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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고 위대한 문명을 꽃피운 로마

우리는 로마를 가지 않아도 이미 로마를 알고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이라면 벤허, 자전거 도둑, 로마의 휴일, 종착역 등의 영화를 통해 고대 로마의 영광과 서민의 애환과 아름다운 낭만을 이미 맛보았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동영상, 사진, 방송,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이미 수많은 풍경과 역사와 즐거움을 알고 있다. 그래서 로마는 더 우리를 유혹한다. 알고 있음에도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가슴이 떨리는 것은 로마는 세계사의 중심지였던 어마어마한 곳으로 찬란하고 위대한 문명을 꽃피운 곳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흔적 속에서 위대한 문명을 상상케 하는 로마”
로마의 매력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웅장한 건축물에만 있지는 않다. 웅장한 유적지와 아름다운 예술품에 감탄하다가 문득 그 너머에 서린 역사와 신화, 전설에 눈을 돌리는 순간, 우리의 시야는 수천 년 전으로 확장되고 작은 희열이 온몸을 덮쳐 온다. 한 송이 꽃에는 그 꽃이 피기까지의 햇살과 비와 바람의 흔적들이 서려 있고, 성숙한 인간에게는 성장하면서 겪는 온갖 상처와 고통 그리고 수고가 어려 있는 것처럼 로마도 그렇다.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존재보다도 그 존재에 어린 흔적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곳이 로마다.

“로마의 영광이 시작된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로마의 영광은 콜로세움부터 시작된다. 약 2천 년 전 로마의 독재자 네로 황제가 몰락한 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인공 호수가 있던 자리에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을 세웠다. 높이 50미터, 둘레 527미터인 타원형의 거대한 이 경기장은 약 5만 명을 수용하는데 서기 72년에 히브리에서 온 노예 1만 2천 명을 투입하여 8년 만에 건설되었다. 비가 올 때는 거대한 천막을 쳤고 5만 명의 관중들이 정해진 출구로 빠져나가는 경우 5분도 안 걸렸다고 한다. 또한 완벽한 배수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물을 가득 채운 후 모의 해전까지 즐겼다고 한다. 이 원형 경기장에서 가장 많이 벌어졌던 경기는 목숨을 건 검투사 경기였다. 그러나 지금 콜로세움에 들어서면 평평한 바닥이 아니고 다 파헤쳐져서 지하의 수많은 공간들이 드러나 앙상한 해골같은 느낌을 주는 폐허다. 지하의 수많은 공간들은 검투사 대기실, 맹수 우리, 도구 보관 창고들로 예전에는 땅 밑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었다.

“늑대로부터 시작된 로마의 건국 신화”
신화에 의하면 로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Romulus and Remus)라는 쌍둥이 형제와 관련이 있다. 여러 설들이 있는데 그중으 하나에 의하면 지금 터키의 북서부 해안에 있는 트로이 전쟁 시절, 트로이군에서 헥토르 다음으로 용맹한 장군이었던 아이네이아스는 그리스군에게 패하자 유민들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갔다. 그는 이탈리아의 중부 지방인 라티움에 정착했고 그의 후손들은 로마의 남동쪽에 위치한 알바 롱가(Alba longa)까지 간다. 그후 아이아네스의 후손 중에서 내분이 일어나는데, 그 자손들 중 버려진 형제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난 후, 로마를 건국했다고 한다.

“로마의 역사가 시작된 곳, 포로 로마노”
콜로세움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포로 로마노가 있다. 포로 로마노란 로마 공회장이란 뜻이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마의 창시자 로물루스는 이곳에 정착한 후, 근처에 살던 사비니 왕국의 여인들을 강탈한 후 추격해온 사비니군과 대치한다. 캄피돌리오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의 습한 저지대에서 대치했는데 이들은 서로 화해한 후, 이 저지대는 백성들을 위한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여기서 물물교환을 하고 정치 집회를 가졌으며 수많은 신전과 기념물을 세웠다. 인구가 늘어나자 로마 공회장은 너무 좁았고 후일 이민족이 침략했을 때 철저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신전과 감옥, 로마 최고의 정치 기관이었던 원로원 건물, 키케로 등의 웅변가가 연설했다는 연단 그리고 케사르(시이저)가 암살된 후 화장된 곳에 세워진 케사르 신전 등이 남아 있다.

“로마의 거대하고, 아기자기하며 로맨틱한 유적지들”
로마의 유적지는 거대하다. 중부 유럽의 아기자기한 유적지를 보던 관광객들은 로마에 오는 순간 거대한 규모에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서기 217년, 카라칼라 황제는 한번에 1천 6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동 목욕탕을 만들었다. 목욕탕 바닥의 화려한 모자이크, 현란한 조각들은 그 당시 로마 사람들의 사치를 보여준다. 로마시민들은 하루의 일과를 끝낸 후 무료로 이 카라칼라 욕장에 와서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로마 멸망의 원인 중의 하나가 목욕문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목욕을 좋아했다.
로마에는 거대한 유적지 뿐만이 아니라 거리 곳곳에 숨어 있는 아기자기한 광장, 분수대, 조각들 그리고 넘쳐 흐르는 낭만들이 있다. 나보나 광장에는 밤이 되면 레스토랑과 카페의 불빛이 밝혀지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쇼를 보여주는 사람 등이 나타난다. 16세기 중엽의 바로크 예술의 대가인 베르니니가 만든 분수대에는 우람한 체격을 가진 네 개의 인물상이 있는데 이는 인도의 갠지스강, 아프리카의 나일강, 남미의 플라타 강, 유럽의 다뉴브 강들을 각각 의인화한 것이다.
나보나 광장만큼 낭만이 넘쳐 흐르는 곳은 스페인 계단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소로 지금도 수많은 여행자들은 오드리 헵번처럼 스페인 계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근처에는 18세기의 아름다운 조각들로 둘러싸인 트레비 분수가 있다. 돌아서서 동전을 오른 손으로 쥐고 왼쪽 어깨 너머로 던져 분수에 넣으면 다시 로마를 찾아오게 된다는 전설 때문에 수많은 여행자들은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고 있다. 또한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입구에는 ‘진실의 입’이라고 알려진 얼굴 조각이 있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그 조각의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을 자른다는 전설 때문에, 거기에 손을 넣고 흥분하며 사진을 찍는 여행자들의 발길은 끊어질 줄 모른다. 로마 외곽의 지하 묘지인 카타콤베에는 탄압받던 기독교도들의 비밀스런 신앙심이 서려 있고 바티칸 시티의 거대한 산 피에트로 광장, 산 피에트로 성당, 바티칸 박물관에서는 활짝 피어난 로마의 기독교 문화를 확인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