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Yugoslavia)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 곳곳의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는 태양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유럽인들을 강하게 유혹하였다. 하지만 6년 뒤 여행자들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유고슬라비아에서 해변에 누워 즐기는 행복한 시간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5년간의 내전으로 대부분의 해안선, 옛 도시, 여행객을 끄는 요소 등을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다시 여행객들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전쟁이 또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코소보(현지인들은 코소바로 부른다) 분쟁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명백하게 평화협정으로 조인되고, 파리, 베오그라드, 코소보의 프리스티나의 협상테이블에서 많은 대화가 있었지만 코소보 문제는 더 이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마침내 정치가와 외교관들의 협상은 결렬되고 세르비아의 휴전협정 위반을 문제 삼아 나토는 폭격을 시작했다. 세르비아 측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코소보가 그들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외국군대의 주둔을 허용하지 않았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세르비아와 나토 모두를 비난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발칸반도에서 20세기 이래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 통계 자료
  • 국명: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면적: 102,173평방km
    인구: 1120만명
    수도: 베오그라드 (Belgrade ? 인구 150만명)
    인종: 세르비아인 (63%), 몬테네그로인(6%), 알바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집시, 마쟈르족
    언어: 세르비아어(키릴문자: Cyrillic alphabet)
    종교: 세르비아정교회, 이슬람교, 로만카톨릭, 개신교
    정체: 공화국
  • 지리 및 기후
  • 유고슬라비아를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보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헝가리, 루마니아,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아드리아해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국토 면적(102,173 평방km)의 절반인 남부는 산악지대인 반면 북부는 강으로 갈라진 평야지대이다. 유고슬라비아는 과거에는 해안휴양지가 있었던 나라이지만 1991-96 사이의 내전으로 대부분의 해안선을 잃었다. 남아있는 150km의 해안에는 남부유럽 유일의 경관이 아름다운 피요르드와 몇 곳의 아주 긴 해변들이 있다. 전쟁의 여파로 유고슬라비아의 동물들은 원래 살던 불가리아로 달아났다가 지금은 피난처에서 돌아오고 있다.
    아드리아 해안지방과 남부지방의 지중해성 기후에서 북부와 내륙지방의 대륙성 온대기후까지 기후는 다양하다. 6월에서 8월 사이 여름 최고 기온은 평지와 해안에서 섭씨 26도 정도이지만 훨씬 더 더울 때도 있다. 반면 산악지대의 평균기온은 섭씨17도이다. 겨울철 산악지역의 기온은 영하 3도 아래로 내려가고, 매서운 바람이 자주 베오그라드에 불어 닥치지만 평지는 0 도보다는 약간 웃돈다. 평지에는 비가 잘 오지 않으며, 산악지대의 강우량은 평지의 약 3배이다.
  • 역사
  • 유고슬라비아 최초의 정착민은 일리안족(Illyrians)이며, 기원전 4세기에 켈트족, 그 후 100년 뒤 로마족이 뒤를 이어 정착했다. 서기6 세기 중반 슬라브족은 다뉴브강을 건너 발칸반도의 상당지역을 차지한다. 1217년 알바니아와 그리스북부의 많은 지역을 포함한 세르비아왕국은 비잔틴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지만, 1389년 오토만 제국은 단번에 세르비아를 침략하여 그 후 500년간을 지배한다. 19세기 전반 세르비아는 지속적인 투쟁의 결과 1878년 마침내 독립을 다시 얻는다.
    자치권을 얻자마자 세르비아 왕국은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1912년 1차 발칸전쟁에서 세르비아는 그리스, 불가리아와 함께 터키로부터 마케도니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에 가담한다. 1913년 2차 발칸전쟁에서 이들은 불가리아로부터 마케도니아를 빼았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세르비아는 서유럽과 동맹하여 알바니아에게서 코소보를 차지하였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를 침입하였고, 이는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전쟁이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야보디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등은 힘을 합하여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세운다. 하지만 이 이름은 왕국 이름에서 빠진 다른 국가들-보야보디나,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에게는 적합하지 않아서 명칭을 유고슬라비아로 바꾸었다.
