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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가는 정거장, 레(Leh)

레에 도착하면 약간 호흡이 가빠지지만 대개는 적응한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천천히 걸어야 한다. 파란 하늘, 구름, 마을 안에 있는 푸른 나무들, 오다가다 만나는 등하교 길의 아이들이 건네는 ‘줄레이(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말에 응대하다 보면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해발 3,524m의 고도라 공기가 청량하다. 가벼워진 몸과 마음이 둥둥 떠가는 것만 같다. 높은 곳에 있다 하여 ‘하늘로 가는 정거장’이란 별명도 있는데 파란 하늘을 보면 우주 열차를 타고 하늘 여행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이런 맑은 공기와 단순한 풍경은 살아오면서 한번도 접해보지 못하기에 레는 꼭 한 번 와 볼 만한 곳이다.

“은둔지였던 레”
어딜 가나 북적거리는 인도의 델리에서 국내선을 타고 북부 히말라야 산맥의 한가운데 있는 라다크 주의 레에 도착하는 순간, 달나라에 온 것만 같다. 비행기 창밖으로는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산들이 물결친다. 해발 3,524m의 레는 그런 곳에 있다.
라다크 지방은 잠무 카슈미르주의 한 부분이었으나 2019년 10월 31일을 기해 연방 직할지가 되었다. 중심지는 레다. 이 지역 북쪽으로는 쿤룬 산맥이, 남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이 위치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인 차마고도의 중간에 있던 곳이 레다. 중국에서 티베트를 거쳐 인도, 네팔까지 이어지는 약 5,000km의 험준한 산맥 사이에 난 차마고도를 통해 말과 차, 소금, 약재, 금은 버섯류 등 다양한 물품이 오갔었다.
레는 차마고도의 주요 거점으로 번성하였지만 어느덧 은둔의 왕국이 되었고 히말라야 산맥 깊숙이 만년설이 쌓인 높은 봉우리들로 첩첩이 둘러싸여 1년 중 단 4개월 동안만 육로로 접근할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1974년 이전까지 인도 정부는 레를 외국인에게 개방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라다키(라다크인들)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지키며 살아왔다. 그러나 1975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다크인들과 17년간 함께 살며 그들의 삶과 문화를 보여준 책 ‘오래된 미래’가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외국 여행자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후에도 내셔널 지오그래픽, BBC 등 유명한 매체에 연이어 소개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제는 누구나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지역이라 은둔지라고 할 수는 없다.

“레의 첫인상”
비행기를 타고 델리에서 레에 도착하면 나무 한 포기 없는 암석산만 보인다. 공항에서는 먼지만 일고 주변은 삭막하다. 무슨 달나라 기지에 온 것만 같아서 묘한 신비감이 든다. 반면에 마날리나 캐쉬미르의 스리나가르에서 버스를 타고 2박 3일 동안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돌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레는 포근한 요람처럼 느껴진다. 1974년까지 외국인은 올 수 없었던 이곳은 지금 많은 여행자들이 드나들면서 급격하게 변해왔다. 마을에는 많은 숙소들이 지어지고 식당, 카페들이 들어섰으며 순박했던 인심도 점점 변해갔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전통, 문화, 종교는 유지되고 있다.

“라다키의 요람, 레”
인구 약 3만 5천 명 정도가 살아가는 라다키(라다크 사람)의 요람이다. 정치, 종교,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마을에는 예전 왕국의 흔적인 폐허같은 왕궁이 있다. 그곳에 올라가 주변 바위에 앉으면 그림같은 레의 전망이 밑으로 펼쳐진다. 마을 한가운데는 내가 흐르고 푸른 나무들도 많다. 황량한 돌산 사이에 있어서 마치 오아시스같은 분위기다. 주변은 히말라야 산맥들이 빙 둘러서 있고 마을에는 곰파, 식당, 카페 그리고 장터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마치 옛날 우리 마을에 온 것처럼 푸근해진다. 레의 주변에는 14세기 후반에 걸립된 스피톡 곰파가 있고 버스나 차를 타고 조금 더 야외로 나가면 틱세 곰파도 있다. 곰파는 산위에 우뚝 세워져 있어서 신비롭다. 또 1,990년 무렵에 세워진 한국의 절, 대청보사도 있고 일본 절도 있다.

“세상이 변하듯, 레도 변하고 있지만”
계속 관광객들이 들어오면서 현지인들의 인심과 태도도 바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다 얽혀 있는 일인데, 시간이 흐르면 그들도 자신들의 문화의 소중함을 더 지키는 쪽으로 갈 수도 있다. 여행자들을 주로 상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농사짓는 사람들, 곰파의 어린 승려들, 외곽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그들이 전통을 지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보고 1970년대의 상황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상상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부탄도 변하고 있듯이 레도 변하고 있다. 이 변화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만들어 가는가는 라다키들의 몫이지만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대한다면 여전히 그들을 친밀감을 갖고 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