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명상센터, 아쉬람에 머물기
아쉬람은 흔히 명상 센터라고 하지만 어원적으로 풀이하면 세속에서 물러나 신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인도에는 아쉬람이 많다. 히말라야 계곡뿐만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인 도심지에도 있다. 인간이 만든 아쉬람은 다 똑 같지 않다. 그것을 만든 지도자에 따라서 분위기와 시스템이 다 다르다. 인도의 힌두교 신자들뿐만이 아니라 이런 곳에 관심을 가진 외국의 여행자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아쉬람을 찾아와 지친 정신을 쉬고 명상을 한다.
“아쉬람마다 다른 전통과 특색을 갖고 있다."
아쉬람이 가장 많은 곳은 리시케시를 비롯한 히말라야 산맥이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는 아쉬람에는 많은 영적 수행자들이 모여든다. 여행자들도 이런 곳에 머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적정한 기부금 혹은 사용료를 내고 그곳에 기거하며 수행을 하거나 혹은 주변의 숙소에 기거하면서 아쉬람 사원을 드나들며 수행하기도 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프로그램에 의해서 수행하는 곳도 있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수행하기도 한다. 대개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명상이나 요가 수행을 하지만 신비한 초능력을 강조하거나 혹은 섹스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수행법 때문에 논란을 일으키는 아쉬람도 있다. 인도 힌두교의 전통답게 획일적이지 않고 그것을 만든 지도자의 특성과 가르침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아쉬람이 있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그중에서 몇 개의 아쉬람을 소개한다.
“라마나 마하리쉬 아쉬람”
라마나 마하리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메시지를 화두로 수행을 한 인도의 성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갔지만 그가 수행하던 곳에 아쉬람이 있다. 남인도 티루반나말라이 시내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있는 그의 아쉬람에는 소박한 힌두교 사원과 그의 동상을 모셔 놓은 커다란 방이 있을 뿐 특별한 것은 없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타밀 지방의 티루촐리에서 태어났는데 한번 잠을 자면 스스로 깨지 않는 이상 아무리 꼬집고 때리며 심지어 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아도 깨어날 줄 몰랐다는 점을 빼고는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였다고 한다. 그 소년이 17세 때, 우연히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공포심을 느낀 후, 육체를 초월한 영원불멸의 존재를 느꼈다고 한다. 그후, 라마나 마하리쉬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들에 대해 무관심해졌고 참나를 찾기 시작하는 구도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집을 떠나 티루반나말라이의 아루나찰나 산 근처를 찾아왔다.
그는 이곳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수행을 했다. 가부좌를 튼 그는 벌레에 물려 살이 썩고 피고름이 흘러도 무아지경에 빠져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렇게 두 달 동안 화석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그를 발견한 동네 사람들이 그의 입에 강제로 음식물을 흘려 넣음으로써 그는 다시 이 삶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그후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으나 라마나 마하리쉬는 여전히 침묵에 빠져 있었다. 그는 그후 침묵에서 깨어나 활동했지만 여전히 침묵으로 가르쳤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해탈에 이르는 방법은 따로 없으며 다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붙들고 계속 생각의 언덕을 넘다 보면 그 질문조차 사라지는 순간이 오는데, 이때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일체 만물이 하나로 환원되는 깨달음의 순간이 온다고 가르쳤다. 지금도 여전히 이 아쉬람에는 인도인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영적 수행자들이 와서 함께 수행하고 있다.
“라즈니쉬 아쉬람”
푸네에 있는 이 아쉬람을 만든 오쇼 라즈니쉬는 이미 세상을 떴지만 여전히 아쉬람은 남아 있다. 인도의 수많은 아쉬람 중에서 이 아쉬람처럼 많은 논란을 일으킨 아쉬람은 없었다. 또 인도인들보다도 서양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에게 라즈니쉬는 부처와 같은 깨달은 자로 추앙받지만 배척자들은 그를 섹스 교주, 종교 사기꾼으로 보면서 비난했다.
대학 시절 철학을 전공했고, 스물 셋의 나이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스스로 선포한 그는 사십의 나이인 1970년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뭄바이에 명상센터를 열었다. 두어 명의 인도인 제자만 따르는 초라한 출발이었지만 욕망을 억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라는 탄트리즘적 가르침으로 인해서 서양 젊은이들, 히피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금욕주의적인 기독교 교리, 산업화된 답답한 사회로부터 뛰쳐나오고 싶어하던 서양 젊은이들에게 그의 메시지나 수행방법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푸네로 옮긴 후, 성공한 라즈니쉬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오리건 주에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그는 96대의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소유했다는 것과 프리 섹스적인 명상법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고, 측근의 배신과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인도의 푸네 아쉬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990년 1월 예순 살에 인생을 마감했다.
