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IRELAND)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가 있는 아일랜드는 서유럽 국가 가운데 인구 밀도가 가장 희박하고 산업화도 덜 되어, 한마디로 가장 오염이 덜 된 국가라 할 수 있다. 푸르고 유쾌한 한가로운 분위기의 나라 아일랜드.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웃음 진 얼굴과 술집마다 넘쳐나는 즐거운 소음들 뒤로는 유럽에서도 가장 길고 험난하고 비극적인 역사가 숨어있다. 이 나라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석기 시대의 무덤, 링 포츠 (Ringforts- 흙, 목재 혹은 돌로 지어진 원형 요새), 옛 사원과 성, 그리고 19세기 거대한 조지언 건축물 등을 둘러보면 쉽게 알게 된다. 한편, 이웃 나라 영국과의 오래고도 긴 불편한 관계를 일깨워주는 많은 흔적들을 통해 이 나라의 비극을 어렵지 않게 느끼게 된다. 아일랜드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하고 아름다운 자연(드넓은 푸른 초원, 무시무시하게 대서양으로 질주하는 거대한 절벽, 서쪽의 바위 많고 황폐한 지역 등)이며, 박물관, 성, 교회 유적들이 여기에 더해 아일랜드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 통계 자료
  • 정식국명 :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 아일랜드(영국의 일부)
    면적 : 84,421 평방 km/52,341 평방 mi (아일랜드공화국: 70,282 평방 km/43,575 평방 mi 북아일랜드 : 14,139 평방 km/8,766 평방 mi )
    인구 : 520만 명 (공화국에 360만 명, 북아일랜드에 160만 명)
    수도 : 더블린(Dublin :인구150만 명)
    인종 : 아일랜드인
    언어 : 영어, 아일랜드어
    종교 : 공화국 - 95% 로마카톨릭, 3.4% 신교, 북아일랜드 - 60% 신교, 40% 로마카톨릭
    정체 : 민주주의
  • 지리 및 기후
  • 아일랜드는 32개의 주(county)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중 26개가 아일랜드(아일랜드 공화국)에, 6개가 북아일랜드에 속한다. '남쪽'이라 불리고는 있어도 공화국의 최북단은 '북쪽'의 어느 지역보다도 북쪽에 있다. 섬의 크기는 84,404평방km로, 남북으로 500km, 동서로 300km 뻗어 있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가자면 둘레는 5630km. 아일랜드 중부 지방은 대개 평평하고 기름진 농작지 이다. 서쪽으로 갈 수록 땅은 척박해지지만 볼거리는 더욱 많아진다. 해안으로 가면 기암절벽과 절묘한 산이 웅장함을 과시한다(남서부의 카란추오힐 Carrantuohill은 1041m 높이). 샤넌만 Shannon estuary과 골웨이만 Galway Bay은 서해안에서 가장 깊은 만은 형성하고 있고, 아일랜드의 가장 긴 강인 샤넌강은 259km를 흘러 리머릭시 바로 서쪽을 지나 샤넌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일랜드의 강과 호수에는 연어와 송어 등의 물고기들로 가득하고, 섬에는 아일랜드 산토끼나 아일랜드 흰담비 등을 포함해 30-40종의 포유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섬에는 380여 종의 새들이 있는데, 특히 해안에는 무수히 많은 바다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OPW(Office of Public Work)에서는 공화국 내에 5개의 자연공원과 75개의 자연보존지역을 선정해 관리하고 있다 : 북아일랜드의 National Trust 역시 26개 자연보존지역을 감독하고 있다. 습지대에 대한 보호관리는 최근 아일랜드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아일랜드는 기후가 온화한 편이다. 1, 2월 평균 기온은 4-7℃정도. 7, 8월 평균 기온은 17-20℃. 5, 6월이 가장 화창하고 12월이 가장 흐리다. 아일랜드 주변의 바다는 북대서양 조류와 걸프 해류 덕택에 위도에 비해 놀랄 만큼 따뜻하다. 그러나 변덕이 심한 기후로 한여름에도 추운 날씨와 갑작스런 비에 대비해야 한다. 아일랜드에는 비가 많이 온다. 가장 건조한 곳도 일년에 150일 정도의 비는 온다. 일주일 내내 비가 오는 때도 있다. 연 강수량은 약 100cm로, 비에 관한 지역적인 용어나 유머가 많다. 예를 들면 '부드러운 날 soft day'은 비오는 날을 말하며, 우스갯소리로 벨파스트 외곽의 캐이브 힐(Cave Hill)이 안보이면 비가 오기 때문이고, 보이면 곧 비가 올 징조라고 한다. 그리고 우산을 가지고 다니건 안 가지고 다니건 젖기는 마찬가지라고들 한다.
  • 역사
  • 수많은 석기 시대 유적은 아일랜드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수도원의 잔해들과 둥근 탑들, 그리고 무너져가는 교회당들은 그에 못지 않은 기독교적 전통의 뿌리깊음을 보여준다. BC 300년경 맹렬하고 기세 좋은 켈트 족 군사들과 모험가들이 유럽 대륙으로부터 아일랜드에 도달해 BC 100년까지 머물렀다. 로마인이 영국을 침공했을 때, 웨일즈 너머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기울어 가면서 아일랜드에도 유럽문명이 들어와, 5세기경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중세 암흑기 동안 아일랜드는 성자들과 학자들의 땅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이 나라의 많은 수도원들에서는 열성적인 수도사들의 손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성경의 필사본들이 계속 만들어져 왔고, 그 중 일부는 오늘날까지 남아 그 정열을 짐작하게 한다. 8세기 말부터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이 푸르고 온화한 땅에 정착할 때까지 부유한 아일랜드의 수도원들은 바이킹의 약탈대상이 되었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전성기에 더블린(Dublin), 워터포드(Waterford), 리머릭(Limerick)등지를 점령했었지만, 결국 1014년 클론타프(Clontarf) 전투에서 아일랜드의 전설적 영웅 브라이언 보루Brian Boru에게 대패했다.
