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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바람이 부는 곳,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서 소원 빌기

희망봉은 1488년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처음으로 발견하였지만 당시 이 주변 해역이 매우 거칠었기에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라 불렀다. 그러나 동방 항로의 개척이란 오랜 꿈을 실현한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는 ‘폭풍의 곶’을 ‘희망의 곶’(Cape of Good Hope)라고 말하면서 바뀌게 된 것이다. 주앙 2세는 동방 항로를 개척한 기쁨과 함께 선원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폭풍의 곶'이라는 이름보다 희망과 용기를 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희망으로 바뀌게 된 ‘희망봉’”
15세기 유럽은 대항해의 시대였다. 선원들은 배를 타고 지구 반대편의 새로운 땅을 개척했고 그곳을 경쟁적으로 식민지화 했다. 그 시절 포르투갈은 앞서가던 나라였고 바스코 다 가마는 1497년에 희망봉을 지나 동방항로를 개척하는데 성공한다. 금과 향료를 찾기 위한 포르투갈의 오랜 꿈이 실현된 것이다.
사실 사람들의 두려움은 고통, 고난보다도 앞날을 알 수 없다는 데서 온다. 저 폭풍우를 뚫고 가면 과연 평온한 대양이 나오고 그것을 가로질러 인도로 갈 수 있을까? 그런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망설일 때 누군가 한번 뚫고 나가면 그 길은 확신에 찬 희망이 길이 된다. 1497년 바스코 다가마가 그 길을 뚫고 나가자 이제 폭풍의 곶은 희망의 곶이 되었다. 평범해 보이는 땅과 바다지만 거기에 서린 역사와 의미를 생각하면 감회가 일게 된다.

“아프리카 최남단은 아굴라스 곶이다.”
사실 아프리카의 최남단은 희망봉이 아니라 ‘아굴라스 곶’(Cape L'Agulhas; 포르투갈어로 바늘이란 의미) 다. 중세 시대의 탐험가들이나 선원들은 희망봉이 아프리카 최남단이라 믿었지만 실제로는 희망봉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아굴라스 곶이 최남단이다. 아굴라스 곶은 암초가 많아 항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케이프 반도는 항해자들에게 안전한 피난처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최남단인 아굴라스 곶보다는 케이프 반도가 더욱 유명해진 것이다.

“희망봉을 바라볼 수 있는 케이프 포인트”
희망봉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케이프 포인트다. 희망봉에서 동쪽으로 2㎞쯤 떨어진 해안절벽에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접점이 바로 케이프 포인트다. 희망봉에서 천천히 걸어가거나 자동차를 이용해 케이프 포인트 전망대에 오르면 희망봉이 바로 보인다. 케이프 포인트에서 보면 인도양 쪽은 해안절벽을 이루고 대서양 쪽은 붉은 알로에 베라가 피어 있는 완만한 산기슭이 해안과 만난다.
남아공에서는 바다의 가장 앞쪽으로 튀어나온 뾰족한 지점이나 산의 가장 높은 지점을 '포인트'라고 부르는데 이 케이프 포인트는 바다로 튀어나온 케이프 반도의 가장 끝부분을 말한다. 위도상으로는 희망봉이 조금 더 남쪽에 있다.

“희망봉에서 소원을 빌며 희망을 불러낸다”
희망봉은 오늘날 관광지로 유명하다. 희망봉에는 희망봉 등대, 희망봉 국립공원, 희망봉 박물관, 희망봉 동물원 등이 있다. 희망봉 등대를 방문하고, 희망봉 국립공원에서 다양한 야생 동물을 관찰할 수도 있으며 트램을 타고 희망봉과 주변 지역을 둘러볼 수도 있다. 또한 희망봉 해변에서 수영도 하고, 일광욕과 서핑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희망봉에서 꼭 해볼만한 것은 바다를 바라보며 희망을 불러내는 것이 아닐까? 그 옛날 포르투갈 선원들이 폭풍우를 뚫고 나가며 새로운 대륙을 꿈꾸었던 것처럼, 자신도 용감하게 살아가기를 꿈꾸는 시간을 여기서 가질 수 있다. 아프리카 남쪽 끝에 서서 희망을 불러내고 소원을 비는 시간은 감동적이며 자신의 인생에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