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아스터교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신도들이 사는 야즈드
야즈드(Yazd)드는 역사와 종교를 알면 매우 신비하게 다가오는 도시다. 현재 인구는 약 50여만 명이고 이란에서 15번째로 큰 도시로 유명한 관광지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역사와 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를 알면 엄청난 매력을 갖고 다가오는 도시다.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지, 야즈드(Yazd)”
야즈드(Yazd)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신'이란 뜻이며 사산 제국시기에 국교이던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지였다. 사산 왕조란 224년에 건국되어 651년 멸망한 페르시아 왕조의 하나를 말한다. 야즈드란 이름은 샤한샤 야즈데게르드 1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당시의 유적이 남아있고 이슬람교가 들어와 이란 지역을 지배했어도 카비르 사막 지대에 고립되어 있던 지형 때문에 역사적으로 큰 변동이 없었다. 지금도 이곳은 전통을 지키고,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중세의 가족 중심 문화가 깊게 배어있다.
야즈드는 중세에는 카쿠이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다.(1051 ~ 1141년) 그후 토착 아타베그들이 통치하였는데 1297년 몽골족의 일 칸국에게 흡수되었다가 1315년에 복구된 아타베그국은 1319년 무자파르 왕조에 의해 정복된다. 무자파르 왕조는 처음에 야즈드를 수도로 삼았다가 1340년 케르만으로 천도하는데 1350년 시라즈의 인주 왕조가 야즈드를 포위했지만 격퇴시킨다. 그후 야즈드는 평화로운 시대를 살았다. 그 평화로 인해서 구도심에는 조로아스텨교 사원, 이슬람 사원, 바자르, 하맘(목욕탕),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관개 시설인 카나트 시스템과 전통 가옥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2017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조로아스터가 창시한 조로아스터교”
조로아스터교는 오래 전의 종교로서 교과서에서나 배우는 고대의 흔적같지만 사실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종교다. 그 종교가 내세운 ‘선악 개념’ ‘심판’의 개념은 불교, 유대교,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에 의해서 창시된 종교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조로아스터의 본명은 스피타마 자라투스트라(Spitama Zarathustra)이며, ’조로아스터’는 자라투스트라의 그리스식 발음이다. 훗날 니체가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씀으로 인해서 현대인들에게는 니체와 연관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사실 ‘자라투스투라’는 페르시아의 먼 고대의 인물이었다. 그는 기원전 660년경에 태어났다고 보지만 기원전 1500년경, 아니 기원전 6000년 경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또한 그가 테헤란 근방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프가니스탄, 혹은 이란 동부 국경의 옥수스 강 유역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자료가 없기에 그의 생애는 모든 것이 확실치 않다. 또한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와 관습도 훗날 세월이 지나면서 불교, 기독교가 그렇듯이 토착 신, 믿음, 의례가 가미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로아스터교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발상지 페르시아에서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 중엽까지 천여 년 동안 크게 위세를 떨치다가 이슬람교에 의해 잠식당했는데 신도 중 일부는 이슬람교로 개종했지만 일부는 인도를 비롯한 주변 지역으로 탈출했다. 현재 조로아스터교의 전 세계 신도 수는 약 15만 명으로 이란에는 4만 5천 명이 남아있다. 그중 1만 5천 명이 이란의 야즈드에 남아 있고 인도 뭄바이(봄베이) 지역에 약 10만 명이 모여있다. 그러니까 야즈드는 종교와 조로아스터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흥미로운 도시다.
조로아스터교는 흔히 불을 숭배한다 하여 ‘배화교’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들의 신전에는 늘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다. 그러나 불 자체보다도 봉헌물을 태울 때 불꽃과 냄새를 피워 경배하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한다. 어쨌든 중국에 들어온 조로아스터교는 배화교로 불리며 한때 중국에도 퍼졌었다. 조로아스터교의 교리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일신 개념, 선악개념, 악마 개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조로아스텨교에서는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믿어서 스스로를 마즈다 예배교(마즈다야스나 :Mazdayasna)라고도 부른다.
“조로아스터교의 교리”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아베스타》에 의하면, 태초에 ‘아후라 마즈다’에서 두 영이 나왔는데 하나는 선을 선택한 영으로, 천사인 스펜타 마이뉴(spentas mainyu)고 다른 하나는 악을 택한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다. 훗날 앙그라 마이뉴는 ‘아흐리만(ahriman)’으로 변한다. 악령 앙그라 마이뉴는 다른 이름들로도 불렸는데, 그중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샤이틴’이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탄’이다. 사탄은 사람을 시험하거나 괴롭히는 일을 수행한다.
조로아스터교에 의하면 세상은 선과 악이 싸우는 투쟁의 현장인데,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자유 의지를 활용하여 이 둘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이때 인간은 선을 선택하여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때 선과 악은 한쪽이 존재해야지만 다른 한쪽도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아후라 마즈다의 쌍둥이’라고 부른다. 선의 천사들은 원래의 자연종교적 ·물신숭배적(物神崇拜的) 특성이 약화되면서 ‘아후라 마즈다’의 뜻을 받아들이며, 그의 뜻대로 움직이는 비주체적 천사가 되고, 반대로 악의 천사들은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아후라 마즈다’와 직접 대결하게 된다.
