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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관광지, 천년의 고도 교토

c.unsplash.com/Daisy Chen

교토(京都)는 일본 최고의 관광지다. 교토 이전의 아스카나 나라는 야마토 정권의 중심지로서 한반도에서 도래한 백제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794년에 간무 천황이 교토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일본다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당나라의 장안을 모방해서 만든 바둑판형 수도를 건설했고 화려한 일본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한다. 그 시절의 일본을 ‘헤이안(平安) 시대’라고 부른다. 교토는 그후 1868년 메이지 유신 때 메이지 천황이 수도를 도쿄로 이전하기 전까지 일본의 천년간의 수도로서 일본 문화를 꽃피웠다.

“교토의 매력”
천년의 고도이다 보니 교토에는 수많은 문화 유적지가 있다. 그것을 하루, 이틀에 볼 수도 없고, 여기에 다 소개할 수도 없다. 또 계절마다 풍경이 다르며 취향에 따라 보는 것이 다르게 된다. 여기에서는 봄, 가을에 갔을 때 문화 유적지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 위주로 소개한다. 만약 시코구 88 순례길을 떠난다면 4박 5일간의 트레킹을 한 후, 교토로 돌아와 2, 3일간 교토의 문화에 푹 젖어보는 것도 해볼 만하다. 시코구의 자연과 교통의 문화재와 아름다운 봄, 가을 풍경을 볼 수 있다.


“기요미즈 데라(靑水寺)
이절은 일본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다. 교토의 동쪽, 숲이 우거진 언덕에 세워진 기요미즈데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사찰로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다. 지상 13m 위에 세워져 본당과 이어지는 목조 단이 특히 유명한데 이곳에 서서 바라보는 탁 트인 풍경은 봄에는 벚꽃과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어우러져 기가 막히다. 나무 너머로 보이는 교토 시내 전망도 멋지다. 교토를 대표하는 사진 중의 한 곳이 이곳이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멋진 건축과 풍경이 아름다워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또한 이곳까지 가는 널찍한 돌을 깔아 길을 포장한 니넨자카와 산넨자카 역시 옛 교토의 정취를 자아내게 해서 많이 걷는다. 이곳은 과거의 매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교토의 보존지구 네 곳 중 하나다.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라는 이름은 각각 '2년 고개'와 '3년 고개'라는 뜻인데 이곳을 걷다가 넘어지면 2년, 혹은 3년 동안 불운이 온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 거리에는 일본 전통적인 아름다움 목조 건물과 곳곳에 아늑한 찻집들이 적당하게 있어서 고즈넉한 풍경이다. 그러다가 큰 길로 나와 기요미즈 데라로 가는 입구에는 엄청나게 많은 기념품 가게들이 나타난다.

“아라시야마”
아라시야마 역시 봄, 가을에 가면 환상적이다. 강변에 있는 아라시야마는 봄에는 분홍빛의 벚꽃이, 여름에는 푸르른 녹음, 가을에는 불타는 듯한 빨강, 겨울에는 고요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곳이다. 외국의 중요한 손님들이 오면 꼭 이곳에 모시는 코스로 수많은 여행자들이 찾아 든다. 특히 가을에 강에 어리는 울긋불긋한 단풍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산비탈에는 등산로, 전망대, 피크닉 장소가 많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까지 옛스런 전차를 타고 가는 길도 매우 낭만적이다.

“금각사(金閣寺, 킨가쿠지)”
킨카쿠지는 교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 중 한 곳이다. 금각사는 글자 그대로 ‘황금 누각’의 사찰이다. 고즈넉하게 서 있는 이 금각사가 주변 호수에 비친 모습은 환상적이다. 이 사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아름다운 건축미와 주위를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 정통 일본식 정원이 어우러져 가장 일본스러운 관광지라 할 수 있다.
킨카쿠지는 1393년 사이온지 긴츠네라는 귀족이 본인의 별장으로 지었고 1397년에는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키타야마도노로 개명해 은퇴 후에 머물 별장으로 삼았다. 요시미츠 사후에는 그 아들이 부친의 유언을 따라 별장을 선종 사찰로 삼았고, 그 이후로 로쿠온지(녹원사)로 알려졌지만 로쿠온지는 15세기 오닌의 난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이후에 복원되었지만 1950년 하야시 요켄이라는 젊은 승려의 정신 이상으로 또다시 훼손되었다. 지금의 사찰은 1955년에 세워졌는데,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소원에 따라 상층부가 금박 처리된 것을 제외하고는 원래의 모습과 일치한다. 1987년에는 금박을 더 두껍게 입혔다고 한다.

