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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왕국의 유적지 탐사의 베이스 캠프, 시엠립(Siem Riep)

시엠립은 프놈펜에서 북서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톤레삽 호수 근처에 있는 도시다. 시엠립주의 주도로서 약 6km 떨어진 앙코르 문명 유적지에 가기 위해 꼭 들러야 하는 도시다. 프놈펜에서 배를 타고 톤레삽 호수를 거쳐 6시간 걸려 갈 수도 있지만 버스를 타거나 국내선 항공을 타고 갈 수도 있다. 시엠립은 17세기 타이의 아유타야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태국의 ‘시암 왕조를 평정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앙코르 유적지를 보기 위해 들러야 하는 도시, 시엠립”
시엠립은 매우 중요한 도시다. 근교에 대표적인 인류 문명 중의 하나인 앙코르 문명 유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앙코르 문명을 복원하고 알리는데 프랑스의 극동학회가 큰 역할을 했다. 1907년 첫 번째 탐사대 200명이 시엠리엡에 와서 청소를 하고 복원하는 가운데 앙코르 유적지가 서구에 크게 알려지게 된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약 6km 떨어진 시엠립은 작은 마을이었지만 차차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관광지로 변했다. 그러다 내전 중에는 크메르 루주와의 전투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1998년 폴 포트의 죽음 이후, 전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방콕의 여행자들이 모이는 거리, 카오산 로드가 있다면 시엠립에는 비슷한 분위기의 ‘펍 스트리트’가 있다. 이곳에는 5성급 호텔부터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까지 다양한 종류의 숙소가 있고 세계 각국의 식당들이 모여 있다. 서양식 펍, 술집, 유흥가도 있고 주변에는 전통 시장도 있다.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부작용도 많이 낳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앙코르 왕국의 역사”
한문 문헌 기록에 의하면 크메르인들은 여신을 모시고 살았는데 인도 출신의 이방인이 나타나 활로 토착민을 굴복시키고 여왕을 아내로 삼은 후 인도의 풍속을 전파했다고 한다. 크메르인(캄보디아 민족을 말한다)의 전설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왕 나가(Naga)가 바다에서 톤레삽 호수fh 찾아왔다. 나가는 아름다운 달의 딸과 결혼하여 바위 구멍에 수정 궁전을 지은 후 강과 들, 숲을 만들었다. 그리고 딸 소마(Soma)를 낳았는데 소마는 힌두교에서 달의 신을 가리킨다. 소마 공주는 어느 날 인도에서 온 카운디나 왕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왕자는 활로 소마 공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뱀의 왕 나가의 허락을 받아 소마와 결혼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운 후, 이곳에서 벼농사를 가르쳤다. 그 나라가 ‘푸난 왕국’이다. ‘프남(현대 크메르아로 ’프놈‘-언덕)은 ‘산의 왕’이란 뜻의 고대 크메르어에서 온 것이다.
이런 설화를 보면 앞선 문명의 인도인들이 와서 토착민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나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푸난 왕국은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 해상 무역을 하며 5세기말에 크게 번성했고 인도에서 발생한 힌두교를 믿었다.
그러나 푸난 왕국은 실크로드를 통한 중앙아시아 육로 무역이 활발해지고 해상 무역의 중요성이 줄어들자 쇠퇴하자 첸라 왕국이 나타나 푸난 왕국을 무너트리고 이 지역을 통합한다. 이들은 인도의 선진 문화는 물론 중국의 문화를 수입하고 교역하면서 발전했다. 첸라 왕국은 처음에는 톤레삽 호수 근처에 근거지를 두었으나 8세기 초부터 호수 근처의 낮은 지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수첸라’와 내륙지방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내륙첸라’ 왕국으로 분열된다.
그후 9세기 초에 이들을 통합하고 앙코르 왕국의 초석을 닦은 이가 자야바르만 2세(802-834)였다. 그는 스스로를 데바라자(데바 – 신, 라자 –왕)이라 이름 짓고, 제정일치 시대를 연다. 그리고 현재 앙코르 유적지에서 남동쪽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진 롤루오스 지역에 도읍지를 정한 후, 자신의 나라를 캄부자(Kambuja) 왕국이라 불렀다. 캄부자(혹은 깜부자)는 말은 캄부를 태양족의 혈통을 확립한 인물로 보는데 훗날 발견된 비문에 ’태양족과 달족을 결합시키고, 모든 경전과 예술에 통달했으며, 스스로 창조된 캄부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취지의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후 ’캄부의 아들들‘이란 뜻의 ’캄부자‘가 왕국의 정식 명칭이 된다.
즉 최초의 캄보디아인은 ‘나가(뱀의 왕 혹은 용)’를 모시던 해양 민족이었고 여기에 고등 문화를 갖고 온 인도인들이 벼농사를 전파했다. 처음에는 달과 연관된 소마 공주 혈통이 이 지역을 지배했으나 훗날 태양과 연결된 ‘캄부의 자식들‘과 결합하면서 태양족들이 주도권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 ’캄부자‘란 말은 현대의 ’캄보디아‘와 연결이 된다.