이런 교리는 기독교의 선악개념,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하는 뱀, 그것을 먹은 후 스스로 똑똑해져서 부끄러움을 알고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하와의 신화와 비슷한 면이 있다. 즉 인간은 ‘주’의 뜻대로 비주체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만 ‘자신’을 내세우면서 타락하는 순간 사탄, 악령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종말론은 2단계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3일 동안 몸에 그대로 남아서 한평생 행한 일을 돌이켜보고, 제 4일째 심판대로 간다고 믿는다. 따라서 사자(死者)의 육체는 그들의 독특한 장사(葬事)법인 풍장(風葬), 조장(鳥葬)에 의해 독수리의 밥이 되지만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 심판을 받고 선한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악한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하밍스타간 (Hamingstagan)'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양쪽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중간 상태의 사람들이 머무는 곳을 말한다. 그리고 아후라 마즈다가 예정해 놓은 종말에 이르러 구세주가 나타나면 모든 영혼들이 부활하고, 악한 영혼은 순화되어 선한 영혼과 합류하며 사탄과 악령들은 완전히 소멸된다고 믿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로아스터는 열두 살에 집을 떠났고, 서른 살에 강력한 신비체험과 영감을 얻었다. 아후라 마즈다 신의 천사장으로부터 유일신에 대한 계시를 받게 되며, 그 후 8년 동안 아후라 마즈다의 나머지 다섯 천사들이 하나씩 나타나 그에게 진리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 후 조로아스터가 계시받은 진리를 대중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으나, 모두 그를 광인(狂人)이라 생각하고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그의 사촌 중 하나가 그를 믿고 제자가 되었으며, 그 후 왕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가 전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인간의 존재가 갖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다가 20세에 속세를 등지고 금욕생활을 하던 중, 마침내 30대에 신으로부터 예언자로 점지되어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후 8년 동안 정직 · 바른 사고 · 정의 · 겸손 · 성취 · 불멸 등의 속성을 대변하는 여섯 명의 최고 천사들을 만나 교리를 다듬고 전파했지만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실망하고 있을 때 악령이 찾아와 종교를 버리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거부하고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쪽으로 들어갔다가 2년간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왕을 설득해 그의 보호와 후원을 받으면서 그의 종교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왕은 1만 2천 마리의 소가죽을 무두질하여 햇볕에 말린 후 그 위에 경전 『아베스타』를 쓰도록 명하였지만 그때의 경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유목민들에게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던 조로아스터는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설’이 진실이 아니라 조로아스터교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조로아스터는 다만 가르침을 설교했고 그런 것들이 구전에 의해 전파되다가 서기 3, 4세기경에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에 와서 조로아스터교가 국교가 되는 과정에서 경전 21권이 편찬된 것으로 본다. 불경이나 기독교 성경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석가모니나 예수는 가르침을 말했고 제자들이 훗날 경전을 만들었다.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은 비교적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것은 한두 권뿐인데, 그 교리에는 유목사회로부터 농경사회로 넘어가는 역사적 시대상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신관(神觀)에는 다신교에서 이신교(二神敎, 선신(善神)과 악신(惡神))를 거쳐 일신교로 승화하는 지향성이 담겨 있어서 조로아스터교를 이원론적 일신교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란 지방에서는 기원전 6세기 경부터 시작된 아케메네스(Acheamenes) 왕조(569~331B.C.) 무렵부터 이미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지만 원래 있던 전통 종교 추종자들과 타협하는 가운데 교리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때까지 행해지던 가축 희생제사를 중단시키고 대신 진리의 상징으로 불을 사용했다. 조로아스터 달력을 체택했지만 고대 이란의 신 미트라(Mithra)와 여신 아나히타(Anahita)도 조로아스터의 최고 신 아후라 마즈다와 같이 왕실에서 받들어졌다. 그후 교리가 발전하는 가운데 최고의 신 아후라 마즈다의 조수이며 측근인, 빛의 영웅 미트라(Mithra)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태양신의 개념이 변모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미트라가 훗날 불교에 영향을 미쳐 ‘미륵불’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런 선악, 천국지옥의 개념은 그 시절의 불교, 유대교, 훗날의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 올드 시티 걷기”
야즈드의 올드시티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라고 알려져 있다. 1350년 이래 전쟁을 겪지 않고 사막의 외진 곳에서 평화롭게 살아온 이 도시는 옛 모습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진흙으로 만든 벽돌 건물은 한쪽 면이 허물어져 있기도 하고, 거의 대부분이 무너져 내린 건물들도 종종 눈에 띄지만 살아남은 오래된 건물들은 메마르고 황량한 느낌을 주면서도 아늑해 보인다. 좁은 골목길을 걷는 것이 먼 오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반 같다. 사람들은 무심하게 살아가고 있고 해는 무심하게 뜨고 진다. 저녁노을 속에서 물들어가는 이 올드시티의 풍경은 다른 어느 곳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함과 세월의 무상함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