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바티 (Kiribati)
메마른 땅이 아니라 널리 펼쳐진 반짝이는 환상 산호섬, 모래사장이 아니라 깊고 푸른 바다, 사람보다는 코코넛 나무, 고대의 신앙보다는 기독교 교회, 이것들이 키리바티이다. 키리바티는 멀고 가기 힘들며 관광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종교적인 곳이다. 무수한 암초와 산호초 위를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수많은 화려한 물고기들, 2차 대전 중 침몰한 많은 난파선들도 이곳의 바다에 한몫을 한다. 산호섬들은 적도 근처에 퍼져 있으므로 기후는 따뜻하고 가끔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시원해진다.
타라와(Tarawa)는 키리바티의 수도로 태평양의 베네치아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위에 걸린 보도와 섬 사이를 도는 배로 여러 구경거리를 볼 수 있다. 현대화가 추한 모습을 가져오고 있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드물게 찾아오는 여행자들을 반갑게 맞는다. 잘 조직된 활동은 많지 않지만 대부분의 장소에서 다이빙이나 낚시를 즐기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한권의 책과 다이빙 마스크를 가지고 훌쩍 벗어날 수 있는 이상적인 해변은 어디에서나 가까이서 볼 수 있다.
  • 통계 자료
  • 국명 : 키리바티 공화국(Republic of Kiribati)
    면적 : 810 sq km
    인구 : 82,450
    수도 : 타라와, 인구 25,000
    인종 : 마이크로네시안(Micronesian)
    종교 : 키리바티 개신교, 카톨릭, 다른 기독교 종파
    정체 : 공화국
    수장 : Anote Tong
  • 지리 및 기후
  • 키리바티의 영역에 있는 바다는 광대하지만(거의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합친 크기이다) 육지는 겨우 뉴욕 시보다 조금 큰 정도이다. 키리바티는 길버트(Gilbert), 라인(Line, 북부와 남부), 피닉스(Phoenix)의 세 제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섬들은 적도 위에 턱하니 버티고 앉아 있으며 남쪽의 투발루(Tuvalu), 북서쪽은 마샬 제도(Marshall Islands), 서쪽으로는 나우루(Nauru)가 위치해 있다. 34개의 섬은 꼭대기가 87m에 이르는 광산으로 덮인 폐허, 바나바(Banaba)를 제외하고는 모두 저지대 환상 산호섬이다. 라인 제도의 크리스마스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환상 산호섬이지만 흙이 별로 없기 때문에 별로 식물이 살지 못하는 곳이다. 강은 없지만 대부분의 섬에는 담수 석호가 있다. 동물들은 폴리네시아 쥐나 여러 바닷새, 두세 종의 도마뱀 정도뿐이다. 바다 생물은 더 다양해서 아름다운 산호가 대부분의 항구를 감싸고 있으며 여러 물고기들도 볼 수 있다. 바닷가의 관목은 흔히 볼 수 있으며 망그로브와 판다너스는 몇몇 섬에서 자라고 풍부한 착생 식물이나 양치류들이 숲을 덮고 있다. 코코넛은 자연적으로 자라지 않는 곳에 널리 심어져 있으며 몇몇 지역은 보호되거나 폐쇄되어 있다. 몰든 섬(Malden Island), 피닉스 섬, 스타벅 섬(Starbuck Island)의 자연 보호 구역은 1000헥타르가 넘는다. 보호 지역과 전 국토의 최대 위협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발 상승이다. 해안선이 없어지거나 땅이 가라앉지 않는다 해도 담수 대수층은 염수화 될 가능성이 있다.
