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SYRIA)
시리아는 어디서나 보이는 벽들, 버려진 성, 흔들리는 극장, 무너진 요새들로 가득한 황폐화된 나라이다. 오랫동안 시리아는 로마, 페르시아, 이집트, 터키, 바빌론과 같은 제국들의 영향력 하에서 우물 쭈물대었고 이들 제국들은 이곳에 그들의 이름표를 붙인 건축물들을 남겨놓았다. 로마 팔미라(Palmyra)의 자취는 중동 최고의 유적 중 하나이며 시리아는 또한 가장 오래된 도시와 혈기 왕성한 십자군 성, 가장 잘 보존된 로마 시대의 극장, 가장 어리석은 순교자의 기념물도 가지고 있다. 확실히 시리아는 미국 국무성의 테러 지원 국가 리스트에 오른 일곱 국가 중에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나라는 아니다. 시리아 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호의적인 나라이지는 않지만 사람들만큼은 친절하고 호의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 다른 문화의 낯선 상황에 익숙해지면 시리아는 집보다도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통계 자료
  • 국명 : 시리아 아랍 공화국(Syrian Arab Republic)
    면적 : 185,000 sq km
    인구 : 1,700만 명
    수도 : 다마스쿠스(Damascus, 인구 6백만)
    인종 : 아랍인(90%), 쿠르드인, 아르메니아인, 체르케스인, 터키인
    언어 : 아랍어, 쿠르드어, 아르메니아어, 터키어, 영어
    종교 : 이슬람
    정체 : 군부 공화국
  • 지리 및 기후
  • 미국 노스다코타 주보다 조금 크고 포르투갈의 두 배 가량 되는 시리아는 남서쪽으로 레바논, 남쪽으로는 요르단, 동쪽으로는 이라크, 북쪽으로는 터키에 접하고 있다. 이 나라는 네 개의 지리 지역으로 나뉘는데 비옥한 180km 길이의 연안지대, 레바논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2000m 높이의 제벨 안누사리야(Jebel an-Nusariyah)와 제벨 루브난 아쉬샤르키예(Jebel Lubnan ash-Sharquiyyeh) 산맥, 산맥 내륙의 경작된 초원, 돌들로 이루어진 남동부의 시리아 사막 등이 그것이다.
    시리아에 한때 풍부하던 숲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남아 있는 약간의 녹지들은 주로 주목, 라임, 전나무 등으로 다른 곳들은 거의 경작되고 있다. 또한 동물들도 볼 만한 것들이 거의 없다. 공식적으로는 늑대, 하이에나, 여우, 오소리, 멧돼지, 쟈칼, 사슴, 곰, 다람쥐, 긴털 족제비 등이 있다고 하지만 볼 수 있는 것들은 당나귀나 거위, 낙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시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로 덥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하고 축축한 겨울을 가지고 있지만 내륙은 더욱 건조하고 좋지 않은 날씨이다. 연안은 평균 기온이 여름(7월) 29도에서 겨울 (10도)까지 변한다. 초원 지역은 대부분의 도시들이 여름 35도에서 겨울 12도 정도까지 변하며 사막은 46도까지 올라간다. 어디든 그리 강우량이 많지는 않지만 주로 연안 지역에 내린다.
  • 역사
  • 역사적으로 시리아는 현재의 시리아에 더해 요르단과 이스라엘, 레바논을 포함한다. 이 나라는 최고의 전략적 장소에 있으며 해안 지역의 마을들은 페니키아인들의 중요한 교역 항구가 되었다. 나중에 시리아는 로마, 페르시아, 이집트, 바빌론 제국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최후로 오토만 제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터키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함에 따라 레바논과 함께 프랑스로 넘겨졌다. 시리아는 이러한 조약(이곳은 1918년에서 1920년까지 독립국가였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며 1925-6년까지 반란을 벌였으나 결국 프랑스로부터 다마스쿠스가 폭격을 받고 말았다.
