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노 고도

구마노 고도

구마노 고도는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일본인들의 성지로 여겨진 곳이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자연 숭배에서 불교의 유입으로 인한 불교 성지로의 변모, 신도가 퍼지며 신도와 불교의 혼합을 거쳐 지금에 위치에 이르른 곳이다.

구마노 고도는 일본에서 가장 큰 반도인 기이 반도를 가로지르는 고대 순례길을 얘기한다. 구마노는 선사 시대 이래로 자연 숭배와 관련된 성지로 여겨져 왔다. 초기에는 산악 신앙의 대상으로 죽은 자들의 영혼이 모이는 산으로 여겨졌고 6세기에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이 지역은 불교 수행의 장소가 되었다. 이 곳의 순례를 마치면 죽음과 동시에 관세음보살의 정토로 들어간다는 믿음이 존재했으며 구마노 혼구 타이샤는 본궁으로 불리며 매우 신성시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신도와 불교가 혼합되던 9세기와 10세기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성지가 형성되다. 이 곳은 크게 세 개의 지역과 신사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지역들의 종교적 융합은 흥미롭다. 혼구 지역은 불교의 아미타불과 신도의 스사노노미코토, 구마노 강과 강변의 모래톱과 나무, 하야타마 지역은 약사불과 이자나기노미코토, 바위와 강, 나치 지역은 관세음보살과 이자나미노미코토, 나치 폭포가 결합되어있다. 자연 숭배신앙에 불교, 신토, 밀교, 도교의 요소까지 접합되어 구마노신앙(구마노곤겐)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이 종합 종교는 다른 성지에 들어가는 것이 금기였던 여성에게까지 열려있었으며, 지위고하 성별을 막론하고 일본인들에게 인기 있었고 일본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역사서인 일본 서기에도 언급되며 11세기에 천황의 첫 번째 참배 여행 이외에도 수많은 무사 계급과 평민들이 순례를 오는 성지였다. 한때 '개미순례'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순례객이 방문하던 곳으로 에도 시대에는 구마노 근처 여관에서 하루 800명이 묵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일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수많은 경로들이 만들어졌었다. 이는 메이지 유신 이후 정부가 일왕 중심 통치 이데올로기를 만들기 위해 1200년 넘게 지속되어온 신토와 불교의 강게 분리를 하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이로 인해 수백 개의 사원이 파괴되었고 신도와 불교 기관이 통합되어 있던 복합 단지가 강제로 분리되었다. 예를 들어, 구마노 혼구 다이샤에서는 모든 불교 관련 조각상과 물건이 제거되었고 구마노 고도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수십년간 일부 참배객만 찾던 이 길은 2004년에는 이 지역이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배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관광객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일본에서 도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며, 세계적으로도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에 이어 두 번째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칙지인 갈리시아와 구마노고도의 종착지인 와카야먀현은 두고대 준례길의 종착지로서 우호관계 구축을 위해 자매도로 협정도 체결했으며, 스페인과 일본 순례길을 모두 완주한 순례자는 '이중 순례'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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