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우슈아이아호

Good morning, Antarcticans!

미지의 대륙 남극을 향해 떠나는 아름다운 항해, Classic Antarctica

2012/01/16(월) 인천 출발/도하 경유
인천공항을 출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카타르의 도하를 경유해 대기시간까지 스무시간이 넘는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다.
몸은 피곤해도 남극에 대한 기대 반, 설레임 반으로 마음만은 가뿐하다-

2012/01/17(화)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착
드디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
어제만 해도 영하 10도를 넘나들던 한국이었는데, 귓가에 모기가 왱왱 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밤은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숙소에서 피자와 맥주로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2012/01/18(수) 우슈아이아 이동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국내선을 타고 세 시간 반 가량을 이동, 우슈아이아에 도착했다.
세상의 끝에 위치한 작은 항구 마을 우슈아이아는 거리 곳곳이 펭귄으로 장식되어 있는 이색적인 느낌의 동네.
걸어서 한 시간 정도면 항구와 번화가를 충분히 둘러볼 정도의 규모로,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재미있는 점은 문을 연 지 백 년이 넘은 카페들이 여러 곳 있다는 점! 얼핏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는, 백 년이 넘었다는 카페를
찾아가려고 숙소 직원에게 물었더니 너무 많아 어떤 곳을 추천할지 모르겠다며 잠시 고민을 하더라...! 
물어물어 찾아간 엔틱한 느낌의 카페에 앉아 마신 진한 초콜릿이 들어간 따뜻한 음료는 추위와 피로를 잊기에 충분했다.


▲ 작고 평화로운 항구 마을 우슈아이아. [fin del mundo]는 스페인어로 [세상의 끝] 이라는 뜻이다.

2012/01/19(목) 우슈아이아호 승선
오전에 산책삼아 나선 쇼핑에서 펭귄들이 담긴 엽서와 파타고니아 와인, 초콜릿을 한아름 안고 들어와 다시 가방을 꾸렸다.
오후 세 시 반 우슈아이아 항구에 도착, 네 시부터 시작된 승선! 드디어 배에 올라 캐빈에 짐을 풀었다.
샴페인을 나누며 선장과 스텝들, 다른 승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응급상황을 대비한 비상시 대피훈련시간을 가졌다.
남극 랜딩 시 주의해야 할 점, 조디악 타는 요령 등에 대한 브리핑과 맛있는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느즈막히 잠자리에 들었다.
앞으로 이틀간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도 못한 채...!

2012/01/20(금)-21(토) 드레이크 해협(Drake Passage) 
아칭에 눈을 뜨자마자 반사적으로 든 생각은..어랏, 배가 많이 흔들리네.. 였다.
파도가 높고 험하기로 유명한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기에 살짝 긴장을 했지만,
설마 아침식사는 할 수 있겠지 싶었는데 주섬주섬 챙겨 식당으로 향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미 나의 배멀미는 시작되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의무실에 들러 멀미약을 잔뜩 챙겼다.
멀미가 심하면 네 시간마다, 참을만하면 여섯 시간마다 약을 먹으라는 마음씨 좋게 생긴 의사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캐빈으로 돌아오자마자 시작된 구토. 그 날 내내 구토와 어지럼증 때문에 캐빈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던 나는
크루즈 복도에 을씨년스럽게 널려있던 비닐백들이 왜 필요한지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침대에 누워 간식과 멀미약으로만 꼬박 하루를 버티고 이튿날 점심 무렵부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온전히 배에서만 지내는 48시간동안 남극 생태계에 대한 스텝들의 알토란 같은 강의가 계속되었고,
밤에는 라운지에서 영화도 틀어주고, 홀에서 다른 사람들과 도란도란 담소도 나누었다.

아, 알고 보니 배멀미는 사람마다 차이가 커서 멀미약을 하루 한 번만 먹고 멀쩡한 이도 있었고,
나처럼 네 시간마다 꼬박꼬박 챙겨 먹지 않으면사경을 헤메는 이도 있었다..!  


▲ 이층 침대가 있는 C 캐빈의 모습                                                      ▲ 배멀미가 심한 이들을 위해 복도에 준비된 비닐백 


▲ 바에는 늘 신선한 과일이 준비되어 있고, 라운지에서는 휴식을 취하거나 영화를 볼 수도 있다.