    1932년 시리아 최초의 의회 선거가 열렸으며 비록 프랑스에 의해 후보자가 뽑혔지만 이들은 프랑스가 제안한 헌법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1939년 프랑스는 터키에 시리아의 알렉산드레타 주를 넘겼는데 이러한 일 때문에 더욱 제국주의적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깊어갔다. 프랑스는 1941년 독립을 약속했지만 1946년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문민정부는 시리아에서 오래가지 못했다. 1954년 몇 번의 군부 쿠데타이후에 군부의 바트파가 정권을 잡았다. 바트(Ba'ath)당은 1940년 기독교인 선생에 의해 설립되었고 시리아의 주권을 박탈할 범아랍주의 형성에 전념했다. 이로 인해 1958년 이집트와 아랍 공화국 연합을 형성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것이 그리 좋은 착상이라고 생각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다른 군사 쿠데타가 이어졌다. 1966년까지 바트당은 권력을 장악했지만 여러 요인들이 1967년 이스라엘과의 6일 전쟁과 1970년 요르단과의 검은 9월 분쟁에 의해 떨어져 나갔다. 다른 사람과 달리 국방성 장관인 하페즈 알아사드(Hafez al-Assad)는 계속 권력을 쥐었다. 1971년에서 2000년까지 아사드는 가혹한 탄압과 술책을 번갈아가며 권력을 유지했다. 1992년 그는 당연한 듯이 99.9%의 지지로 네 번째 7년 임기를 담당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의 커져가던 불안정에 대한 근심은 아사드가 기민하게 걸프 전쟁을 이용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킴에 따라 수그러들었다. 전쟁동안 시리아는 반 이라크 연합에 참여하여 워싱턴의 국제 테러 지원국 목록에서 이름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은 2000년 6월에 서거했다. 몇 년동안 하페즈의 장남인 바실(Basil)은 대통령직을 이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실은 1994년 자동차 사고로 죽었으며 현재는 하페스의 차남인 34살의 안과 의사 바샤르(Bashar)가 차기 대통령이 되기 위해 준비중이다.
  • 경제
  • 국내 총생산GDP : US$ 552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1,946
    연 성장률: 6%
    인플레이션: 22%
    주요 산업: 원유, 농업, 직물
    주요 교역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 문화
  • 다마스쿠스에서는 전통적인 아랍 곡조들을 듣기 어렵지만 어디를 가나 아랍식의 가수가 서양의 오케스트라와 전통 악기에 맞춰 노래 부르는 재미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가장 사랑 받는 가수는 마야다 알하나위(Myada al-Hanawi)와 아살라 나스리(Asala Nasri)이다. 베두인의 음악은 아직도 음악적 전통에 남아있어서 한 명의 벨리 춤 무용수에 여러 남자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랍 세계의 시각 예술은 종종 건축을 의미하는데 이는 주로 이슬람교가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묘사를 금하기 때문이다. 시리아 전체에 걸쳐 여행자들은 장엄한 고대나 고전기의 유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들에는 이슬람 왕들이나 로마와 비잔틴 제국의 유적들이 있다. 또한 십자군에 의해 남겨진 종교 작품들도 많이 있다. 코란은 전통적인 아라비아 문학의 가장 좋은 예 중 하나이며 알무알라캇(Al-Mu'allaqaat)은 더 오래된 아랍의 시 작품이다. 10세기 후반으로 오면 시리아는 아랍 시 문학의 전성시대를 맞게 되는데 이 시기의 주요한 작품들은 스스로 예언자라고 생각했던 알무타나비(Al-Mutanabbi)와 아부 피라스 알함다니(Abu Firas al-Hamdani)에 의해 쓰여졌다. 아랍 문학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인 알프 라일라 와 라일라(Alf Layla wa Layla, 천일야화)는 여러 세기와 다른 나라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베두인의 예술품으로는 은세공품, 화려한 직물, 여러 가지 칼 등이 있다.
