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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different holi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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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을 살고난 것만 같은 인도 기차여행의 매력

인도에서 기차를 타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 잊을 때가 있다. 분명 출발지와 목적지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렇다. 연착을 하는 경우가 잦아서 혼미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방향은 분명한데 왜 그럴까? 기차 안에서 마주치는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기쁘든, 슬프든, 감동하든, 짜증이 나든 그 모든 것을 체험하는 가운데 깜빡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망각한다. 우리의 삶이 어디론가 가고 있지만 종종 모든 것을 잊은 채, 눈앞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의 감정에 휘말려 살아가듯이 인도의 기차여행도 비슷하다. 일단 기차를 타면, 이제 그 안에서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인도 기차 여행의 큰 묘미다.

“인도에서 2등칸 기차를 탄다 함은...”
인도의 육지 면적만 2,973,190km2이니 대한민국 남한(99,909km2)의 약 30배에 해당하는 넓이다. 비록 고속 열차는 없지만 이 넓은 인도 대륙에는 영국 식민 시대 때부터 깔린 철도가 거미줄처럼 전 대륙으로 이어져 있다. 아주 깊은 히말라야 산맥 고원지대에는 철도가 안 들어가도 다르질링같은 곳까지 기차는 올라간다. 사막, 들판, 고원을 지나 어디든지 기차는 뻗어간다.
사실, 인도의 도로, 버스 사정을 생각하면 철도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 해도 편리한 것이지만 문명 세계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특히 3시간 정도면 어디든 편하게 갈 수 있는 고속 열차에 익숙한 우리들은 인도 기차가 불편하고, 느리고, 힘들게 느껴진다. 거기다 넓은 대륙이다 보니 연착은 늘 일상이다. 몇 시간 정도의 ‘잠깐’ 여행이라면 모른다. 그러나 1박 2일, 2박 3일 정도 기차를 타고 간다면 이제 불편함은 더해진다. 물론 1등칸은 편하다. 에어콘이 나오고 쾌적하고, 각자의 자리에 커튼도 쳐져 있고 (물론 이것도 기차마다 다르지만), 식사도 시켜 먹을 수 있다. 동냥하는 거지도 없고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다. 반면에 3등 칸은 너무 열악하다. 딱딱한 나무 혹은 철제 의자, 지정석 없는 의자들, 더위, 거지, 잡상인...혼미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2등칸은 중간 정도의 분위기다. 에어콘은 없어도 선풍기는 있다. 지정 좌석과 침대가 있다. 편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셋이 앉는 자리라도 조금 비면 넷이 앉아 가야 한다. 종종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러 다니는 거지들이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기차가 역에 서면 수많은 잡상인들이 몰려든다. 도난의 위험이 있기에 짐은 늘 조심해야 한다. 친한 척하면서 계속 말을 붙이는 사람들도 상대해야 한다. 날이라도 더우면 땀이 나고 정신이 혼미스럽다. 화장실은 깨끗한가?
밤에는 3단 침대를 피고 잠을 잘 수 있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캄캄한 어둠,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 땀 냄새, 음식 냄새,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창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인도 대륙의 공기...여성이라면 가끔 자신의 발가락이나 신체를 슬쩍 만지고 지나가는 치한들을 만나기도 한다.

“시달리다가 마음을 내려 놓는 순간”
인도 기차를 타면 이제 목적지는 잊고 일단 눈앞에 보이는 과정 자체를 견뎌야 한다. 자신의 안전, 도난, 눈앞에 보이는 비참한 사람들, 풍경들...그 스트레스 속에서 힘이 빠지고, 귀찮고, 정신이 몽롱해질 때, 문득 마음을 내려놓고 ‘다른 세계, 다른 시간’을 보는 시간이 다가온다. 기차에 실려 가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상황, 즉 자신을 다 내려놓는 순간, 여행이 갑자기 풍요로워진다. 자신의 안전, 자신의 생각, 자신의 태도, 자신의 기분 등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는 그 모든 것이 스트레스더니 ‘자신’이 깨지고 힘이 빠지는 순간, 묘하게도 세상이 평안해지는 경험을 한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자신은 지키지만 정신은 맑고, 고요해지고, 차분해진다.

“내가 살아오던 것이 전생이었나?”
밤사이 덜컹거리는 기차 진동에 시달리다 새벽 내음 속에서 ‘꺼피, 짜이’를 외치는 소년들의 음성이 잠을 깨운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에서 밝아오는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 든다. 기차는 하염없이 가고 차창 밖 풍경은 흘러간다. 바람을 쐬고, 일몰을 보고, 새벽 내음을 맡다 보면 한 생을 겪고 난 것만 같다.
그리고 몇 년 후, 만약 당신이 다시 인도에서 밤 기차를 탄다면, 문득 지난 몇 년 간의 세월이 꿈처럼 여겨질 것이다. 원래의 삶은 덜컹거리는 기차 침대에 누워 달리던 ‘중’이었는데 잠깐 낮잠을 자고 난 기분. 그때 ‘내 삶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가슴을 친다. 장자가 꿈에서 깨어나, 자신의 현실이 나비가 꾸는 꿈이 아닐까라고 의심했듯이 지나왔던 당신의 삶이, 인도 기차 안에서 잠깐 꾼 꿈처럼 여겨질 때 삶이 무한히 확장된다. 현실과 삶과 꿈이 뒤범벅이 되는 경험이야말로 인도 2등 열차가 주는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