    1941년 유고슬라비아는 그리스의 상당부분을 약속하는 독일에 유혹되어 파시스트삼국동맹에 조인한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인들은 이에 영향을 받지 않고 통치하던 섭정을 무너뜨리고 동맹에서 손을 뗀다. 히틀러도 역시 영향을 받지 않고 유고슬라비아를 침략하였고, 이 패전국을 조각 내어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불가리아에게 할양했다. 수 만 명의 세르비아인과 유태인이 새로이 구성된 크로아티아 괴뢰정부에 의해 대량학살 당하였다.
    유고슬라비아는 전쟁 시 빨치산의 치열한 투쟁 덕분에, 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유지하였고, 1945년 요시프 티토(Josip Tito)가 이끄는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등은 군주제는 제거되고 공화국의 지위를 보장받아 유고슬라비아는 연방공화국이 되었다. 티토는 그의 재임 시 서방이나 스탈린주의 소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초강대국 사이에서 절묘한 노선을 걸었다. 1980년 그가 죽은 후 대통령직은 9명의 선출위원회 중에서 교대로 맡는 집단지도체제로 바뀐다. 그러나 이것은 효율적인 지도체제는 아니었다. 1986년 알바니아를 반대하는 세력의 지지를 받은 열렬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슬로보단 밀로세비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권을 잡는다. 이민족의 피가 섞이지 않은 ‘위대한 세르비아’를 희망하는 그의 비젼은 1991년 6월 스스로 독립선언을 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주민들을 위협하였다. 밀로세비치는 반대자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연방군을 슬로베니아로 파견한다. 한편 EC는 재빨리 내전을 저지하려는 일환으로 제재를 가한다. 슬로베니아의 주둔군은 한 달 내 물러났지만 크로아티아에서 전쟁은 더욱 심해져서 1992년 1월 UN이 중재에 나서기 전에 이미 수 천명이 죽었다. EC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였고, 뒤이어 마케도니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또한 승인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1992년 4월27일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연방군에 의해 야기되었던 보스니아 유혈사태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그들의 국가 이름을 유고슬라비아라고 새로이 명명한다. 비록 모든 유고슬라비아 군대가 보스니아에서 철수했지만 연방군의80 %에 이르는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들은 계속해 남아있었으므로 전쟁은 계속된다. 1992년 UN안전보장이사회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철저한 제재계획을 통과시키고 통상금지를 감시하기 위해 전함을 파견한다. 1996년 말 유고슬라비아-크로아티아 평화협약이 조인되었고 보스니아는 세르비아와 회교-크로아티아로 나누어진다. 밀로세비치의 위대한 세르비아의 꿈은 실현되었다. 수 천명이 죽고, 아름다운 국토와 역사적 도시는 산산 조각나서 유고슬라비아의 관광산업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1998년 3월 코소보에서 다시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알바니아인이 다수인 이 지방에서 주민들이 독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유고슬라비아는 이을 알바니아인에 의한 테러리즘으로 간주하고 인종청소라는 낡은 방식으로 대처한다. 마을들은 초토화되고 수많은 알바니아인들이 죽었고 수천이 넘는 사람들이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협상그룹(미국, 영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또 다른 보스니아’를 염려해 새로운 무기 통상금지를 유고슬라비아에 내리지만, 그 효과는 별로 없었다. 세르비아의 억압은 지속되었으며, 이에 코소보 해방군은 응전한다. 1999년 초 나토는 폭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코소보 난민들의 이주는 계속되고 긴장은 여전히 감돌고 있다.
  • 경제
  • 국내 총생산 GDP : -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
    연성장률: 4%
    인플레이션: 20%
    주요산업: 기계 제조업, 야금술, 광업
  • 문화
  • 유고슬라비아에는 현대 예술의 소재가 많이 있다. 민족적인 모티브, 정치적 상징, 자극적인 텍스트 등을 사용하여 격앙된 유고슬라비아의 최근 역사를 다루는 예술활동이 활발하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갤러리 밖으로 나와 거리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발표한다. 일부 그룹은 공습으로 타버린 베오그라드에서 설치예술이나 ‘Phobjects’를 행했다. 작가들도 조국의 비극적 분위기를 의식하고 있다. 이보 안드리치(Ivo Andric)는 종교 간의 골을 다룬 Na Drini Cuprija란 작품으로 노벨상를 받았다.