    환대는 아랍 생활의 기초이다. 이방인을 집으로 환대하는 것은 시리아 가정, 특히 사막 주민들에 있어 일반적인 것이다. 이 전통은 사막 생활의 황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음식과 물, 보금자리가 제공되지 않고는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시리아 어디를 가건 타파달(대체로 환영한다는 뜻)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며 집으로 음식이나 차 초대를 종종 받게 된다. 이슬람교는 시리아의 지배적인 종교이다. 일신교인 이슬람의 성전은 코란이며 금요일은 안식일이다. 매일 하루에 다섯 번씩 이슬람 교인들은 전국에 산재한 모스크의 광탑에서 나오는 기도에 참배한다. 이슬람은 유태교, 기독교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스람 교인은 대체로 기독교인과 유태교인들을 존중한다 - 이슬람에서는 예수도 알라의 한 예언자로 여기며 유태인이나 기독교인들도 성경에 나오는 이웃들로 생각한다. 모하메드는 마지막 예언자로 알라가 코란을 받아쓰게 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시리아 이슬람교인은 순니파에 속하지만 시아파나 드루제파, 알라위파도 있다. 드루제파는 대부분 요르단 국경 근처에 살며 그들의 신앙의 비밀에 싸여있다. 알라위파는 극단적인 시아파로 대부분 라타키아(Lattakia)와 하마홈스(Hama-Homs) 근처에 산다. 이슬람법은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며 술을 마시는 것도 금한다. 이 법은 시리아 전역에서 극단적으로나 아니면 덜 지켜진다(일반적으로는 덜 지켜진다). 이슬람은 또한 성에 따라 다른 역할을 부여하기 때문에 많은 식당이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이러한 곳들은 대부분 여자들의 경우에 '가족실'로 안내한다. 시리아인들은 외식할 때 보통 전채에 이어 주 식사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단체 식사를 시킨다. 아랍의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인 코브즈는 거의 항상 식사에 등장하며 다른 기본 식사로는 펠라펠(기름에 튀긴 병아리콩), 슈와르마(얇게 썰어 꼬챙이로 구운 양고기), 푸울(잠두, 마늘, 레몬으로 만든 반죽) 등이 있다. 멘사프는 베두인의 별미로 머리를 포함한 새끼 양 전체를 쌀, 송과와 함께 요리한다.
    시리아의 휴일은 대부분 이슬람교와 관계된 것들이다. 가장 큰 것은 라마단(날짜는 매년 변한다)으로 이슬람의 네 번째 계율을 따르기 위해 한달 간 해뜬 후부터 해질 때까지 모두 단식을 한다. 이 기간 동안 시리아에 있을 경우에는 배가 몹시 고파질 것이다. 라마단은 에이드 알피트르(Eid al-Fitr)라는 성대한 축제로 끝이 나며 이 때에는 누구나 같이 기도하면서 친구를 방문하고 선물을 건네주며 멍해질 때까지 즐긴다. 역시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인 에이드 알아다(Eid al-Adah)는 다른 큰 행사로 언제 이슬람교인들이 메카로 성지 순례를 떠나야하는지를 알려준다. 비종교적인 휴일로는 피난일(4월 17일)과 수정주의자 운동일(11월 16일) 등이 있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모든 외국인은 비자가 필요하며 영사관이나 어떤 때는 입국시에 바을 수 있다. 이스라엘 입국 사실이 여권에 남아있는 경우에는 입국할 수 없다. 관광 비자는 15일이며 연장할 수 있다.
