는 국제노선 버스와 기차들은 주로 파리와 연결되며, 일반적으로 버스가 기차보다 속도와 안락함에 있어 조금 뒤지지만 저렴한 장점이 있다(특히 26세 이하와 60세 이상에게 적용되는 10%할인을 받을 경우와 특별 할인적용구간인 경우는 더더구나).영국해협을 건너는 터널이 1994년 완공되어 유로스타가 운행됨에 따라 조용하고 빠르게 런던과 연결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버스등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초고속기차도 운행되고 있다.가장 조용한 페리와 하버크라프트가 깔레(Calais)와 도버(Dover), 불로뉴(Boulogne)와 포크스톤(Folkestone)사이에 운행되고 있다. 브르따뉴와 노르망디에선 영국과 연결되는 많은 루트가 있다 ; 쌩 말로(Saint Malo)에서는 카페리와 하이드로포일로 웨이마우스(Weymouth), 풀(Poole), 포츠마우스(Portsmouth)로 갈 수 있으며, 로스코프(Roscoff)에서 플라이마우스까지도 페리가 연결된다. 프랑스와 아일랜드사이에도 페리가 있는데 쉐르부르(Cherbourg)와 코크(Cork)를 연결한다. 이 외 영국해협의 섬들과 사르디니아(Marseille-Porto Torres), 이탈리아(Corsica-Genoa) 그리고 북아프리카(Marseille-Algiers, Marseille-Tunis, Sete-Tangier)등으로 페리가 운행된다.
  • 국내 교통편
  • 프랑스 국내선이 대부분 주요도시들로 연결되는데, 가격은 매우 비싼 편이다. 그러나 때로 나오는 할인티켓들은 기차나 버스보다 저렴할 때도 있다.정부에서 운영하는 프랑스 국철 SNCF(Societe Nationale des Chemin de Fer)는 거의 전 지역으로 연결되는 노선으로 더할 나위없이 편리하다. 초고속열차 TGV((train a grande vitesse)로 인해 여행이 훨씬 빠르고 쉬워졌는데 어떤 곳은 항공보다 신속한 여행이 될 때도 있다 (Paris-Lyon 구간 등).주로 단거리를 운행하는 시외버스들은 그리 노선이 많지 않으나 기차연결이 잘 안되는 지역(브르따뉴나 노르망디 등)에서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보다 장거리를 이용할 경우는 기차보다 속도가 느리지만 저렴하다(그러나 단거리 이용 시는 기차보다 느리면서도 비싼 편이다). 자동차로 여행한다면 경비도 비싸지만, 대도시 내에서의 주차와 교통사정으로 쾌적한 여행에 제동이 걸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대부분 지역에서 경적(프렌치 브레이크 페달이라고 불리기도 함)을 울리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상 일단 운전대를 잡으면 너무 소극적이거나 지나치게 교통예절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여행자임을 광고하여 눈에 띌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 도착하여 렌트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비싸며, 일찍 예약해 지불할 경우 할인해 주는 프로그램들을 찾아 빌린다면 괜찮을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싸이클여행은 권할 만하다. 경치와 도로상태가 좋고 자전거를 위한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여행방법으로 보트크루즈가 있는데 4인-12인승이 일반적으로 대여되는 것이며, 주단위로 빌릴 수 있다. 파리 시내 대표적 교통수단은 메트로와 RER(지하철과 국철)이고(다른 대도시에도 지하철이 있다) 이 외 시내 대중교통수단으로는 전차, 버스, 알프스지방에 많은 케이블카같은 텔레페리크, 비싼 택시, 그리고 셔틀페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