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Iran)
이란은 '사탄의 시(Satanic Verses)'에 대해 어떤 언급조차 할 수 없는 곳으로, 햇빛에 그을려가며 여행할 여행지 목록에 올려질 곳은 아니다. 하지만 차도르착용에 개의치 않거나 에일(ale; 맥주의 일종)과 여권신장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 피한다면 나름대로 실망치 않는 흥미로운 여행을 선물할 것이다. 문화 탐방자들은 이란에서 격조 높은 고대도시의 잔해와 화려한 회교사원, 모솔리엄(mausoleum;무덤), 흥미로운 박물관 등을 볼 수 있다. 더욱 모험적인 것을 원한다면 소달구지를 타고 여행하거나 저렴한 스키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배낭 속에 조심스럽게 보관했던 행글라이더를 타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대담한 이란인들도 구경할 수 있다.
  • 통계 자료
  • 국명: 이란 회교 공화국(The Islamic Republic of Iran)
    면적: 1,648,000 sq km
    인구: 7000만 명
    수도: 테헤란(Tehran; 인구 1500만 명)
    인종: 페르시아인(파시스 Farsis;65%), 아자리인(Azari; 25%), 아랍인(4%), 로스인(2%), 투르크 멘인(2%), 커디쉬인(Kurdish), 아르메니아인(Armenian), 유태인
    언어: 페르시아어
    종교: 이슬람교
    정치: 회교공화국
    정신적 지도자: 아야톨라하 사에드 아일 카메네이(Ayatollah Sayyed Ali Khamenei)
  • 지리 및 기후
  • 이란 회교 공화국은, 북쪽으로 아르메니아(Armenia),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투르크멘공화국(Turkmenistan)(모두 이전에는 구소련에 속했다) 그리고 카스피해와 접해있으며,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과 파키스탄(Pakistan), 남쪽으로는 오만(Oman)만과 페르시아 만 그리고 서쪽으로는 이라크(Iraq)와 터키(Turkey)를 마주하고있다. 이란의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약 8배에 해당한다. 이란에는 3개의 산맥이 솟아있는데, 북서쪽의 비옥한 토양을 가진 화산대 사바란(Sabalan)과 타레쉬(Talesh) 산맥: 쥬라기에 형성되어 서쪽 국경 아랫부분 기다랗게 늘어서 있는 자그로스(Zagros)산맥; 그리고 이란에서 가장 높으며 만년설로 덮인 다마벤드(Damavand)산(5670m)이 속한 알보르즈(Alborz) 산맥 등이다. 북동쪽과 중앙평원 동쪽은 커다란 두 사막, 데쉬트-카비르(Dasht-et Kavir;200,999 sq km)와 데쉬트-룻(Dasht-e Lut)(166,000 sq km)으로 대부분 덮여 있다. 거칠 것 없는 대규모 도시개발과 산업발전 그리고 이란-이라크전쟁은 카스피해와 페르시아 만 주위의 자연환경, 특히 알보르즈(Alborz)산맥의 남부 능선에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를 초래하였다. 더 이상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란정부는 몇 개의 국립공원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공원에 울타리와 산림감시원이 없으므로 이 국립공원이 파괴되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알보르즈 산맥의 북부능선은 낙엽수림으로 빽빽히 들어차 있고 이란에서 가장 방대하게 식물이 성장하는 지역이다. 아르다빌(Ardabil) 북쪽에 있는 칼칼(Khalkhal)과 고간(Gorgan) 남쪽 접경에 있는 나하르코란(Nahar Khoran)은 빼어난 관목 지대이다. 늑대, 자칼, 멧돼지, 하이에나, 흑곰, 스라소니 같은 포유동물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마잔다란(Mazandaran)지방의 깊은 숲 속에 많이 서식한다. 사막과 산에서는, 여유있는 페르시아 다람쥐와 몽구스, 빠르게 움직이는 페르시아 가젤(Gazelle), 호저(Porcupine), 오소리(Badger)와 토종의 야생 이란 당나귀도 볼 수 있다. 매력적인 동물로는, 검은 수염과 나선형 뿔을 가진 커다란 알보르즈 붉은사슴과 흰수염과 큰 뿔을 가진 오리얼(Oreal)양이 있다.
    지형과 고도의 다양성, 국토의 크기로 인해 이란의 날씨는 매우 변덕스럽다. 겨울(12월에서 2월까지)에는 대부분 지방이 매우 추운 반면, 여름(6월에서 8월까지)에는 기온이 40℃까지 올라 매우 덥다. 일반적으로 강수량은, 이란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북쪽과 서쪽으로 갈수록 줄어든다.