    보건 위생: 소아마비, 파상풍, 장티푸스, 간염 A나 B 예방 접종을 고려하자
    시간: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전압: 220V, 50Hz
    도량형: 미터법(도량형 환산표 참조)
  • 경비 및 환전
  • 통화: 시리아 파운드(£S)
    일반 경비 :
    저렴한 숙소: US$4-10
    중급 호텔: US$10-20
    고급 호텔: US$200 이상
    저렴한 현지 식사: US$1-4
    중간 가격대의 레스토랑 식사: US$5-10
    최고급 레스토랑의 식사: US$10-15

    시리아는 아직도 싼 나라이지만 점점 비싸지고 있다. 만약 싸구려 숙소에서 지내면서 펠라펠과 주스로 끼니를 때운다면 하루에 US$15-20으로 사는 것도 가능하다(매우 가난한 여행이 될 테지만). 욕실이 딸린 방에서 자고 하루에 한번쯤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면 하루 예산은 US$30-40 정도가 될 것이다. 시리아에서는 현금이 최고이지만 당연한 얘기로 여행자 수표가 더 안전하다. 현금의 경우에는 수수료가 없지만 여행자 수표는 건당 수수료를 물어야한다. 신용카드로 선금 서비스를 받기란 힘들지만 커다란 호텔이나 상점, 비행기표나 렌터카의 경우에는 신용카드가 점점 널리 통용되고 있다. 팁은 중동에서 일을 순조롭게 만드는 윤활유같은 것이다. 좋은 식당의 웨이터들은 팁을 바라며 팁을 주지 않으면 서비스도 좋지 않다. 문을 열어주거나 짐을 옮겨주는 사람들도 모두 팁을 바라지만 팁을 줄지는 자신이 결정할 일이다. 기념품을 살 때 흥정은 필수적인 것으로 반값으로 깍은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 여행 시기
  • 봄(4월에서 6월)은 기온이 온화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시기이며 겨울비는 다른 시기에 시야를 방해하는 아지랑이를 없애준다. 가을(9월에서 11월)은 다음으로 좋은 선택이다. 여름(6월에서 8월)에 갈 때는 특히 팔미라나 북동부의 경우 모자나 선스크린, 물병을 꼭 가지고 가도록 하자. 연안과 산에서는 기온이 내려가며 비가 내리기 때문에 겨울이 그리 좋은 시기가 아니다.
  • 주요 여행지
  • 다마스쿠스(Damascus)
  • 다마스쿠스는 시리아 최대 도시이자 수도이다. 바라다(Barada) 강과 구타(Gouta) 오아시스 근처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들이 없었다면 사람이 살만한 풍경은 아닐 것이다. 다마스쿠스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도시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일 것이다 - BC 5000년경에도 사람이 살았다. 오늘날 이곳의 매력은 중동의 시장이나 낡고 유서깊은 이슬람 세계 최고의 유적들 중 몇 곳들이다. 시내에는 순교자 광장이 있으며 대부분의 식당과 호텔은 이 근처에 있다. 다마스쿠스의 매력의 중심지는 로마 시대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이다. 이 도시의 주요 시장은 알하마디이예(al-Hamadiyyeh) 시장으로 자갈이 깔린 길에 복잡한 인파와 행상인, 그리고 값을 깎으려고 옥신각신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시장 끝 맞은 편에는 오마이야드(Omayyad) 모스크가 있다. 705년에 고대 신전과 기독교 성당 자리에 세워진 이 모스크는 처음부터 웅장하게 지어졌다. 