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 여행공식 08 : 트레킹 여행자도 구조(Evacuation) 보험이 필요하다.
에베레스트 트레킹 중 발을 삐거나 고산증으로 걸을 수 없게 되어 헬리콥터 구조를 요청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북한산의 119처럼 구조가 무료일 것이라 기대하면 안 된다.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약 400만 원(2,500달러) 정도의 구조비가 청구된다.
한국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럽 트레킹 프로그램인 투르 드 몽블랑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를 잇는 이 코스에서, 특히 이탈리아 알프스 구간에서 구조를 요청하게 되면 분당 90~140유로(약 15만~24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고, 헬리곱터 구조의 총 비용은 1,000~16,000유로(1,900만~2,700만 원)에 달한다. 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구조보험’이다. 비용도 여행자보험의 약 40% 수준으로 그리 높지 않다. 몇 만 원의 보험료가 거액의 구조비를 대신해주는 셈이니, 트레커에게 반드시 필요한 보험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여행자와 여행사가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신발끈여행사는 국내 최초로 구조보험을 개발했으며, 모든 트레킹 프로그램에 구조보험이 포함되어 있다.)
보험이 있다고 해서 구조가 무조건 무료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남극점 스키원정 중 이틀 만에 탈진하여 구조를 요청했던 경험이 있다. 함께 출발한 한국 참가자는 첫날부터 짐을 전혀 끌지 못했고, 그 짐을 셋이 나눠 맡다 보니 각자의 무게가 30%씩 늘어났다. 익숙지 않은 영하 30도의 추위도 큰 부담이었다. 남극에서는 어떤 물건도 버릴 수 없기에, 동반한 한국 참가자가 ‘한국 대표’로 빈 짐으로 남극점까지 가고, 나는 두 사람의 짐을 챙겨 철수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날 밤 위성전화로 구조를 요청하자, 베이스캠프에서는 “동상으로 손가락 한두 개는 잘라야 보험 적용이 가능하고, 단순 탈진으로 구조할 경우 비용을 고스란히 청구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상 비용은 무려 8,000만 원.
이틀간 고갈된 체력이었지만, 8,000만 원이라는 금액을 듣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솟았다. 그렇게 되살아난 힘으로 결국 남극점을 당당히 완주했다. 그 원동력이 열정도, 사랑도, 정신력도 아닌 ‘돈’이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조금 부끄럽다.
만약 구조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남극처럼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차선책도 있다. 예컨대 네팔에서는 400만 원짜리 헬리콥터 대신 하루 100달러짜리 말을 타고 하산할 수도 있다. 또 이탈리아•스위스와 달리 프랑스는 구조비가 무료이기 때문에, 아픈 다리를 끌고서라도 프랑스 국경을 넘으면 약 2,000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
나는 여행 중 단 한 번 실제 구조를 받아본 적이 있다. 태국 파타야에서 친구와 함께 요트를 빌려 섬을 둘러보다 돌아오는 길, 속도를 너무 냈던 탓에 요트가 파도에 뒤집혀버린 것이다. 빌린 요트는 경주용이어서, 아무리 기울어진 배를 바로 세우려 해도 반대 방향으로 계속 넘어갔다. 열 번쯤 시도한 끝에 결국 지나가던 어선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 시간가량 바다 위에서 기다리다 우리는 직접 수영해 육지로 향하기로 했다. 2인용 경주용 요트를 끌고 1~2시간 헤엄치던 중 태국 해양경찰이 도착했다. 패닉에 빠진 친구는 구조선에 올라타 바로 철수했고, 나는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요트를 세워 다시 직접 운항해 돌아올 수 있었다. 친구는 ‘죽다 살았다’며 떨고 있었지만, 나와 요트 대여업체의 관심사는 ‘구조비용이 청구될지 여부’였다. 다행히 내가 구조선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요트를 끌고 돌아와서인지 비용은 청구되지 않았다. 당시 나는 구조라는 개념 자체를 떠올리지 못했고, 물론 구조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극에서 단련된 ‘동물적 생존 감각’ 덕분인지, 태국에서도 구조비를 피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