  • 역사
  • 이란 지역에 등장한 최초의 인류는 엘라미티스(Elamites)로 추측되고 있다. BC2000년 경 아리아(Aryans)인들이 농업과 자급자족기술을 가지고 이 지역으로 왔다. 아케메니아 왕인 시리우스대왕(Cyrus the Great)이 이 지역을 침범했던 6세기 중반까지 페르시아의 역사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케메니아(Achaemenian) 왕조가 페르시아 제국을 건국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결과적으로는 오늘날 이란의 탄생이 그 전통을 이어온 셈이다. BC4세기 경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 이집트, 터키, 이라크 등을 정복한 후 페르시아를 침공하였다. 3번에 걸친 다리우스(Darius) 3세의 평화협상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는 셔시(Shush)로 침범했다. 그는 그곳에서부터 동쪽으로 가기 위해 산을 넘어 시간을 조금 지체하긴 했지만 결국엔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로 들어갔다. BC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알렉산더제국은, 마케도니아 셀레시드(Macedonian Seleucids)의 지배하에 있던 페르시아와 더불어 3개의 왕조로 분리되어 서로 싸웠다. 그러나 셀레시드는, AD 3세기까지 페르시아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던 유목민 파티안(Parthians)을 비롯해 상당수의 호전적인 소수민족을 지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페르시아의 중부지역에서 온 사사니안(Sassanians)은 파티안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산업을 중요시하는 조로아스터교도(Zoroastrian)로 이루어진 집단으로서 도시개발과 무역을 추진하였으나 결국 싸움에 참여하게 되어 637년 아랍(Arabs)에 의해 패망하였다. 아랍은 1050년까지 이 지역을 통치하였고 이슬람교가 대부분 인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페르시아 문자와 이슬람 문화가 전파되었다. 아립인들은 1051년 에스파한(Esfahan)을 점령한 터키 왕조에 의해 패망했다. 많은 투쟁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13세기초 징기스칸이 이끄는 용맹한 몽골에 의해 완전히 무릎 꿇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곳에 군림하였다. 14세기 후반 몽골이 통치력을 상실하자 티무리드(Timurid) 왕조가 그 공백을 매웠으나, 투르크멘(Turkmen)족, 오토만 터키( Ottoman Turks)족, 그리고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식민지 등의 견제를 받았다.
    뒤를 이은 사파비드(Safavid)왕조(1502-1722)는 위대한 페르시아 제국 중 하나였다. 현명한 사하아바스 1세(Shah Abbas I)와 그의 추종자들은 시아(Shiism)파의 신전을 세웠고 에스파한(Esfahan)을 다시 건설하였다. 그러나 왕조의 운명은 18세기초 아파한(Afahan)의 침입으로 쇠퇴했다. 하지만 아파한(Afahan) 역시 통치력을 유지할 수 없었고, 그 후 이란은 때론 이상하고 악독한 통치자에 의해, 때론 인정많은 통치자에 의해 유지되다가, 1779년 냉혹하고 포악한 아그하 무하메드 칸(Agha Muhammed Khan)이 터키의 가자(Ghajars)를 통합하고 테헤란에 수도를 세우면서 다시 중앙집권화되었다. 가자의 왕들은 1921년까지 평화스럽게 이란을 지배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중립을 유지하였다. 마지막 가자(Ghajar)왕 중 한 명이 선거와 입법의회(마지리스;Majlis)를 소개하였으나, 이것은 1923년 페르시아의 레자 칸(Reza Khan)시대 전까진 활용되지 못했다. 레자(Reza)는 수상이 되었고 20세기로의 거대한 과업을 이끌기 시작하였다. 이란(이 국명은 1934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다시 한 번 중립을 지켰으나 영국과 구소련이 독일을 몰아내기 위해 이란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41년 레자(Reza)는 남아프리카로 추방당했고 그의 아들 모하메드레자(mohammed Reza)가 뒤를 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이 구소련의 철수를 설득하여, 젊은 왕(Shah)은 절대적 권력을 다시 얻었고 이란은 서방에 돈독한 우방이 되었다. 그후 30년 동안 왕정의 억압정책과 현대화 정책에 맞선 저항 세력들이 생겨났다. 왕의 그릇된 석유 정책으로 경제가 매우 나빠지자 힘을 키우던 저항 세력은 태업과 대규모의 시위를 통해 그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왕의 책임은 빠져 나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고 미국이 저항세력을 지지하자, 그는 결국 1979년 1월 16일 물러나고 말았다. 몇 주가 지난 후 왕의 반대 세력 지도자로 알려진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가 다시 돌아와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야톨라의 열렬한 민족주의와 이슬람근본주의의 표방은 성직자들이 지배하는 회교공화국을 효과적으로 건설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란에서 미국은 '악마'로 낙인찍혔고 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로 매도되었다.