    영국의 침략
    1169년 힘을 키워가던 아일랜드 왕조에 두려움을 느낀 헨리 2세가 병력을 아일랜드로 급파하면서 노르만인의 영국 정복은 아일랜드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이것이 바로 오랜 영국-아일랜드 관계의 시작이 된다. 그러나, 이전 바이킹들과 마찬가지로 영국계 노르만 침입자들도 정착 후로는 점차 융화되어 갔고, 영국인들의 영향력도 점차 패일(Pale)이라 불리는 더블린 주변의 지역으로 물러났다. 여기서 'beyond the pale'(범위 밖에)란 관용어구가 생겨났다고 한다. 1500년경, 영국의 헨리 8세는 쉽게 굴하지 않는 이웃나라 아일랜드에 영국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시 행동을 개시했고, 그의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1세때 두 나라간의 갈등은 보다 심각해진다.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들은 심하게 탄압당했고 열성적 개신교 프로테스탄트들이 카톨릭 신자들로부터 몰수한 땅에 이주되었다. 영국군대는 계속되는 반란을 진압하였으며 1607년에 아일랜드 왕실은 프랑스로 건너가게 되었다. 종교적 갈등은 점점 심각해졌고 1641년에는 카톨릭 신자들이 얼스터(Ulster)에서 반란을 일으켜 프로테스탄트 정착민을 무참히 학살했다. 그러나 40년대가 채 저물기 전, 영국의 청교도 전쟁이 올리버 크롬웰의 승리로 끝나고, 카톨릭을 옹호했던 찰스 1세가 패배하자 구교도의 나라 아일랜드에는 다시 한번 피 바람이 분다. 크롬웰은 1649년부터 종교적 광기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날뛰어 아일랜드 전역을 피바다로 물들이며 살육을 행했다. 전쟁에서 패한 아일랜드인들은 서인도 제도에 노예로 끌려가거나, 땅을 빼앗긴 채, 거친 불모지 서아일랜드로 쫓겨났다. 그 후 10년이 채 안되어 1660년의 왕정복고 시대가 열리고 찰스 2세가 왕좌에 오른다. 그는 심적으로 카톨릭 지지자였으나 신교도들의 강력한 견제로 뜻을 펴지 못한채 1685년 동생 제임스 2세에게 왕권을 물려준다. 제임스 2세의 보다 적극적인 카톨릭 옹호는 영국 프로테스탄트의 강력한 반대를 불러일으켜 결국 그는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그는 신교도인 자신의 딸 메리와 남편인 오렌지고 윌리엄이 이어받은 영국 왕좌를 되찾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군사를 일으키려 한다. 결국 아일랜드는 영국 왕좌를 위한 싸움터가 된 것이다. 제임스 2세는 데리(Derry)의 포위공격 지연으로 꾸물거리다가 1690년 보인(Boyne)전투에서 패배하고 만다.
    18세기 초, 아일랜드의 억눌린 카톨릭 세력은 겨우 국토의 15%만을 차지하고 살며 일, 교육, 종교, 땅의 소유 등에 있어서 온갖 잔인한 제한을 겪어야 했다. 미국 혁명(1775-1783)과 프랑스 혁명(1789)은 영국으로부터 좀더 공정한 대우를 바라던 아일랜드의 신교도와 카톨릭 교도 모두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종교 협상은 오래가지 못했고, 1798년의 프랑스 지원을 받은 월프 톤(Wolfe Tone)의 봉기와, 1803년의 이상주의적이기만 했던 로버트 에멋 (Robert Emmet)의 시도도 모두 끔찍한 실패로 돌아갔다. 1800년 Act of Union을 통해 아일랜드는 영국과 정치적으로 통합하기에 이른다.
    19세기 전반 다니엘 오코넬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아일랜드 독립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하는 듯했다. 카톨릭에 가해졌던 제제들의 상당수가 폐지되거나 축소되었다. 그러나 그의 활동 역시 실패했고 아일랜드는 더욱 큰 비극을 맞아야 했다. 남미에서 유입된 감자는 재배가 쉬워 급격히 늘어만 가는 빈곤한 아일랜드인의 주식이었다. 그러나 1800년에서 1840년 사이 인구가 4백만에서 8백만으로 급증하는 상황에서, 1845년과 1849년 사이에 감자 수확이 계속 실패하자 끔찍한 기근과 대규모 이민이 초래되었다. 이 재난기에 영국으로부터의 지원은 형편없었고, 미국으로 떠난 아일랜드인들의 생활은 비참의 연속이었다. 후에 재산을 모은 아일랜드계 미국 부호들은 독립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돌아오기도 했다. 2백만에 달하는 아일랜드인들이 20세기까지 계속된 기근과 이민의 결과로 죽거나 나라를 떠났고, 계속되는 이민으로 인구는 20세기에 들어서도 계속 줄어갔다. 19세기 후반 영국 의회는 마침내 아일랜드에 '자치권'과 어느 정도의 결정권을 주기 시작했으나 그 과정은 아주 길었고, 제 1차 세계 대전과 얼스터 사태가 이를 방해했다. 북아일랜드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던 신교도들은 자치권이 시행되면 카톨릭 국가에서 그들이 소수민이 될 것을 알고 이에 맹렬히 반대했다. 아일랜드는 1916년, 엉망이 되어버린 봉기만 없었더라면 느리게나마 평화적으로 타협을 볼 수도 있었다. 이 부활절 봉기는 아일랜드 식으로, 말만 거창하고 별다른 계획도 없었으며 결정적으로 대중의 지지도 받지 못한 것이었다. 영국의 반응 또한 무계획적이었다. 폭동이 진압된 후, 주모자들을 오랫동안 질질 끌며 처형해 오히려 그들을 순교자로 떠받들게 했고 급기야는 아일랜드 독립에 대한 국제적 지지 여론이 형성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독립의 길
    1919년부터 아일랜드 정치 운동 단체인 '신 페인 Sinn F in'('우리 홀로', 혹은 '우리 스스로'란 뜻)과 그 우익 군사 세력인 아일랜드공화국 군대(IRA)는 영국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벌였다. 진압을 위해 파견된 악명 높은 영국군 Black & Tans의 날로 심해져 가는 잔혹한 대응이 반영감정을 더욱 부추겼고, 피는 피를 불러 1921년 조약이 체결되기까지 비극은 그칠 날이 없었다. 조약에는 수많은 조건이 덧붙여졌고, 영국계 프로테스탄트 신자가 많이 사는 북아일랜드 6개국은 독립에서 제외되자, IRA 지도자인 마이클 콜린즈는 '나는 내 사형 집행 영장에 서명했다.'고 말했고, 그 후 이 협약을 받아들이려는 파와, 북아일랜드 6개 주가 모두 포함된 아일랜드 전체의 완전 독립을 위해 투쟁하겠다는 파 사이에 내란이 일어났다.
