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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번영했지만 지금은 몰락한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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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카스는 베네수엘라의 수도다. 1990년대 말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베네수엘라의 이미지는 미녀들의 나라인 풍요롭고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러다 1999년부터 서서히 몰락의 조짐이 보였고 급기야 2016년 이후 베네수엘라의 경제, 정치가 대혼란에 빠지면서 도시는 혼란에 빠졌고 치안은 엄청나게 나빠졌다. 지금 가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한때 좋았던 나라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돌아보고, 앞으로 상황이 좋아지면 어떤 곳을 여앵할까에 대해 생각해본다.

“카라카스의 볼거리”
카라카스는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큰 도시며 정치, 경제 및 문화의 중심지로 베네수엘라의 수도다. ‘시몬 볼리바르’ 광장(Simon Bolivar Square)은 베네수엘라는 물론, 중남미 여러 나라를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독립시킨 지도자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를 기리기 위한 광장이다. 이곳에는 국립미술관, 카라카스 신성 예술관 등도 있으며 카라카스 근방에서는 미리다 케이블카(Merida Cable Car)를 타고 하얀 만년설이 쌓인 베네수엘라 내 최고봉까지 갈 수도 있다.
베네수엘라는 과거에 미녀들의 나라로 널리 알려졌었다. 심지어는 미인 사관학교라는 것이 있을 정도로 여자들은 미인 대회에 나가는 것이 꿈이었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인들이 아름다웠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 신분 상승 통로의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 나라가 엄청나게 힘들어지고 난 후라 그런 명성은 사라졌다.

“치안이 너무도 안 좋아진 카라카스”
지난 5년간 베네수엘라의 인구는 거의 20% 가까이 줄었는데, 실제로는 통계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치안은 거의 붕괴된 상황이며 무장 갱단이 실질적으로 장악하여 무단 분할 통치를 펼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한다.

“베네수엘라의 자연”
베네수엘라에는 다양한 야생 동물이 살고 있다. 파충류의 약 23%와 수륙 양서류의 50%가 베네수엘라에 있으며 전반적으로 약 8,000종(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종)이 이 나라 고유종이다. 베네수엘라는 총 1,417종의 조류, 351종 이상의 포유류, 341종의 파충류, 315종의 양서류 그리고 2,000개 이상의 담수 및 해양 어류를 보유하고 있다. 무척추 동물 그룹은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잘 알려진 그룹 중에 약 900종의 해양 연 동물, 1,600종의 나비, 120종류의 소똥구리 및 39종의 파리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역사”
석유 매장량이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는 1930년대부터 석유 채굴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좋은 시절이 펼쳐졌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 쇼크가 일어났을 때 다른 나라들, 특히 한국과 같은 나라는 힘들었지만 베네수엘라는 석유의 축복을 받았다. 주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독재 정치와 내전으로 엉망이었지만 베네수엘라는 1인당 명목 GDP가 남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석유 회사를 국유화했던 1976년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최고로 소득이 높아서 이민 오는 사람이 많을 정도였다. 1970년대 베네수엘라 황금기에는 수도 카라카스 중심부와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마천루 및 쇼핑센터, 고급 주택들이 대대적으로 건축되었고 지하철도 1983년에 개통했다.