    호메이니가 이만(Eman;지도자)으로 선포된 지 오래지 않아 이라크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은 기회를 잘 잡아 카자흐스탄(Khuzestan) 지방의 땅을 차지하였다. 이것은 불길한 징조였으며 두 나라를 끔직한 전쟁에 몰아넣어 1988년 불만족스런 종전협상이 있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서방강대국과 구소련은 '두 악을 약화시킨다'는 논리를 전개하며 이라크를 지원하는 동시에, 무기는 매우 비싸게 이란에게만 판매하였다. 불확실한 미래만을 남겨둔 채 1989년 6월 4일 호메이니는 세상을 떠났고 2달 후에 호잣올에슬람라프산자니(Hojjat-ol-Eslam Rafsanjani)가 명예직으로만 되왔던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대법관으로써의 호메이니 위치는 전직 대통령인 알리 호메이니(Ayatollah Ali Khomenei)가 차지했다. 이란은 미국에 의해 수출입금지조치를 통고 받았는데, 이는 이란이 전세계에 있는 테러집단을 도왔고 중동지방의 평화유지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1997년 선거에서 온건파의 호잣올 에슬람 세이드 모하메드 카타미(Hojjat-ol-Eslam Seyed Mohammed Khatami)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국민들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호전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이란과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 유럽국과의 관계는 1997년 최악의 상태가 되었는데, 수년 전 독일에 저항했던 이란의 쿠르드 족(Kurdish) 암살테러에 이란 정부가 연관되었다는 독일 법원의 판결 때문이었다. 카타미(Khatami)의 당선은 이슬람 혁명과 전혀 관련이 없는 많은 여성과 젊은 투표자들의 지지로 이룩된 것이며, 그들은 이슬람 공화국의 강요에 의한 보수적인 정책이 느슨해지기를 희망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야당성 정치활동은 그렇게 활발하지 못한 상태이다.
  • 경제
  • 국내 총생산 GDP : US$ 3,851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4,149
    연간성장률:4.2%
    물가상승률:19%
    주요산업: 기름, 가스, 농업, 카페트
    주요교역국: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아랍에미레이트 공화국
  • 문화
  • 이란의 광적인 신앙심은 가장 충격적인 문화적 특성이다. 이러한 종교 생활은 삶의 구석구석 퍼져있다. 이슬람 신앙의 근본은 유일신과 코란(Quran)에 적혀 있는 방법대로 신을 섬기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믿는 것이다. 아라비아어로 이슬람은 복종이란 뜻이고, 무슬림(Muslim)은 신의계시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란의 보수적인 시아파를 상징하며 일상 생활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은 회교사원에서의 정숙한 의복과 행동이다. 이란의 국어는 인도유럽계의 언어로 파시(Farsi)라고 알려진 페르시아어이다. 다른 중요한 지역 언어로는 아자리(Azari), 쿠르드어(Kurdish), 아라비아어(Arabic), 로스어(Lori; 로스 Lors라고 발음됨)가 있고 26군데 지방에 걸쳐 길라키(Gilaki)와 바루치(Baluchi), 트루크맨의 몇 십가지 방언이 있다. 아랍 문자는 이슬람 문화가 소개된 후 쓰였으나 페르시아어를 영어로 옮기는 표준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모든 이슬람 사회가 그러하듯이 이란 예술은 추상적인 것, 파생된 것, 양식화 된 것을 선호한다. 많은 이란의 예술품들은 아랍이 정복하기 전에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이슬람시대에 전성기를 거쳤기 때문에 종교적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다. 페르시아 카페트는 이란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수출품으로 그 역사는 BC5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아직도 종교와 문화축제 속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경제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호감이 가며 듣기 좋은 전통음악은 투르크맨(Turkmen), 아자리스(Azaris), 커디쉬(kurds)와 로스(Lors) 등 소수민족들에게서 발견된다. 페르시아 시는 AD9세기에 처음 나타났고, 서사시의 표준으로 서서히 자리잡아 오늘날 문화유산이 된, 운이 없는 이행연구(계속되는 2행의 싯구에서 같은 각운이 있고 같은 음절로 이루어진)형의 시가 발전하였다. 최근 이란의 영화가 눈에 띄게 발전하였는데, 가베(Gabbeh)의 제작자인 모센마크하말바프(Mohsen Markhamalbaf)는 영화제작자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란음식은 최고이며 매우 맛있다. 요리에는 쌀, 빵, 신선한 야채, 허브와 과일이 주재료로 쓰인다. 고기는 주로 잘게 썰거나 작은 덩어리로 자른 양고기가 사용되는데, 케밥(Kebab)에 넣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재료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여행자들에게는, 케밥이나 닭고기에 밥(혹은 야채나 빵)이 가장 일반적으로 대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이란음식을 먹으려면 가정집에 초대되거나 고급호텔에서 비싼 음식을 사먹어야 한다. 이란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료는 의심할 바 없이 차이(Chy; 차)이며, 항상 검고 강한 맛의 차가 팔팔 끓여 나온다. 다양하고 신선한 과일주스, 밀크쉐이크와 발효음료는 이란 전역에서 마실 수 있다. 술은, 교회에서 성찬식할 때의 포도주같이 종교적 이유나 특별히 허용된 이슬람 교도가 아니면 이슬람교인들에겐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 축제 및 행사
  • 종교적인 휴일에는 문이 있는 모든 곳은 문을 닫는다. 따라서 휴일을 잘 체크해 두어야 한다. 이란의 종교적 휴일은 회교음력을 따르므로 양력에 맞춘 날짜들은 매년 바뀐다. 주요행사로는, 새벽에서 해질 때까지 단식하는 라마단(Ramadan)과 라마단(Ramadan)의 끝을 알리는 축제로서 하루동안 열리는 축제 Eid-e Fetr 그리고 교조 모하메드(Mohammed)가 그의 후계자로 이만알리(Eman Ali)를 지목한 날을 기념하는 Ghadir-e Khom와 모하메드(Mohammed) 탄신일이 있다.