    분단 이후의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합리적인 타협의 길로서 동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 의견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쓰라린 내전이 계속되었다. 그 당시의 논점은 배제된 6개 주의 미래보다는 새로 태어날 나라의 지배적인 위상과 영연방으로서 영국 왕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1년도 채 안되어 콜린즈는 암살되었고. 내란은 곧 끝이 났다. 1923년 내란이 끝난 후, 거의 50여년 간 아일랜드 공화국의 역사는 그나마 평화로웠다. 조약에서 영국과 아일랜드를 계속 연관시키는 조항은 하나하나 폐기되었고, 1949년에는 아일랜드가 영국 연방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번영하는 농경 사회로서의 아일랜드의 전망 역시 사라져갔고, 제 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이민자 수도 줄어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일랜드 독립에서 배제되고 영국에 속해 있던 북 아일랜드의 6개 주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거기서 다수의 신교도들이 카톨릭을 권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시킴으로써 전권을 휘둘렀으며, 이 같은 'jobs for voys' 정신은 결국 1967년 비종파주의 민권운동을 발발시켰다. 카톨릭계 주민들의 콧대에 난폭하게 대립하던 신교도들은 결국 1969년 양측을 분리하기 위해 영국 군을 끌어들였고, 이에 반발해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던 IRA가 다시 일어나 하나의 아일랜드를 위한 투쟁을 벌였다(남쪽의 아일랜드 공화국은 이 투쟁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심각한 분쟁이 1970년대에 도처에서 터졌고, 1980년대에는 좀 잠잠해졌으며 1994년에 평화가 손짓했다. 1993년 12월, 영국과 아일랜드 공화국간의 다우닝가 선언은 영국이 아일랜드 분리를 유지시키는 '이기적인 경제, 군사의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발표였다. IRA의 정치체인 '신 페인'은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영국 정부는 '신 페인'과 직접 협상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북아일랜드의 평화를 위해서는 공화국 민족주의자들의 권리와 열망이 충족되어야 하고, 당연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평범한 신교도들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동시에 영국과의 연계를 약화시키려는 어떤 시도에도 IRA 식의 무력 저항으로 맞서겠다는 과격파 신교도들의 위협도 고려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1994년 8월에 있었던 IRA의 조건 없는 휴전 발표는 북쪽에서의 정치적 폭력 종식에 대해 희미하나마 희망을 던져 주었다. 준 군사 조직을 가진 신교도들이 10월 휴전에 응하자, 평화 유지의 전망은 지난 25년 간의 어느 때보다도 훨씬 좋아졌다. 영국의 군대 철수 의지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앞으로 전개될 아일랜드 역사에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아일랜드에서의 18개월간 평화로운 시간은 1996년 2월 어느 금요일 저녁 IRA에 의한 폭격으로 런던 동부 Docklands지역에서 많은 사상자와 재산피해를 내면서 무산되었다. IRA는 무기사용중지를 취소하고 연이어 런던과 맨체스터에 폭격을 가했다. IRA의 무기사용을 다시금 철회하면서 1996년 6월 Ulster의 미래에 관한 논의에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가운데 영국 대표자들과 Sinn Fein을 제외한 남북아일랜드 대표들의 회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아직 멀기만 한 문제 속에서도 협상과 진정한 평화의 가능성은 보이고 있다.
  • 경제
  • (에이레(Eire)에 국한됨)
    국내 총생산 GDP : US$ 2,817 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59,924
    연성장률 : 10.1%
    인플레이션 : 1.6%
    주요생산품 : 컴퓨터 소프트웨어, 정보공학, 식품, 양조업, 섬유, 의류
    주요교역국 :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 문화
  • 예술의 모든 장르 중, 아일랜드 사람들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야가 문학이다. 유명한 작가로는 오스카 와일드, 예이츠, 션 오케이시, 사뮤엘 베케트 등이 있다. 현재 영문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로디 도일이 있는데, 1993년 '패디 클락 하하하 Paddy Clarke Ha Ha Ha'로 '북커 상 Booker prize'을 받았다. 그의 초기 작품 'The Commitments'와 'The Snapper' 등도 베스트 셀러이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단편소설은 아일랜드 작가들의 특기로, 많은 작품집이 있다. Ulster 태생인 시머스 히니(Seamus Heaney)는 영국의 예츠 이후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으며 1995년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전통 악기 보드란(bodhran:염소가죽으로 만든 드럼)과 Uilleann파이프, 플륫과 바이얼린 등으로 연주하는 아일랜드 전통음악은 방문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일랜드 문화다. 거의 모든 마을에는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유명한 술집들이 있다. 아일랜드에서 잘 알려진 음악 그룹으로는 Chieftains, Dubliner, Clannad, Altan, Pogues가 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컨츄리 음악이나 팝, 락음악도 역시 즐기는데 유명한 아일랜드 가수/음악인으로 국제 무대에서도 인정받은 사람은 Van Morrison, Enya, Sinead O'Connor, Bob Geldof, U2, Cranberries 등이다.
    아일랜드의 건축은 고대 유적, 선사 시대 무덤, 폐허가 된 수도원, 무너진 요새 등 유구하고 극적인 역사를 상기시키는 유적으로 가득 차 있다. 몇 가지 건축용어를 알아보면, 카셸 cashel - 돌로 쌓은 래쓰, 혹은 링포트돌멘 dolmen - 고인돌하이 크로스 high cross - 보통, 성경 속 인물과 우화를 부조로 묘사한 커다란 기독교 돌 십자가 오그햄 스톤 ogham stone - 가장자리에 라틴 알파벳을 나타내는 직선을 새긴 4-7세기의 기념비 패시지 그레이브 passage grave - 고분으로 향하는 좁은 돌담길이 난 거석묘래쓰, 혹은 링포트 rath, ringfort - 처음에는 흙, 목재로, 나중에는 돌로 지어진 원형 요새 라운드 타워 round tower - 중세 수도원을 파괴했던 바이킹 침략자로부터 숨기 위해, 또는 망을 보기 위해 세운 큰 탑 종교는 아일랜드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거의 모든 사람이 구교도이거나 신교도인데, 남쪽의 95%가 카톨릭이고, 북쪽의 70%가 신교도이다. 카톨릭 교회는 남쪽에서 여전히 상당한 힘을 휘두르는데, 대단한 존경을 받기도 하고 비하되기도 하는 등 이중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 교회 출석은 정신적 체험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의무에 가깝다..콘돔 등의 피임기구가 일반화되긴 하였으나 유산은 불법으로 남아 있다. 국민투표 결과, 공화국에서는 1995년 9월 이혼을 인정하게 되었고 현재 합법화되었다.