1970년대 황금기를 이끌었던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1973-1978)은 정권을 야당에게 뺏겼다가 10년 만에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1988- 1993). 그는 공산주의 멸망 후, 변한 시대에 맞춰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취하고, 자신이 국유화했던 석유회사를 다시 민영화하면서 경제는 요동쳤고 물가는 150%나 치솟았다. 1989년대의 저유가 시대로 인해 경제가 악화되었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빈민들은 카라카스 외곽 산 중턱으로 몰리면서 빈민촌을 형성했다. 각종 범죄 조직과 콜롬비아의 마약 카르텔이 카라카스 외곽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고 차베스 중령이 1992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해서 2년 동안 옥살이를 한 그는 1994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을 만들어 활동한다. 페레스 대통령은 결국 부정부패의 혐의, 의회의 탄핵으로 물러나고 만다. 1994년에는 금융위기를 맞이하고 IMF 체제를 맞아 경제는 요동쳤다. 1998년 강성 반미 좌파 우고 차베스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의회를 해산하고 1999년 새 헌법을 통과시킨 후, 2000년 7월에 새 헌법 밑에서 새로운 대통령으로 탄생한다. 그가 원유, 철강 등 국가 기간 산업을 국유화하려고 하자 2002년 반 차베스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다. 군대는 시위대를 진압하고, 친 차베스, 반 차베스 시위대가 충돌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닥쳤다. 이에 베네수엘라 총사령관 루카스 린콘 로메로가 쿠데타를 일으켜 차베스는 대통령직에서 쫓겨났으나 차베스 지지자들이 차베스를 사수하면서 이틀만에 다시 대통령으로 돌아온다. 대통령 차베스는 쿠데타 지도자 루카스 린콘 로메로와 타협하여 그를 내무부 장관에 임명한다.
이런 상황이었는데 차베스의 운이 좋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고유가 시대가 펼쳐지면서 차베스 정권은 엄청난 오일 머니를 벌어들였고 포퓰리즘적 무상 복지 정책을 실행한다. 저가 주택, 무상 의료, 무상 교육 등의 정책을 시행하자 하층민들 뿐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그를 지지했다. 그는 자신감을 갖고 돈이 되는 석유기업들을 국유화했다. 그러자 해외의 기업들은 베네수엘라에 투자를 하지 않았다. 차베스는 국부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명목 하에 2003년부터 외환거래를 전면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러자 생필품을 비롯한 소비재 상품가격이 폭등했다. 결국 국제적인 시장 경제 질서에 어긋나는 정책들을 취하고 미국에 맞서고, 조롱하는 가운데 미국 정부와 기업가들은 등을 돌렸다 석유만 쌀 뿐 생필품은 부족하고, 인플레이션은 심각해지다 보니 범죄율은 높아지고 치안은 점점 나빠졌다.
그래도 석유값이 높았을 때 즉 2000년 – 2014년까지 베네수엘라는 형편이 어려웠어도 체제는 유지되었다. 서민들은 여전히 그때를 좋았던 시절로 기억한다. 차베스는 2006년 대선에서도 당선되었는데 점점 독재자가 되어 간다. 2009년 헌법을 개정해서 종신 대통령이 가능케 했고 의회해산권을 가졌다. 차베스의 인기는 대단했다. 국제적으로도 찬사를 받았다. 그는 어쨌든 벌어들인 국가의 돈을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니까 지지가 대단했다. 그는 2012년에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렇게 좋은 시절을 보내다가 2013년 3월, 암으로 인해 죽었다.
부통령이었던 마두로가 그 뒤를 이어 2013년 대선에서 당선되었다. 야권 후보에 대해 약 1.5%의 차이로 이긴 그에 대해서 승복하지 않는 국민, 정치인들이 많았지만 노조 출신의 그는 차베스의 정책을 이어받았다. 그런데 그는 운이 나빴다. 그의 정권 초기인 2014년부터 국제적으로 저유가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미국에서 셰일가스가 생산되면서 석유가가 폭락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새로 대통령이 된 마두로는 더이상 차베스처럼 국민들에게 줄 돈이 없었지만 그는 서민 무상복지를 계속 확대하는 비현실적인 정책을 확장했고 결국 2015년부터 국가의 기본이 뒤흔들리는 상황이 전개된다. 마침내 2017년 마두로 정권은 베네수엘라의 디폴트를 선언한다. 국제 사회에 채무를 이행할 수 없다는 뜻, 결국 국가의 파산을 선언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마비되었고 식량과 생필품 사정이 엄청나게 나빠졌지만 마두로는 계속 돈을 찍어서 국민들에게 정부 보조금을 주었다. 그러나 엄청난 인플레이션 속에서 돈은 휴지보다 못했다. 돈으로 바구니 같은 것을 만들어서 국경 부근의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파는 사람들도 생겨났으며 사람들은 살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미녀라고 소문났던 여인들은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일까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폭동,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고 돈이 좀 있는 사람들, 기업가들은 베네수엘라를 탈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 야권은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하면서 과도 정부를 수립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과이도를 인정하고, 러시아, 중국 등의 사회주의 세력은 마두로를 지지했다. 4월 30일, 과이도는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대부분의 군대와 시민이 지지하지 않아서 불발로 끝나고 마두로는 건재했다. 그만큼 아직도 차베스 정권 시절의 호황기를 그리워하고, 그를 이은 마두로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은 분열되고, 국제 유가가 다시 오르는 조짐이 보이자 마두로 정권은 숨통을 틔우고 있다. 2023년 1월, 베네수엘라 의회는 표결로 과이도 정부를 해산시키면서 마두로는 건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현재”