    국경일은 페르시아양력을 따르는데, 아직은 서양 양력 날짜와 맞아떨어진다. 제일 시끌벅적한 날은 호메이니(khomeini)가 권력을 장악한 2월11일로, 이란의 이슬람혁명에 대한 위대한 승리(Magnificent Victory of the Islamic Revolution of Iran)' 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날이다. 노 루즈(No Ruz)또는 이란의 신년(3월 21일에서 24일까지)도 매우 열광적으로 기념되며, 6월4일은 1989년 비통한 죽음을 맞이한 이란 회교공화국의 위대한 지도자 호메이니를 추모하는 날이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이란을 방문하려면 누구나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에 요구되는 규칙이 많고 수수료도 비싼 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을 떠나기 전 비자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입국하면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비자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나라 밖에서 얻는 것보다는 쉽다.
    보건위생: 설사, 말라리아, 콜레라, 주혈 흡충병, 고공병, 햇빛에 의한 화상
    시간: GMT/UTC +3.5시간
    전력: 220V, 50Hz
    도랑형 : 미터제를 사용(도랑형 환산표 참조(영문))
  • 경비 및 환전
  • 화폐기본단위 : 리알(rial)
    일반 경비 :
    저렴한 식사 : US$ 1∼2
    중급 식당 : US$ 2∼10
    고급 식당 : US$ 10이상
    저렴한 방 : US$ 2∼10
    중급 호텔 : US$ 10∼40
    고급 호텔 : US$ 40∼110

    이란은 국제적인 기준에서 볼 때 물가가 비싼 곳은 아니다. 저렴한 호텔, 이란전통음식과 육로교통에 드는 최소한 비용은 하루 US$ 10정도이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하루 US$ 20정도로 좀 여유로울 수 있는데, 쓸만한 숙박시설과 좀더 나은 음식, 일등급 버스와 공공택시를 이용할 수 있고 가볼 만한 모든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다. 이란을 여행하는데 불편한 것 중 하나는 외국인에게는 2배의 요금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요금을 US달러로 지불하는 국제공항편이나 선박편 그리고 이란 현지인들보다 15배 이상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 주요 관광지나 고급호텔에서도 적용된다. 환전하는 데에는 3가지 방법이 있다(대부분 US달러를 현금으로 바꾼다): 공식적인, 그렇지만 형편없는 환율을 적용하는 은행과 그리 많진 않지만 괜찮은 거리의 환율을 적용하는 합법적인 환전소 그리고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암시장이 있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여행자수표는 환전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좋으며, 할 경우는 테헤란(Tehran)국제공항과 테헤란(Tehran)시내에 있는 멜리(Melli)은행에서만 가능하다. 신용카드를 받는 중급호텔들(모든 고급호텔들은 물론)이 늘어나고 있는데 비자(Visa)나 마스터(Master)카드가 사용되며, 아메리칸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는 역시나 취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이란에 대한 무역통상금지조치로, 미국에서 발급된 비자(Visa)나 마스터(Master)카드도 사용할 수 없다. 결론은 미달러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팁이란 것이 원래 좋은 써비스를 받았다고 생각될 때에만 주는 것이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팁을 주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이다. 계산을 끝낸 후에도 웨이터가 테이블 주위를 계속 배회하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반면 기억해 둘 것은, 당신을 도와준 이란사람들은 빈약한 봉급을 보충하고자 어느 정도의 보상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가격흥정이 일반적이지만, 상점에서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개인택시도 요금 흥정이 가능하지만 다른 교통수단은 정부에서 정해진 요금이므로 불가능하며, 고급호텔을 제외하고는 호텔요금도 흥정 가능하다.