    공식적으로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는 두 개의 언어가 쓰이고 있다. 영어가 대체로 쓰이지만, 여전히 갤타트(Gaeltacht)로 알려진 서부와 남부 아일랜드에서는 영어와는 전혀 다른 아일랜드어(갈릭어)가 쓰이고 있다. 갈릭어는 재미있으나 어려운 철자체계와 발음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 도로표지는 두 개 언어로 되어 있으나 갤타트 지역에서는 갈릭어로만 되어 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 관광객이 특별히 조심해야 할 금기는 거의 없다. 단, 북쪽에서는 북아일랜드에 대해 언급하길 꺼린다. 반면 남쪽에서는 그런 점에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대화를 좋아하지만 언쟁을 싫어해서 대결을 피하려 한다(전통 아일랜드어에는 No란 말이 없다고 한다). 유머러스한 아일랜드 인의 회의론을 너무 심각히 여기지 않도록. 아일랜드 사회는 매우 동질적이며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민족이나 문화에 대한 경험이 적다. 특히 시골 사람들은 대부분 보수적이다. 보통 아일랜드 요리는 그 양념들만도 못하다든가, 아일랜드의 전통 요리법이 영국을 모방한 경향이 있다 - 즉, 축 늘어질 때까지 푹푹 익힌다 - 얘기를 듣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인들보다 그 버릇을 빨리 버려서 요즘은 음식 맛이 많이 좋아졌다고. 물론 잔뜩 익혀서 고기가 말라 비틀어지고, 야채가 죽이 되도록 끓인 요리를 원한다면 어렵지 않게 그런 음식점들을 찾아낼 수도 있다. 패스트 푸드는 전통적인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부터 최근의 햄버거, 피자, 케밥, 타코까지 다양하다. 이런 음식들은 미국 체인점이나 아일랜드 체인점에서 먹을 수 있다. 펍도 좋은 장소인데, 특히 점심시간에는 오늘의 스프(대개는 야채 스프)와 맛있는 빵이 나와 경제적이다. 해물 음식점은 오랫동안 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었으나 상당히 좋은 곳도 있고, 좋은 채식 전문 식당들도 많다. 아일랜드 빵은 꽤 명성을 얻고 있지만 불행히도 대개의 B&B에서는 횐 빵을 주로 내놓는다. 아일랜드 스콘 Irish scones은 차와 함께 먹으면 훌륭한 간식이 된다. 펍에서도 스콘과 차를 판다. 아일랜드에서 음료는 라거 맥주나 흑 맥주같은 맥주를 말한다. 흑맥주(stout)는 더블린에서는 기네스 Guinness, 콜크에서는 머피스 Murphy's나 비미쉬 Beamish가 유명하다. 흑맥주 맛이 별로라면(한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다양한 종류의 생맥주도 있다. 스미스윅스 Smithwicks, 아이리쉬 하프 Irish Harp같은 맥주가 있으며, 버드와이저나 포스터스 Foster's, 하이네켄같은 수입 맥주도 많다(말만 수입 맥주지 아일랜드에서 만드는 것이다). 펍에서 음악을 들으며 기네스 맥주를 마시는 것이 가장 인기 있는 오락이다. '한탕 good crack'하러 펍에 간다는 말에, 마약 밀매자를 발견했다고 좋아할 건 없다. '한탕'이란 아일랜드 말로 즐거운 시간을 말한다. 친구들과 같이 가서 즐겁게 떠들며 온몸을 뒤흔드는 음악을 즐겨보자. 극장도 인기 있는 곳인데, '미디벌 뱅큇(medieval banquet'(옛 성에서 즐기는 아일랜드식 극장 레스토랑))도 점차 여행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 축제 및 행사
  • 아일랜드(IR)와 북아일랜드(NI)의 공통 공휴일은 새해 첫날(New year's Day),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3.17)), 굿 프라이 데이(Good Friday Day), 이스터 먼데이(Easter Monday)등이고 다른 휴일은 약간씩 다르다.
    5월의 휴일(IR : 5월의 첫째 월요일, NI : 5월의 첫째와, 마지막 월요일), 6월의 휴일(IR : 첫 월요일), Orangemen's Day(NI : 7.12. 12일이 일요일이면 다음 주 월요일), 8월의 휴일(IR : 첫 월요일, NI : 마지막 월요일), 10월의 휴인(IR : 마지막 월요일), 크리스마스, 성 스티븐스 데이(St Stephen's Day), 복싱 데이(Boxing Day(12.26)) 등이 있다.
    8월은 경마의 달로, County Kerry의 Tralle에서 경주가 있고 Dublin에서 Horse Show가 있다. 8월 첫 주말에는 Country Tipperary의 Thurles에서 아일랜드의 연중 행사인 락 페스티발이 열린다. 9월은 Cork에서 영화 페스티발과 벨파스트의 민속축제가 있는 달이다. 10월 Dublin에서는 연극 페스티발이 있고, County Galway의 Bllinasloe에서는 아일랜드 최대의 소와 말 시장이 열린다. 그리고 County Cork의 Kinsale에서는 아일랜드 미식축제가 벌어진다. 11월에는 Wexford에서 국제적 행사인 오페라축제가 열린다. 크리스마스는 비교적 조용한 행사를 치루게 된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무 비자로 여행할 수 있다.
