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 머물고 싶은, 아름다운 훈자 마을
중국의 카슈가르 쪽에서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파미르고원을 넘어오면 파키스탄의 국경 마을 서스트(sust)가 나오고 이곳에서 계속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고개를 넘다 보면 훈자 마을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면 길기트를 지나,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 가지만 훈자 마을을 빠트리고 길을 갈 수는 없다. 훈자 마을은 한때 장수마을로 유명했는데 자연이 매우 아름답고 포근한 해발 2,500m의 마을이다.
“훈자(Hunza) 마을 가는 길”
훈자는 북쪽의 국경 마을 서스트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2시간 정도 걸리고, 남쪽의 길기트란 도시에서 올라오면 역시 2, 3시간 걸린다. 만약 남쪽에서 훈자 마을에 간다면 일단 남쪽에 있는 길기트로 와야 한다. 길기트는 역사 속에서도 등장한다.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는 소발률(小勃律)이란 나라로 소개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이 많고 산천이 협소하며 논밭이 많지 않은 곳이라 했다. 지금도 역시 이곳 풍경은 삭막하지만 그래도 거리에는 실크로드의 길답게 비단을 파는 가게들도 보이고 산에 부처의 상이 새겨진 부조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차를 타고 미니 밴을 타고 북쪽으로 두세 시간 정도 달리면 장수마을로 유명했던 훈자(Hunza)가 나온다.
남쪽의 교통의 요지인 라왈핀디나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길기트까지 온다면 17시간-20시간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밤의 어둠 속을 달리고 길이 휘어져 있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운전수 마음대로’ 천천히 가는 경향이 있다. 밥을 먹거나, 기도 시간이 되거나, 차를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수많은 검문소에서 검문을 받느라 시간이 지체된다. 또 오다가다 마주 치는 버스 중에 아는 버스 운전기사가 보이면 잠시 서서 잡담도 한다. 승객들 중에는 닭, 개, 염소들을 품에 안고 타기도 해서 이래저래 혼잡스럽지만 흥겹기도 하다.
“한적하고 풍경 좋은 훈자 마을”
가네쉬라는 곳에서 내려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훈자가 나온다. 훈자 원래 도시의 이름이 아니라 옛날 왕국의 이름이었다. 유명하다 보니 훈자 마을이라 부르지만 그곳의 중심 마을은 카리마바드다. 카리마바드를 중심으로 산골에 마을이 펼쳐져 있다. 언덕길을 오르면 포플러나무와 살구나무가 풍성한 산골 마을이 나타난다. 이 마을은 7790미터의 라카포시(Rakaposhi) 봉과 6천미터급의 높은 설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있고 밑으로는 훈자 강이 흐른다. 이곳은 봄이 되면 기가 막힌 낙원이 된다. 계단식 밭에서는 감자, 밀, 옥수수 등을 경작하고 마을에는 살구, 사과, 자두, 체리 나무, 포퓰러 나무 등이 풍성하다. 가을도 좋다.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는 낙엽 속에서 동화 속의 마을에 온 것 같다.
“알렉산드로스와 그리스인들의 후손이 이곳에 살고 있을까?”
훈자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불명확하다. 이들이 쓰는 말을 부루샤스키어라 부르는데, 바로 산밑의 가네쉬마을 사람들이 쓰는 말과도 다르다. 그래서 이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많다. 그들 말로 ‘훈스(Huns)’는 화살이란 뜻인데, 활을 잘 쏘아서 그렇게 불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지만 불명확하다.
재미있는 가설은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드로스가 이곳을 점령했을 때 그의 부하 장수인 가와자 아랄과 그의 부하들이 귀국을 거부하고 이곳에 머물며 자손을 퍼뜨렸거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직접 퍼뜨렸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스인 비슷한 파란 눈과 곱슬머리가 있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실제로 그곳 현지인들도 그런 말을 들었다면서 확신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어쨌거나 자신들은 바로 아랫마을 사람들과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기에 그렇다.