  • 여행 시기
  • 일반적으로 이란여행에 최고의 시기는 4월 중순에서 6월 초순까지와 9월 하순에서 11월 초순까지이다. 이 기간은 길고 추운 북부지방의 겨울과 이란의 신년(3월말) 그리고 이란전역에 걸쳐 살인적인 더위를 기록하는 여름철을 피할 수 있는 때이다. 대부분 여행자가 단식기간인 회교도의 라마단(Ramadan)을 피해 여행하려 하지만, 대부분 식당이 새벽에서 저녁까지 문을 닫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라마단(Ramadan)기간에 여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주요 여행지
  • 테헤란(Tehran))
  •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를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축복받았다고 할 수는 없다. 테헤란(Tehran)을 대도시로 만드는데 한 몫한 공해와 인구밀집, 무책임한 계획성 등은 여행사들조차도 이 곳을 홍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동양적인 화려함으로 가득한 이국적인 지역을 기대하고 이 곳을 방문했다면 매우 실망할 것이다. 테헤란(Tehran)은 매우 넓은 반면 교통사정은 상당히 나쁘며 관광지역도 분산되어있다. 그러나 호텔은 좋은 편이고 각양각색의 식당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어느 곳이든지 편의시설은 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테헤란(Tehran)시민들은 친절하다. 도시에서의 주요여행지는 훌륭한 박물관들이다. 이 지역에 인류가 정착한 시기는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테헤란(Tehran)의 발전은 매우 느렸고 대부분 우연한 기회에 성장하였다. 16세기 중반부터 테헤란(Tehran)의 매력적인 자연과 유리한 사냥 조건은 사파비드(Safavid)왕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이 곳은 번성하는 무역도시에서 아름다운(먼지투성이지만) 도시로 발전했고 유럽의 여행자들은 이 곳의 무수한 포도밭과 정원에 대해 기술했다. 1789년 아가 무하메드 칸(Agah Muhammed Khan)은 테헤란(Tehran)을 수도로 선언하였고 6년 후 페르시아의 샤(shah)(이란국왕을 일컫는말)로 그 자신을 추대하였다. 도시는 후에 가자(Ghajar)통치자들의 통치하에 서서히 발전하였다.
    1920년대 초반부터 도시는 그리드(grid-바둑판 모양의)시스템의 도입으로 많이 현대화되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경이적인 인구성장과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도시발전이 시작되었다. 오늘날 테헤란(Tehran)은 너무 방대하여 어떤 형태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든지 간에 적어도 한 번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의무적이 되었다. 만약 이정표가 필요하다면 테헤란(Tehran)의 북극성으로 알려진 북쪽의 알보즈(Alborz)산과 이맘 호메이니(Emam khomeini)광장이 있는 남쪽의 거대한 전화국을 염두에 두자. 이란의 국립박물관(The National Museum of Iran)에는 BC 5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도자기, 석기 그리고 조각 등 불가사이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부분유물들은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수스(Shush), 리(Rey)와 투랑 (Turang Tappé)에서 발굴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고고학적인 지역을 방문하고 이곳을 찾는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유리 도자기박물관( The Glass & Ceremic Museum)은 테헤란(Tehran)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 중 하나인데, 전문가 수준으로 구성된 전시물뿐만 아니라 건물자체도 인상적인 곳이다. 또 다른 이상적인 곳은 레자 아베이시스(Reza Abbasis Museum)박물관으로 이슬람의 그림과 도기류 그리고 보석류가 전시되어있다. 국립왕궁(화이트)박물관(The National palace(white) Museum)은 마지막 샤(Shash)의 왕궁이었던 곳으로 지금은 종합박물관이 되었다.
    테헤란(Tehran)에서 박물관 이외의 최고 관광지는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으로 너무 커서 실질적으로 또 하나의 도시같은 인상을 준다. 또한 이맘 호메이니(Emam Khomeini)회교사원, 담갈색의 아르메니아사키스(Armenian Sakis)교회 그리고 도심공원과 정원들도 둘러 볼 만하다. 테헤란(Tehran)에서 저렴한 숙박 장소는 모두 도시의 남부에 위치해 있고, 이맘 호메이니(Emam Khomeini)광장에서 반경 1km이내에 있다. 이곳은 또한 맛있는 케밥(Kebab)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항은 테헤란(Tehran)도심에서 10km(6mi)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 잠쉬드(Jamshid)의 왕좌인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는, 약 BC512년 경 세워지기 시작하여 150년이 지난 후 복합건축물로서 완공된 거대하고 웅장한 왕궁이다.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는 BC331년 알렉산더대왕 시대에 불타버렸다. 이 사건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우연히 파괴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과 아테네(Athen)를 파괴한 엑서스(Xerxes)에 보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유적지는 지나간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의 영광의 자취에 지나지 않는다.
    놀랍게도 1930년대 초 재발견되기 전까지 전 지역이 먼지, 흙, 모래로 뒤덮혀 있었다.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엑서스의 문(Xerxes' Gateway)으로, 엘람어(Elamite)및 다른 고대언어로 된 조각과 비문으로 덮혀있다. 이 문은 거대한 아파다나(Apadana)왕궁복합건물로 연결되며, 이 왕궁에서 왕은 방문객을 맞이하고 수많은 연회를 열었다. 이 곳에서 수많은 금과 은이 쏟아져 나왔으나 알렉산더대왕에 의해 대부분 탈취되었고(그리 대왕답지 않은 행동임에도), 그가 남겨놓고 간 일부가 테헤란(Theran)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서 가장 큰 장소는 100개의 기둥을 가진 궁전(Palace of 100 Colums)으로서 아마도 아케메니아(Achaemenian)시대에 걸쳐 제일 거대한 건축물 중 하나일 것이다. 이곳은 한때 다리우스1세(Darius I)의 연회 장소로도 쓰였다.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는 시라즈(Shiraz)에서 57km(35mi)거리, 이스파한(Esfahan)도로에서 조금 벗어나 있으며 시라즈(Shiraz)에서 버스와 합승택시로 갈 수 있다.
