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산북로의 카자흐스탄과의 국경 도시 이닝(굴자)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우루무치로부터 서쪽으로 710km 떨어진 카자흐스탄의 국경에 이닝(伊寧, 굴자)이란 도시가 있다. 중국어로는 이닝, 위구르 현지어로는 굴자라고 말한다. 이닝(굴자)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이리((伊犁, 일리) 카자흐 자치주의 중심지다. 중국인은 이닝, 위구르인은 굴자라고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이 도시는 천산북로를 따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가는 통로다. 한때 러시아가 지배해서 러시아풍의 건물이 남아 있는 이국적인 매력이 있는 도시다.
“이국풍의 매력적인 도시, 이닝(굴자)
이 도시는 고대에 알마리크 (Almalik)로 불렸다. 굴자(Kulja)는 과거 이리 지역의 이름이기도 했는데 넓이는 629km2이고, 인구는 2007년 기준으로 45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이 도시를 흐르고 있는 이리강 계곡 덕택에 이 부근은 목초지가 풍성하고 깨끗하며 아담한 도시다.
이 도시는 평균 해발고도 800m에 위치하며 연평균 강수량은 350-500mm이다. 북, 남, 동에 솟은 천산산맥은 사막에서 불어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을 막아 주어 기후가 온난하고 많은 과일이 생산되고 있다. 서쪽으로는 평원이 계속되며 카자흐스탄 국경까지 80–90km다. 국경을 넘어 계속 가면 카자흐스탄의 알마티가 나온다. 이닝은 크게 볼 것은 없으나 러시아풍의 도시로 많은 소수민족들의 모습과 중국어, 러시아가 뒤섞여서 흥미롭다. 이곳은 예전부터 러시아, 중국, 영국 등 열강이 개입했고 한때는 러시아가 지배를 한 적도 있었다.
“이닝의 역사”
이닝은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차가타이 칸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또 다른 몽골 제국 중가르는 이 지역을 수도로 삼아 세워졌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는 러시아인들과 서양인들 사이에서 굴자(Kulja)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이렇듯이 국경 도시이다 보니 여러 민족이 모여들고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이 지역은 1800년대에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는데 1851년에 무역을 위해 청나라는 이 지역을 러시아에 개방한다. 그런데 1864년 타림분지에 있는 쿠처(庫車)의 호자(Khoja) 가문이 봉기를 일으키고 동투르키스탄 각지의 무슬림들이 청나라 지배에 대한 반란. 즉 ‘둥간혁명’을 일으킨다. 인근 코칸트 칸국(현재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 지방)의 군인이었던 장군 무함마드 야쿱 벡은 타림 분지로 와서 청나라 군대를 제압하고 1866년에는 카슈가르, 야르칸드, 호탄 등 타림분지 서쪽을 장악한다. 이어서 1870년에는 동부의 투루판, 우루무치도 공격했으며 1871년에는 이리지방(이닝이 속한 곳)을 점령한 후, 청나라 세력을 동투르키스탄에서 축출했다.
당시 영국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의 지배권을 놓고 다투고 있었는데 야쿱벡은 영국령 인도에서 무기를 원조받고, 1874년에는 영국과 조약을 맺고 영국이 카슈가르에 영사를 상주시키기도 했다. 영국은 야쿱 벡의 나라를 ‘카슈가르 왕국’이라 불렀다. 야쿱벡은 서투르키스탄의 부하라 칸국과 오스만 터키 제국과도 교류했다. 무함마드 야쿱벡은 이슬람의 가치를 중시하면서 이슬람 국가들과의 교류를 강화했다.
