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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하이킹

Unsplash의Priyanka Sethy

달마시아 남부의 아드리아해에 있는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깊은 역사와 문화와 아름다운 바다 경치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이곳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이킹 하기에 좋은 도시다. 구시가지에는 베네치아인들이 쌓은 성벽이 있고, 아름다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교회, 수도원, 궁전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구시가지에서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맡고, 성벽에서 멋진 바다를 바라보는 하이킹 코스는 전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아픈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있는 두브로브니크(Dubrovnik)”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불린다. 그만큼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다양하고 깊은 역사 문화 유적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7세기에 크로아티아이들과 세르비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라구사 공화국을 만들었고, 13, 14세기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만든다.
이때 베네치아인들이 만든 구시가지의 성벽(Stari Grad)은 1979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그 외에도 그 시절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후 오스만 튀르키예의 지배를 받지만, 라구사 공화국이란 정체성을 갖고 이어져 내려오다가 17세기부터 대지진 등으로 몰락하게 된다. 그후 두브로브니크는 나폴레옹의 침략에 의해서 1808년 프랑스에 속하게 된다. 그러자 1814년에 영국과 오스트리아 군대가 쳐들어오고, 그때부터 오스트리아가 이곳에 ‘달마시아 왕국’을 세운다. 그러나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하자 이 땅은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땅이 된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이 점령했으나 독일이 망한 후,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 속했고 크로아티아는 유고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 속해 있었다. 그후 유고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분열되면서 1991년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이에 세르비아 민명대는 크로아티아를 공격하며 두브로브니크를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두브로브니크의 인구 구성에서 88.9%나 되는 크로아티아인들은 저항했다. 세르비아 민병대는 두브로브니크를 7개월간이나 포위하고 공격해서 시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크로dk티아는 무슬림계인 보스니아와 함께 세르비아계들과 싸웠다. 지금은 평화로운 곳이다. 그후 두브로브니크는 베네치아 시절의 찬란한 성당 및 건축물들이 남아 있고 아름다운 해안과 모여 있는 집들이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오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걷기”

두브로브니크에 오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하고 싶어하는 것이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 위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수원의 화성을 생각하면 된다. 베네치아인들이 만든 구시가의 성벽(Stari Grad)에 올라가 걸어갈 수 있다. 티켓을 산 후, 약 2km 정도, 성곽의 길을 걸어가며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의 풍경, 주황색 지붕으로 뒤덮은 두브로브니크의 가옥들, 현재도 사람들이 살아서 빨래를 걸어 놓은 집들, 멀리 보이는 산 등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구경하면서 걷다 보면 1, 2시간이 걸리는 코스다. 다만 한낮의 직사 광선이 강렬하여 날씨가 더우면 고역이다. 중간에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파는 곳도 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은 비잔틴 시절인 12세기에 건설되기 시작해서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를 받던 17세기까지 확장된 거대한 석회암 방어벽으로 중세 시절의 요새 중 가장 큰 곳에 속하다. 성벽의 높이는 최대 24m, 두께는 최대 6m에 이르는 이 성벽은 어떤 적군도 침략하지 못했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위의 길을 따라 걷다보면 멀리 절벽 위에 있는 로브리예나츠 요새(Fort Lovrijenac)가 보인다. 이 요새는 11세기에 베네치아인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지어졌는데 이곳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입장료는 두브로브니크 성벽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연계해서 가볼 만하다.

“스트라둔(Stradun) 거리 산책”

스트라둔(Stradun)은 공식적인 이름은 플라차(Placa)지만 스트라둔이라고 많이 부른다. 필레 게이트를 통해 성벽으로 들어가면 석회암으로 만들어져 바닥이 반질반질한 길과 2, 3층 석조 건물이 쭉 늘어선 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은 13세기부터 두브로브니크의 중심지로 도로가 되기 전에는 원래 수로였다. 거리 입구에는 오노프리오스 샘물이 있는데 이것을 만든 이탈리아인 기술자의 이름이 오노프리오스여서 거기서 이름이 유래했다. 샘이라고 해서 우리처럼 우물같은 것이 아니라 돌로 만든 우뚝 솟은 구조물에 16개의 동물의 입을 조각해 놓았고 그 입에서 물이 나온다. 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으며 이곳에서 파는 장미 크림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이 거리의 건물들은 1667년 대지진과 화재로 많이 파괴되었지만 지금은 복원이 되었다. 이 거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며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를 둘로 나누는 경계가 된다.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두브로브니크 성벽(Walls of Dubrovnik), 렉터 궁전(Rector’s Palace)과 같은 장엄한 문화재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성모 승천 성당으로도 불리는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이 있다. 6세기부터 이곳에 있었으며 오늘날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은 1713년에 지어졌다. 이 대성당의 내부는 보라색 대리석 제단 및 달마시안과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회화들로 유명하다.
렉터 궁전(RECTOR’S PALACE)은 라구사 공화국의 중심지였다. 여러 번의 재건으로 인해 고딕, 르네상스 및 바로크 양식등 여러 시절의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서 독특하다. 성 블라호 성당(CHURCH OF ST. BLAISE)은 도시의 수호 성인들에게 바쳐진 성당으로 이 도시 주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당이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여름 페스티벌과 연말연시에는 송구영신 축제가 벌어진다.
스투라둔 거리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FRANCISCAN MONASTERY)은 성당, 수도원, 도서관, 박물관, 약국 등이 함께 있다. 이곳의 약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 중의 하나로 1317년부터 있었다고 한다. 수도원은 53년 후인, 1360년에 지어졌다. 내부의 도서관에는 20,000권이 넘는 책들이 있고 약국에서는 장미 크림을 팔고 있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들르고 있다. 도미니코 수도원은 1315년에 세워졌으며 이곳의 회랑에는 14세기에 만들어진 우물과 15세기와 16세기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수도원의 종탑은 두브로브티크의 랜드 마크이기도 하다.
구시가지에는 수많은 골목길들이 있다. 이 좁은 골목길들에는 작은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 가게가 많아서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고 식사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또한 게스트 하우스들도 이 골목길들에 있다. 이런 곳에 묵으며 골목길을 돌아다니면 세상으로부터 잠시 도피해 옛 중세 시절로 타임슬립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스르지 산 정상 하이킹”

스르지 산에 올라가면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두브로브니크 시내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이산은 해발 412m로 그리 높지 않은데 걸어서도 갈 수 있고 택시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가장 좋다. 편도로 약 10분 정도 소요된다. 정상에 올라가 산 위를 자유롭게 산책하며 풍경을 감상하고, 레스토랑,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또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로크룸 섬(LOKRUM ISLAND) 하이킹”

두브로브니크 해안에서 약 600m 거리에 위치한 로크룸 섬은 구시가지 항구에서 페리로 10분정도 걸리는 바다에 있다. 이 섬은 숲 속에 길들이 있어서 산책하기 좋고 조용한 곳이다. 해변에서는 수영도 즐길 수 있다. 이곳에는 베네딕토회 수도원도 있고 200여 종의 식물들이 보존되고 있는 식물원도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의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