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의 흔적을 찾아서
소설이자 영화로 제작된 ‘해리포터’가 크게 인기를 끌자 그 흔적을 보려고 에든버러에 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작가 J.K. 롤링이 해리포터를 구상한 곳이라 알려진 ‘코끼리 하우스’ (Elephant House) 레스토랑 앞에는 ‘Birthplace of Harry Potter’(해리 포터의 탄생지)라는 간판이 있고 점심 시간에는 긴 줄이 항상 있다.
“엘리펀트 하우스(Elephant House, 코끼리 하우스)는 해리포터의 탄생지가 아니다”
해리포터의 저자 롤링은 2023년 6월 21일 트위터로 팬들과 대화하면서 "엘리펀트 하우스가 해리포터의 탄생지가 맞느냐"는 질문에 "나는 엘리펀트 하우스에 다니기 몇 년 전부터 해리포터를 쓰고 있었다"면서 "그곳에서 해리포터를 쓰긴 했지만 탄생지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롤링은 "해리포터에 관한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곳을 해리포터 탄생지라고 한다면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 안"이라고 말한다. 해리포터의 첫 번째 책이 완성되기까지 5년이 걸렸다. 평소에도 늘 생각하며 살았는데 맨체스터에서 런던에 오는 기차가 고장으로 멈춘 4시간 동안 ‘마법사 소년 캐릭터의 외적인 모습과 마법 학교의 분위기를 구상했고 주인공의 성장스토리를 시리즈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녀는 또한 "처음 펜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한 곳을 탄생지라고 한다면 런던의 한 스포츠용품점 위의 임대주택이 진짜 탄생지"라고 설명했다. 롤링은 또한 호그와트의 도서관 모델로 알려진 포르투갈 포르투 렐루서점에 대해선 "아름답고 가보고 싶긴 하나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면서 호그와트와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은 결코 좋은 카페, 좋은 식당, 경치 좋은 빌라가 아니라 기차 안,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안, 돈 없이 궁색하게 살아가는 임대주택 같은 곳이라는 사실 앞에서 짜릿한 흥분을 느끼게 된다. 희망은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피어 오른다.
해리포터의 작품 속에 나오는 캐릭터, 배경, 환경은 모두 그녀의 삶에서 나왔다. 작가들에게는 고통이든, 슬픔이든 그 모든 것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자신이 보고, 느꼈던 것들을 항상 생생하게 기억하며 되살려냈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카페에 앉아 있다고 좋은 상상력이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엘리펀트 카페에서 롤링이 글을 쓴 것은 맞다.
“첫 번째 해리포터의 많은 부분을 썼던 니콜슨 카페”
그녀가 글을 쓰느라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곳은 에든버러의 니콜슨 카페 (Nicolson’s Cafe)다. 2001년 BBC 인터뷰에서 첫 번째 해리 포터의 많은 부분을 이곳에서 썼다고 작가는 밝혔다. 이혼한 롤링은 딸과 함께 에든버러로 왔다. 그녀는 젖먹이 아기를 유모차 데리고 다니며 산책하다가 아이가 잠이 들면, 자신의 동생 남편 즉 제부가 하던 이 카페로 와서 글을 썼다. 사람이 많으면 근처의 ‘엘리펀트 하우스’로 가서 글을 썼다. 그녀가 해리포터 원고를 처음 쓰던 곳은 런던의 임대주택이었다. 1992년 결혼했던 그들은 1년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남편은 폭력적이었고 종종 그녀의 가방을 뒤졌으며 그녀는 현관 열쇠도 없었다고 한다. 남편은 그녀로부터 원고를 빼앗았다. 그 원고가 그녀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것임을 잘 알던 남편이기에 롤링은 남편이 원고를 불사르거나 그것을 볼모로 자신을 못 떠나게 할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다. 결국 그녀는 몰래 몇 장씩 원고를 복사해서 따로 숨겼고 마침내 결혼 1년 만에 남편이 그녀를 집밖으로 끌고 나와 폭행함으로써 그들의 관계는 끝났다.
왜 남편은 그녀에게 그렇게 폭력적이었을까? 부부간의 사정을 제3자가 알 수 없지만 롤링은 작가이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롤링은 대학에 떨어졌을 때도, 해고당했을 때도, 결혼 후에도 글에 대한 애정을 버린 적이 없었다. 그녀는 운이 좋아서 어느 날 갑자기 유명작가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독서법은 다독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수없이 읽는 것이라 했다. 소녀 시절, 그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을 닳고 닳도록 읽었다고 한다. 그녀는 ‘헌신적인 독자가 되지 않고서는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면서 그것을 거치고 나면 자신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말한다.