모스크는 19세기에 불에 그을렸지만 아직도 이슬람교 건축물의 보배이며 현란한 모자이크와 세 개의 원래부터 만들어진 광탑이 있다. 살라딘(Saladin)은 아랍 역사에서 십자군을 물리친 위대한 영웅 중 한 명으로 다마스쿠스에 잠들어 있다. 살라딘의 큰 무덤은 1193년에 지어졌으며 붉은 돔이 덮여 있고 모마야드 모스크의 북쪽 벽 바깥에 있는 상쾌한 정원에 있다. 아젬(Azem) 궁은 모스크 남쪽에 있으며 1749년에 지어졌고 검은 현무암과 하얀 석회암을 번갈아 이용하였다. 현재 이곳은 시리아 예술 및 전통 박물관이다. 구시가 동쪽에 있는 기독교 지역에는 성 폴 성당이 있는데 이곳은 사도 바울이 창문으로 기어나가 유태인들을 피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시리아에서 가장 장엄한 모스크 중 하나는 타키이예 아스술라이마니이예(Takiyyeh as-Sulaymaniyyeh)로 바라다 강 바로 남쪽에 있다. 1554년 오토만 양식으로 설계된 이 건물은 검은 돌과 하얀 돌이 번갈아 사용되었으며 두 개의 가느다란 광탑을 가지고 있다. 국립 박물관도 강 남쪽에 있으며 적어도 한번은 가볼 만하다. 박물관의 정면은 고대의 군대 진영이던 카스르 알하이르 알가비(Qasr al-Hayr al-Ghabi)로 통하는 입구였다. 안에는 환상적인 전시물들이 있으며 이 중에는 세계에서 최초로 알려진 알파벳을 사용한 BC 14세기의 글이나 4000년이 더 된 마리(Mari)의 조상, 팔미라에서 나온 대리석과 테라코타 상으로 가득찬 두 곳의 홀, 다마스쿠스의 무기, 외과 의사 무덤에서 나온 옛날 외과 기구, 13세기 코란 수집품, 18세기의 아젬 궁의 양식으로 전체가 장식된 방 등이 있다.
  • 알레포(Aleppo)
  • 현지인들이 할랍(Halab)이라고 부르는 알레포는 시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로마 시대부터 교역의 중심지였다. 시장과 성, 박물관, 대상의 숙사 등으로 덮인 이 환상적인 도시는 며칠을 묵어가기 좋은 곳이다. 성은 이 도시의 시장 동쪽 끝에 우뚝 솟아 있다. 성 주위의 해자는 서쪽에 있는 다리로 이어져 있으며 다리를 건너면 12세기의 요새화된 문으로 이어진다. 성안은 대부분 폐허이지만 입구 위에 있는 알현실은 사치스럽게 복원되어있다. 원래 성채 건물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12세기의 작은 모스크와 13세기의 대 모스크 둘이다.
    화려하게 뒤덮인 시장은 이 도시의 주요 볼거리이다. 몇 헥타르에 걸쳐 미로처럼 뻗어있는 이곳은 한번 둥근 천장 아래로 발을 들여놓으면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찔할 만큼 달콤한 생강과 정향의 냄새나 메스꺼워 지는 죽은 동물을 그대로 걸어놓은 육류 시장 등 이곳에는 뭐든지 다 있다. 대부분의 시장은 오토만 시대에 세워졌지만 몇몇은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장 북쪽 끝에 있는 대 모스크는 1090년에 세워진 버팀 없이 세워진 광탑이 있다. 모스크에는 예쁘게 조각된 나무 설교단이 있으며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세례 요한의 아버지의 머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시의 고고학 박물관은 마리, 에블라(Ebla), 우가릿(Ugarit)에서 발견된 훌륭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알레포의 숙소나 식당의 대부분은 떠들썩한 시내에 위치해 있다.