’앙코르 왕국‘이란 말은 사실, 캄부자 왕국 사람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다. 흣날 프랑스 인들이 잘못 발음하여 ’앙코르‘라고 한 것이 그대로 쓰인 것일 뿐 그 시절의 ’캄부자‘인들과 앙코르라는 단어는 상관이 없다. 어쨌든 우리는 캄부자 왕국을 앙코르 왕국이라 부르는데 9세기 중반부터 수많은 힌두교 사원을 지었고, 수리야바르만 2세(1113- 1150) 때는 그 유명한 앙코르 와트를 만들었다. 이것은 힌두교 사원이다. 그가 죽고 난 후, 베트남의 ’참파’(Champa) 왕국이 침임하여 혼란스러웠지만 이들을 격퇴한 이가 앙코르 왕국의 위대한 통치자인 자야바르만 7세(1181-1219)였다. 그의 전투 장면은 바욘 사원의 벽에 부조가 잘 묘사되어 있다. 그는 힌두교가 아닌 대승불교를 믿었으며 자신이 스스로 관세음보살이라 믿고, 그를 위한 바욘 사원을 만들었다.
이렇게 영광을 떨쳤던 앙코르 왕국이었지만 13세기에 태국에서 일어난 수코타이와의 전쟁, 14세기에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과의 전쟁에서 밀리면서 차차 기울다가 1431년 수도를 프놈펜근처의 ‘우동’이란 곳으로 옮기면서 왕국의 흔적은 정글로 뒤덮여갔다. 그리고 17세기, 18세기에 유럽의 여행가, 일본의 상인들이 방문했고 1860년에 프랑스의 동식물 학자인 ‘앙리 무오’가 이곳을 방문하여 꼼꼼하게 기록해 프랑스에 알리면서 앙코르 유적지는 세상에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
(18세기 말에는 앙코르 유적지가 있던 캄보디아 북서쪽을 태국이 지배했지만 프랑스의 중재에 의해 1907년 캄보디아에 반환되었으나 1941-1946년까지 다시 태국이 차지했다가 다시 캄보디아에 반환했다.)


“시엠립의 볼거리들”
우선 시엠립에서 약 6km 떨어진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보기 위해서 툭툭이나 차를 대절해서 타고 다니는 것이 좋다. 앙코르와트, 앙코르 톰, 바이욘 사원 등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보고, 도시 서쪽에 있는 초기 앙코르 유적군인 롤루오스 유적군, 더 나아가 앙코르 건축물들에 쓰이는 돌을 캐냈다는 프놈 쿨렌 산도 돌아볼 수 있다. 시간이 남으면 도시 남쪽의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같은 톤레삽 호수도 돌아본다.

앙코르 국립 박물관(Angkor National Museum)
앙코르 유직지에 도착하기 전에 앙코르 국립박물관이 있다. 이곳에 들러 전체적인 설명을 보고 가면 앙코르 문명 이해에 도움이 된다. 시대, 종교, 왕족을 테마로 한 전시물이 전시되는데 짧은 프리젠테이션을 마친 후 방문객들은 박물관을 돌아보며 앙코르 유적지의 이미지와 설명을 돌아본다. 많은 여행자들은 아침 일찍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보다가 한낮에 이곳에 와서 박물관을 보기도 한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숙소로 돌아가서 쉬었다가 다시 늦은 오후에 돌아보기도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이곳에는 기념품 상점과 작은 카페도 있어서 더위를 피하기 좋다.

