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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복 실장의
여행 공식

11화2026-05-19

우리와 다른 해외에서 운전하는 방법

신발끈 여행공식 11 : 우리의 교통체계는 미시경제학적 통제라면 서구,일본은 거시경제학적 자율운전이다.

1996년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이경규의 양심냉장고>는 대한민국 교통 문화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아무도 없는 깊은 밤, 보행자 신호가 녹색일 때 정지선 앞에서 끝까지 신호를 지킨 운전자를 찾아내 '양심가'로 치켜세우고 냉장고를 선물하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 사회의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든 없든 신호등의 불빛만을 바라보며 멈춰 서 있는 것이 여전히 법적 의무이자 미덕이며, 이를 위반하면 엄격한 처벌이 따른다.

그러나 캐나다, 미국, 일본 등 많은 선진국의 풍경은 자못 다르다. 이들 국가에서는 보행자 신호가 녹색이더라도 실제로 건너는 사람이 없다면 운전자가 안전을 확인한 뒤 유연하게 통과할 수 있다. 오히려 사람이 없는데도 기계적인 신호에 얽매여 도로 한가운데에 갑자기 멈춰 서면, 뒤차의 흐름을 방해하는 행위로 간주되기도 한다. 우리는 법적 신호 자체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기계적으로 단속하는 반면, 선진국들은 신호보다 '실제 보행자의 존재'라는 실질적 기준을 통해 합리적인 흐름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보행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캐나다나 호주 등지에서는 보행자들이 적색 신호에 길을 건너고, 근처의 경찰이 이를 보고도 단속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한국에서 '무단횡단'이 준법정신과 도덕성의 결여로 치부되어 강한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북미의 무단횡단을 뜻하는 '제이워킹(Jaywalking)'은 본래 보행자를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였으나, 오늘날에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보행자가 스스로 안전을 책임지고 통행하는 '합리적 자율성'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도로 위 신호와 차선의 개념 역시 확연히 비교된다. 한국에서는 사거리에서 전용 좌회전 신호가 없거나 중앙선이 가로막고 있다면, 멀리 돌아가 유턴을 하거나 우회전으로 우회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선진국들은 특별한 금지 표지판이 없는 한 언제나 좌회전이 가능하다. 직진 신호가 켜졌을 때 직진과 우회전은 물론, 전방에 마주 오는 차량이 없다면 비보호 좌회전(좌측통행인 일본의 경우 우회전)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한국에서 넘어가면 즉시 중과실 처벌을 받는 '노란 중앙선' 또한, 선진국에서는 그저 반대편 차선임을 알려주는 '방향 분리선'일 뿐이다. 아무런 사인이 없다면 실선이든 복선이든 반대편 차가 없을 때 언제든 중앙선을 넘어 왼쪽 목적지로 진입할 수 있다.

특히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를 통과할 때 선진국 교통체계의 효율성은 극대화된다. 그 중심에는 단돈 몇만 원이면 설치하는 'STOP(정지)' 표지판이 있다. 사거리나 삼거리에 STOP 사인이 있다면 직진이든 좌회전이든 '먼저 도착해 멈춘 차량'이 절대적인 우선권을 갖는다. 만약 STOP 사인이 없는 메인 도로라면 직진 차량이 우선권을 갖고, 좌회전 차량은 도착 순서대로 움직인다. 신호등 설치는 단순히 기계 몇 대를 세우는 일이 아니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예산과 지속적인 전기세, 유지보수 비용이 드는 대형 인프라 사업이다. 선진국들은 명확한 우선권(Right of Way) 시스템을 통해 이 막대한 비용을 표지판 하나로 해결하는 반면, 한국은 수억 원짜리 신호등을 세우지 않으면 운전자에게 아무런 우선권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신호 없는 곳에서 사고가 나면 과실 비율이 현장에서 판정되지 않아 결국 법원까지 가야 하는 비효율적인 구조를 낳는다.

한국 교통체계의 고질적인 복잡성은 최근 개정된 교차로 우회전 규칙에서 정점을 찍는다. 차량 직진 신호가 초록불이고 횡단보도가 빨간불일 때, 혹은 차량 직진 신호가 빨간불일 때 등 운전자는 수많은 케이스를 일일이 학습하고 이해해야 한다. 더욱이 보행자 신호가 초록불일 때 직진 차량이 통과하면 신호위반이지만, 우회전 차량은 적법하다는 논리는 명백한 모순이다. 우회전 차량의 통과를 허용하는 것이 차량 흐름을 위한 목적이라면, 직진 차량의 흐름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결국, 한국과 선진국의 교통체계 차이는 경제학의 두 축인 '미시경제'와 '거시경제'의 관점 차이로 요약된다. 한국의 교통체계는 개별 운전자의 판단력을 신뢰하지 않은 채 촘촘한 규제로 행동을 묶어두는 '미시경제학적 관점'에 서 있다.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교차로마다 신호등을 세우고 복잡한 규칙을 끊임없이 양산하여 '단 하나의 미시적 리스크'까지 통제하려는 방식이다. 반면, 해외 선진국들의 교통체계는 '통행 우선권'과 'STOP 사인'이라는 명확한 대원칙 아래 운전자들이 알아서 물 흐르듯 효율적인 질서를 만들어가게 유도하는 '거시경제학적 관점'을 취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와 인구 밀도가 비슷하고 도로 환경이 좁은 일본 조차도 거시경제학적 자율성과 효율성에 기반한 교통체계를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신호의 색상보다 보행자의 실제 존재를 우선시하며, 전방 차량이 없을 때 자율적인 비보호 턴을 기본으로 삼는다. 좁은 국토와 복잡한 도심을 가진 일본이 이토록 합리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선과 신호등을 이용한 촘촘한 통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약속된 룰 안에서 스스로 안전을 책임지는 '자율성의 확립'이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도 이제는 우리의 교통 제도를 다시 한번 근본적으로 점검해야 할 때다. 만약 우리 도로에 '좌회전 금지가 없으면 상시 좌회전 허용', '보행자 없는 녹색 신호 시 통과 허용', 'STOP 표지판을 통한 교차로 우선권 확립'과 같은 거시적 자율성을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불필요한 주행과 대기 시간이 줄어들고 수많은 신호등이 철거되며,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사고 예방과 분쟁이 방지 되고, 최소 원유 수입량의 1% 이상을 절약하는 거시경제적 가치까지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교통의 진정한 선진화는 억압적인 통제가 아닌 합리적인 자율성에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이 증명하듯, 운전자를 신뢰하는 룰과 흐름 중심의 거시적 전환이야말로 대한민국 도로가 나아가야 할 마지막 종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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