2012/01/22(일) 브라운 블러프(Brown Bluff) & 궈딘 아일랜드(Gourdin Island)
드레이크 해협을 지나자 그렇게 지독했던 배멀미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나도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드디어 남극에서의 첫 랜딩! 날씨가 맑고 화창하니 남극 추위는 잠시 잊으라는 안내방송 멘트가 더없이 반가웠다.
미리 받아 둔 고무장화를 신고, 모자와 장갑을 챙겨 조디악에 올랐다. 바람 한 점 없는, 정말 남극 같지 않은 날씨였다.

첫 랜딩지는 브라운 블러프. 해안가에 무리를 지어 다니는 아델리 펭귄 무리와 빙하들이 어찌나 신선하고, 신기하고, 아름답던지!
그저 한참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배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한 후에 도착한 두번째 랜딩지는 궈딘 아일랜드.
궈딘 아일랜드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 섬에 내린 사람의 숫자보다 펭귄의 숫자가 몇 배는 더 많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웠다.
아마 궈딘 아일랜드에서 수백 마리의 펭귄들을 보며 그 특유의 냄새와 소리에 완전히 적응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이 앙증맞고 귀엽긴 하지만 남극의 신사라는 별명은 어디까지나 그네들의 외모에서 비롯된 것이지,
행동에 기인한 것은 아니란 것을..!

두 번의 랜딩까지 마치고 배로 돌아와 저녁식사 전에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동경로와 랜딩에 대해 스텝들이 설명하고, 질문도 받는다. 
승객들의 질문은 주로 펭귄과 환경에 대한 것들이 많았고,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 유빙과 날씨가 이동에 있어 큰 변수인 남극에서의 일정은 매우 유동적이다. 매일 아침 일정이 새롭게 공지되며, 
하루 평균 두 번의 랜딩이 이루어진다. 저녁식사 전에는 항상 지도를 보며 하루 일과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 브라운 블러프(Brown Bluff) 해안가의 빙하 조각들. 자연이 빚어낸 오묘한 형상이 인간이 만든 것에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2012/01/23(월) 씨에르바 코브(Cierva Cove) 조디악 크루징 & 단코 아일랜드(Danco Island)
오전에는 씨에르바 코브에서 조디악 크루징이 있었다.
사방을 돌아봐도 눈부시게 하얀 설산과 빙하 뿐인 그 곳은 정말 내가 사는 지구가 맞나 하는 의심이 들게 했다.
바다 위에 두둥실 떠 있는 얼음 위에 누워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는 바다표범들을 훔쳐보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유빙들이 떠다니는 바다 위를 조디악을 타고 가로질렀던 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간 두 번째 랜딩은 단코 아일랜드(Danco Island)에서의 하이킹이었다.
종아리까지 푹푹 빠지는 눈 속을 헤치고, 칼바람을 맞으며 가파른 언덕을 올라 내려다보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더군다나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덕분에 아, 내가 진짜 남극에 오긴 왔구나 하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손 끝이 아리고, 양볼이 어는 듯한 느낌에 서둘러 배로 돌아오는 중에 보았던 펭귄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그 높은 언덕까지 올라 서식지를 형성했는지, 눈 길에 미끄러져 가면서도 걸음이 바쁜 펭귄들의 모습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 씨에르바 코브(Cierva Cove)에서 조디악 크루징 중에 찍은 사진. 화창한 날씨 덕분에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 탓이었을까. 내가 상상했던 남극과 가장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던 단코 아일랜드(Danco Island).

2012/01/24(화) 르마이어 해협(Lemaire Channel) & 포트 로크로이(Port Lockroy)
유빙 때문에 부득이 진로를 변경하게 되었고, 오전 랜딩은 취소되었다는 안내 방송에 잠시 우울한 것도 잠시.
빼어난 경치로 유명한 르마이어 해협을 지나면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비록 랜딩은 못했지만 갑판에 나가 맑은 공기도 마시고, 푹 쉰 덕분인지 오후 랜딩 때 훨씬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오후에는 옛 영국 기지였던 포트 로크로이(Port Lockroy)에서의 랜딩이 이뤄졌다.
지금은 기념품 가게 및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 곳은 오랜 옛날 대원들이 사용했던 스키와 방한장비들을 볼 수 있었고
낡았지만 멋스러운 예전 인테리어 또한 그대로 살려두어 오래전 이 곳에서 생활했던 이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우편함이 설치되어 있어 엽서를 보낼 수 있었는데, 이 때 한국으로 보낸 나의 엽서는 석 달 뒤에나 도착해
남극이 정말 먼 곳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옛 영국 기지였던 포트 로크로이. 실내에 우편함이 설치되어 있는데 한국으로 보낸 엽서는 석 달 뒤에나 도착했다.