    11월에서 2월까지는 매우 덥고 비가 많이 내리지만 나머지 시기는 무역풍 때문에 기후가 온화해진다(기후학적으로는 '적도 해양성 기후'라고 한다). 강우량은 섬들마다 틀려서 북쪽은 연간 3m 정도나 내리는 반면 남쪽으로 내려가면 바나바 같은 곳은 가뭄이 드는 경우도 있다. 다행히 열대 사이클론은 키리바티 근처를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 역사
  • 스페인 탐험가 키로스(Quiros)는 열띤 태평양 계획으로 1606년 부타리타리(Butaritari)에 상륙했으며 이곳을 부엔 비아헤(Buen Viaje, 좋은 여행)이라고 불렀다. 고고학적 증거로 미루어 보아 키로스를 향해 올레 올레 올레를 불렀던 이 섬 주민들의 조상은 오스트로네시안(Austronesian)들이며 이들은 적어도 2000년 전에 이 섬들로 왔을 것이다. 통가와 피지인들은 14세기 경에 이곳을 침략했으며 이들과의 결혼으로 19세기 초까지 주민들은 동질적인 외양을 갖게 되었다.
    식민지 시대의 야단법석 중 특히 야만적인 일은 1841년 4월 8일 일어난 사건으로 USS Peacock의 80명의 장교와 사병들이 타비테우에아(Tabiteuea) 섬의 우티로아(Utiroa) 마을에 내리면서 일어났다. 그들은 주민들이 자신들의 일행 중 한 명을 전날 죽였다고 생각하고 제 7 기병대나 된 양 300여 가옥을 불사르고 마을 집회 장소인 마네아바(maneaba)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죽은 섬 주민은 공식적으로는 12명에 불과하지만 지휘관은 이런 만행에 만족해하며 이 일을 '유익한 교훈'이라고 묘사했다. 이런 교훈을 잘 배워 원주민들이 침략자를 갑자기 좋아하기 시작했을 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더 많은 유럽인들이 들르기 시작하면서 1826년에는 유럽 해도에 이 섬들이 그려지게 되었다. 유명한 러시아 수로학자인 크루센스턴(Krusenstern)은 1820년대 길버트 제도의 이름을 지었으며 이때부터 1870년대까지 향유고래를 잡으러 다니던 영국과 미국의 포경업자들은 가장 빈번하게 이곳에 나타났다. 주거니 받거니 한 것들도 있다 - 버려진 몇몇 선원들이 코코넛 나무 아래서 춤추는 동안 원주민들 중 몇몇은 괴혈병이나 질병, 바다에 버려진 향유고래의 내장과 땅을 교환했다. 코코넛 기름과 코프라가 나중에 주요 교역 물품이 되었고 페루, 영국, 호주, 다른 노예 선에 의해 납치되어 노예로 팔리는 경우도 늘어났다. 납치된 주민들은 피지, 사모아, 타히티, 하와이, 중앙 아메리카 등지로 팔려 부려졌다. 선교사들은 1850년대에 가게를 차려 음란한 춤을 금지시키고 간통하지 말며 쾌락에 빠지지 않도록 설교하면서 길버트 제도 사람들의 영혼을 구제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영국은 이 지역에 관심이 있었지만(Hiram Bingham은 이곳에 살기 시작한 최초의 미국인 선교사이다) 1917년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 는 London Missionary Society에 의한 성공적인 개종 국면과 영국의 공격적인 토지 수탈에 손대지 않을 것을 동의하였다. 1892년 영국인 이 지역을 영국 보호령으로 선포하고 4년 뒤 타라와에 본부를 설치하였다. 그들은 1900년 인산염을 발견한 뒤 바나바를 병합하고 계속해 섬을 파헤쳤다. 바나바가 결국은 폐허가 되었기 때문에(표토는 호주와 뉴질랜드에 뿌려졌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바나바 사람들은 피지의 라비 섬(Rabi Island)으로 옮겨졌으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다.