  • 이스파한(Esfahan)
  • 이스파한(Esfahan)에 있는 이슬람 건축물의 차가운 푸른색 타일과 도시의 장엄한 다리들은 주변의 뜨겁고 건조한 이란풍의 시골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이룬다. 이스파한(Esfahan)의 정경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화려한 건축물과 기분좋은 기후뿐만 아니라 다른 이란지방과 비교해 보았을 때 충분히 휴식을 취할만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산책을 하거나 시장에서 헤매기도 하며, 아름다운 정원에서 졸거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 여유로운 도시이다.
    불완전 운으로 잘 알려진 Esfahan nesf-e jahan(이스파한은 세상의 반이라는 뜻)은 도시의 웅장함을 나타내기 위해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곳에는 볼 것이 많아서 시간을 아껴 써야 하며 반드시 들려야 할 이맘(Emam)회교사원에서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맘(Emam)회교사원은 이스파한(Esfahan)의 대표적인 색인 엷은 푸른색 타일로 완전히 덮여 있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이맘호메이니(Emam Khomeini)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심 광장중 하나이다. 사헬소툰(Chehel Sotun Museum & park)박물관과 공원은 17세기의 뛰어난 누각이며 피트닉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벤크(Vank)성당은 역사적으로 주목받는 이란의 아르메니아교회이다. 다리아래에 있는 찻집 중 한곳에서 차를 마셔보는 것도 이스파한(Esfahan)에서 꼭 해봐야 할 경험이다. 테헤란(Theran)남쪽에서 400km(250mi)거리에 있는 이스파한(Esfahan)에는 몇 개의 항공노선이 매일 운행되며, 버스는 테헤란(Theran), 시라즈(Shiraz) 및 이스탄불(Istanbul)로 야간 운행된다. 밤새 버스에 앉아있기가 힘들다면 이스파한(Esfahan)과 테헤란(Theran)사이의 고속전철을 이용해보자.
  • 시라즈(Shiraz)
  • 시라즈는 중동이슬람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많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워지고 재건되었던 잔드(Zand)왕조(1747-79)시대에 이란의 수도였다. 이곳의 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은 시라즈(Shiraz)를 학문과 나이팅게일 새들, 시, 장미 그리고 포도주로서 표현하였다.
    오늘날 시라즈(Shiraz)는, 가로수로 정렬된 도로와 산, 정원, 그리고 회교사원이 있는 여유롭고 세련된 도시로서, 며칠간 이 곳을 방문한 여행자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대학은 이란의 일류대학 중 하나이며, 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볼거리로는 저명한 시인 하페즈(Hafez)의 조용한 무덤과 정원 그리고 중요한 시아(Shi'ite)파 성지로서 수많은 신자들이 오는 사-체라프(Shah-Cheragh)능, 잔드(Zand)왕조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파스(Pars)박물관과 아름다운 연못 주위에 있는 19세기 가자(Ghajar)왕궁과 이람(Eram)정원 등이다. 시라즈(Shiraz)에는 많은 호텔들이 있어 다양한 여행자 층을 수용할 수 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주요 대로인 잔드(Zand)근처에 밀집되어 있다. 이곳에는 또한 많은 먹거리들이 몰려 있는데 케밥(Kebab)과 햄버거에서부터 한껏 멋을 낸 좌석이 있는 식당까지 다양하게 있다. 테헤란(Theran)남쪽에서 900km(560mi)정도 떨어져 있는 시라즈(Shiraz)는 이란 여행의 시발점이나 종점으로 삼기에 좋은 장소이며, 국제선, 국내선 항공 이용도 용이하다. 공항은 도심에서8km(5mi)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버스가 시라즈(Shiraz)에서 테헤란(Theran)까지 운행되며 또한 다른 주요도시로도 운행된다. 때로 합승택시가 이스파한(Esfahan)까지 운행한다.
  • 밤(Bam)
  • 밤(Bam)은 흥겨운 마을로, 많은 유칼리나무가 있어 호주의 향수를 느끼게 해 주며 대추야자 나무는 사막의 오아시스가 있는 곳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고대도시이다. 지금까지 보존된 유적지 일부는 12세기 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부분 유물은 사파비드(Safavid)(1502-1722)시대에 세워졌다. 1772년 아프가니스탄(Afghan)인이 침범하여 사람들이 이 도시를 떠나기 전까지는 6sq km(2 sq mi) 정도 넓이의 이 곳에 13,000명 이상이 살고 있었다 한다. 도시는 시라즈를 비롯한 피에 굶주린 침략자들의 공격을 받은 후 1810년경 다시 한번 버려졌다. 그리고 나서 1930년까지 군용 병영지로 쓰였다가 지금은 완전히 황폐화되었다. 가파르고 좁은 많은 계단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외곽 진흙벽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원형의 얼음집을 볼 수 있는데 겨울에는 얼음덩어리들이 쌓여있고, 여름에는 이를 녹여 식수로 사용한다. 성채 안쪽에는 도시가 자리잡고 있으며, 요새 안의 이상한 울림은 음성을 전달하는 예전의 확성시스템으로 생각된다.