2012/01/25(수) 디셉션 아일랜드
(Deception Island) & 해나 포인트(Hannah Point)
오전 랜딩지는 디셉션 아일랜드. 끊어진 반지 모양을 하고 있는, 화산활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섬이다. 
한때 고래잡이와 물개잡이의 거점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섬 곳곳에 건물 잔해와 이름 모를 이들의 무덤이 쓸쓸히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펜둘럼 코브 온천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나와 수온을 높여주기 때문에
수영을 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우리 일행들 중에서도 용감하게 물 속으로 뛰어드는 이들이 있었으나
삼 분도 채 견디지 못하고 다들 뛰쳐나왔다.

오후에 도착한, 마지막 랜딩지의 대미를 장식한 곳은 바로 해나 포인트.
언덕을 따라 하이킹을 하며 저 멀리 해안가에 떼를 지어 누운 바다표범들을 바라보다가
다들 초록 빛를 발견하고 눈을 의심했다. 남극에 초록 잔디가 왠말인가!
휘둥그레해져 사람들에게 스텝이 이 곳에는 남극 잔디(Antarctica Grass)가 자란다고 설명을 하며 웃는다.
잔디 위를 해맑게 뛰어다니는(펭귄이 걷는 것과 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펭귄들의 모습은
이 곳 남극에 발을 디디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풍경이다.

 
화산지형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디셉션 아일랜드   ▲ 해나 포인트의 남극 잔디 위를 노니는 젠투 펭귄들

2012/01/26(목)-27(금) 드레이크 해협(Drake Passage)
남극에서의 꿈같은 시간들을 뒤로 하고 우슈아이아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들어선 드레이크 해협.
한 번 겪었으니 혹시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봤지만 역시나 였다.
네 시간마다 멀미약을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침대에서 얌전히 하루를 보내고,
둘째날은 상태가 좋아져 강의도 듣고, 다른 사람들과 연락처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크루즈에서의 마지막 밤엔 새벽까지 수다와 파티가 이어졌고
모두들 특별한 곳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임을 즐기며,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들을 했다.

아르헨티나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펭귄들의 냄새가 아직도 코를 찌른다며, 집에 돌아가기 싫다는 투정을 부리다보니
문득 크루즈에서, 남극에서의 시간이 두 배로 빨리 지나가 버린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아, 드레이크 해협을 건널 때는 빼고..!)



▲ 남극의 척박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펭귄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까만 얼굴의 아델리 펭귄,
오렌지빛 부리와 눈가의 하얀  포인트가 특징인 젠투 펭귄, 솜털이 보송보송한(어미를 알 수 없는) 새끼 펭귄, 턱끈 펭귄이다. 


▲ 육지에 랜딩하기 전/후에 항상 부츠를 헹궈 남극의 자연이 오염되는 것을 막는다.
오른쪽 사진의 선글라스를 낀 이는 랜딩 때마다 모든 승객의 승/하선 여부를 체크하는 멋쟁이 의사 선생님이다. 


▲ 포트 로크로이(Port Lockroy)에서 여권에 찍어주는 방문 기념 스탬프와 남극에서의 일정을 무사히 마친 것을 기념하는 수료증

2012/01/28(토) 우슈아이아 도착/귀국편 탑승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슈아이아에서 하선.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우슈아이아 공항으로 향한다.
우슈아이아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이동하여 귀국편에 탑승한다.
잠을 청하려 눈을 감으면 남극의 설원, 빙하와 유빙, 맑고 깨끗한 바다가 보인다.

2012/01/29(일) 도하 경유
카타르 도하 공항에서 대기. 기념품 가게에 진열된 낙타 인형을 보며 펭귄이 훨씬 더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펭귄들만이 가진 그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냄새와 뒤뚱거리는 걸음걸이가 그리워져
남극에서 찍은 사진들 수백장과 동영상을 공항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몇 번이고 다시 본다. 

2012/01/30(월) 인천 도착
인천공항에 도착.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에 올라타며 생각해본다.
내가 과연 남극에 다시 갈 수 있을까...?!


글/사진 전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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