    유고슬라비아 음악과 무용은 민족전통에 확고한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웃 불가리아의 그것과 유사하다. 가예데(gajde)는 큰 백파이프와 그 모양이 비슷한 악기로 비탄조의 유고슬라비아 노래에 기본이 된다. 이것은 켈트족이 침입한 4세기에 유래했다. 코소보의 소수민족 알바니아들인은 터키 음률에 좀더 가까워 발을 가볍게 두드리며 아라비아 악기를 연주한다. 한편, 집시댄서들은 세르비아 민속 금관악기밴드의 음률인 블레음악(blehmuzika)의 금속음에 맞추어 춤춘다. 몸칠로 바야지치 (Momcilo Bajagic)와 도르데 발라세비치(Dorde Balasevic) 같은 현대 음악가는 민속적인 주제에다 거리의 시와 재즈를 덧붙였다.
    유고슬라비아의 공식어는 세르비아어이다. 이 언어는 세르비아농민의 언어를 다듬고 체계화한 언어학자이며 언어개혁가인 부크 스테파노비히 카라드지히 (Vuk Stefanovich Karadzich)에 의해 개발되었다. 크로아티아어와 아주 유사하지만 크로아티아가 라틴문자를 쓰는 반면 세르비아어는 키릴문자를 쓴다. 키릴문자는 완전한 음성어로서 30가지 소리를 하나의 묵음도 없이 하나의 음가에 하나의 알파벳 소리가 난다. 대부분의 유고슬라비아인은 독일어를 할 줄 알고 다수가 불어나 영어를 하지만 몇 마디의 세르비아어를 익혀두면 그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미소로 답할 것이다.
    터키, 헝가리, 그리스의 맛이 가미된 유고슬라비아 음식은 내세울 만한 독특한 요리법이 없기는 하다. 그들은 여기에 양념을 첨가하지만 육류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세르비아식 케밥, 햄버거스테이크, 고기와 구운 돼지고기 간, 소시지등을 섞어 속을 채운 야채, 고기만두 등이 있다. 낙농용 젖소를 잘 키우는 몬테네그로인들은 고기에 크림과 치즈를 곁들여 먹는다. 치즈와 고기를 층층이 넣어 만든 기름진 전통음식 발칸부레크(Balkan burek) 처럼 아침식사 조차도 육류가 주를 이룬다. 과일은 어디에서나 자라며, 유고슬라비아인들은 포도, 사과, 매실, 복숭아 등의 핵과류를 발효시켜 라키야(rakija)라고 하는 브랜디를 만들고 이를 일년 내내 즐겨 마신다. 몬테네그로의 맥주도 대단히 맛이 좋다.
  • 축제 및 행사
  • 지난 수년동안 유고슬라비아는 축제를 벌릴만한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제 유고슬라비아인들은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수많은 행사를 조직하고 있다. 베오그라드는 2월 영화제, 9월 중순에는 국제연극제, 여름 재즈페스티발, 11월에는 고전음악제 등을 주최한다. 노비 사디안슨(Novi Sadians)는 5월 중순의 농업박람회로 발전하였고 스테리야이노 포조르예(Sterijino Pozorje) 드라마축제, Joran Jovanovic Zunaj 어린이 시축제 등이 있다. 부드바(Budva)에서는 여름축제가 열린다.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날은 신년휴일(1월1일과 2일)과 정교회의 크리스마스(1월6일과 7일)이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대부분의 방문자들은 비자가 필요하고 비용은 들지 않는다. 국경에서 비자를 받을 수는 없으므로 미리 유고슬라비아 영사관에서 받아 두어야만 하다.
    건강상 유의할 점: 특별한 위험은 없지만 간염예방주사를 맞아 둘 필요가 있다.
    시간대: 그린위치 표준시 보다 1시간 빠르다.
    전압: 220볼트, 50헤르츠
    도량법: 미터법
  • 경비 및 환전
  • 통화: 유고슬라비아 디나르dinar (DIN)
    일반경비:
    저렴한 식사: US$10-15
    중급의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US$15-20
    최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US$20 이상
    저렴한 숙박: US$15-20
    중급호텔: US$20-50
    고급호텔: US$150 이상
    유고슬라비아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부담은 숙박비의 지출이다. 이 나라에는 저렴한 호텔이 거의 없고 정책적으로 외국인에게는 현지인의 최고 3배까지 요금을 더 받는다. 기차여행은 상당히 저렴하며 버스비용은 약간 더 비싸다. 예를 들면 베오그라드에서 바르(Bar)행 낮 기차비용은 약 $10이다.