    밤(Bam)은 이란 남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1260km(780mi)떨어진 테헤란(Theran)에서 버스로 21시간이 걸리므로 항공편도 고려해볼 수 있다. 테헤란(Theran)과 밤(Bam)사이를 운행하는 항공편은 일주일에 2번뿐이나 테헤란(Theran)과 커만(Kerman)을 운행하는 항공편은 많이 있다. 밤(Bam) 북서쪽에 있는 커만은 버스나 합승택시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곰바드카부스(Gombad-e Kavus )
  • 곰바드카부스(Gombad-e Kavus)는 웅장한 비석탑으로, 왕자, 시인, 학자, 예술가이며 예술의 후원자인 가부스(Ghabus)(카부스(Kavus)는 방언이다)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이다. 그는 11세기 이전까지 주변 지역을 다스렸고 영원한 기념물을 계획하여이 탑을 착공하였는데, 55m(180ft)의 탑은 1006년에 완성되었고, 6년 후 가부스(Ghabus)는 암살당하였다. 곰바드(Gombad)는 고간(Gorgan)에서 북동쪽으로 93km(58mi)떨어져 있다. 고간(Gorgan)은 이란동쪽에 있는 중소도시로 카스피해에 접해있다. 미니버스가 곰바드(Gombad)터미널에서 매시간 출발하며, 곰바드에서 470km(290mi)남동쪽의 테헤란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가 매일 있다.
  • 초가잠빌(Chogha Zambil)
  • 데즈(Dez)강을 따라 눈에 띄는 피라미드형 사원 초가잠빌(Chogha Zambil)은 엘람(Elamite)건축물의 생생한 본보기로서 최고의 건물이며 유네스코(UNESCO)에 등록되어있다. 원래는 동심으로 된 층이 5개였으나 지금은 3개만 남아있다. 이것은 1939년 석유회사가 항공측량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란 남부에 있는 초가잠빌(Chogha Zambil)은 이라크국경과 접해있으며 수스(Shush)에서 동쪽 45km(28mi)거리에 있다. 수스는 테헤란(Theran)에서 버스나 기차로 연결된다. 초가잠빌(Chogha Zambil)은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이므로 택시를 전세내던지,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갈림길에서 내려 히치하이킹을 해야 한다.
  • 메술(Masule)
  • 카스피지방에 있는 길란(Gilan)의 전통적이고 오염되지 않는 모든 마을 중에서도 메술(Masule)은 숨이 멎도록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은 평균해면보다 1050m(3444ft)위에 놓여있고 평평한 지붕의 집들이 불규칙하게 층을 이루고 있어 주변환경에서 솟아나온 것처럼 보인다. 너무 가파른 경사때문에 샛길조차 연결되어있지 않고, 대신 많은 집들의 평평한 지붕이 위로 올라가는 연결로 역할을 한다.
    이 곳에는 여행자시설이 거의 없다(한개의 호텔과 식당이 있으며 가정집에서 방을 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번 힘들게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매술은 라시트(Rasht)에서 56km(35mi)거리에 있으며, 라시트(Rasht)는 테헤란(Theran)에서 버스로 6시간 걸린다. 라시트(Rasht)에서는 합승택시나 전세차량을 이용해 메술까지 간다.
  • 알리사드르 동굴(Ali Sadr Caves)
  • 회교사원이나 유적지, 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것에 싫증났다면, 이란서부 하마단(Hamadan)북쪽에서 100km지점에 있는 동굴로 한번 발길을 돌려보자. 이 동굴은 40년 전,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헤매던 염소치기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높이가 40m(130ft)이상이고 크고 깊은 여러 개의 호수가 있다. 호수의 깨끗한 물에는 아무것도 살지 않고 박쥐조차 매달려 있지 않으며, 그 어떤 주거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 미니버스가 알리사드르(Ali Sadr)와 하마단(Hamadan)간을 자주 운행한다. 테헤란(Theran)에서 336km(208mi)북동쪽에 떨어져 있는 하마단(Hamadan)까지 버스가 운행된다.
  • 레저스포츠
  • 스키는 부유한 이란사람과 세계에서 가장 싼 스키장소를 찾아오는 외국인들로 각광받고 있다. 테헤란(Theran)에서 2-3시간 걸리는 셈삭(Shemshak)은 활강스키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크로스컨트리(Cross-country)는 마잔다란(Mazandaran)지방의 카라다시트(Kalardasht)에서 즐길 수 있다. 해변의 레저활동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 수영과 썬탠지역은 별도로 분리되어 있어 외국여성들에게는 별로 즐겁지 않을 지도 모른다. 비록 엄격한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되는 여성전용 수영장도 있긴 하지만 그 곳 이외에서는 완전한 hejap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카스피해 연안 바닷가에는 개인 해변이 있는 고급호텔들이 있지만 Costa del sol(태양의 해변)은 절대 아니다.
