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 여행공식 17 : 물은 신(神)이고, 신이 많은 곳은 남극이다.
사막에 내린 신의 축복, 오카방코의 기적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칼라하리 사막 한복판에는 기적이라 불리는 거대한 내륙 삼각주, ‘오카방코 델타(Okavango Delta)’가 있다. 사막은 죽음과 침묵의 땅이어야 하건만, 이곳은 역설적이게도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고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 그대로 증발해 버리는 이 기이한 물줄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파라다이스를 만든 물방울의 고향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앙골라의 중부 고원지대다. 그곳에 쏟아진 열대성 폭우가 강을 이루고, 아무런 경사도 없는 평원과 사막을 향해 두세 달 동안 묵묵히 흘러 내려온 결과다. 보츠와나가 가장 메마르고 혹독한 건기를 맞이할 때, 앙골라가 보낸 물줄기가 마침내 사막을 적신다. "물은 곧 신(神)"이라는 오랜 격언처럼, 시차를 두고 찾아온 물방울들이 사막 한가운데에 거대한 오아시스를 창조한 것이다.
이처럼 물은 생명의 시작이자 끝이다. 인류가 수십억 킬로미터 떨어진 화성과 달의 황무지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얼음 조각을 찾으려 필사적인 이유 역시, 온도와 산소가 아무리 완벽해도 ‘물’이 없다면 그 어떤 생명도 싹트지 못하기 때문이다. 태국인들이 풍요와 생명을 상징하며 자녀의 이름에 ‘폰(Phon, 물)’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는 것처럼, 물의 보유량은 수천 년 전부터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생존 조건이자 위대한 권력이었다.
캐나다의 호수, 그리고 남극이라는 거대한 ‘치트키’
세계 지도에서 물이 가장 풍부해 보이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캐나다일 것이다. 미국마저 탐낼 정도로 영토 전역에 무려 300만 개가 넘는 호수를 품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캐나다의 지표수와 흐르는 강, 북극의 빙하까지 그 양은 지구 전체 담수(민물)의 고작 0.5% 미만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를 경악케 한다.
그렇다면 지구 민물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캐나다가 보유한 모든 수자원의 무려 140배 이상, 전 지구 담수의 70%가 단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바로 얼음 대륙, ‘남극’이다. 평균 남극은 인류가 가진 가장 거대한 담수 저장고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 지구가 물 부족과 폭염에 시달리게 될 미래에, 남극은 인류의 생존을 담보할 최후의 보루이자 개척지가 될 수밖에 없다. 지리학적으로 남극은 단순한 얼음 덩어리가 아니라, 지구가 숨겨둔 가장 거대한 ‘액체 생명의 원천’인 것이다.
1970년대 선박의 항로에 갇힌 대한민국의 세계지도
하지만 대한민국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 속 세계지도에는 이 위대한 담수의 대륙, 남극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학창 시절 내내 세계를 ‘5대양 6대주’로 배워왔다. 5대양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남극해, 북극해이며, 6대주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다. 이상하지 않은가? 엄연히 독자적인 대륙 지각을 가진 거대한 남극대륙이 ‘6대주’에서 통째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
세계 지리학계에서 남극을 대륙 분류에서 제외하는 나라는 사실상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유럽과 아시아를 묶어 유라시아로 보든, 남북 아메리카를 하나로 보든,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지리 교육은 남극을 당당한 하나의 대륙(7대주 체제 등)으로 인정하고 가르친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일찍이 남극의 가치를 인식하여 교과과정에 남극을 6대주 또는 7대주의 엄연한 주역으로 포함해 왔다.
왜 유독 대한민국만 남극을 지워버린 불구의 세계지도를 갖게 되었을까? 그 슬픈 비밀은 우리의 과거에 있다.
각 가정에 수도꼭지조차 귀하던 시절, 오직 수출만이 가난을 탈출할 유일한 열쇠였던 1970~80년대의 대한민국에 세계란 '컨테이너선이 들어가는 항구'와 '무역 비행기가 착륙하는 장소'의 동의어였다. 무역선이 다닐 수 없는 얼어붙은 바다, 수출품을 실을 항구가 없는 남극은 당시의 한국인들에게 '존재 가치가 없는 땅'이었던 셈이다. 철저히 경제적 이익과 선박의 항로에 맞춰 재단된 낡은 세계관이 바로 우리가 배운 '5대양 6대주'의 본질이었다.
대한민국 지리학회에 묻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 경제 10위권이자 국민소득 4만 달러의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어른과 아이들은 여전히 심각한 지리학적 맹점을 안고 살아간다. 학교에서 남극을 대륙으로 배운 적이 없다 보니, 여전히 많은 이들이 남극을 북극처럼 그저 '물과 빙하로만 이루어진 얼음판'으로 오해하곤 한다. 지금 지구는 온난화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이했고, 그 중심에 남극이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남극에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라는 두 개의 당당한 전초기지를 세웠고, 아라온호를 통해 극지 연구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다. 남극의 환경적, 지리학적, 미래 자원적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부각되고 있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 눈앞의 무역항만을 바라보던 근시안적 시각에 갇혀 남극을 지워버린 세계지도를 2026년인 지금까지도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국가적 직무유기이자 부끄러운 교육의 퇴행이다. 광활한 대륙을 바라보아야 할 아이들의 시야를 좁은 우물 안에 가두는 꼴이다.
이에 대한민국 지리학회에 엄숙히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과거 선박 항로 기준의 틀린 '5대양 6대주'를 절대 진리인 양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까? 미래의 주인공이 될 우리 아이들에게 남극이라는 거대한 기회의 대륙, 지구 담수의 70%를 품은 생명의 대륙을 당당히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대의 변화와 과학적 사실에 발맞추어, 교과서 속 세계지도의 왜곡된 경계를 조속히 바로잡아 주시기를 촉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