    보건위생 : 특이사항 없음
    시차 : 그리니치 시간대 (한국이 아일랜드보다 9시간 빠르다)
    전압 : 220V, 50Hz
    도량형 : 임페리얼과 미터제 사용(도량형 환산표(영문)참조)
    관광객 : 연간 4백만 명
  • 경비 및 환전
  • 통화 : 아일랜드 파운드(또는 푼트(punt)

    일반경비:
    일반 경비
    저렴한 현지식사 : US$4-8
    중급 레스토랑 : US$10-20
    고급 레스토랑 : US$30이상
    저렴한 숙박 : US$10-20
    중급 호텔 : US$40-60
    고급 호텔 : US$70이상

    아일랜드는 일반적으로 비싼 편이나 지역마다 경비가 차이가 난다. 호스텔에서 묵고, 펍에서 간단한 점심을 하고 저녁은 해먹는다면 하루 US$25정도 예상된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면 경비가 더 들 것이다. 대부분 통화와 알려진 여행자수표는 쉽게 환전할 수 있고, 은행이 가장 환율이 좋다. 그러나 환전소가 영업시간이 더 길다. 많은 우체국에서도 환전할 수 있고 토요일 오전에도 환전이 가능하다. B&B나 작은 마을의 주유소를 제외하면 신용카드도 널리 쓰인다. 남쪽과 북쪽 모두 현금인출기는 많이 있다. 중급이상의 호텔과 레스토랑에서는 10-20% 정도의 봉사료가 붙지만 별도의 팁은 요하지 않는다. 봉사료가 없는 다른 곳에서는 계산서에서 올림 하여 지불하거나, 10% 정도 얹어 주기도 한다. 택시에서도 팁은 없으나 주고 싶다면 10%정도 줄 수 있다. 바에서의 팁도 필요치 않다.

  • 여행 시기
  • 7월과 8월이 가장 따뜻한 계절이며, 낮 시간도 길다. 하지만 그런 만큼 관광인파와 비싼 경비, 힘든 숙박 구하기를 예상해야 한다. 겨울은 한가한 계절이기는 하지만 비참한 기후를 맞이할 수 있다. 낮은 짧고, 관광시설들도 많이 문을 닫는다. 6월이나 9월에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것이 최상의 조건일 것이다. 기후는 연중 최고이며, 덜 붐비고,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는 때이니.
  • 주요 여행지
  • 더블린(Dublin)
  • 아일랜드 공화국의 수도이자 남. 북을 망라해 이 섬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인 더블린은 빈부가 혼재하는 한마디로 단정짓기 어려운 도시이다. 우아하고 부유해 보이는 죠지 왕 시대의 광장 옆으로는 아름다움이란 사라 진지 오래인 듯한 궁색함이 맞닿아 있고, 더블린의 길고 번잡했던 역사에는 아직 현대적 발전의 시기는 도래하지 않은 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더블린은 흥미롭고 다양한 풍모를 가진 곳이다. 누구든지 쉽게 좋아하게 되는 편한 도시이며 아일랜드 여행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도시는 리피(Liffey)강을 경계로 부유한 남쪽과 상대적으로 빈곤한 북쪽으로 가지런히 나뉘어있다. 바이킹 시대와 중세기에 남부가 먼저 발전되었기 때문에 이후 조지안 시대의 호사로운 건물들은 주로 북쪽에 들어섰다. 그러나 강북의 발전이 정점을 넘어서자 다시 강남이 개발되었다. 강북에서 관광객이 알아두어야 하는 중요한 길은 쇼핑가인 O'Connell St와, B&B가 많이 들어서있는 Gardiner St이다. 대부분의 호스텔이 여기 있다. Connolly 역은 약간 동쪽에 있다. 주요 버스 정류장은 Gardiner 거리 남쪽 끝에 있는데, 이 거리는 북쪽으로 갈수록 황폐하다. 강 바로 남쪽에는 오래된 Temple Bar 지역과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가 있다. Nassau St는 칼리지 남쪽 끝을 따라 있으며, 보행자 전용으로 꾸민 Grafton St는 강남의 쇼핑가이다. 다른 아일랜드 도시처럼 이 곳도 몇 블록마다 거리 이름이 바뀐다.
    국립 박물관은 청동기, 철기 시대 유물, 중세 금속 공예품 등의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가 볼만한 박물관이다. 그 외의 전시품은 1916년 부활절 봉기를 비롯한 독립 투쟁에 관한 것이 많다. 자연사 박물관은 근처의 Merrion St에 있는데, 뼈, 박제 둥을 소장하고 있다. 더블린 시립 박물관(Civic Museum)에는 더블린 시에 관한 전시물들이 있다. 체스터 비티 도서관(Chester Beatty Library)에는 동양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다. 더블린 작가 박물관(Dublin Writers Museum)은 시립 현대 미술관 옆 파넬 광장에 있으며, 문화 중심으로서의 길고 오랜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다.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에는 아일랜드미술이 주로 소장되어 있다. 강의 북쪽, 파넬 광장 북쪽에 있는 현대 시립 미술관(Municipal Gallery of Modern Art)과 휴 레인 미술관(Hugh Lane Gallery)은 현대 아일랜드의 훌륭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더블린 하늘을 얼핏 보면 성당이 이 도시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성당은 지겹도록 볼 수 있는데, 그 중 일부는 시간을 내어 가볼 만 하다. 크라이스트 처치 광장에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 성당(Christ Church Cathedral)은 1038년 목재로 지어졌는데, 1169년 돌로 재건되었다. 남쪽 통로에 전설적인 스트롱보우의 기념물이 있다. 성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의 건립은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190년에 지은 것이다. 이 건물은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으로 그는 1713년에서 1745년까지 성 패트릭 성당의 사제장 이었다. 스위프트와 그가 사랑한 스텔라는 여기에 묻혔다. 그 옆에 마쉬 도서관(Marsh's Library)이 있다. 1701년에 건립했다. 성 미칸 교회(St Michan's Church)는 1095년에 건립되었고, 헨델이 메시아를 처음으로 연주했다는 오르간이 있다. 주요 볼거리는 지하 납골당에 있는 미이라. 더블린 성은 13세기에 지어졌으며 한 때 아일랜드 내 영국 세력의 중심지였다. 멋진 조지언 건축과 화려한 복도는 St. Stephen's Green 주변과 Merrion Square에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Kildare St에 있는 레인스터 하우스 Leinster House에서 회의를 갖는다. Dawson St에 있는 맨션 하우스 Mansion House는 시장의 거처인데, 1919년 독립선언의 장소다. O'Ccnnell St에 있는 GPO 빌딩은 기능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표다. 외관과는 달리 이 건물은 1916년, 부활절 봉기때 완전히 파괴되었었다. 리피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은 Ha'penny Bridge, 반 페니(halfpenny)의 통행료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1792년에 지어진 회색의 무시무시하게 생긴 킬마인햄 감옥(Kilmainham Jail)건물은, 아일랜드 독립 투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1916년 부활절 봉기에 이은 사형집행장 이기도 했다. 시민 전쟁 기간에도 운명적인 역할을 했는데 이런 전설적인 무용담은 유적지를 돌아보고 시청각 교재를 봄으로써 더욱 실감나게 알 수 있다. 기네스 맥주 양조장(Guinness Brewery)의 호프 스토어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호프 양조 창고인데 방문객들은 기네스 시청각 교재와 거대한 기네스 박물관을 볼 수 있다. 이 외 피닉스 공원(Phonix Park)에 있는 더블린 동물원(Dublin Zoo)과 마리노(Marino)에 있는 카지노도 볼 만하다.
