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 여행공식 13 : 수영장 물에 발끝이라도 대는 순간, 여행자의 책임이다.
‘수영 중 사고는 본인의 책임입니다’라는 의미의 ‘Swim at your own risk’는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경고 문구다. 하지만 이 문구의 진정한 무게는 따로 있다. 외국의 호텔 수영장에서는 안전요원이나 위험 표지판의 유무와 관계없이, 수영 중 발생하는 모든 위험은 전적으로 여행자의 책임이다. 패키지 여행 프로그램 역시 스노클링, 수영장, 바닷가 등 장소를 불문하고 ‘물놀이 관련 책임은 해당 여행자에게 있다’고 포괄적으로 명시한다.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리조트나 여행사가 아닌 여행자 본인이 책임을 지는 구조다. 해당 국가들과 법원은 수영장 물에 발끝이라도 대는 순간부터 모든 결과는 여행자의 책임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린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러한 기준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이용객의 안전을 본인의 자율에만 맡긴단 말인가?"라며 반문할지 모른다. 반면 프랑스 정부의 경우, 상충되는 가치 중 국민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둔다. 서유럽 최고봉인 몽블랑에서는 매년 정상에 오르다 목숨을 잃는 등 각종 사고가 빈발한다. 프랑스 정부는 하루에도 수차례 헬리콥터로 구조활동을 벌이지만, 사고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나이나 날씨, 시기를 이유로 입산을 제한하지 않는다. 대신 전문 가이드를 양성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방문객을 위한 안전 정보 센터와 산악학교를 운영한다. 자유를 바탕으로 한 안전이 결국 더 적극적인 안전을 보장한다는 믿음, 그리고 국민의 최우선 가치인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과거 우리의 시야는 그리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 기존 ‘해수욕장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해수욕장은 7, 8월 두 달만 개장했으며, 이용객들은 이 기간에만 바다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만약 폐장 기간에 수영을 하면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었다. 부산이나 제주도처럼 겨울에도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는 해수욕장을 폐장한다는 이유로 수영을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이 글을 신문에 기고하였고, 이후 법이 개정되어 현재는 폐장 기간 과태료가 폐지되고 수영이 가능해졌다.)
우리는 오랫동안 ‘금지’를 바탕으로 한 수직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안전이라는 명목하에 아무런 거부감 없이 통제를 받아왔다. 지자체는 해수욕장을 호루라기 소리만 난무하는 거대한 수영장으로 만들었고, 여행자는 패키지 여행 중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으면 스노클링을 하지 못하는 넌센스를 겪어야 했다. 이러한 과도한 통제는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수영을 못하는 민족으로 만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제 우리의 안전 개념도 선진국형으로 달라져야 한다. 입법부와 사법부는 단순히 규제와 벌금으로 국민을 통제할 것이 아니라, ‘자유를 기반으로 한 안전이 최고의 안전’이라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Swim at your own risk’는 단순한 문구가 아니다. ‘금지’로 국민을 과잉 보호하는 구조에서,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자유’를 보장하는 선진국으로 가는 이정표다.
우리 사회 역시 여행지에서 성인으로서 최소한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즉 ‘책임에 기반한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은 물론, 여행사와 지자체, 법원 모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여행사는 모든 여행계약서에 ‘수영 사고는 본인의 책임’이라는 문구를 명시하고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하여 동의를 받아야 한다.
법원 역시 충분한 고지와 동의가 있었다면, 수영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개인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안전 보장이라는 명목 하에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되, 각자가 스스로의 안전을 책임지고 확보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 결론적으로, 여행 중 수상 활동에서 발생한 사고의 최종 책임은 국가 시스템이나 여행사가 아닌, 올바른 안전 교육을 바탕으로 행위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 ‘여행자 본인’에게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