    낚시에 제일 좋은 장소는 카스피해이며 이곳에는 연어, 숭어, 철갑상어 등이 많이 있다. 수상스키는 강이나 호수에서 즐길 수 있으며, 가장 유명한 곳은 카라자담(Karaj Dam) 이다. 테헤란(Theran)과 아몰(Amol)중간지점에 있는 라리잔(Larijan)마을 부근 절벽에서는 행글라이딩도 즐길 수 있다.
  • 이란으로 가는 길
  • 항공, 육로, 해로 교통편 모두 이란과 연결되어 있으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허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반외국인이 열차로 터키와 이란국경을 쉽게 건널 수는 없다. 이란과 아시아, 중동, 유럽지역을 연결하는 항공노선은 상당히 많다. 이란혁명과 레바논 시민혁명으로 20년동안 사용되지 못했던 베이루트(Beirut)와 테헤란(Theran) 간 항공노선은 1999년 다시 운행 재개되었다. 베이루트(Beirut)공항은 도심에서 남쪽 5km지점에 잇다. 대부분 국제항공편은 테헤란(Tehran)의 메라베드(Mehrabed)공항에 착륙한다. 출국세는 US$30과 US$40사이로, 확실히 언급할 수 없다. 항공권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현재는 터키(가장 붐비는 Bazargan과 Gurbulak병목지역) 나 파키스탄(타프탄(Taftan)에서)에서 이란으로 들어오는 것이 쉽고 안전하다. 구소련지역인 아제르바이잔(Azerbaijan)과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에서 이란으로 들어오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조금 위험하다. 그러나 이란-아르메니아국경은 상당히 위험하다. 아프가니스탄(Afganistan)과의 국경은 폐쇄되어 있고 개인여행자들이 육로로 이란에서 이라크로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자동차로 국경을 넘는다면 상당한 시간이 지체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 이 지역에서 계속 자동차 여행을 계획한다면 수하물보다 더 많은 인내심을 가져가야 할 것이다. 이란에는 2410km(1470mi)에 이르는 해안경계선이 있지만 바다를 통해 이란을 출입국하는 방법은 매우 적다. 페르시아만에는, 사라자(Sharjah)에서 두바이(Dubai), 아랍연합공화국과 바레인(Bahrain)에서 벤다르아바스((Bandar-e Abbas)로 가는 배편이 있다. 또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Baku)와 벤다르안잘리(Bandar-eAnzali) 간 카스피해를 건너는 화물선도 일주일에 한 편 있다.
  • 국내 교통편
  • 이란의 교통시설이 서양의 것처럼 발달되어 있지는 않지만 중동 지역에선 꽤 좋은 편이다. 대중 교통시설은 자주 운행되며, 믿을 만하고, 매우 안전하면서도 저렴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항공이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 멀리 떨어진 도시로 가기 위해 육로교통을 이용할 만큼 비자기간이 여유있지 못하다 ; 국내항공요금이 싸다 ; 지역이 너무 방대하다 ; 육로이동시 경치가 때로 지루하다 ; 비행기(특히 이란항공)가 안전하고 자주 운행되며 저렴하다.
    이란에서 버스(또는 미니버스)로 연결되지 않는 곳은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이란에는 많은 버스회사들이 있고, 서로 경쟁적으로 안락한 써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의할 것은 혼란스러운 이란의 신년(No Ruz)인 3월 21일경을 10일 전후하여서는 교통편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자동차여행은 연중내내 설치된 검문소에서 자주 검문당하며, 대부분은 주요도시 경계부분에서 자주 있지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외딴 지역에도 검문소가 곳곳에 있다. 검문소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성가신 일은 여권을 보여주며 지루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여행을 계획했다면 고생을 돈 주고 사는 일인데, 거리는 멀고 교통체증은 심하며 안전하게 차를 세워둘 곳도 없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교통법규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자동차여행의 이점은 도로상태가 대체로 양호하며 기름값이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주요 도시를 방문할 때에는 합승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데, 좌석은 고급버스보다 3배정도 비싸지만 조금 더 편안하고 싶거나 시골지방의 무료한 길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 기차는 상당히 빠르면서도 저렴하지만, 버스처럼 다양하지는 않다. 가장 흥미로운 기차여행은 테헤란과 타브리즈(Tabriz)(좋은 경치와 최상의 서비스로)노선과 테헤란(Theran)과 고간(Ghogan)(수많은 터널과 좋은 경치로)노선이다. Trans-Iranian Railway는 벤다르투르크맨(Bandar-eTorkamem) 의 카스피해와 벤다르이맘호메이니(Bandar-e Emam Khomeini) 의 페르시아만을 연결하기 위해, 1930년대에 세워진 것인데, 이것은 20세기 최대 산업성과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