앙코르 유적지 군의 사원들
앙코르 유적지 안에는 거대하고 웅장한 사원들이 수없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앙코르 와트다. 와트는 사원이란 뜻이고 앙코르의 의미는 도시이니, ‘도시 사원’이란 뜻이었다. 이곳은 수리야바르만 2세가 세운 사원으로 우주를 건축물로 형상화시켜 놓은 곳이다. 그 외에 12세기 말에 세워진 왕궁 유적인 앙코르 톰, 거대한 관세음 보살의 석상들이 숲처럼 세워진 바이욘 사원, 수백년 된 무화과 나무들의 뿌리가 문어발처럼 낡은 사원을 움켜쥐고 있는 프레아칸, 타 프롬 사원등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사원들이 즐비하다.

장인학교 ( Les Chantiers Écoles)
씨엠립은 크메르 루즈에 의해 파괴된 캄보디아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의 중심지다.
Les Chantiers Écoles는 가난한 캄보디아 젊은이들에게 나무와 돌 조각 기술, 전통 실크 그림, 칠기 및 기타 장인 기술을 가르친다. 이들의 전통 기술을 설명하는 무료 가이드 투어는 매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제공되고 있다. 구내에서는 Artisans Angkor라는 상점을 운영하고 있고 앙코르 시대 동상의 석재 및 목재 복제품부터 가정용 가구까지 모든 것을 판매하고 있다. 앙코르와트 맞은편의 앙코르 카페 건물에도 매장이 있고 프놈펜과 씨엠립 국제공항에도 매장이 있다.

캄보디아 문화 마을
시엠립과 공항 중간쯤에는 캄보디아 문화 마을이 있다. 외국 여행자들은 만족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즐거워할 수도 있다. 캄보디아의 집과 마을을 재현한 문화 마을이다. 밀랍인형 박물관, 참족, 중국인, 크릉족, 크메르족의 주택 모형들도 있다. 하루 종일 댄스 쇼와 공연이 있지만 아이들이 없다면 성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는 평도 있다.

프사 짜
프사 짜(Psar Chaa)는 현지인들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벼룩 시장이다. 여행 기념품도 쏠쏠히 구매할 수 있다.

톤레삽 호수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로 시엠레아프 외곽으로 6km 떨어진 곳에 있다. 호수 관광과 수상에 떠 있는 휴게실에서 호수를 관찰하고 수상 가옥들을 방문하기도 한다.

“시엠립 자전거 타고 돌아보기”
시엠립 마을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볼 수도 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도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돌면 느긋하게 마을을 탐색할 수 있다. 관광지가 아닌 마을을 다니면 한적한 풍경이 펼쳐진다. 무언가 집에서 만들고 있는 노인, 나무 그늘 아래서 궤짝을 놓고 바나나, 사탕, 음료수를 파는 사람, 자기 동생을 업고 놀고 있는 아이들, 장례식을 치르는 광경, 냇가에서 수영하는 아이, 빨래하는 여인, 강에서 낚시하는 소년을 만날 수 있고 불교 사원들도 돌아볼 수 있다. 그들과의 우연한 만남은 여행을 풍성하게 한다. 운이 좋으면 강물에서 코끼리 목욕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장엄한 유적지 못지않게 사람들의 살아가는 삶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도심지에는 유흥가도 많이 발전해서 소란스럽기는 하지만 술을 마시며 즐길 수도 있다. 고급 음식점에서는 ‘압사라 댄스’ 공연을 하기도 한다.

“시엠립 가는 방법”
시엠립에는 시내에서 7km 떨어진 곳에 국제 공항도 있어서 프놈펜만큼이나 국제 노선이 활발하다. 그러므로 앙코르 유적지만 보겠다면 곧바로 시엠리엡으로 갈 수 있다. 예전에는 프놈펨을 본 후, 버스를 타고 가거나 톤레삽 호수를 가로질러 시엠립으로 갔었다. 혹은 태국을 통해서 시엠립을 갈 수도 있다. 태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태국의 국경 도시 아란야쁘라텟까지 가서 출입국 수속을 밟은 후, 시엠립으로 출발하는 버스나 택시를 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