  • 팔미라(Palmyra)
  • 이곳은 '시리아에서 하나만 본다면 팔미라를 보라'라는 말이 나오는 곳이다. 중동에서 꼭 보아야할 다른 한 곳인 페트라(Perta)와 달리 이 곳은 비교적 조용하고 작은 곳으로 유적을 보기 위해 단체 여행객 사이에 끼어 슬쩍 엿볼 필요가 없는 곳이다. 팔미라는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곳 한가운데 있으며 오론테스(Orontes) 강에서 150km 서쪽, 유프라테스 강에서 동쪽으로 200km 동쪽에 위치해 있다. 팔미라의 유적은 AD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도시는 앗시리아인들에 의해 절정에 달했다. 한때 그리스의 전초기지가 되었고 217년에는 로마에 합병되어 비길 데 없이 부유해졌다. 이 도시의 가장 유명한 이는 제노비아(Zenobia)로 그녀의 남편이 의문스럽게 죽은 267년부터 팔미라를 지배했다. 제노비아는 로마 세력과 경쟁했지만 271년 철저하게 패배당했으며 팔미라는 2년 뒤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리고 1089년에 일어난 지진은 남은 것들마저 완전히 파괴했다. 팔미라에는 찾아 다닐만한 유적들이 많이 있다. 벨(Bel) 신전은 거대한 정방형의 정원이 있으며 길 건너에 있는 대 주랑은 인상적인 기둥들이 늘어선 거리로 한때는 이 도시의 동맥과 같은 길이었다. 이 길 끝에 세워진 기념비적인 아치는 다시 복원된 것이다. 주랑 남쪽으로는 극장과 시장, 연회장이 있다. 팔미라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17세기 아랍 성인 칼라앗 이븐 마안(Qala'at ibn Maan)이 있다. 박물관에는 팔미라에서 발굴된 훌륭한 전시물을 소유하고 있으며 영어 이름표가 붙어있다. 유적 주위의 신시가에는 숙소나 식당이 몇몇 있다. 팔미라는 여러 길이 만나는 홈스나 다마스쿠스에서 갈 수 있다.
  • 크락 데스 세발리에스(Crac des Chevaliers)
  • 800년 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이 멋진 십자군 성은 한번도 땅위에 쌓인 돌무더기에 불과한 적이 없었다. 터키의 안타크야(Antakya)와 레바논의 베이루트(Beirut) 사이의 주요 노선만을 방어하던 이 성은 1150년에서 1250년 사이에 세워져 확장되었고 나중에는 4000명의 주둔군이 들어왔다. 이후 몇 번의 공격 끝에 1271년 술탄 바이바르(Baibar)에게 넘겨졌다. 이 성은 12개의 탑을 갖춘 외벽과 내벽 및 본성의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현재는 물이 괴어 있는 해자가 두 곳을 나누고 있으며 예전에 이곳은 욕조를 채우거나 말에게 물을 먹이던 곳이었다. 5m 두께의 인상적인 정문을 지나 성을 방어하던 탑을 통과하면 정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섬세하게 조각된 복도는 커다란 아치 천장의 홀로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는 옛날 오븐과 우물, 그리고 변소가 있다. 정원의 예배당은 술탄 바이바르가 모스크로 바꾸었고 아직도 옛 설교대가 남아있다. 왕녀의 탑 꼭대기는 현재 전망좋은 카페가 되어있다. 성내에서 지내는 것도 가능하며 타르투스(Tartus)나 하마(Hama)에서 당일치기로 구경하는 것도 쉬운 방법이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보스라 아쉬샴(Bosra ash-Sham)
  • 보스라는 다마스쿠스 남쪽으로 140km 지점에 있으며 검은 현무암이 어지럽게 흩어진 비옥한 평원에 위치해있다. 한때는 지방 교역과 순례의 통로에 위치하여 번성했지만 현재는 잊혀진 곳이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오래된 로마 건물 주위에 신비롭고 놀라운 모습으로 서있다. 도시는 거의 검은 현무암으로 세워졌으며 이들 대부분은 더 오래된 건물에서 뜯어온 것이다. 이곳에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로마 극장 중 하나가 있다. 이 극장은 특히 요새화되어 성으로 변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아홉 개의 탑이 건물 주위에 서있으며 깊게 패인 해자로 성을 보호하고 있다. 성안에서는 장대한 15000석의 극장을 볼 수 있다. 이곳이 극장으로 이용될 당시에는 대리석으로 정면을 만들고 비단으로 덮여 있었으며 연극 중에는 관객이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미세하고 향기가 있는 안개를 날려보냈다. 보스라의 상점이나 가옥 중에는 몇몇 목욕탕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중 한 곳, 4세기 경의 수도원과 나바티인들의 문 등을 볼 수 있다. 보스라에는 호텔이 하나밖에 없으며 엄청 비싸지만 다마스쿠스나 데라(Der'a)에서 미니버스로 직접 갈 수도 있다.
