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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초월과 체념이 함께 하는 힌두교 성지, 바라나시

c.pixabay.com/swastikarora

바라나시는 인도의 힌두교도들에게는 성지 중의 성지다. 시의 북쪽과 남쪽에서 흐르는 바루나(Varuna)강과 아시(Assi)강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지만, 바라나시를 감싸 안는 강은 히말라야의 눈 녹은 물을 품고 흐르는 갠지스강이다. 바라나시는 약 3500년 동안 힌두교도의 성지이자 도시로서 그 명맥을 유지해 왔으며, 현재는 인도 최고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삶과 죽음, 삶에 대한 열망과 체념, 아름다운 초월과 비참한 현실이 어우러져 있다.

“성스러운 믿음의 현장”
아침이 되면 전국에서 모여든 힌두교 순례객들이 배를 타고 강을 가로지르며 찬가를 부르고 기도를 한다. 힌두교도들은 히말라야 산맥의 눈 녹은 물이 그들이 가장 숭배하는 ‘파괴와 죽음의 신’인 ‘시바신’으로부터 흘러나온 성수라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한 후, 물을 마신다. 그렇게 하면 갠지스 강물이라는 성수에 의해 죄가 사하여 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의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빨을 닦는 사람, 코를 푸는 사람, 머리를 비누로 감는 사람, 그 옆에서 그 물을 마시는 사람, 웃고 떠들며 아침 수영을 즐기는 사람 등 외지인이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이들이 뒤죽박죽 엉긴 곳이기도 하다.

“바라나시에 서린 죽음의 기운”
그런 가하면 죽음과 비참한 현실이 펼쳐지기도 한다. 바라나시 성벽의 골목길에는 늘 황금색이나 붉은색 등의 아름다운 천에 곱게 싸인 시신들이 들것에 들러 화장터로 옮겨지는데, 시신을 나르는 인부들은 이렇게 외친다.
“스리 람 람 삿다 헤이, 스리 람 람 삿다 헤이.”
이 말은 “성스러운 라마, 라마, 그는 모든 것이 옳다. 헤이”라는 뜻으로 장례를 치르러 갈 때 늘 외치는 소리다. 라마는 인도인의 영웅이며 비슈누신의 화신이기도 하다. 힌두교도들은 죽음과 파괴의 신인 시바신이 손바닥에서 만든 불이 3500년간 꺼지지 않은 채 타고 있다고 믿는다.
바라나시에는 수천 년간 이어온 화장터가 두 곳 있다. 마니카르니카 가트(Mankarnika Ghat) 화장터는 돈 많은 이들이 화장되는 곳이고, 상류 쪽 하리 찬드라 가트에는 돈 없는 이들이 태워지는 화장터가 있다. 그 화장터에서 태운 시신의 잿가루가 둥둥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고, 가끔은 화장하지 않은 어린아이의 시신이 비닐봉지에 싸인 채 강물에 떠내려오기도 하며, 민물 돌고래가 갑자기 솟구치기도 한다.

“비참한 삶의 터전”
빈민들의 화장터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는 빨래터가 있다. 빨래가 직업인 이들은 옷을 돌에 내리치며 빨래를 하는데, 화장터의 잿가루가 간간이 섞여 든 더러운 물이건만 상관하지 않는다. 그 중에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은 열 살도 안 된 아이들도 보여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 그 아이들은 평생 그렇게 세습된 직업을 이어받아 그 길을 갈 것이다. 가끔은 병자들이 강변에 누워 있고 다 죽어가는 이들 주위에 아이들이 몰려들어 시시덕거리며 짐승 구경하듯이 쳐다보기도 한다. 밤이 오면 거지와 사두(힌두교 수행자)와 소들이 강변에 누워 안식을 취하고, 적막 속에서 갠지스강은 고요히 흐르기만 한다. 처음 바라나시에 온 사람들 중에는 이런 광경을 보고 몸서리를 치는 이들도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강의 풍경과 관념 속에서 바라보는 철학과 종교는 아름답지만, 강변의 현실은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 현장 앞에서는 감상적인 삶의 허무나 생의 집착을 버리라는 교훈도 쉽게 읊조릴 수 없다. 그런 것들은 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오는 말이다.

“차차 드러나는 바라나시의 묘한 아름다움”
그러나 그곳에 오래 머물수록, 혹은 여러 번 가볼수록, 혹은 마음을 턱 내려놓고 바라볼수록 바라나시는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바라나시에서는 공간의 족쇄와 시간의 사슬에 묶여 있던 존재가 스르르 풀려나가는 묘한 혼돈의 기운이 서려 있다. 끝없이 이어진 성벽 안의 미로를 하염없이 걷거나 강변에 누워 무심하게 강물을 바라보면 문득 삶이 꿈 같고 자신이 환영처럼 보이는 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
새벽에 수행자처럼 맨발로 강가로 걸어 나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문득 세상은 삶과 죽음이 어우러진 구천의 세계로 다가오기도 한다. 강변 이쪽의 이승에서는 죽음이 연기로 피어 오르고, 강 건너 저승에서 떠오른 해는 세상을 다시 밝힌다. 그리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흐르는 갠지스강에서 사람들은 두 손 모아 합장한 채 빌고 있다.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삶으로 순환되는 순간 추한 것, 더러운 것, 불결한 것, 아름다운 것, 깨끗한 것, 신성한 것은 모두 이름을 잃고 하나의 실재 속으로 사라진다. 그때 세상은 한없이 성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서 바라나시는 다르게 보이는데 그 묘한 매력 때문에 오늘도 바라나시에는 순례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항상 낭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라나시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다 보니 사고도 많이 난다. 1994년 초에 한국인 청년 하나가 실종되었었다. 약 1개월 동안 인도 여행을 한 이들은 조금 익숙해졌다고 방심했는지 바라나시에서 청년들을 사귀었고 그들이 나룻배를 타고 강 건너로 놀러 가자는 청을 받아들였다. 강 건너에 가서 그들이 건네 준 요구르트를 마셨는데 그만 정신을 잃었다. 그 중의 한 명이 깨어보니 친구는 간데없고 자신만 남겨졌다. 결국, 경찰이 나서고 한국인 배낭여행자들이 나섰으며, 나중에는 가족들이 직접 와서 찾아보았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도 약에 덜 취한 한 청년이 저항하자 인도 사내들이 죽인 후 갠지스강에 던진 게 아닐까 하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그 후 바라나시에서는 이런 강력 사건들이 종종 발생해서 해만 떨어지면 여행자들은 거의 강변에 나가지 않고, 외출할 때도 여럿이 같이 나가는 경우가 많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문이 안 좋은 관광지에서는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아침과 낮에는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