“한때 장수마을이었던 훈자 마을”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 고원 밑에 있는 해발 2500m의 훈자 마을은 속이 시릴 정도로 공기가 싸늘하고 맑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 밑으로는 시퍼런 훈자 강이 도도히 흐르고 멀리 해발 7790m의 눈 덮인 라카포시봉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이런 곳에서 살면 장수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한때 이곳에는 90세 이상이 주민의 3%였고, 80세 이상이 15% 정도였다고 한다. 1978년에 이곳을 방문한 NHK의 보도에 따르면 100세 넘는 노인들이 수두룩하고 70, 80세 된 노인들은 청년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에는 그것이 큰 화제거리였다. 아니, 그전부터 훈자는 장수마을로 유명했었다. 장수의 비결은 맑은 공기, 아름다운 자연과 스트레스 없는 삶, 소식하는 습관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NHK와의 인터뷰에서 최고령 노인은 자신의 건강 비결은 “하늘의 뜻에 따르며, 식사는 감자나 시금치 등 땅에서 나는 거친 음식을 조금씩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해가 뜨면 일하고 배고프면 밥 먹는 자연적인 리듬에 따른 스트레스 없는 생활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장수 노인은 오히려 선진국, 특히 한국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100세 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정정한 90세 들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일찌감치 50, 60대부터 병든 사람들도 나오고 오래 살지만 약 기운에 버티는 이들도 많다. 현대인의 장수는 잘 먹는 데 있지만 동시에 생기는 성인병을 약과 의료 기술로 극복하는데서 온다. 그래서 이제 ‘훈자는 장수마을’이란 말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변해가고 있다.
또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1933년에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서양 여행자의 기록에 따르면 훈자 마을에 장이 서기는 했는데 훈자 미르(소왕국의 왕)가 시끄러워서 금지했다고 한다. 우체국도 하나 있었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았을 정도로 훈자 사람들은 한적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이제 여행자들이 이 산골 마을로 오기 시작했고 그들 따라 훈자 주민들의 마음과 삶도 같이 바빠졌다. 그래서 그럴까? 이들의 평균 수명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100세 넘는 노인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또 이곳의 물은 석회질이 섞인 빙하 녹은 물이라 식수로서는 좋지 않다. 그러므로 생수를 마시는 것이 좋다.
“그래도 느긋하고 한적한 훈자”
그러나 훈자 마을은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도시에서 온 이들에게는 여전히 경치가 좋고 기후가 좋으며 한적한 도시다. 사람들도 친절한 편이어서 한 시절을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다. 여행자들은 딱히 바쁘게 뭘 보러 다닐 일이 없다. 간단한 식사를 한 뒤 하루 종일 주변을 산책하거나 바위에 걸터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것이 일이다. 공기가 맑으니 걷는 동안에도 몸이 둥둥 떠가는 것만 같다. 이런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훈자 마을의 트레킹”
훈자는 가볍게 트레킹하기가 좋은 곳이다. 특히 가장 좋은 계절은 봄, 가을인데 여름에도 많은 여행자들이 오고 있다. 즉 4월에서 10월까지가 좋은데 다른 지역에 비해 서늘한 편이지만 낮에는 따스하고 선선해서 지내기 좋다. 11월은 추운 편이지만 그래도 낮에는 서늘한 편이어서 걷기에 좋다.
이곳 마을에는 수로가 있다. 계곡물을 마을에 흐르게 만들기 위해 만든 물길인데, 물길 따라서 느긋하게 걷는 시간이 즐겁다. 또 벼랑 끝에 우뚝 솟은 요새. 돌로 만들어진 알티트 포트는 감시 초소같은 역할을 했다. 허공을 향해 날아가려는 독수리처럼 보인다. 안까지 들어가지는 못해도 주변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면 기가 막히다. 깎아지를 듯한 벼랑 밑으로 시퍼런 훈자강이 도도히 흐르고, 건너편 산골짜기에는 나기 마을이 보인다. 멀리 해발 7,788m의 라카포시 봉이 빛나고, 왼쪽으로는 계곡을 따라 카라코람 고개가 실처럼 이어진다. 6월쯤에 오면 여행자들 따스한 햇살 밑에서 옷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곳이다.
또 훈자 지역에서 가장 높은 마을인 멜리쉬카르와 두이카르(해발 3,000,m)까지 트레킹 할 수도 있다. 이곳에 오르면 훈자 계곡의 전경이 밑으로 내려다보이고 호텔도 있다. 건너 마을인 가네쉬 마을과 나기르 마을까지 트레킹을 즐길 수도 있다. 숙소와 식당이 넉넉한 카리마바드에 머물며 근처 마을을 트레킹 하며 한 시절을 보내는 여행자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