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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위대한 유산, 기자 피라미드

c.pixabay.com/henryleester

기자 피라미드(Gyza Pyramid)는 누가 뭐래도 인류의 유산 중에 최고를 자랑한다. 피라미드는 중남미에도 있지만 약 4,500년 전인 기원전 2560년 무렵 만들어진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는 그 기원과 크기에 있어서 모든 피라미드를 압도한다. 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그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했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수많은 설이 난무하는 신비한 유산이다.

“장엄한 기자 피라미드의 유래”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약 13㎞ 떨어진 기자(Giza) 지역의 사막에서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는 순간, ‘드디어 이곳에 왔구나’ 하는 감회에 젖게 된다. 학창 시절 상상 속에서 늘 그리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왜 만든 것일까? 우선 왕들의 무덤이란 설이 있다. 이집트의 초기 무덤은 마스타바(mastaba) 양식이었다. 마스타바는 그 당시에 이집트인들이 쓰던 직사각형의 진흙 의자였다. 이의자 형태의 마스타바 양식이 발전하면서 계단식 피라미드로 변했고, 이것이 더 발전해서 기자에 있는 사각뿔 형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피라무드는 무덤이 아닐 것이다.”

기원전 3000년경 제 1왕조, 제 2왕조가 나일강의 상류와 하류 지역을 통합하여 이집트 문명의 기틀을 잡은 후, 고왕국 시대(기원전 2650∼2180년, 제3∼6왕조)가 열린다. 피라미드가 출현한 시기는 고왕국 시대의 제4왕조 때로, 기자 지역에 피라미드를 가장 먼저 만든 왕은 쿠푸왕이었다.
그로부터 약 3300년이 지난 서기 818년, 아랍 세계의 지배자 칼리프 알마문은 궁핍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도굴한다. 기원전 2500년경에 만들어진 이 피라미드는 긴 세월 속에서도 거대하고 견고한 돌들 때문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도굴꾼들은 무작정 입구를 부수다가 정식 통로를 만났고, 그 길을 따라 중심부에 가니 길이 10.5m, 폭 5.2m, 높이 5.8m의 현실이 나왔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도굴된 흔적이 전혀 없는데도 뚜껑 없는 석관만 있을 뿐 미라와 부장품은 물론 그 흔한 벽화도 없었다. 그래서 기자의 피라미드는 무덤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
지금도 관광객들은 그런 허탈감에 젖는다. 피라미드의 정식 통로는 좁고 가파르다. 허리를 굽힌 채 위로 30, 40미터 올라가면 널찍한 복도처럼 이어진 대회랑이 나오고 계속 올라가면 길이 10.5미터, 폭 5.2미터, 높이 5.8미터의 ‘왕의 방’이 나온다. 그런데 그곳에는 정말로 뚜껑 없는 석관만 놓인 텅 빈 방이다. 위로 난 환기 구멍이 없었다면 갑갑해서 질식할 것만 같은 방이다. 그 외에 왕비의 방이라 이름 붙여진 방도 텅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피라미드가 무덤이 아니라면 왜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피라미드는 왕의 즉위식과 축제를 벌이던 곳일까?”

전체 피라미드의 배치를 보면 가장 오른쪽에 쿠푸왕의 피라미드(제1피라미드), 그 왼쪽 옆에 카프라왕의 피라미드(제2피라미드), 그리고 맨 왼쪽에 가장 작은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제3피라미드)가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가장 커서 대 피라미드라고도 불리는데, 원래 높이는 약 146.73m이지만 벼락 혹은 지진으로 파손되어서 약 9m 정도가 떨어져 나가 현재는 약 137m로 알려져 있다.
요시무라 사쿠지 같은 일본 학자는 피라미드의 배치를 관찰한 후, 이곳에는 공간적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자의 피라미드들은 원래 비슷한 크기로 기획되었지만 작은 제3 피라미드는 재정난으로 축소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후 지도상에서 제3 피라미드를 두 배로 확대시켜 보니 제1, 2, 3 피라미드의 대각선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었고, 그 선을 스핑크스 앞에 있는 신전과 잇자 직삼각형이 나왔다고 한다. 요시무라 사쿠지는 쿠푸왕이 이 직삼각형 안의 공간에 내세의 생활을 체험하는 가상 천국을 만들고, 왕위 즉위식이나 축제 등의 의식을 거행하려 했으며, 진짜 쿠푸왕의 미라는 도굴을 피하기 위해 대피라미드 근처에 파묻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피라미드는 지구 북반구를 축소한 것일까?”

지구 문명과 유적지에 대해서 대담한 가설을 많이 내놓는 ‘그레이엄 핸콕’은 이렇게 주장한다. 지구 적도의 둘레는 약 4만68㎞이고 북극에서부터 지구의 중심부까지 잰 지구의 반지름은 약 6355㎞인데, 이것을 각각 4만3200으로 나누면 927.5m와 147.11m가 나온다. 그런데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밑면의 둘레는 921.46m로 축소된 지구 적도의 둘레 927.5m와 비슷하고, 높이는 146.73m로 축소된 지구 반지름 147.11m와 비슷하다. 즉,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지구 북반구를 축소해 형상화한 것이고, 그 비율 축소에 사용된 숫자가 4만3200이다. 432란 숫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 고대 문명에서 나오는 신비의 숫자다.
또 컴퓨터를 통해 세차 운동을 계산하여 우주의 별자리를 역산한 결과, 기자 피라미드들의 배열은 기원전 1만 450년경의 하늘에 보이는 오리온 자리의 배열과 똑같고, 환기 구멍은 기원전 2475년에서 기원전 2400년경의 시리우스 별자리에 조준 되어 있다. 즉,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2475년∼ 2400년경에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만들면서 그 시기를 환기 구멍이 가리키는 방향의 별자리를 통해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레이엄 핸콕은 더 나아가서 기원전 1만 450년경에 지구의 엄청난 대격변으로 매우 발전한 고대 문명이 멸망했는데 후손인 그들은 이를 잊지 않기 위해 그 시절의 오리온 별자리를 지상에 구현시켰다고 주장한다.

“피라미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피라미드는 건축 방법도 수수께끼에 쌓여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에는 높이 1m, 평균 무게 2.5t 짜리 돌 약 250만개가 사용됐다. 이 돌들을 높이 3m, 두께 30㎝로 자르면 프랑스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담이 쌓일 정도다. 수레나 말을 이용한 운반 도구가 없어서 지레나 굴림대를 이용하고, 청동 말고는 강한 연장이 없었던 시절인데 어떻게 그 많은 돌들을 정교하게 다듬고 운반했을까?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나일강이 범람하던 약 3개월 동안 인부들을 동원했고, 연인원 10만 명이 20년 동안 쌓아왔다고 기록했지만, 현대 과학자들은 그 기록의 부정확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피라미드의 축조 의미와 공사 방법이 명쾌하지 않다 보니, 외계에서 온 생물체가 자신들의 연락 기지로 쓰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지 4500년이나 지난 지금 온갖 설이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피라미드는 더욱 매력적이고 신비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