  • 라사페(Rasafeh)
  • 깜짝 놀라만한 이 성벽 도시는 팔미라 북쪽 160km, 아무것도 없는 지역 한가운데 있으며 특징없는 사막에서 우뚝 솟아있다. 이곳은 대략 앗시리아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해 디오클레티아인들이 사산 왕조에 대항하기 위해 3세기경 방어선의 일부로 성채를 지었다. 성채는 5세기와 6세기에 확장되었지만 7세기에는 이곳을 여름 궁전으로 바꾼 오마이야드 왕조에 넘겨졌다. 743년에는 오마이야드의 뒤를 이은 아바시드(Abbasids)가 이곳에 들어와 궁전을 무너뜨렸다. 550m에 400m 크기인 사각형의 성벽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들어가면 거대한 공지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곳은 거의 복원이나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사각형 내에는 세 곳의 교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중 가장 큰 것은 부분적으로 보수된 성 세르기우스 교회당으로 안에는 두 개의 복도와 커다란 아치가 있다. 교회당과 다른 두 곳의 교회는 6세기에 세워졌다. 이곳에는 음식을 구할 곳이 없으며 도착하기도 상당히 어렵다 - 라카(Raqqa)에서 알만수라(Al-Mansura)까지 미니 버스로 간 뒤에 이곳까지 들어오는 차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칼라앗 사마안(Qala'at Samaan)
  • 성 시메온(Simeon) 교회당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역사적으로 흥미롭다. 성 시메온은 5세기에 살던 양치기로 영감을 주는 꿈을 꾼 후에 예수를 위한 고행을 위해 수도원에 들어왔다. 그러나 수도원은 시메온에게 전혀 힘들지 않았으므로 그는 고원으로 가 스스로 꼭대기에 3m 기둥을 세웠다. 이후 36년 간 그는 조금씩 높게 기둥을 세워 결국에는 15m에 이르렀다. 이 성인은 자신의 시련에 하나를 더하여 잘못하면 목 졸릴 가능성이 있는데도 자신의 목을 기둥에 묶어 밤에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모든 유럽과 아시아에서 이 광경을 목격하려고 순례자들이 찾아왔지만 그들이 본 것은 기둥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늙은이 뿐이었다. 495년 시메온은 죽자 그의 기둥 주위에 커다란 교회가 들어섰다. 독특한 교회는 십자가의 형태를 따라 네 곳의 교회당이 세워졌고 각 교회당은 돔으로 덮인 중앙의 팔각형 마당으로 이어졌다. 수도원도 지어졌으며 마을은 순례자들이 몰려옴에 따라 번창했다. 이 교회는 현저하게 잘 보존되어 있지만 옛날 기둥은 거의 파괴되어있다 - 현재는 단순한 단처럼 보일 뿐이다. 칼라앗 사마안은 알레포에서 40km 서쪽에 있으며 두 곳 사이에 미니버스가 다닌다.
  • 하마(Hama)
  • 알레포와 다마스쿠스 사이에 있는 이 조용한 마을은 시리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 중 하나이며 근처 유적으로 돌아다니기에 좋은 곳이다. 마을의 매력 중 대부분은 하마를 흘러지나는 오론테스강에서 나오며 강둑에는 나무들과 정원, 노리아라고 부르는 직경 20m나 되는 고대의 삐걱거리는 수차 등이 있다. 수차는 마을에 물을 대거나 관개를 위해 몇 세기 전에 세우졌다. 수차와 밑에 깔린 받침대는 나무로 만들었으며 두 개가 마찰하면서 빚어내는 거친 소리는 하마 전체에 널리 퍼진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노리아는 예쁜 공원에 있으며 바퀴사이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수영을 하며 논다.