    19116년 초 영국은 중요한 긴급 칙령과 원주민 족장으로 하여금 밑줄 친 곳에 사인하도록 하여 길버트와 엘리세(Ellice) 제도의 토지 수탈을 합법화시켰다. 테라이나(Teraina), 타부아에란(Tabuaeran), 키리티마스(Kiritimati, 영어로는 크리스마스섬으로 제임스 쿡 선장이 크리스마스에 찐 푸딩을 먹은 곳), 토켈라우 그룹(Tokelau Group, 1925년에 뉴질랜드 관할로 넘어갔다), 바나바 등의 다른 섬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살지 않던 피닉스 제도(두 개의 섬은 미국과 합동으로 관리되어지던)는 1937년에 같은 리스트에 올려졌다. 현재의 키리바티에 있는 다른 섬들은 인산염이나 코코넛 생산을 위해 외국 회사에 착취당하였지만 결국은 같은 꼴을 당하였다. 일본이 태평양에서 전쟁을 일으키자 키리바티는 결국 일본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일본은 진주만 공격 잠시 뒤에 바나바를 폭격하고 타라와와 부타리타리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1943년 미국은 총력전 끝에 현재의 키리바티 대부분의 지역에서 일본을 축출하였다. 바나바가 재점령된 후에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일본이 들여온 노동자 중 한 명만을 남기고 모두 죽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군사 법정은 나중에 일본군 지휘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영국은 1957년과 1962년 냉전의 정점에 달해 있던 때에 키리티바티 섬 근처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하면서 키리바티 섬에 또 다른 일격을 가하였다. 주민들은 1963년 고문단을 포함한 그들의 정부를 가지게 되었으며 1979년 7월 12일에는 완전한 독립을 맞이했다. 2개월 뒤 미국은 1856년 과노 조례(Guano Act)를 근거로 장악하고 있던 라인과 피닉스 제도에 있는 14개 섬을 포기했다. 바나바 사람들은 1975년 영국 고등법원에 인산염 광산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할 7백만 파운드 소송을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키리바티부터 독립도 요구하였다. 결국 보상금으로 9백4만 US$이 지불되었으며 헌법으로 의회의 의석을 보장받고 인산염 광산으로 재산을 잃은 사람들에게 토지를 반환하도록 결정되었지만 독립이 제공되지는 않았다.
    최근 피닉스 제도의 다섯 섬은 ADB(Asian Development Bank)로부터 40만 US$를 제공받고 주거 지역 개발을 시작했다. 이 섬들은 주민이 밀집된 사우스 타라와에서 인구를 분산시킬 것이다.
  • 경제
  • 국내총생산GDP : US$ 1억 3천만 달러
    1인당 GDP : US$ 686 달러
    인플레이션 : 5.1%
    주요 산업 : 어업과 수공예품
    주요 교역국 : 호주, 일본, 피지, 뉴질랜드, 미국
  • 문화
  • 카누 경주, 배구, 축구는 이 섬에서 모두 인기 있는 종목이지만 더 전통적인 것들로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춤 - 특히 타비테우에아의 -토착 무술, 실로 여러 모습을 만드는 것 등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또 키리바티 에서 중요한 것으로 창업 의식 같은 특별한 성공을 기리는 경우 한사람에서 네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보통 춤을 동반하지 않는다.
    공식석상에서는 영어도 널리 통용되지만 이-키리바티(I-Kiribati)는 마이크로네시아의 방언이다. 문자는 13가지뿐이며 ti 는 s를 나타낸다. 선교사들은 초기에 크게 활동하여 키리바티 개신교 교회는 현재 28,000명이 넘는 신도를 가지고 있으며 카톨릭 교회는 40,000명에 이른다. 종교는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며 남쪽으로 가면 일과 관계없어 보이는 어떠한 것들도 피하는 것이 좋다(수건을 깁는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일 정도이다). 바다처럼 신비로운 힘에 오랫동안 가까이 살던 사람들에게 늘 그러하듯 전통적인 관습과 신앙은 아직도 살아있다. 주술의 힘과 유령의 실재에 대한 믿음도 널리 퍼져 있으며 작은 사당들도 덤불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곳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는 씨족이며 섬 전체에 걸친 권위는 각 씨족의 지도자 격인 노인들이 모이는 마네아바(집회소)를 통해 나타난다. 섬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타로나 고구마, 코코넛 같은 구근 작물과 바다로부터 나오는 생산물에 기반을 둔 자급적인 경제를 이루고 살았지만 화폐 경제가 들어오면서 이러한 생활 방식도 점점 변해가고 있다. 수입 식품들도 점점 흔해져 가고 인기를 얻고 있으며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지위가 굳어지고 있다. 현지의 술은 야자수로 만든 것으로 선교사들의 눈을 찌푸리게 하였지만 그만두게 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이 술은 코코넛 야자수로 만든다(그리고 마시기 전에 안에 잠겨 있는 딱정벌레 같은 것들을 건져 내야한다).
