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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의 영광이 펼쳐지는 터키 최대의 관광지 에페스

터키 서부의 에게 해안에 에페스(Ephesus)란 곳이 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번성했던 도시로 성경에서는 ‘에베소’로 일컬어지며 사도 바울이 전도한 곳으로 훗날 7대 교회 중 하나가 이곳에 있었다. 에페스(고대도시명 에페수스)는 로마 시대에 크게 번성을 누렸던 곳으로 지금도 그 시절의 영광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201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셀주크와 에페스 사이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 터”
현재 관광객들은 에페스에서 잘 수가 없다. 그곳은 거대한 유적 단지고 관광객들은 에페스에서 약 3km 떨어진 셀주크에서 묵는다. 셀주크는 여행자들이 모시는 북적거리는 도시며 에페스에 관련된 유적을 모아 놓은 박물관도 있다. 셀주크에서 에페스 입구까지 미니버스가 다닌다. 또 쿠사다시 행 미니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서 꺾어진 길을 조금 걸어가도 된다. 걸어서 가면 30분 정도가 걸린다. 걷게 되면 중간에 벌판에 우뚝 솟은 기둥을 볼 수 있다. 과거에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었던 아르테미스 신전 터다. 이것은 로마 시절의 유적지가 아니라 그리스 시대의 유산이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인들은 에페스를 아테네 다음 가는 도시로 발전시키며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을 지었다. 하지만 기원전 356년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이가 신전을 불태웠다. 방화의 이유는 간단했다. 어마어마하게 나쁜 짓을 하면 세상에서 유명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후 에페스인들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두 배나 큰 신전을 짓겠다며 대리석으로 높이 18m짜리 기둥을 127개나 만들었다. 그러나 거대한 신전은 서기 3세기의 침략자 고트인들에 의해 파괴됐고 현재는 달랑 기둥 하나만 남아 있다. 그들이 숭배하던 아르테미스 여신은 제우스신의 딸이었다. 달과 풍요와 다산의 여신인 그녀의 가슴에는 수많은 유방이 달려 있는데 현재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신전 터에서 찾을 수 없고 셀주크의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다.

“웅장했던 로마 시절을 볼 수 있는 에페스 유적지”
에페스는 쿠사다시 가는 길을 따라가다 중간에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나온다. 그곳에는 약 2천년 전의 로마 시대 유적들이 펼쳐진다.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거대한 원형극장이 나온다. 원형극장 꼭대기에서 밑을 바라보면 쿠사다시 쪽으로 뻗어나간 길이 훤하게 보인다. 이 길은 에게해안의 쿠사다시 항까지 뚫린 예전의 고속도로였다. 마차들은 해안에 도착한 물건들을 싣고 이 길을 따라 에페스로 왔다. 극장을 나와 대리석의 길을 따라가면 돌바닥에 새겨진 발과 여인의 상체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세계 최초의 광고’라 일컫는 집창촌 광고다. 이 발보다 큰 사람, 즉 성인만 오라는 표시였다고 한다. 집창촌은 바로 그 위쪽의 아고라 터 맞은편에 있는데 가로, 세로 각각 20.5m의 터에 정원이 있고 방들은 모자이크 벽화들로 장식되어 있다. 그 당시 윤락녀들은 교육 수준이 높았고 각자 자기 소유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맞은 편에는 에페스 유적지에서 가장 잘 보존된 건축물인 2층짜리 셀수스 도서관이 있는데 한창 때에는 1만2000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름다운 신전과 집터, 분수대, 극장, 목욕탕 터가 있고 넓은 평야에는 그 외에도 수많은 유적지가 나온다.
이렇듯 서기 1세기쯤 약 20만 명의 인구가 살았던 에페스에는 당시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번성했던 에페스가 비잔틴 시대에 망한 이유는 말라리아였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의 집”
유적지 후문을 나오면 산이 있고, 그 산 정상에 성모 마리아의 집이 있다. 확실치는 않지만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다는 곳인데 그렇게 알려진 것은 꿈 때문이었다. 1878년 독일의 어느 수녀는 꿈속에서 성모 마리아가 머물렀던 집을 보고 계시를 받는다. 그리고 그 꿈에 관해 책을 냈는데, 후일 탐사반이 와보니 책에서 묘사한 집터와 이곳이 너무도 일치했다. 수녀는 고향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후 1961년 교황 요한 23세는 이곳을 성지로 선포했다. 현재 집안에는 성모 마리아상과 촛대가 놓여져 있고 관광객들 중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에페스 유적지에는 2세기쯤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교회도 있다. 당시 마리아가 신의 어머니라는 파가 있었고, 인간 예수의 어머니지 신의 어머니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네스토리우스파도 있었다. 서기 431년 이 교회에서 열린 3차 종교회의에서 패한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몰려 추방됐고, 451년 리비아의 사막에서 죽었다고 한다.
또한 셀주크에는 사도 요한의 유골을 묻은 후 그 위에 만들었다는 사도 요한의 교회가 있으니 터키의 에페스는 로마의 유적지와 함께 기독교의 자취를 찾는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