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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영광과 슬픔이 함께 있는 페루의 쿠스코

현재 페루의 수도는 해안 지방의 리마지만 옛날 잉카 제국의 수도는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해발 고도 약 3,400m에 있는 고산 도시, 쿠스코였다.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배꼽’을 의미한다 배꼽이 신체의 중심이듯, 잉카인들은 쿠스코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었다. 모든 잉카 제국의 영광이 쿠스코 주변에 있다. 이 중세 성곽의 흔적 속에서 잉카 문명을 보고자 세계의 수많은 여행자들이 쿠스코로 몰려들고 있다.

“잉카인들의 신화”
잉카인들이 하늘은 콘도르,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었다. 하여 잉카인들은 쿠스코를 퓨마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고 한다. 잉카 신화에 의하면 위대한 창조의 신은 ‘비라코차’이다. 잉카 문명 이전에 모든 것을 것을 창조해 낸 비라코차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태양을 떠오르게 했으며 우주, 달, 별, 그리고 시간등 그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 이 신은 마야문명의 쿠쿨칸과 아즈텍 문명의 케찰코아틀과 맥락을 함께 하는 창조신의 원조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신은 하얀 피부에 턱수염이 난 깃털이 달린 뱀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창조신은 사람들에게 농업과 문명과 기술을 가르쳐 주었지만 사람들이 나태해지고 서로 싸우자 실망하여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태평양 건너편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잉카 제국은 1533년 스페인의 모험가 혹은 용병, 건달 등이 모인 168명의 무리들에게 점령당했지만 그전에 이미 폭정, 내전에 의해서 크게 분열되어 있었고 권력에 의해 탄압받던 부족들이 침략한 스페인인들을 도우면서 잉카제국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거기에는 그들이 오래 동안 믿고 있던 신화적인 예언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잉카인들 중에는 백인들이 철제 무기를 들고 잉카 제국에 나타났을 때 그 흰색 피부를 가진 이들을 다시 돌아온 창조주, ‘비라코차’라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잉카인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강력한 무기에 대한 공포 앞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초기에 허무하게 패배했다.

“잉카 제국과 쿠스코의 역사”
실제 역사를 보면 쿠스코에는 이미 900년부터 1200년까지 킬케인들이 이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잉카 왕국은 1200년대부터 스페인에게 점령당하던 1532년까지 이곳을 지배했다. 쿠스코가 잉카제국의 수도로 성장한 것은 15세기 이후부터다. 잉카문명은 한때,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에 800만의 인구를 거느렸던 대제국이었다. 쿠스코는 그 중 10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했던 잉카의 수도였다.
잉카 제국의 도로들은 쿠스코에서 뻗어나갔으며, 파차쿠티 황제의 시기에 높은 탑들과 석조 가옥들이 가득했다. 그 시절 쿠스코는 중남미 대륙에서 가장 발전한 대도시였다. 잉카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우아이나 카팍이 죽은 후, 쿠스코는 우아이나 카팍의 아들인 우아스카르의 지배 하에 놓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타우알파가 반란을 일으켜서 지배자가 된다. 그러나 아타우알파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가 내전에 승리하고 황위에 오른 직후에 스페인 용병들이 들어와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고 잉카 제국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