    모든 은행, 여행사, 호텔 등은 공식적인 환율에 따라 부동화폐를 현지 돈으로 환전해준다. 가장 고액권은 20디나르이지만 이것으로 많은 것을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폐로 주머니를 불룩하게 하고 다니고 싶지 않다면, 한번에 소액만 환전하는 것이 좋다. (특히 디나르를 다른 화페로 다시 환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디나르가 최근 안정세이기는 하지만, 유고슬라비아는 돌발적으로 심한 인플래이션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1993년 11월 유럽에서 유래 없는 고인플래이션을 기록하였다는 것을 명심해 두기 바란다. 현찰, 특히 독일마르크는 가장 쉽게 환전할 수 있는 화폐이다.
  • 여행 시기
  • 유고슬라비아는 거의 일년 내내 조용하다. 동유럽 인들이 해변을 찾아와 즐기던 시절은 지난지 오래되었지만, 관광산업이 완전히 침체한 것은 아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추운 겨울을 피해서 여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축제가 많은 여름철은 재즈, 고전음악, 연극, 시 등의 축하행사로 활기를 띤다.
  • 주의 사항
  • 몬테네그로와 코소보를 포함하여 전체 유소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은 지금 금지구역이다. 3월 24일 나토군사단은 평화협정 타결 조짐이 없자, 코소보, 베오그라드 부근, 그 외의 세르비아공화국 지역에 공습을 시작한다. 지난해 종식의 기미가 보였지만 세르비아인들은 계속하여 코소보의 소수인종 알바니아인들을 공격하였다. 수천이 넘는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이 전쟁으로 죽었지만, 이 숫자는 5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분노의 폭격을 감행한 나토의 개입으로 급격하게 증가할 것 같다. 접근금지!
  • 주요 여행지
  • 베오그라드
  • 베오그라드는 2300년의 역사기 동안 40번이나 파괴되기를 거듭했지만 한번도 제대로 복구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도시의 활기, 정갈한 레스토랑, 거리카페, 북유럽의 분위기 등이 어우러져있어, 숙박비가 끔찍이 비싸지만 않다면 몇 일을 이곳에서 지내면 좋을 것이다. 북적대는 베오그라드의 중심지 Kneza Mihaila 는 카페가 줄지어 있는 보행자대로인데 구도시를 통과해 북서방향으로 뻗어 있다. 그 남쪽으로는 기차역과 버스정류장이 있다.
    켈트 시대부터 베오그라드의 성곽이였던 칼레메그단 요새(Kalemegdan Citadel)는 위풍당당하게 구도시에 서있다. 이곳에서 있는 대부분은 17세기에 지어진 것이고 중세시대의 문, 정교회의 성당, 이슬람사원, 터키탕 등도 있다. 만일 지난 7년 간의 뉴스영화로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면, 요새 탑 위의 톱니꼴 벽에 있는 군사박물관을 구경하기 바란다. 충분히 돌아본 후 요새의 공원의자에서 쉬면서 평범한 베오그라드 시민들이 저녁산책을 즐기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다.
    요새 바로 옆에 있는 스타리 그라드(Stari Grad)는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다. 가볍게 주변을 돌아보고 이 도시 최고의 박물관을 잠시 방문하면 많은 것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박물관은 고고학적 전시물과 회화가 특히 볼 만하고, 수준 높은 세르비아 민속의상과 민속예술품이 수집되어 있는 인류학 박물관을 찾아볼 수도 있다. 교외로 나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멀리 있는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의 교회에서 가져온 실물 크기의 복사그림을 프레스코화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발칸양식의 가구로 완전히 장식한 뤼비체공주의 궁전(Palace of Princess Ljubice)은 반드시 보아야 할 곳이다.
    베오그라드의 아름다운 공원 아다 치간리야(Ada Ciganlija)는 사바(Sava)강 상류에 있는 섬이다. 수영, 자전거대여, 카페에서 찬 맥주 한잔하기,아니면 그저 누워서 평화로운 생각에 젖어 있을 수 있는 곳이다. 베오그라드의 숙박시설은 비싸기 때문에 숙소를 찾을 때가 되면 썩 유쾌하지는 못하다. 도시 남쪽의 캠핑장과 호스텔에 가지않는다면 일인당 약 US$30하는 국영호텔을 잡아야만 한다. 특별한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면 크네자 미하일라(Kneza Mihaila) 크루즈를 를 권한다. 예산이 넉넉하면 보헤미안 구역의 민속풍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보라.