  • 코크 시티(Cork City)
  •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2번째로 큰 도시지만, 그 크기 때문에 이곳에 들르는 것은 아니다. 코크는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내어 둘러 볼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이다. 호스텔의 수가 이 사실을 입증해 준다. 이 도시는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롬웰의 침공에도 살아남았으나 1690년 윌리엄 왕에게 함락되었다. 그 후 아일랜드 독립 투쟁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는데, 1920년 한 시장은 블랙 앤드 탄스에 의해 살해되었고 그 후계자도 단식 투쟁과 시의 화재로 죽었다. 오늘날 코크는 더블린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으며 시민들의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중심가는 리강(River Lee)의 두 수로 사이에 있는 섬에 있다. Shandon 지역은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산책하기에 좋은 지역이다.
    코크의 대표적인 교회로 중심가 남쪽에 인상적인 세인트 핀바스 성당(St Finbarr's Cathedral)이 있다. 근처에 17세기 엘리자베스 요새(Elizabeth Fort)의 부분이 남아 있다. 강 북쪽에 있는 세인트 앤스 샨던(St Ann's Shandon) 탑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멋있고 거기서 유명한 샨던 종을 울려볼 수도 있다. 유명한 곡을 연주하도록 악보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교회 근처 코크 버터 시장(Cork Butter Market)에는 현재 샨던 공예품 센터(Shandon Craft Centre)가 있다. 콜크 박물관(Cork Museum)은 가 볼만한 곳이다. 블라니 성(Blarney Castle)에서는 아무리 점잖은 관광객이라도 블라니 스톤 Blarney Stone(이 돌에 키스하면 언변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다)을 보는 순간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할 것이고, 한동안 그 자랑을 하느라 정말로 수다쟁이가 될 것이다. 이 이름은 바로 엘리자베스 1세가 지어낸 것인데, 신하인 블라니 경이 늘 행동은 하지 않고 끝없이 지껄여 대기만 하는데 화가 나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뒤쪽으로 구부려 신성한 돌에 키스하려면 키가 무척 커야 한다. 성은 시의 북서쪽으로 8km 떨어져 있다.
  • 워터포드 시티(Waterford City)
  • 워터포드는 분주한 항구이며 상업지대이기도 하지만 바이킹과 노르만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설적인 Norman Stronbow가 1170년 이 시를 점령했고 그 다음 세기에는 아일랜드 최강의 도시로 성장했다. 오늘날은 번성하는 워터포드 크리스탈 공장으로 유명하다.
    바이킹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긴 강변 부두와 그 뒤 좁은 골목이 그곳이다. 구 시가지의 성벽이 여러 군데 남아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리지날즈 타워(Rigihald's Tower)로 1003년에 세워진 것이다. 1240년 설립된 프렌치 처어치(French Church)는 16세기에 병원으로 쓰였다. 폐허로 주저앉은 후 18세기에 프랑스에서 피난 온 위그노들이 이곳을 사용해서 프렌치 처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크라이스트 처치 성당(Christ Church Cathdral)은 존 로버츠가 18세기경 지은 건물 중 하나로 역시 중요한 장소이나 불행히도 일반에는 잘 공개하지 않는다. 마을 어귀에 있는 워터포드 크리스탈 공장(Waterford Crystal Plant)관광은 40분 정도 소요되며 공식적으로는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하나 가면 바로 견학할 수도 있다. 솜씨 좋은 장인(모두 남자)이 유리를 불거나 자르려면 5년간의 숙련을 해야 한다. 생산품의 80%가 미국에 수출된다.
  • 골웨이 시티(Galway City)
  • 아일랜드에서 가장 흥미롭고 활기찬 도시 중 하나로, 도시 자체도 흥미롭고 주위의 오래된 해안 휴양지에 볼만한 곳들도 많다. 환상적인 아란 군도로 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골웨이의 촘촘하게 들어앉은 중심가는 코립 강(Corrib River)주위에 모여있다. 강어귀 남쪽에 역사적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현대화된 클래다(Claddagh)지역이 있고 약간 남서쪽으로 B&B가 많은 솔트힐 Salthill 해안 휴양지가 있다. 골웨이에는 돌아다닐 곳이 많은데 'Midevae Galway'라는 도보 가이드를 갖고 있으면 볼만한 곳을 찾아 다니는데 매우 편리하다. 중심가의 세인트 니콜라스 칼리지에잇 교회(St Nicholas' Collegiate Church)는 1320년 건립된 것으로 볼만한 무덤이 많다. 강 건너 세인트 니콜라스 성당(St Nicholas Cathdral)은 거대하고 인상적인 건물로 1965년에 열었다. Linch'Castle은 현재 Allied Irish Bank의 지점으로 쓰이는데 14세기 건축물이다. Linch는 15세기에 골웨이 시장이었는데 그의 아들이 살인죄로 체포되자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사형집행을 스스로 실행해 정의를 수호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골웨이의 구 시가지 성벽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강 옆의 스페인 아치(Spanish Arch)는 아직 남아 있다. 입구에 박물관이 있지만 특별한 건 없다. 쾌적한 강변 길을 따라 가면 상류쪽에 성당과 연어 어살(연어를 잡기 위한 장치)이 있다. 제때에 가면 연어가 산란을 위해 어살을 뛰어 상류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 벨파스트(Belfast)
  • 방송을 통해 잘 알려진 이곳의 테러(모두가 카톨릭과 신교도의 분쟁으로 인한 것이었다)만 아니라면 이곳은 그저 북아일랜드의 수도로써 한물간 산업 도시 정도로 여겨졌을 것이다. 지난 1960년대 말 이후 벨파스트를 분열시킨 분쟁은 또 다른 불안을 형성했었지만 요즘은 대체로 평안한 분위기이다. 뉴스를 통해 들은 선입견을 배제하고 본다면 이 도시는 꽤 활력 있는 곳이다. 더블린 보다도 훨씬 큰 쇼핑센터가 있고 거리에는 멋진 차들이 달리고 있다. 그러나 블랙 택시를 타고 서부 벨파스트에 있는 근로자 거주지역을 가로질러 가면 이 도시의 다른 면모를 볼 수도 있다.