“은각사(銀閣寺, 긴가쿠지)
금각사나 은각사나 우리는 일본인들의 발음을 잘 구별 못하고 흉내를 못낸다. 금각사는 킨가쿠지, 은각사는 긴가쿠지라 발음하는데 우리는 똑같이 ‘킨가쿠지’라 발음하게 된다. 아무리 ‘긴가쿠지’라 발음해도 ‘킨가쿠지’라는 발음으로 들린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K와 G발음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일본인들이 아무리 ‘김치’ 해도 ‘기무찌” 하듯이. 그래서 긴가쿠지는 앞에 ‘응’이란 발음을 살짝 하면서 발음해야 ‘킨’이 아닌 ‘긴’이 비슷하게 나온다.
은각사는 원래 1460년경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은퇴 후 지내기 위한 별장으로 지어졌던 곳인데 금각사를 본떠 세운 이곳은 외관을 은으로 덮으려 했지만 오닌의 난이 발발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은각사는 금각사보다 덜 반짝이지만 자연의 미와 인간이 만든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나와 철학의 길을 따라 난젠지까지 가벼운 트레킹을 하면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철학의 길”
철학의 길은 은각사에서 나와 난젠지까지 가는 길인데 내를 따라 이어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유명한 교토 대학 교수이자 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가 건강과 사색을 위해 매일 산책했던 길이라서 이른 이름이 붙여졌다. 철학의 길은 운하를 따라 벚나무가 심어진 길을 따라 나 있고 남쪽의 난젠지까지 이어지는데 길이가 2km 정도 밖에 안된다. 그냥 걷는 것보다 중간에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면서 천천히 걷는다면 낭만적인 길이다. 고즈넉한 길을 저녁 나절에 걷는다면 인상에 오래동안 남는 길이다. 길가에는 예스러운 카페와 공예품점, 식당이 이어져 있다. 벚꽃이 절정을 이루는 4월과 5월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든다.

난젠지(南禪寺)
철학의 길 끝에 있는 난젠지는 13세기 중반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사찰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이곳은 원래 가메야마 천황이 은퇴 후 지낼 별장으로 정해졌지만 선종 사찰로 개축되었다. 큰 번영을 누리다 200년간의 내전으로 인해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었는데 이곳의 매력은 고요함이다. 목조 건물로 만들어진 사찰과 주변의 큰 나무들이 어우러져서 경건한 분위기다. 주변에는 내도 흘러서 매우 고즈넉한 분위기다. 그리고 안에는 밖의 정원을 바라보면서 차분하게 앉아서 차를 마시는 곳도 있다.

“기온 게이샤 지구”
‘게이샤'는 한국어로 표현하면 ’기생‘이라 할 수 있다. 교토는 게이샤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500명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게이샤는 이제 천박한 기생이 아니라 일본의 전통적인 춤과 악기와 노래를 교육받아야 할 수 있다. 일종의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게이샤가 있는 요리집, 술집에 일반인들은 쉽게 갈 수 없지만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저녁 나절에에 기온 게이샤 지구에 가면 저녁에 일하러 가는 게이샤와 마이코(예비 게이샤)가 전통 비단 기모노를 입고 게다를 신은 채 종종 걸음으로 걷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식당, 카페, 술집 등도 많다.

“니조조(이조성)”
역사와 관련된 곳은 교토에 너무도 많은데 그중에서 니조조는 가장 유명한 곳이다. 1603년에 지어진 이 니조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쇼군(장군)과 그후의 쇼군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단 한 번도 재건축하지 않은 채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도쿠가와 막부 정권을 이끌던 쇼군들은 천황을 교토에 그대로 두고, 자신들은 도쿄에 기거했다. 그러나 늘 천황을 감시했다고 한다. 가끔 교토에 오면 그들은 니조성에서 잠을 잤는데 그들은 암살을 두려워해서 ‘휘파람새 복도’를 만들어 놓았다. 주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으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난다. 암살자들이 걸으면 소리가 나게 한 것이다. 그 시절 도쿠가와 막부, 쇼군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니조성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토에이 우즈마사 예이가무라”
이곳은 영화 촬영장이다. 수많은 사무라이 영화와 시대극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되어서 오래된 주택, 헛간, 방과 같은 옛날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야외 및 실내 세트가 있다. 이곳에서는 ’닌자 쇼‘도 보여주고 통 의상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할 수도 있다. 일본 문화에 축 젖어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외에도 교토는 수많은 사찰과 신사 그리고 볼거리, 먹을 거리들이 엄청나게 많은 곳이다. 계절에 따라 멋진 곳도 달라지는데 자기가 선택해서 가는 수밖에 없다.

“교토인의 자존심과 모호함”
교토는 천년 간 수도였고 수많은 문화재가 있기에 교토인들의 자존심이 세다. 도쿄대학도 명문이지만 교토대학 역시 명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다른 지역의 일본인들도 천년 고도의 교토를 '정신적 수도'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여긴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또한 교토 사람들은 행동이 세련되고 친절하다. 그러나 이런 교토인들에 대해 비판하는 일본인들도 있다. 교토 사람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 즉 혼네(진짜 속마음)와 다테마에(겉으로 보야주는 행동)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인들도 지방에 따라 특성이 다 다다르가. 같은 긴끼 지방이라 하더라도 교토 사람들은 조심스럽고, 온화하게 보이고, 얼마 안 떨어진 오사카 사람들은 직설적이고 행동력이 있으며 말이 많은 편이다. 큐슈 사람들도 말이 많고 솔직하다. 혹카이도 사람들은 굉장히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잘 타며 도쿄 사람들은 대도시 사람으로서의 자존심과 쿨함이 있는 편이다.
교토에 가서 마주치는 교토인들의 친절함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고 다른 지방의 일본인들이 말한다. 예를 들어 교토에서 ’오차즈케‘ 먹고가라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가달라는 이야기라고 한다. 오차즈케는 밥에다 찻물을 부은 것인데 식사 마지막에 먹는 것이라고 한다. 교토가 천년 간의 수도로서 귀족 문화가 오래동안 이어지다 보니 그들의 어법이 전해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직설적인 표현은 천해 보이고, 서로 감정이 드러나 싸움이 될 수 있으므로, 돌려서 말하면 알아서 이해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였다는 것이다.

“그래도 교토는 매혹적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은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들도 외국이들에게는 좀더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고 또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의 이중적인 말과 행동을 관찰하는 것은 즐거운 여행 경험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