지금도 이 아쉬람은 제자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각자 주거지를 정한 후, 그의 아쉬람에 드나들며 수행한다. 다른 아쉬람과 달리 입장료가 있으며 자유롭게 붓다 홀에서 명상을 할 수도 있지만 각종 프로그램에는 돈을 내고 해야 한다. 또한 입장하는 사람들은 에이즈 검사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곳은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눈이 맞아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그것을 억압하지도 않다 보니 한때 에이즈가 문제가 되었기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다. 분위기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샤워실, 탈의실도 남녀 공용이다. 죽은 라즈니쉬의 강의 영상을 보고, 프로그램에 참가해 온갖 탄트리즘적 수행을 하지만 강제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비파사나 명상도 있고 춤을 추거나 격렬한 움직임을 통해 에너지를 발산하는 다이나믹 명상 등도 있다. 다이나믹 명상을 통해 에너지를 발산한 후, 정적인 명상으로 들어가야 더 선정에 들기 쉽다는 이유 때문이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탄트리즘에 기초한 성적 명상법이었고 실제로 라즈니쉬 스스로 여성 신도들과의 성적인 접촉을 즐겼고 아쉬람 분위기가 그래서 인도 사회에서 문제가 되었었다.
“사이바바 아쉬람”
사이바바 아쉬람은 남인도 뱅갈로르 근처의 푸타파티란 곳에 있다. 그는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동그랗게 솟아오른 파머 머리에, 얼굴이 검은 편이고 오렌지색 도포를 걸치고 다닌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추종자들이 그 아쉬람의 막사에 머물면서 그를 추종하고 있다. 합숙하는 사람들은 그를 접견하는 다잔 시간에 모여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그런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천천히 걷는 사이바바는 가끔 기적을 일으킨다. 손에서 비부띠라고 하는 하얀 가루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사람들은 그것을 황송하게 받는다. 그것을 먹으면 온갖 병이 낫는다고 믿고 있다. 가끔 서양 혹은 일본인 신자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여서 시계가 황금빛으로 빛나게 한다던가, 공중에서 사과를 만들어서 준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그의 가르침은 ‘타트 밤 아시’ 즉 세상에 신은 오직 하나이며, 그것은 바로 당신이라는 전통 힌두교의 가르침이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은 그가 행하는 기적 때문에 그를 숭배한다. 그는 ‘살아 있는 신’이란 것이다.
원래 예전에 쉬르디 사아비바라는 성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많은 이적을 행했는데 1918년 세상을 떠나며 다시 환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가 죽은 지 8년째 되는 해에 태어난 1926년생 사이바바가 훗날 자신이 바로 환생한 쉬르디 사이바바라고 말하며 기적을 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세계 각지에서 매년 수만명의 추종자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를 마술사거나 트릭을 쓰는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약 20여년 전에 한국의 sbs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사이바바가 손에서 하얀 가루를 만들어 내는 순간을 멀리서 카메라로 찍은 후,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그의 오른손이 넓은 왼쪽의 오렌지색 가운 안에서 무언가를 슬쩍 집어내는 것이 잡혔다. 또한 그후 그 교단 안에서 내분이 일어나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도와 전세계에서는 그의 기적 혹은 가르침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오고 있다.
“퐁디셰리의 오로빈도 아쉬람과 오로빌 아쉬람”
남인도 동쪽 지방에 퐁디셰리라는 도시가 있고 이곳에서 숲속으로 들어가면 ‘오로빌 아쉬람’이 있다. 이곳은 휴양지 같은 분위기다. 울창한 숲, 아름다운 꽃들, 예쁜 건물들이 있고 서양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 아쉬람 안에는 기거할 수 있는 숙소들도 있지만 장기 거주하는 서양인들이 많다. 안에는 원추형의 그물에 덮인 명상하는 곳이 있고 드넓은 평원과 학교, 병원, 우체국 등 삶에 필요한 시설들이 다 있다.
이 아쉬람은 원래 이상향을 세우고자 하는 프랑스와 독일 등의 유럽게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든 곳이다. 처음에는 시내에 있는 ‘오로빈도 아쉬람’ 이란 곳과 긴밀한 유대하에 건설했으나 후에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서 현재 ‘오로빈도 아쉬람’과 ‘오로빌 아쉬람’은 별개의 독립적인 공동체가 되었다. 퐁디셰리 시내에 있는 오로빈도 아쉬람은 인도인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유럽인들, 특히 은퇴자들이 만든 오로빌 아쉬람은 서로 분위기가 다르다. 오로빌 아쉬람은 문명 생활에 지친 이들이 자연 속에 파묻혀 은둔적인 삶을 즐기는 분위기다. 여행자들도 물론 이런 곳을 방문하거나 체험할 수 있다.
“리시케시의 아쉬람들”
히말라야 산맥에도 아쉬람들은 많다. 도시의 아쉬람과 달리 맑고, 쾌적한 공기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여행자들도 얼마든지 그들의 규칙을 지키면 일시적이든, 오래동안이든 참여할 수 있다. 이곳은 특히 요가 수행을 가르치는 곳이 많아서 돈을 내고 요가 수련을 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이곳도 이미 세계 각지로부터 오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옛날의 모습은 아니다. 비틀즈가 잠시 와서 있었다는 아쉬람도 있다.
그 외에도 인도 전역에는 각양각색의 아쉬람이 있다. 위에서 소개한 아쉬람에 간다고 언제나 깨달음을 얻거나 큰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각양각색의 아쉬람이 인도에 있으며 그것을 하나의 여행, 문화 체험으로 접할 수도 있다는 뜻에서 소개한 것이다. 어쩌면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유명하지 않은 소박한 아쉬람에서 진정으로 휴식을 취하고 명상을 하면서 큰 치유를 받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