    도심의 중앙에는 육중한 시청 건물이 있고 이것이 시내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한다. Great Victoria St가 중심부로부터 남쪽의 Queen's University, Botanic Garden, Ulster Museum (Goden Mile로 알려져 있는 지역)로 뻗어있다. 도시의 동쪽으로는 Lagan 강이 흐르고 Harland & Wolf 선착장에 있는 큰 기중기가 표지가 된다. 타이타닉 호가 건조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산업혁명 후 벨파스트는 급속한 성장으로 오늘날의 산업도시가 되었다. 벨파스트 시청은 이 도시의 상징이고('즐거워 보이지 않는 빅토리아 여왕'으로 정문이 장식되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Prince Albert는 피사의 사탑 같이 비스듬한 시계탑으로 벨파스트의 볼거리이다. Entries off Ann and High Sts라 불리는 좁은 통로와, 오래되고 멋진 그랜드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흡사 박물관 같은 Crown Liquor Saloon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얼스터 박물관Ulster Museum은 대학 근교의 식물원Botanic Garden 내에 있어, 북아일랜드나 벨파스트에 관한 멋진 전시를 하며 정기적으로 특별 전시회를 가진다. 스페인 무적함대의 Girona 난파 유적물은 전시관의 하이라이트이다. 카톨릭 구역인 Falls St와 프로테스탄트 구역인 Shankill Rd는 '종교분쟁'이 심했던 곳인데 여전히 잿빛으로 음산하다. 종교적 갈등이 심한 이 지역을 방문할 때는 'black taxi'(런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이 택시는 도심 터미널로부터 각각의 도로를 버스처럼 운행하고 있다. 얼스터 민속 박물관은 벨파스트에서 가장 볼만한 곳으로 도심으로부터 11km(7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테라스 하우스부터 지붕을 이은 초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옛날 건축물을 볼 수 있다. 교통 박물관에서는 괴상한 SCI 시험수직이륙 비행기와 De Lorean car뿐만 아니라 얼스터와 관련된 모든 종류의 수송기를 볼 수 있다.
  • 데리( Derry)
  • 북아일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바로 데리다. 데리라는 이름에는 정치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더블린 즉, 남아일랜드에서는 이곳을 데리라고 부르므로 그곳에서 오는 도중 도로에서 데리라는 표지판을 볼 것이다. 그러나 벨파스트에서는 영국의 영향을 받아 이곳을 런던 데리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정치나 종교에 상관없이 그냥 데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원래 이곳의 이름은 아일랜드어로 Doire이며 떡갈나무 숲을 의미한다. 데리 앞의 런던이란 말이 붙은 것은 윌리엄 3세와 제임스 2세간의 싸움에서 이 도시가 가졌던 중심적인 역할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싸움에서 바로 '항복하지 않는다'는 뜻의 '노 써렌더(No Surrender)' 정신이 북아일랜드 어휘에 들어왔다. 바로 그 무대가 데리인 것이다. 1888년 제임스와 카톨릭 교도들의 군사행동으로 데리의 문들은 단단히 폐쇄되었고 이로써 데리의 대봉쇄가 시작되었다. 105일동안, 데리 시민은 폭격과 질병과 기아를 견뎌 냈는데, 지원 선박이 폭격을 뚫고 포일강으로 들어와 포위를 뚫었을 때 이미 주민 3만 명 중 1/4이 사망했었다. 오랜 종교분쟁의 혼란기는 윌리엄 왕에게는 군대의 힘을 늘리는 시간적 여유를 주었고 1690년, Boyne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 최근에는 장기집권과 종교분쟁으로 분쟁 지역이 되었다. 1969년 카톨릭 보그사이드 지역에 대한 공격은 다수의 영국군 군대를 출동시킨 주요인이 되었고 1972년, 데리의 '피의 일요일' 사건은 군대와 카톨릭 시민들과의 결정적인 분열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 데리는 훨씬 평화로워졌다. 비록 종종 긴장이 감돌기도 하지만. 오랜동안 데리의 중심부가 되었던 곳은 포일 강의 서쪽 둑에 있는 작은 성곽 안이다.
    Catholic Bogside 지역은 이 성벽 아래쪽에서 서쪽으로 가야 한다. 데리의 성곽은 유럽에서도 아마 가장 멋질 것이다. 죽 뻗은 성벽은 군대가 사용하여 접근할 수 없거나 폐쇄된 동안 쇠퇴하거나 관심밖에 있었다. 성벽은 16013--1618년 사이에 축조되었다. 타워 박물관은 선사 시대에서 현대까지, 도시의 역사를 보여준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심의 북동쪽에 있는 O'Doherty's Tower에 있다. 멋진 Guildhall은 원래 1890년에 세워졌으나, 1908년 화재 이후 재건되었고 1972년 IRA(아일랜드 무장독립군)에 의해 폭파되었다. 도성 밖에 있으며 스탠드 글래스 창문으로 아주 유명하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버른(The Burren)
  • 클레어 주(County Clare)에서 가장 훌륭한 관광지로, 험하고 폭풍 치는 대서양 연안에는 험준하고 바위 많은 절벽이 뻗어 있다. 험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고대 고인돌, 링포츠, 원탑, 하이크로스 등 아일랜드의 길고 다양한 역사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곳이다. 기막힌 경치가 있고 멋진 호스텔, 최고의 뮤직 펍이 있다. 자전거 타기도 좋은 곳이며 산책로도 많다.
  • 클론맥노이스( Clonmacnois)
  • 오팔리 주(County Offaly)에 위치한 이곳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수도원 지대이다. 샤넌강을 굽어보는 멋진 장소에 있고, 수많은 초기 교회들과, 십자가, 둥근 타워, 조각들이 이곳의 풍경이다. 많은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고, 주변의 습지대는 많은 야생식물과 조류들의 서식처이다. 이곳은 대중교통으로 연결되지 않으므로, 인근 마을인 Shannonbridge까지 와서 히치 하이킹이나 택시를 타야 한다.