그러나 마두로의 승리는 승리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차베스 때처럼 돈이 없다. 정부 보조금은 주고 있지만 돈은 휴지가 되었다. 해결된 것은 없다. 2023년 현재, 최악의 상황이었던 2020년과 비교하면 환율과 인플레이션은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 65,374%까지 치솟았던 기가 막힌 인플레이션은 400%대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400%란 인플레이션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힌가?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다. 지난해 국내총생산 GDP는 931억 달러로 2013년 GDP의 1/4 수준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5인 가족 기준으로 한 달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품 구매 비용을 130볼리바르, 약 511달러로 정해놓고 있는데 현재 최저임금이 한달에 4.48 달러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지난 6월까지 생존을 위해 베네수엘라를 떠난 이민자는 730만 명이 넘는다. 일부 국민들은 해외로 이주한 가족들이 송금해주는 돈으로 생활하지만, 국민 81%는 빈곤층으로 엄청난 고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2023년 국가 예산의 77.1%를 사회적 지출 예산으로 편성했다. 돈이 없는데 복지 정책은 계속하겠다는 상황이다.
한편 미국은 2006년 시작했던 제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여 현재는 927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에 대한 제재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와 거래하는 국내외 기업 및 국가도 제재 대상에 올랐다. 정부 재정의 주요 수입원인 석유 산업을 제재함으로써 마두로 정권의 숨통을 끊겠다는 것인데 마두로 정권은 2020년 말 민간 투자를 증진하고 달러 통용화를 시행하는 등 경제 자유화 개혁을 시행하면서 미국과 타협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안 좋고, 마두로 역시 미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그는 야권 대선 주자를 탄압하고 서방과의 관계도 멀리하며 러시아, 중국 등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친 차베스 혹은 친 마두로 성향의 국민들은 이 모든 것이 ‘미국의 경제 제재’ 때문이라며 마두로를 지지하고, 반대로 반 마두로 성향의 국민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질서 속으로 들어가야 베네수엘라 경제가 살아난다며 마두로의 정책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그렇게 국민들도 양분된 상태다.

“베네수엘라 몰락의 원인, 석유의 축복이 석유의 저주가 되었다”
베네수엘라가 망한 이유는 여러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제제가 이슈가 된다. 그런데 과연, 미국이 제재를 풀어주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혹은 시장 자본주의 질서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고 이런 문제가 다 해결되어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근본적인 이유가 석유에 있다고 지적한다. 석유의 축복이 곧 석유의 저주가 되었다고 말한다. 정치인들만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석유의 축복 속에서 전 국민 모두가, 정치인부터 서민층까지 모두 해이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원유값이 올라갈 때 정부가 벌어들인 돈을 험한 시기에 대비해서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교육, 연구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 정책으로 돈을 펑펑 썼고 국민들 역시 그 맛에 취해 악착같이 살아보려는 의욕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한국같은 경우는 자원이 없으니 어떻게든 사람들이 노력하고, 일해서 살아가는 자세를 갖고 있었다면, 베네수엘라는 풍요로운 원유를 팔아서 잔치를 벌였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유가는 길게 보면 늘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또 새로운 에너지도 개발되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여 석유의 축복이 몇십 년 지나고 나니 석유의 저주가 된 것이다. 그때 그 시절만 잘라서 보면 좋아 보이던 정책이 수십 년을 지내놓고 보니 매우 잘못된 정책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언젠가 이런 고통과 고난이 베네수엘라 사람들에게 약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