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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복 실장의
여행 공식

14화2026-06-10

남극여행 허가

신발끈 여행공식 14 : 여행자는 남극 여행 허가가 필요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YTN 해외안전 여행정보’ 등에서는 "외교부 장관의 허가 없이 남위 60도 이남 지역(남극)에 들어가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만약 이 법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나는 명백한 상습 범법자다. 나는 외교부 장관의 허가 없이 여섯 차례에 걸쳐 남극을 여행했다. 남위 60도를 훨씬 지나 남극점을 두 차례나 방문했고, 세종기지를 포함한 각국 기지가 집결한 킹조지 아일랜드, 분화구 섬인 디셉션 아일랜드, 남극 반도의 르마이어 해협과 니코 하버 등 남극 구석구석을 다녀왔다. 법령 (남극활동특약법 제4조, 제5조, 제24조 및 시행령 제3조~제6조)을 기준으로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나는 징역 18년 형을 살거나 1억 8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하는 중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나는 이 사실을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내가 이런 호기로운 자수를 감행한 이유가 있다. 남극은 특별보호 관리구역이 맞지만, 환경 훼손의 주체는 일반 여행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호텔, 도로, 식당, 항구도 없는 남극에서 일반 여행자는 자력으로 그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다. 대륙과 연결된 정규 항공편도 없으니 개인 여행자는 출발조차 불가능하다.

결국 남극 여행은 전문 여행업자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즉, 국제조약에서 규정하는 쓰레기 처리나 동물 보호 등의 환경 규제 의무는 '개인 여행자'가 아닌, 교통과 숙박을 제공하는 '여행업체'에 부과되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남극여행업협회(IAATO)에 등록된 여행업자나, 개인 요트 및 전용기로 남극을 탐험하는 일부 슈퍼리치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남극 여행 허가제는 지난 30년간 기형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국제조약 원문에 나와 있는 ‘Tour(관광 활동)’나 ‘Travel(여행)’의 주체를 ‘Tour Operator(여행업체/오퍼레이터)’로 해석해야 함에도, 이를 ‘Tourist(관광객)’나 ‘Traveler(개인 여행자)’로 오역한 어처구니없는 오류가 빚어낸 촌극이었다. 이 단순한 오역 하나가 대한민국 국민의 발목을 30년 동안 붙잡아온 것이다.

잘못된 영어 해석으로 만들어진 규제가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전파되는 것은 심각한 국가적 낭비였다. 나는 국제조약상 남극 여행이 개인의 허가 사항이 아니라 여행사의 책임 영역이며, 누구든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그러나 관료 사회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미 허가 남극 여행 6회 자수’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언론을 통하여 "외교부나 극지연구소는 현행법 위반으로 나를 당장 고발하라. 만약 나를 처벌할 수 없다면, 실효성 없는 법률을 폐기하고 국제 기준에 맞게 전면 수정하라"고 압박했다. 이 끈질긴 문제 제기 끝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반 여행자의 남극 여행 허가제는 마침내 폐지되었다.

그러나 허가권자에 대한 여전히 씁쓸함이 남는다. 전 세계에서 남극 관련 행정 업무를 부처 간 전문성 고려 없이 ‘외교부’가 전담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 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해외 정부시스템은 전혀 다르다. 중국은 자연자원부, 인도는 지구과학부, 일본은 환경성, 스웨덴은 극지연구국 등 과학적·환경적 전문성을 갖춘 부처가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한다. 미국 역시 외교 부처인 국무부는 사전 고지(Notification)만 접수할 뿐, 실질적인 환경 영향 평가와 허가(Permit) 조치는 국립과학재단(NSF)에서 전담 처리한다.

이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답만 외우던 과거 암기식 교육과 행정 편의주의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부실 시스템의 단면이다. ‘여행자(Tourist)’와 ‘여행사(Operator)’를 구별하지 못해 30년간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하더니, 제도 개정 과정에서조차 "외국도 당연히 외교부가 하겠지"라는 관성적 발상으로 일관한 것이다. 주무 부처여야 할 환경부도, 전문 기량의 극지 연구소도 그 누구 하나 이 비합리적인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대한민국 관료 사회의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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