  • 축제 및 행사
  • 키리바티는 모든 기독교 행사를 치르며 다른 행사로 7월 12일의 독립 기념일과 8월 4일 청소년의 날이 있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키리바티와 외교관계가 있는 나라들의 국민은 대부분 4개월까지 비자가 필요 없다. 다른 사람들은 영국 영사관이나 키리바티의 외무부에 직접 신청해야 한다.
    보건 위생: 안전하지 않은 식수로 인한 설사나 결막염, 십이지장충.
    시간대: 한국보다 3시간 빠르다
    전압: 240, 50Hz
    도량형: 미터법
  • 경비 및 환전
  • 통화: 호주 달러(A$)
    일반 경비
    저렴한 숙소: US$15
    중급 호텔: US$35-40
    고급 호텔: US$80이상
    저렴한 식사: US$2.50-5
    중간 가격대의 레스토랑 식사: US$12-20
    고급 레스토랑 식사: US$20 이상

    식료품점의 가격은 수입되기 때문에 호주나 뉴질랜드보다 조금 비쌀 테지만 풍부한 물고기들은 싸다. 검소하게 여행하면 해변으로 가서 놀거나 시장과 가장 싼 식당에서 먹으면서 하루 US$35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좀더 안락한 생활과 나은 호텔에서 자면 하루 US$60-70 정도 들 것이고 돈이 문제가 아니라면 가장 좋은 호텔에서 지내면서 푸짐하게 먹고 몇몇 투어를 즐기면서 하루 US$150 정도를 쓰게 될 것이다.타라와 이외의 마을에서는 돈을 바꾸거나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기힘들다. 사전에 잘 계획해서 타라와에서 환전하도록 하자.팁과 흥정은 거의 없다. 관습적으로 팁은 선물로 여겨지며 호의에 대한 답례로 제공되는 것이다. 주인이 가격을 제시하면 그 가격이 파는 가격이며 다른 가격을 제시하는 것은 무례한 일로 여겨진다.

  • 여행 시기
  • 11월에서 2월 사이의 우기를 제외하고는 어느 때도 상관없다. 이 시기 이외의 날씨는 덥지만 축축하지 않고 많은 열대 소나기의 영향도 크지 않다.
  • 주요 여행지
  • 타라와(Tarawa)
  • 타라와는 하나의 마을이 아니라 환상 산호섬으로 둘러싸인 여러 섬으로 도로가 작은 섬을 연결해 놓은 남부를 제외하고 배를 타야만 구경거리를 돌아볼 수 있다. 남동쪽 구석에 있는 본리키(Bonriki)의 국제 공항은 새로운 병원과 연못도 있다. 중앙 정부 관청, 의회,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중앙 우체국, 은행, 도서관과 기록소, 여러 가지 Air Kiribati Travel Agency와 같은 다른 공식 건물들은 모두 바이리키(Bairiki) 섬에 있다. 키리바티에서 가장 사람이 많을 베티오 섬(Betio Island)에는 항구와 조선소, 주 발전소, 감옥 등이 있다. 베티오는 도한 많은 전쟁 유물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1943년 11월 해군 공격 당시 격렬한 전투 결과 생긴 것들이다.
    암보(Ambo) 섬 골프장의 그린은 모래를 깔은 것이다. 타라와는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 중 하나로 2000년이 되면 홍콩과 비슷한 인구밀도를 가지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 타비테우에아(Tabiteuea)
  • 십자군이 11세기에, 성지 예루살렘에만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1880년대 하와이의 목사들이 이끈 북쪽의 기독교 세력은 성경의 이름으로 남쪽으로 내려와 비 1000여 명의 기독교인들을 죽였다(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남겨진 땅을 차지했다). 타비테우에아라는 이름은 '족장들은 금지된다' 라는 뜻이며 이 섬들의 사회는 높은 신분이 없는 평등 사회이다. 이 섬은 외곽 섬들 중에서 가장 크고 인구가 많은 곳이며 타비테우에아 사우스(Tabiteuea South)의 일부는 키리바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속한다. 전통 문화는 강하게 남아있으며 전통 춤, 노래, 주술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아직도 담당하고 있다. 타비테우에아는 비록 상업화된 여행지는 아니지만 잠잘 곳을 찾는다면 카톨릭 선교회에 부탁해 보자. 타비테우에아는 타라와에서 약 400km 떨어져 있으며 타라와에서 Air Kiribati로 가거나 Kiribati Shipping Corporation으로 갈 수 있다.
