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도 낭만이 되는 스코틀랜드 최고의 웨스트 하이랜드 트레킹

혹시라도 잉글랜드의 웨일즈 지방이나 스코틀랜드 지방을 기차나 버스를 타고 지나쳤다면 그때 창가를 스치던 풍경에 감탄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산과 호수, 푸른 잔디가 뒤덮은 언덕의 물결, 그곳에 점점이 보이는 양떼들과 목가적인 가옥들...그리고 음산한 하늘, 시도 때도 없이 흩뿌리는 빗줄기. 영국에서는 비와 황무지(moor)도 낭만이 된다. 그러나 그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그 풍경속으로 들어가 트레킹을 해야 한다.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West Highland Way) 트레킹이 바로 그런 체험이다.
“숲과 호수와 목초지와 언덕을 바람과 비를 맞으며 걷는 낭만적인 길”
‘웨스트 하이랜드’ 트레킹은 5박 6일에 걸쳐 진행된다. 하루에 19km에서 30여km를 걷는 여정으로 고될 수도 있지만 묵묵히 걷는 가운데 느끼고 감상할 것이 많은 길이다. 스코틀랜드의 날씨는 변덕스럽고 비가 많이 온다. 날씨가 맑아도 늘 비가 올 것을 각오해야 한다. 현지인들에게 약간의 비는 비도 아니다. 그 빗줄기도 지나고 나면 낭만이 되니 묘한 일이다.
첫째 날에는 가장 짧은 길이다. 그러나 짧다고만 할 수 없는 멀가이에서 드리멘(Drymen)까지 약 19km의 길이다.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의 시작을 알리는 오벨리스크가 보이면 그후부터 계속 숲과 호수가 나타난다. 잉글랜드 지방과 달리 스코틀랜드의 이 지역에는 코고 작은 호수들이 꽤 많다. 깊은 숲, 호수를 묵묵히 걷다가 비라도 오면 머나먼 스코틀랜드 땅과 숲과 호수를 걷고 있음이 실감난다. 호숫가에는 엉겅퀴 꽃들이 많이 보이는데 엉겅퀴 꽃은 우리나라의 무궁화처럼 스코틀랜드의 국화다. 계속 길을 가면 목장이 나오고 초원을 걷는다.
그 다음 날부터는 넓은 들판, 초원, 낮은 언덕들이 이어지고 코닉 힐(Conic Hill) 정상에 오르면 밑으로 로몬드 호수(Loch Romond)가 펼쳐진다. 멀리 산맥이 물결치듯이 펼쳐지고 빛을 반사하는 드넓은 호수가 아름답다. 이 호수는 영국에서 제일 긴 호수로, 그 다음날도 계속 걷는 동안 따라온다. 끝없는 길을 따라 걷는 가운데 숲속, 목초지, 마을, 강, 황무지를 지나게 된다. 걷는 가운데 비를 만날 수도 있고 호수에서 물안개를 만날 수도 있다. 몸은 힘들어도 이런 것이 낭만으로 남는다.
계속 이어지는 트레킹 중에는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촬영지였던 ‘글렌코 계곡’도 통과한다. 근처에는 잡초로 뒤덮인 황무지, 즉 무어(moor)지대를 통과한다. 숲도 그렇지만 이런 황무지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묵묵히 걷기에 좋은 풍경이다. 잉글랜드 북부 지역에 있는 요크셔 데일즈 지방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지형을 데일(dale, 구릉 지대의 넓은 골짜기), 펠(fell, 높은 언덕과 낮은 산) 등으로 부르는데 무어(moor, 황무지)도 있다. 요크셔 데일즈는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계속 걷다 보면 윌리엄 왕의 군대가 맥도날드 가문을 학살해서 ‘눈물의 계곡’이라 이름 붙여진 고대 군사 로드를 따라 걸어가고, ‘악마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웨스트 하이랜드’의 가장 높은 지점까지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영국의 가장 높은 산인 1,345m의 Ben Nevis를 볼 수 있다. 마지막 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Kinlochleven 정상에 서면 Leven 호수와 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후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드디어 목적지 포트 윌리엄(Fort William)에 도착한다. ‘The Original End of The West highland Way’라고 쓰인 간판이 보이고 여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하이랜드의 종착지 고든 광장에 도착하게 된다.
글로 정리하면 간단해 보이는 길이지만 하루에 20, 30km를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하다가 발에 물집이 생겨서 초반에 탈락하는 사람들도 종종 생긴다. 그러나 사전에 체력 훈련을 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사람들은 무난하게 해낼 수 있는 코스다. 스코틀랜드 최고의 길에서 본 깊은 숲과 바다 같은 호수와 황무지, 언덕, 목초지, 양떼 그리고 바람과 비를 맞으며 묵묵히 154km를 걷는 5박 6일의 시간이 감동으로 밀려올 것이다. 이것 때문에 해마다 5만 명이 이 길을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