  • 노비 사드
  • 베오그라드의 북쪽 보예보디나(Vojvodina)의 신도시 사드는 친근감있는 현대식 대학도시로 헝가리와 교류가 있다. 다뉴브강으로 둘러 싸여있는 이 도시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활기찬 분위기이지만 한편 싼 숙소가 없다. 시에서 한시간 걸어야 하는 캠핑장에 가거나 도심에 있는 호텔을 찾아보는 수 밖에 없다.
    노비사드에서 볼만한 박물관은 혁명박물관, 회화박물관, 고고박물관 등 세 곳이다. 18세기의 페트로바라딘(Petrovaradin)은 건축가 바우반(Vauban)이 설계한 웅장한 요새이다. 주변의 아름다운 시골경치를 보려면 요새의 벽을 따라 걸어 보라, 갑자기 이 곳 경관에 매료되어버리면, 요새의 비싼 호텔에 묵어 보는 것도 좋다. 그룹투어를 하면 요새 지하16km에 이르는 갤러리들과 방을 보도록 감독관이 허락한다.
  • 부드바
  • 유고슬라비아 해안의 왼쪽으로는 아름다운 해변들이 줄지어 있는데 해안가의 높은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대단히 멋진 경관을 이루고 있다. 부드바는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해안휴양지이고, 몬테네그로해안의 중간에 붙어 있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아름다운 장소이다. 부드바의 디스네예스크(Disneyesque) 옛마을은 너무나 아름답다. 1979년 지진으로 마을이 붕괴되었는데, 당시 마을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한 다음, 마을은 관광지로 완전히 재건축되었다. 예쁘게 치장한 마을광장 주변에는 박물관, 교회 세 곳, 누벽에서 보는 경치가 아름다운 요새 등이 있다. 이 모두는 실제를 충실히 복사한 것들이다.
    부드바의 주요 해변은 그저 평범한 자갈해변이지만, 500m 북쪽의 모그렌(Mogren)해변은 비치버니(몸매를 과시하는 비키니 차림의 여자)의 천국이다. 부드바의 남동에는 스베티 스테판(Sveti Stefan)은 부드바의 옛마을 보다도 더 으시시하다. 예전에는 조용한 작은 어촌이었던 스베티 스테판은 마치 어촌같이 보이는 매우 비싼 호텔로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주거용 호텔을 지목하면 그 값을 이 섬에 가는 비용만큼이나 지불해야 것이다.
  • 체티니예(Cetinje)
  • 한때 몬테네그로의 수도였던 체티니예는 코토르(Kotor) 만과 스카다르 (Skadar)호수 사이의 고원지대에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나머지 지역이 오토만 제국에 흡수될 당시, 체티니예는 방어하기가 용이하여 몬테네그로는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전에 궁전이었던 현 시립박물관이다. 19세기에 지은 과거 체티니예 추기경의 관저가 그 반대편에 있다. 1484년에 세워졌다가 1785년 재건축된 체티니예 수도원은 1494년에 인쇄한 기도서의 노래책자 등의 진기한 문화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곳에서 20km 떨어진 로보첸(Mt Lovcen)산에 가면 상쾌한 기분으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이 산은 국립공원이고 그 정상에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된 페트로비치 니예고스 페트라 2세(Petar II Petrovic Njegos)의 능이 있다. 꼬불꼬불한 길과 낭만적인 옛건물들이 있는 체티니예는 몇 일을 지낼만한 분위기있는 장소이지만, 문제는 숙소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가까운 바르(Bar)에 머물면서 당일여행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두르미토르 국립공원
  • 보스니아와 접한 몬테네그로 국경 가까이에 있는 길이100km, 깊이 1067m의 두르미토르의 극적인 타라 협곡(Tara Canyon)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확실치는 않지만 유고슬라비아 관광책자에 의하면 그랜드캐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협곡이라고 한다. 하여튼 최고의 협곡인 것은 틀림없다. 타라강, 청정한 폭포, 푸른 거품 등이 협곡을 질러 흐르며 뗏못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에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다.
    두르미토르에 있는 18개의 호수는 하이킹하기에 좋은 아름다운 곳으로 수영하기에 좋은 곳이다. 가장 큰 호수인 츠모 예제로(Crno jezero)는 하루 등반코스로 좋은 메데트산(Mount Meded) 기슭에 있다. 공원의 동쪽에는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스키휴양지인 자블야크(Zabljak)가 있다.
