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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영광, 아부심벨 대신전

카이로에서 나일강을 따라 남쪽으로 약 890㎞ 가면 아스완이란 도시가 나온다. 예전에는 누비아 광산에서 캐낸 엄청난 금과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목재, 동물의 가죽, 상아 등 진귀한 물품들이 집결되던 곳이었지만 오늘날은 거대한 아스완 댐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차를 타고 나일강 상류를 향해 사막 길을 서너 시간 달리면 아부심벨이 나온다. 이곳의 황량한 돌산에 람세스 2세가 세운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이 있다. 이미 거대한 기자 피라미드를 보았거나 룩소르에서 어마어마한 신전을 본 사람들도 아부심벨에 오면 입을 딱 벌리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 높이가 약 20m인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조각 4개가 딱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한 파라오, 람세스 2세”

신왕국 18왕조 말기의 유약한 투탕카멘(기원전 1340∼1331)이 죽고, 늙은 대신 ‘아이’와 호렘헵 장군이 짧게 통치한다. 그리고 전차 지휘관이었던 람세스 1세 장군이 제19왕조를 연다. 왕위를 이어받은 세티 1세(기원전 1294∼1279)가 19왕조의 초석을 다진 후, 이집트의 영광을 크게 떨친 이가 바로 그의 젊은 아들 람세스 2세(기원전 1279∼1212)다. 그는 약 67년간이나 나라를 다스리며 자신의 흔적을 온 이집트 신전에 남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이 아부심벨 신전으로 기원전 1264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기원전 1244년 완공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3300년 정도 전에 만들어진 유적지다.

“기록을 이용해 현실을 지배한 파라오”

이곳을 돌아보려면 대개 아스완에서 새벽 4시쯤 출발한다. 3시간 반 동안 사막길을 달리면 7시 30분쯤 되어 도착하고 한두 시간 구경한 후, 일찍 돌아간다. 한낮에는 날이 너무 더워서 서두는 것이다.
파라오는 왕이며 동시에 신이다. 이집트에서 나타난 독특한 지배자의 형태인데 신의 반열에 오른 파라오는 특히 람세스 2세는 기록조차 자기에게 유리하게 왜곡했다. 아부 심벨 신전 앞에 있는 거대란 람세스 2세의 조각을 바라보며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람세스 2세의 거상들과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대열주실이 나온다. 양쪽에 4개씩 모두 8개의 거상들이 좌우측에 천장을 떠받치고 천장에는 신화와 관련된 부조, 벽에는 그 유명한 카데쉬 전투의 광경이 새겨져 있다. 람세스 2세가 직접 나서서 적군을 무찌르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자신의 모습은 커다랗게 새기고 적군들은 조그맣게 그렸다.
카데쉬 전투는 현재 시리아의 영토에 있다. 이집트는 기원전 13세기경 아나톨리아 반도의 하투샤(현재 터키 중부의 보아즈칼레)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치던 히타이트 왕국과 근동 지방을 사이에 두고 다투고 있었다. 한참 패기만만했던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274년 4월 카데쉬를 향해 약 5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원정을 떠났으나 한달 후, 적군의 속임수에 걸려 위기에 처한다. 람세스 2세는 자신의 병력이 모두 도망간 후에 홀로 남아 싸웠고 아문신의 도움으로 승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일 밝혀진 히타이트측의 기록과 객관적인 정세를 볼 때 람세스 2세는 필사적으로 탈출했을지언정 승리하지는 못했다. 거기다 이집트가 승리했다는 카데쉬 지역은 여전히 히타이트 왕국의 땅으로 남아 있었기에 이집트의 승리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러나 람세스 2세는 승리를 선포했고 수많은 기록을 남겼으며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 아부심벨의 대신전 등에 자신의 승리를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부조들을 새겨 놓았다.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어마어마한 신전의 크기와 예술적인 작품에 감탄하고 있다. 후대의 학자들은 람세스 2세를 자기현시욕이 매우 강하고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기록을 이용해 현실을 지배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태양의 빛까지 이용해 정교하게 기획된 신전”