  • 부타리타리(Butaritari)
  • 부타리타리는 축축하고 숲이 우거진 곳으로 일년에 약 4m에 이르는 비가 쏟아지면 이 섬의 이름은 대충 '바다의 냄새' 라는 뜻이다. 시간이 집어들다 놓친 곳으로 묘사되곤 하는 부타리타리는 타라와에서 멀지 않지만 전혀 딴 세계 같은 곳이다. 이 섬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키리바티의 다른 곳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프라이한 빵나무이다. 근처의 마킨(Makin) 섬으로는 아름다운 암초를 지나 카누를 타고 돌아볼 수 있다. 이 섬에는 전쟁의 흔적들이 점점이 남아 있으며 그 중에는 추락한 전투기도 있다. 이곳에서는 1942년 주 전선인 솔로몬 제도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해 수행된 거짓 작전 중에 미 해군과 일본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실제 일어난 일과는 거리가 멀지만 헐리우드는 나중에 당시 전투를 Gung Ho라는 이름으로 영화화하였으며 로널드 레이건이 출연했다. 이곳의 가장 큰 마을인 부타리타리는 타라와를 제외하고 가장 큰 곳이며 대략 2000여명이 산다. 부타리타리는 타라와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져 있으며 베티오나 타라와에서 배로 가거나 타라와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갈 수 있다.
  • 아베마마(Abemama)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1889년 아베마마에 들렀으며 그의 아내는 이 섬을 위해 당연한 얘기지만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웃긴 깃발을 만들었다(왕관을 물고 있는 상어를 포함한). 영국은 1892년 아베마마 왕국을 보호령으로 만들었으며 이 섬 주민들은 운 좋게도 1911년 자신들의 섬을 영국 직할 식민지로 선포하였다. 전쟁 이후에는 거의 수도 역할을 하였지만 끝내는 주위 암초를 쉽게 지날 수 있다는 이유로 타라와가 수도가 되었다. 전쟁 유물은 아직도 섬 주위에 산재해 있으며 여행자를 위한 편의 시설은 없지만 몇몇 마을은 들러 볼 가치가 있다. 특이한 종류인 작은 노란색 '짖는' 개구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대부분은 모기를 없애기 위해 투발루(Tuvalu)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아베마마는 타라와 남서쪽 약 80km에 있으며 타라와에서 배나 비행기로 갈 수 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타부아에란(Tabuaeran)
  • 이 섬은 유럽인이 처음 발견할 당시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이었지만 고고학적 증거로 볼 때 유럽인 이전에 통가인으로 추측되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Fanning Island Plantations Ltd Company는 19세기에 이 섬을 소유하기로 결정하고 코프라를 얻기 위해 코코넛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작고 느긋한 이 섬 주민들은 1300여명이 조금 넘으며 연안을 따라 여러 곳에서 스노크링이나 다이빙, 수영을 즐길 수 있다. 타부아에란은 타라와에서 3130km 북동쪽에 있으며 자신의 요트를 가지고 있거나 얻어 타고 가지 않는 이상 가기 힘든 곳이다.