  • 페치(Pec)
  • 관광지화 되지않아 친밀감이 있고 경치가 그림 같은 페치는 코소보의 서쪽 높은 산아래 자리잡고 있다. 소심한 사람은 이 지역방문이 적합하지 않다. 코소보에서 처럼 인권이 극악하고도 체계적으로 침해 당하는 곳은 유럽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서 1998년 초 폭력이 난무했다. 사실 코소보는 지금 상당히 규제가 풀려 있다. 알바니아인이 대다수 인구인 코소보 통치는 1913년 오토만에서 세르비아로 넘겨졌다. 그 이래로 코소보인들은 수 십년에 걸친 억압을 겪어야 했고 유고슬라비아의 다른 지역의 생활 수준의4분의 1 수준에서 방치되어 왔다. 연방의 공화국 지위의 조건으로 이 지역의 보건, 교육, 정부기관 등을 제거하거나 폐지할 것이 요구되었다. 코소보는 기본적으로 이슬람문화 분위기이고 유고슬라비아의 다른 지역 사람들 보다 훨씬 친절하고 호기심이 더 많다.
    이 도시의8개 회교사원 중에서15세기에 지은 바예라클리(Bajrakli Mosque) 회교사원 근처에 있는 페치의 동양 바자는 부산스럽다. 도심에 가까운 파트리야르시야 (Patrijarsija) 수도원은 오트만 제국지배 시절, 세르비아 정교회의 본거지였다. 수도원 안에는 높은 돔천장과 거룩한 중세 프레스코화로 가득찬 13세기 교회가 세 곳 있다. 페치의 남쪽에 있는 비소키 데차니(Visoki Decani)수도원의 14세기 프레스코도 매우 아름답고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쾌적한 숲속 산책로를 통해 걸어갈 수 있다. 베오그라드에서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여 페치에 갈 수 있다.
  • 레저스포츠
  • 산이 많고 춥고 긴 겨울 때문에 유고슬라비아인들 눈에 관심이 많다. 세르비아에서 가장 큰 스키센터는 코파오니크(Kopaonik)로 총54km에 달하는 26개 코스와 150개 침상의 호스텔이 있다. 코소보와 마케도니아를 가르는 사르 플라니나(Sar Planina)의 북쪽에 있는 브레조비차(Brezovica)는 코소보의 주요 휴양지이다. 몬테네그로의 자블리약(Zabljak)을 가보라. 스키시즌은 12월에서 3월까지 계속된다. 유고슬라비아에는 급류타기를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장소가 여러 곳 있는데, 그 중에 두르미토르 국립공원의 타라강이 유명하다. 두르미토르에는 스키와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장소도 있다.
  • 유고슬라비아로 가는 길
  • 유엔의 제재가 풀리면서 유고슬라비아로 가는 항공편이 재개되었다. 먼저 유고슬라비아와의 항공편을 여행사에 확인을 해보는 것이 좋다. 출국세는 70디나르이다. 부다페스트, 리용, 뮌헨, 파리, 테살로니키, 쭈리히 등지에서 보통 헝가리를 거쳐 베오그라드로 가는 버스편이 있다. 슬로베니아와 마케도니아에서 유고슬라비아/크로아티아 국경도시 시드를 거쳐 베오그라드로 가는 버스편도이 있다. 서유럽 기차는 부다페스트를 거쳐 노비 사드까지 간다. 혹은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터키 등에서 베오그라드로 가는 기차편이 있다. 이탈리아의 바리(Bari) 와 몬테네그로의 바르 사이에 페리가 운행된다.
  • 국내 교통편
  • 하루에 두 번 베오그라드에서 몬테네그로의 티바트(Tivat)와 포드고리차 (Podgorica)까지 비행기가 오간다. 기차는 버스보다 싸지만 느리고 가끔 객실상태가 상당히 나쁘다. 수보티차(Subotica), 노비사드, 베오그라드, 니스(Nis), 프리스티나(Pristina), 수코피예(Skopje) 간의 노선이 가장 편리하고 훌륭하며, 베오그라드와 바르 사이는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노선이다. 몬테네그로 해안을 따라 여행하려면, 코소보나 두르미토르로 가서 버스를 타야 한다. 기차나 버스에서 하룻밤을 자면 숙박시설이 부족한 유고슬라비아에서 숙소를 해결하는 한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