대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왕비 네페르타리의 부조가 있고 더 들어가면 지성소가 나온다. 지성소에는 네 개의 좌상이 단정히 앉아 있다. 컴컴한 곳에서 은은한 빛을 받고 있는 상들 앞에 서면 3300년 전의 숨결이 느껴진다.
오른쪽부터 태양의 신 ‘라 호라크티신’, 신격화한 ‘람세스 2세’, 테베의 주신이며 땅의 생식 본능을 지배하는 ‘아문(몬) 신’, 어둠을 솟아나게 하는 ‘프타신’등인데 그 위치가 절묘하다. 1년 중 두 시기에만 햇살이 깊숙히 들어오는데 2월 20일경에는 햇살이 아문신을 비추다가 점차 오른쪽의 람세스 2세를 비추고, 10월 20일경에는 반대로 햇살이 가장 오른쪽의 라 호라크티신을 비춘 후 차차 왼쪽으로 옮겨지면서 ‘람세스 2세’를 비춘다. 이것은 1년에 두번씩 아문신과 라 호라크티신이 신성한 빛을 람세스 2세에게 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람세스 2세 시절, 모세가 유태인을 이끌고 탈출했을까?”

시기적으로 보면 모세와 유태인의 이집트 대탈출은 람세스 2세 치하에서 일어난 것이다. 즉 기독교 성경책에 나오는 이집트 왕이 바로 람세스 2세다. 그러나 약 66년간 고대 이집트를 연구해 온 크리스티안 데로슈 노블쿠르에 의하면 이집트의 역사 기록에서는 구약성경에서처럼 람세스 2세의 맏아들이 죽지도 않았고 모세의 기적과 탈출에 대한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수많은 신전과 왕릉을 건설했던 세티 1세 때 유태인들이 동원된 것은 사실인데 아마도 이때 모세라는 인물이 이집트 관리를 죽인 후, 시나이반도로 탈출했다가 람세스 2세가 즉위하자 이집트로 돌아와 유대민족을 데리고 간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또 구약성경에 나온 이집트의 재해들도 그 당시 일어났던 자연재해였을 것이라고 그는 추측한다. 그 시절에 지중해에 있던 산토리니 섬이 가라앉을 정도의 대지진과 엄청난 화산 폭발이 있었는데 이집트도 그 영향권 안에 있었고, 나일강의 수량 증가로 인해 개구리들이 급증했고 강물이 핏빛을 띠었으며 각종 전염병이 돌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아마도 구약성경에 나온 재난들이 자연재해, 다른 파라오의 맏아들의 죽음, 사소한 노예들의 탈출 등 다른 시기에 일어났던 독립적인 사실들이 후대의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기념비적인 사건과 신화로 재탄생시킨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물론 역사학자의 관점이고 절대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다만 람세스 2세의 시절이 바로 모세의 탈출 시절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아부 심벨 신전을 돌아본다 함은, 구약 성경의 아득한 모세 시절을 돌아보는 것과도 같다. 3300년 전의 세월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한 인간의 욕망이 만든 거대한 신전”

대신전 옆에는 아부심벨 소신전이 있다. 안에는 사랑과 음악과 춤의 여신인 하토르 여신(호루스신의 아내)과 람세스 2세의 부인 네페르타리 왕비를 기리는 작은 신전이다. 하토르 여신과 왕비 네페르타리는 매우 유명해서 이집트 여행중 그림이나 작은 기념품으로도 많이 볼 수 있다.
이 신전들의 원래 위치는 이곳이 아니다. 1950년대 후반, 이집트의 지도자 나세르가 나일강을 막아 아스완에 댐을 건설하려 하자, 아부심벨 신전이 수몰될 것을 염려한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1963년부터 약 10년 동안 해체해 원래 위치보다 약 210m 뒤쪽, 650m 더 높은 지역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한 인간의 집요한 욕망과 의지, 자기 현시욕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력과 희생을 요구했지만 그의 욕망에 의해 건설된 거대한 신전들은 수 천년을 지난 인간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