이혼 후, 롤링은 가난을 면하고자 했으면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영어 강사 일도 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해리포터 첫 번째 책을 3장까지 썼던 그녀는 정부 보조금 받는 것을 선택한 후, 1년간 마음껏 글을 썼다. 그것을 완성한 후, 출판사를 알아보는 가운데 프랑스어 강사로 일을 하기도 했다.
니콜슨 카페의 구석에 앉아 썼던 글이 세계적인 소설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 여동생 가족도 몰랐을 것이다. 돈 없던 시절,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아기 유모차를 옆에 놓은 채 하루 종일 소설을 썼던 작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결혼 생활의 악몽과 상처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고, 앞날은 불투명하고 막막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글에 대한 열망과 상상력이 그녀를 그 상처와 불안으로부터 탈출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대박’이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성공으로 현재 그녀의 재산은 8억 5천만 파운드(1조 3천억원)이라고 한다. 물론 그녀는 돈이 필요했지만 돈을 위해서 글을 쓴 작가는 아니었다. 자신의 상상력 풀어 헤치는 재미에 글을 썼으며 그녀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위해서 글을 썼다고 말한다. 아쉽게도 그 니콜슨 카페는 문을 닫고 이제는 스푼(spoon)이라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J.K. 롤링이 이곳에서 첫 번째 해리포터 책을 썼다는 간판이 서 있다.
“해리포터의 흔적들”
그레이프라이어스 커크야드 (Greyfriars Kirkyard)도 해리포터와 관련이 있다. ‘코끼리 하우스’(Elephant House)의 근처에 있는 공동묘지로 그녀는 이곳에서 작품 속에서 가장 악명 높은 Lord Voldmort의 진짜 이름 Tom Riddle를 얻었다고 한다. 공동묘지의 어느 묘에 있는 Tom Riddell에서 영감을 받았고 또 McGonagall의 이름도 공동묘지 이름을 이용했다고 한다. 소설이 유명해지고 나니 이런 곳에도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그녀는 엘리펀트 하우스나 니콜슨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산책을 하던 중에 이 공동묘지에 종종 들렀다고 한다. 아마도 작가는 이름을 따오기 위해서 이곳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습관적인 행동 속에서 무의식에 축적된 기억들이 어느 순간 튀어나왔을 것이다.
에든버러 더 발모랄 호텔 (The Balmoral Hotel) 552호실에서 그녀는 해리포터 시리즈 마지막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집필했다. 지금도 552호에 가면 식탁에 “JK Rowling finished writing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in this room on 11th Jan 2007”(J.K. 롤링이 1월 11일 2007년에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완필했습니다.)”가 적혀 있다고 한다.
빅토리아 거리 (Victoria Street)와 캔들메이커 거리 (Candlemaker Row)는 작품 속에 나오는 다이애건 거리 (Diagon Alley), 즉 마법사들이 쇼핑거리와 비슷하다. 작품 속의 거리의 모티브가 빅토리아 스트리트로 비스듬하게 휜 모양이 같다. 이 거리 역시 작가가 늘 걸으며 무의식에 축적된 모습들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일생에 한번은 가볼 만한 도시, 에든버러”
작가가 에든버러에 와서 글을 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중세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들어선 에든버러는 ‘다른 세계’처럼 다가오는 도시다. 마법 학교에 가기 위해 주인공들이 벽을 뚫고 기차를 타고 간 것처럼, 그녀는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에든버러에 왔을 것이다. 그리고 마치 이 에든버러를 마법사들이 사는 동네로 상상하면서 하루하루 글을 썼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그 시간 자체가 흥미진진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로얄 마일(Royal Mile)의 끝에는 J.K. 롤링의 핸드 프린트가 있다. 에든버러에서 J.K. 롤링이 큰 공헌을 했다고 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작가 역시 에든버러라는 도시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곳들은 해리포터 책을 읽고, 영화를 보아야 더 감동하게 된다. 우리가 영화의 배경지, 촬영장소 혹은 작가와 관련된 곳에 가서 감동하는 것은 그 작품과 작가를 좋아하고 거기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든버러에 가서 더 많은 감동과 즐거움을 누리려면 가기 전에 해리포터를 다시 읽고 영화도 다시 보기를 권한다. 에든버러에서는 해리포터 무료 투어도 있다. 한 시간 반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이 투어는 끝나고 나서 다들 약간의 팁을 준다. 또 돈을 내고 하는 투어 중에는 해리포터와 에든버러 역사 투어도 있는데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3시간 반 정도 하는 워킹 투어도 평판이 좋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와 역사와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뒤섞인 에든버러에 가보고 싶지 않은가? 에든버러는 일생에 한 번은 꼭 가볼 만한 가치 있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