그런데 청나라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1876년 3월, 청나라는 8만 9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와서 야쿱벡의 이슬람 군대를 공격한다. 7월에는 청군이 천산북로의 야쿱벡 군을 모두 제압했고 투루판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야쿱벡은 투루판 함락 소식을 듣고 음독 자살했다는데 그 사인과 과정은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이리 지역을 점령한다.(이리 사건, 1871~1881) 청나라는 러시아와 1879년 10월 2일, ‘리바디아 조약’을 맺어 이리 땅을 돌려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 조약은 청나라가 너무 양보한 조약이었다. 러시아는 이리 지방 서부와 남부를 러시아에 할양하고 하미, 투루판, 우루무치 등 7개소에 러시아 영사관을 설치한 후, 러시아에 면세 무역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청나라의 조야는 들끓었고, 외교를 맡았던 인물은 죽게 될 지경이었다. 청나라와 러시아는 전쟁 준비를 했으나 결국 1881년 2월 ‘이리조약(伊犁條約, 일리조약)’을 맺어서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이 조약에서 이리 지역 대부분은 청에 반환되고 그 댓가로 이리 지역의 극히 일부와 90만 루블을 지불하기로 했으며 발하슈호도 러시아에게 내주었다.
“실크로드, 천산북로의 도시인 이닝의 매력”
이리 지방의 중심지인 이닝 시내에는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다. 가장 큰 매력은 이런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한족, 위구르족, 카자흐족, 키르키즈족, 시보족 타지크족, 우즈베크족 둥 여러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데 우리로서는 구분이 불가하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살결이 하얀 사람들, 금발 여인들도 눈에 띄는데 한족도 아니고 위구르족도 아니고 러시아인들도 아닌 혼혈적인 모습이 매력적이고 검은 살결을 가진 여인도 눈에 띈다. 이 도시는 이국적이면서도 옛날스러운 모습이다. 가끔 방울을 단 말이 끄는 마차가 거리를 질주해서 마치 옛날 영화에 나오는 러시아의 어느 도시 같다는 느낌도 든다. 거리에서 부츠를 파는 사람들도 많고 카자흐스탄에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하라쇼(좋아)’라는 러시아 말도 많이 들린다.
시내의 모스크에 가면 독특한 중국식 회교 사원도 보인다. 기와와 처마가 있는 중국식 모스크로 벽화에는 아름다운 산수를 배경으로 하얀 수염의 도사가 있는 다분히 도교적인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그 건물이 모스크임을 알려주는 것은 기와 지붕에 솟아 있는 초생달 표시의 마크다. 버스를 타고 나가 이리강 근처를 돌아보다가 걸어오는 길에 주민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옹기 굽는 아주머니, 배추, 고추 파는 것 등을 볼 수 있는데 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 노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우리처럼 고무줄 놀이, 제기 차는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
이닝 근교에는 세림호(사이람호)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는 서역 최서단의 호수로 해발 2천미터, 둘레 1백 킬로미터의 바다와 같은 호수다. 여름이면 위구르족, 카자흐족, 몽골족 등 13개 소수민족이 모이는 장도 선다. 이닝은 이렇게 국경 도시로서 묘한 매력이 있는 도시이며 여기서 80–90킬로미터를 가면 카자흐스탄 국경이 나오고 그곳을 통과하면 알마티로 가게 된다. 이 길은 예전의 천산북로, 즉‘초원의 길’아었으며 계속 가면 카자흐스탄, 키르키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흥미진진한 매력적인 실크로드 나라들을 통과하게 된다.
“중국의 변방 도시 이닝에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가는 길”
현재 중국의 변방 도시 이닝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버스가 다닌다. 국제버스를 타면 되는데 베이징 시간으로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한다. 현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시간으로는 아침 5시 30분이므로 새벽이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그리 급하지 않다. 30분 정도 늦게 출발하는 적이 많다. 버스는 먼저 국경선의 중국 출국장에 도착하고 다시 카자흐스탄 입국 수속을 받아야 한다. 환전도 이곳에서 해야 한다. 위안화가 ‘팅게’로 바뀌게 된다. 그후 버스는 알마티를 향해 무섭게 달리고 어둠이 깔린다. 알마티에 도착하면 밤 10시경이 된다. 물론 알마티에서 중국의 변방 이닝으로도 버스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