    하마에서 볼만한 다른 것으로는 1982년 폭동시에 파괴된 대 모스크가 있다. 폭동은 무슬림 브라더후드(Muslim Brotherhood)에 의해 시작되었고 공군과 탱크 공격의 지원을 받은 8000명의 부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전투와 뒤이은 사형, 폭압의 결과로 25,000명이 죽었다. 폭동의 증거는 광범위하게 진행된 복구로 감추어져 있고 이 모스크도 완전히 바뀐 곳 중 하나이다. 아젬(Azem) 궁 & 박물관은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몇몇 흥미로운 유물과 상쾌하고 그늘진 정원이 있다. 하마의 분위기에 완전히 젖으려면 강변에 있는 야외 카페에 가보자. 이곳은 커피나 나르길레(nargileh), 주사위 놀이를 위해 좋은 곳이다. 하마와 홈스, 다마스쿠스, 알레포 사이로는 버스가 다닌다.
  • 레저스포츠
  •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리아의 주요 매력은 하이킹이다. 하이킹을 위해 조직된 설비는 없지만 여러 가지 매력적인 하이킹 코스들이 있다. 시리아의 십자군 성들 사이를 여행하거나 레바논과 터키 사이의 산악 지역을 하이킹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불행히도 지도가 없으므로 길을 따라 가는 수밖에 없다. 터키식 목욕을 해본 적이 없다면 시리아가 좋은 장소이다. 알레포와 다마스쿠스에는 괜찮은 공중 목욕탕이 있으며 목욕, 증기탕, 마사지까지 모두 제공된다. 목욕탕은 일반적으로 남녀가 분리되어 있다.
  • 시리아로 가는 길
  • 시리아에는 두 곳의 국제 공항이 있는데 하나는 다마스쿠스 남동쪽으로 35km, 다른 하나는 알레포 바로 북동쪽에 있다. 둘 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로 정기 항공 노선을 가지고 있다. 비행기는 꽤 비싼 편이다. 출국세는 대략 US$5 정도이다. 알레포나 다마스쿠스와 이스탄불(Istanbul, 터키), 다마스쿠스와 암만(Amman, 요르단), 다마스쿠스와 베이루트나 트리폴리(Tripoli, 레바논), 다마스쿠스와 리야드(Riyadh, 사우디아라비아) 사이로는 버스가 오간다. 알레포에서 이스탄불이나 다마스쿠스에서 암만으로는 기차가 있다. 서비스 택시도 다마스쿠스에서 이웃 나라들로 간다. 시리아에 자신의 차를 가지고 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차량 이동 허가증과 이 지역의 제3자 보험이 필요하다. 배로 들어가고 싶으면 라타키아에서 베이루트를 지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이집트)를 매주 여행하는 배를 탈 수 있다. 여름의 경우 배는 사이프러스(Cyprus)에도 선다.
  • 국내 교통편
  • 모든 국내선 항공 서비스는 사우디에 의해 운영되며 상당히 신뢰할만하며 적당한 가격이다. 가장 잦고 효율적인 서비스는 제다-리야드-다란(Dhahran) 사이를 오간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차가 없다면 버스가 상당히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버스 회사인 SAPTCO는 안락하고 에어컨디션을 갖춘 버스를 운영하지만 오직 하루 전이나 여행당일에만 표를 살 수 있다. 서비스 택시는 버스와 거의 동일한 목적지까지 비슷한 가격에 가지만 시간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 전체에서 유일하게 철도 노선을 가지고 있다. 리야드에서 담맘(Dammam)까지의 노선은 호푸푸(Hofuf)와 압콰이크(Abqaiq)를 거친다. 기차는 하루 세 번 운영된다. 스스로 운전할 계획이라면 서구의 운전면허증도 허용된다. 렌터카 요금은 정부가 통제하며 서구 여러 나라와 비슷한 가격이다. 이론적으로 주행 방향은 오른쪽 주행이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동차 보험을 반드시 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