  • 키리티마스 섬(Kiritimati, Christmas Island)
  • 키리티마스 섬은 세계에서 가장 큰 환상 산호섬으로 내륙에는 많은 새들이 살 수 있도록 해주는 100여 곳이 넘는 호수나 연못이 있다. 동부 연안의 커다란 만은 Bay of Wrecks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많은 배들이 이곳에서 난파당했기 때문이다. 주요 개척지는 런던(London), 파리(Paris), 바나나(Banana)이다. 광대한 코코넛 농장은 코프라 산업을 지탱시키고 있으며 물고기 농장은 몇몇 호수에 세워져 있고 천일염 생산 공장은 성공적으로 바닷물에서 물을 뽑아내고 있다. 이 섬에는 낚시를 위한 설비나 호텔이 있고 5, 60년대에 있었던 영국의 수소폭탄 실험에 의한 나쁜 영향은 보고되지 않았다. 키리티마티는 키리바티의 육지 중 거의 반을 차지하며 타라와를 대신하여 경제 중심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이 검토 중이다. 이곳은 타라와에서 3260km 서쪽에 있으며 비행기나 배로 갈 수 있다.
  • 서던 라인(Southern Line) 제도
  • 몰든, 스타벅, 보스톡(Vostok), 카롤린(Caroline), 플린트(Flint)는 사람이 살지 않는 저지대 산호 섬들로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러 유럽인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19세기를 거쳐 다른 유럽인들이 재발견하여 이름을 붙인 곳들로 인산염을 채취하기 위한 광산과 코코넛 농장이 지어졌다. 몇몇은 성공적이었지만 다른 곳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보스톡을 제외하고는 인산염 광산의 상처들을 안고 있다. 몰든이나 카롤린에서 볼 수 있는 돌로 만든 대나 무덤으로 보아 두 섬은 폴리네시아 인들이 살았으며 5, 60년대에는 영국의 핵실험 당시 영국군이 주둔했다. 이 섬들에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인 요트이며 타라와에서 남동쪽으로 각각 3521km, 4043km 떨어져 있다.
  • 바나바(Banaba)
  • 바나바는 길버트 그룹에서 서쪽, 적도 바로 남쪽에 있다. 이 섬은 인산염 광산으로 거의 파괴되었으며 타는 하얀 바위에서 불쑥 튀어나온 황량한 산호나 점점이 놓여 있는 녹슨 광산 장비가 만들어 내는 기괴한 풍경만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차 대전 말 피지의 라비 섬(Rabi Island, 여기에서 다시 그들의 땅뙈기를 사야했다)으로 옮겨졌지만 채굴되지 않았던 초목들 가장자리에는 280여 명의 주민이 고향을 지키고 살고 있다. 섬 주민들은 아직도 열심히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 있으며 라비 섬에 있는 친척들과 연계를 유지하고 있다. 바나바는 생태학적으로 흥미로운 곳이지만 - 광산으로 인해 독특한 섬과 전통 문화가 파괴된 것을 포함해 - 별로 여행자를 위한 설비가 없기 때문에 들어오기 전에 섬 위원회에 허락을 얻을 필요가 있다. 이 섬으로 들어오는 정기 여객선 같은 것은 없지만 요트와 흥정을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바나바는 타라와 남서쪽으로 600km 떨어진 곳에 있다.
  • 레저스포츠
  • 키리바티에는 조직적인 레저 스포츠라고 할 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다이빙이나 낚시를 준비하는 것이다. 바다 속 풍경은 일반적으로 훌륭하며 바다 속 생물들은 다이빙 마스크를 쓰고 보건 낚시 바늘로 느끼건 야생 그대로이다. 몇몇 회사들이 장비와 배를 빌려주며 적어도 한 곳의 큰 회사가 사우스 타라와(South Tarawa)에 있다. 서핑은 타부아에란 섬이 훌륭하다고 한다.
  • 키리바티로 가는 길
  • 피지의 수바(Suva)를 경유해 키리바티로 비행기를 이용해 갈 수 있으며 Air Tungaru나 Marshall Islands Airlines로 푸나푸티(Funafuti), 투발루(Tuvalu)에서 갈 수도 있다. 호놀룰루에서는 직접 갈 수 있다.
  • 국내 교통편
  • 커다란 섬들은 활주로를 갖추고 있으며 타라와에서 비행기가 들어온다. 여객선은 더 조그만 섬들까지 운행된다. 사람들이 자주 가지 않는 여행지들로 가려면 자신의 요트를 가지고 있거나 태워줄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