  • 코네마라(Connemara)
  • Galway주의 북서쪽이 코네마라로 알려진 곳으로, 여전히 갈릭어가 쓰이고 아일랜드의 독한 술이 조심스럽게 밀조되고 있는 황량하나 아름다운 지역이다. 영어 표지판이 없어 약간 혼란스러울 것이다. 클리프든(Clifden) 항구는 코네마라 지역의 중심지이다. 버스는 Clifden에서 출발해 Oughterard와 Maam Cross를 거쳐서, 또는 Cong와 Leenane을 거쳐 Galway와 연결시키는 버스가 매일 3차례 있고, Inishbofin섬으로 가는 페리의 발착지인 Cleggan으로는 한 차례 있다.
  • 아란 군도(Aran Islands)
  • 황량하고 바람 휘몰아치는, 무척이나 분위기 있는 아란 군도는 점점 더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다. 육지로 잇는 빠르고 편리한 교통 수단, 수많은 B&B와 호스텔, 산악자전거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기막힌 경관뿐 아니라 고대 기독교와 기독교 이전 건물들도 많다. 바위 많은 지형이 황량해 보이지만 군도에는 내륙지방보다 훨씬 먼저 사람들이 살았었다. 기독교 전파 이전 시대에는 이곳이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내륙보다 농사짓기 쉬웠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이 군도에도 구석진 바위투성이 땅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돌 벽들이 쌓여 있다.이 곳은 세 개의 주요 섬들로 이뤄졌는데, 대부분의 관광객이 찾는 곳은 길고 좁은 Inishmor이다. 이 섬은 북쪽 해안에서부터 경사져 올라가 있다. 남해안은 파도가 심한 대서양이다 Inishmaan과 Inisheer는 이보다 작고 관광객도 적다. 많은 관광객이 군도 여행을 하루 코스로 잡지만 Inishmor 하나만으로도 이틀 일정을 잡아 돌아 볼 만 하다. 군도는 7, 8월에 매우 붐벼 피하는 것이 좋다.
    Inishmor에는 4개의 인상적인 돌 요새가 있다. 2000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군도로 가는 중도에 반원형 Dun Aengus가 가파른 남쪽 절벽 끝에 아슬 아슬하게 앉아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이다. Dun Angus를 약간 지나면 Dun Eoghanachta가 나오고, Kilronan으로 돌아가는 중간에 Dun Eochla가 있는데 둘 다 더 작고 완전히 둥근 링포츠다. Kilronan 정남쪽, 바다 쪽으로 튀어 나온 곶에 아슬아슬하게 웅크리고 있는 것이 Dun Duchathair이다. 돌로 지은 많은 교회 유적이 섬의 수도원 역사를 말해준다. 교회 마당에 높은 십자가를 가지고 있는 작은 St Kieran's(Teampall Chiarain)가 Kilronan 근처에 있다. Kilmurvey를 지나서는 Seven Churches(Na Seacht dTeampail)의 잔해가 있다. Kilronan의 새로 지은 Heritage Centre는 군도의 경치와 역사를 소개한다. 다른 섬에도 돌벽, 교회터, 링포츠(돌이나 흙으로 만든 요새로 Inishmaan의 장엄한 Dun Conor와 Inisheer의 Dun Formna가 있다.), curraghs(전통적인 가죽 배), 펍이 많이 있다.
  • 레저스포츠
  • 도보여행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매력적인 레포츠이며, 나라 곳곳에는 완벽한 도보길이 나 있다(Kerry Way, Beara Way, Ulster Way, Wicklow Way 등). 싸이클도 훌륭한 여행수단이다(가끔 언덕지대가 나오기는 하지만). Mt Gabriel (407m/1335ft)과 Hungry Hill (686m/2195ft), Croagh Patrick (763m/2500ft)같은 곳은 훌륭한 등반지대이다. 아일랜드는 낚시로도 유명한데, 허가를 받아야 하며 특히 연어와 송어낚시에는 현지 라이센스가 있어야 한다. 아일랜드는 수상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좋은데, 써핑 장소로는 Easkey와 Barley Cove가 적당하다. 서해안은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스쿠버다이빙 장소로 꼽히며, 특히, Bantry Bay와 Dunmanus Bay, Inveragh Peninsula, Hook Head부근 등이다.
    항해는 아일랜드의 전통 스포츠로, 120곳 이상의 요트와 항해 클럽이 있다. 가장 대중적인 항해장소는 서해안으로, 특히, Cork Harbour와 Dingle Peninsula, 더블린 북부와 남부 해안, Lough Derg, Lough Erne, Lough Gill 등이다.
  • 아일랜드 으로 가는 길
  • 아일랜드로 가는 대부분 여행자들은 영국을 통한다. 런던의 4개 공항과 영국의 주요도시에서 더블린으로 항공이 연결된다.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는 아일랜드로 직항편도 있다. 출국세는 항공권과 함께 지불된다. 아일랜드와 영국을 이어주는 페리는 Dublin과 Holyhead(Wales) : Rosslare와 Fishguard, 그리고 Pembrok(Wales) : Belfast와 Liverpool : Belfast와 Stranraer(Scotland) 등이다. Cork와 프랑스의 St Malo, Cherbourg, Le Havre도 연결된다.
  • 국내 교통편
  • 아일랜드를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동차이다. 특히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멋진 장소들은. 하지만 렌트 비가 만만치 않다. 영국과 같이 아일랜드도 우측 핸들이다. 언뜻 보면 아일랜드를 돌아다니는 것은 매우 쉬워 보인다. 길이 많지 않고 땅도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는 있다. 가령 아일랜드에서는 A에서 B까지 가는 길이 직선일 경우는 드물며, 대중 교통 수단은 비싸고(특히 기차) 그나마 자주 다니지 않는다. 아일랜드는 너무 작아 비행기를 이용할 필요는 없지만, 더블린을 중심으로 벨파스트, 코크, 골웨이, 샤몽(Shamon) 등으로 연결하는 몇 개의 국내선이 있다. 또한 Aran 군도로 가는 데도 이용 할 수 있다. 비싸기도 하지만 기차는 그리 연결이 많지 않으며, 버스는 겨울철에는 많이 다니지 않는다. 많은 관광객이 자전거로 아일랜드를 탐험하고 있다. 유명한 관광지들이 대개 언덕지고 습한 지대에 많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에서의 자전거여행은 인기가 높고 시설도 잘 되어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