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종착지이자 위구르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카슈가르

카슈가르(카스)

카슈가르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최대 오아시스 도시이자 중국 실크로드의 마지막 거점이다. 예로부터 교역으로 활발했던 이 도시는 현재에도 인도,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여섯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경무역의 중심지이다.

중국 속의 또 다른 나라인 카슈가르

카슈가르는 그 옛날 둔황에서 갈라졌던 실크로드의 갈래인 서역북도와 서역남도가 합류하는 지점이다. 둔황에서 갈라졌던 두 길은 카슈가르에서 만나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진다. 이처럼 카슈가르는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가장 중요한 거점 도시 중 하나로, 신라의 혜초 스님과 당나라의 현장법사도 천축에서 불경을 얻고 중국으로 돌아올 때, 카슈가르를 가로질러 장안으로 갔다.
오랫동안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로 번영을 누리던 카슈가르는 실크로드가 그 중요성을 상실한 후, 많은 문화유산과 더불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등 여러 종교가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카슈가르의 문화유산들은 근대에 와서야 그 중요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카슈가르는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제2의 도시로, 성도인 우루무치에 비해 그 규모는 작지만 대부분의 위구르인들은 카슈가르를 자신들의 정신적 수도로 여기고 있다. 과거 이 지역은 통투르키스탄으로 불리던 지역으로 청 왕조에 점령되어 신장성이 되었다가 20세기 들어서면서 다시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꽤하고 있다. 카슈가르는 잠시 독립했던 동투르키스탄의 수도였으나 중국이 재점령하여 그들의 지배하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주민인 위구르족은 전형적인 동 투르키스탄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중국인들과는 생김새나 문화가 전혀 다르다. 현장도 “사람들의 성질은....용모는 비천하고 문신을 했으며, 파란 눈을 가졌다. 불교를 깊이 신앙하며 복덕에 정진하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그가 다녀갔을 무렵부터 위구르인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으며, 당시만 해도 이슬람이 아닌 불교를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나 문화, 인종적으로 중국인과 전혀 다른 위구르인들의 터전인 카슈가르는 오늘날 중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카슈가르의 명물, 올드 바자르

중국에서 카슈가르만큼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는 도시는 드물다. 새롭게 들어선 신시가지가 현대적인 빌딩과 넓은 대로로 포장되어 있는 반면, 구시가지로 가면 상황은 확연히 바뀐다. 신시가지에서 쉽게 보이던 중국어 간판의 빌딩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고, 중세의 카슈가르 풍경이 펼쳐진다. 거리에는 당나귀에 배추, 양파, 마늘 등 채소와 온갖 짐을 실은 사람이 급할 것 없다는 듯이 나귀를 몰고 있고, 머리에 이슬람 특유의 하얀 모자를 쓰고 전통의상을 입은 위구르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카슈가르에서 위구르인들의 생활상을 엿보기 가장 좋은 곳은 올드 바자르이다. 이 바자르는 카슈가르와 역사를 함께 해온 신장 최대의 시장으로, 서역의 온갖 문물이 몰려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종류도 다양해서 장관을 이룬다.


▶ 국인들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는 위구르인들의
터전인 카슈가르


▶ 올드 바자르에서 양을 거래하고 있는 사람들

과거에는 노점 위주로 일요일에만 열리던 “일요시장”이었으나 몇 년 전에 중국 정부가 상가를 짓고 상인들을 입주토록 해, 시골 장터와 같았던 옛 풍경은 많이 사라졌다. 옛 풍경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일이지만 세상 모든 것이 변하는데, 카슈가르의 “일요시장”만 언제까지 옛 모습을 간직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새로 연 시장도 눈요기 감으로는 부족함이 전혀 없다. 세로 길이 200m, 가로 길이 300m에 이르는 내부를 7개의 열로 구분해 종류별로 상가를 나눠 놓았다. 한서의 서역전에 “슈레국은 장안을 떠나 9천 3백리이며..... 큰 시장이 있다.”고 묘사했을 정도로 자자했던 이 시장의 명성은 2천년 동안 변함없이 여전하다.


▶ 카슈가르에 사는 위구르인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향비묘

Photo by Wonju Youth pavilion

꺾이지 않는 위구르의 자존심, 향비묘

구시가지에 위치한 올드 바자르와 더불어 카슈가르에서 꼭 봐야 하는 것이 시내에 위치한 에이티칼 모스크와 시외에 있는 향비묘이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에이티칼 모스크는 1442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모스크로, 매일 5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금요일에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카슈가르 최대의 모스크이다. 시내에 있는 이드가 모스크와는 달리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향비묘는 카슈가르의 최대 볼거리 중 하나이다. 파란 타일이 인상적인 이 건물을 현지인들은 ‘하즈라티의 묘’ 또는 ‘아팍 호자의 성묘’라고 부르는데, 여행자들은 그냥 향비묘라고 부른다. 아팍 호자는 위구르인들의 종교, 정치 지도자로 17세기 카슈가르를 다스리던 군주였다. 향비는 아팍 호자의 손녀로 서역을 정벌했던 청나라의 건륭제에게 후궁으로 바쳐졌다.

그러나 향비는 고향을 잊지 못하고 향수병으로 죽고 말았다(자결했다는 설도 있다). 그녀가 죽고 난 후, 카슈가르에서는 향비의 시신을 운구하여 이곳에 안치했다고 하는데, “아팍 호자의 묘”라 불리는 이 가족묘에 그녀의 묘도 있어서 일명 ‘향비묘’로 불리는 것이다. 묘 인근에는 그녀를 운구할 때 썼던 상여도 전시되어 있다. 향비묘 외에도 카슈가르에는 인상 깊은 볼거리들이 꽤 많다. 하지만 카슈가르의 진정한 매력은 이슬람의 종교적 향기와 순박하고 가슴이 따스한 사람들이다. 카슈가르는 그 순박한 이들로 인해 사막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아시스의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글 김선겸
사진 원주청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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