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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문화의 수도 수치토토(Suchitoto)

c.unsplash.com/fernando alas

엘살바도르의 수도는 산살바도르(San Salvador)지만 문화의 수도는 수치토토(Suchitoto)다. 산살바도르에서 북쪽으로 얼마 안 떨어진 식민지 시대 도시인 수치토토(Suchitoto)는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중에 하나다. 근처의 광할한 수치틀란 호수(Lago Suchitlán)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울창한 정글과 거대한 호수로 둘러싸인 고요한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공기는 깨끗하고 분위기는 느긋하다. 또한 수치토토(Suchitoto)는 잘 보존된 스페인 풍의 거리 분위기 때문에 관광지가 되었다. 차분한 옛스런 분위기, 돌깔린 골목길 등이 매력적이고 호스텔, 레스토랑, 예쁜 카페들이 들어선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

“문화의 수도 수치토토”
수치토토는 한때 인디고 산업의 중심지였다. 인디고 산업은 1900년대 초에 합성 염료가 도입되면서 사라졌지만 오늘날 엘살바도르의 인디고가 장인의 솜씨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 나라의 화산 토양으로 인해 종종 세계 최고로 선전됨) 엘살바도르 문화 단체는 시골 지역의 인디고 산업 활성화에 투자하면서 점점 발전하고 있다. 이곳에는 인디고 작업장 겸 부티크들도 있다. 방문객은 그곳에서 자신의 옷을 스스로 염색할 수 있고 염색하는 방법에 대해서 강의를 들으며 실습할 수 있다.

“수치토토(Sychitoto)에서 보내는 한적한 시간”

이 도시는 내전 기간 중 상처를 입었지만 옛 건물들을 잘 보존하고 있다. 낮고 오래된 건물들, 조약돌 깔린 길, 다채로운 색깔이 칠해진 건물 등이 아름답다. 수치토토의 중앙 광장에는 형형색색의 상점과 레스토랑들과 하얀 성당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낮에는 간단한 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을 즐기기에 좋으며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 활기를 띤다. 주말이나 특별한 날에는 불꽃놀이를 하며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중앙 시장의 건물 2층에 위치한 푸드코트 스타일의 카페테리아도 매우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여러 노점에서 돼지고기 조림과 생선 튀김부터 바비큐 갈비와 구운 쇠고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저렴하고 서민적인 음식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수치토토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1000개 이상의 접시가 있는 접시 박물관도 있다.. 접시에는 영화 주제와 만화 캐릭터에서 정치, 유명한 예술 인쇄물 등이 그려져 있다.


“수치틀란 호수”
수치토토(Suchitoto) 주변 풍경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수치틀란 호수(Lago de Suchitlán)다, 호수는 댐 건설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공 호수로 계절에 따라 호수 전체를 야생화로 뒤덮는 멋진 풍경을 볼 수도 있다. 호수를 건너 작은 호숫가 마을인 샌프란시스코 렘파(San Francisco Lempa)로 가서 마을을 구경할 수도 있다. 잠시 들러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한적한 거리를 거닐 수 있다.

“축구 전쟁과 내전 그리고 전쟁 투어”
엘살바도르의 수치토토에서는 전쟁 투어란 것도 할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우선 엘살바도르에서 일어났던 내전을 알아야 한다. 내전을 설명하기 이전에 엘살바도르인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예가 축구 전쟁이다.
1969년 6월 15일 제9회 멕시코 월드컵의 지역 예선 2차전 경기로 인해 그해 7월에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한다. 약 4일간의 이 전쟁을 축구 전쟁(Laguerradelfútbol), 또는 ‘100시간 전쟁’이라고 부른다. 1969년 6월 8일 온두라스의 테구시갈파에서 열린 예선 1차전에서 온두라스가 승리하자 엘살바도르의 18세 여성 축구팬이 권총으로 자살한다. 이에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애도를 했고 비장한 마음으로 6월 15일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열린 2차전을 맞이한다. 이 경기에서 엘살바도르가 이겼는데 양국 응원단은 장외에서 난투극을 벌였고 이 괴정에서 온두라스 응원단 2명이 사망했고 이에 격분한 온두라스 국민들은 온두라스에 있던 엘살바도르 이주민을 약탈하고 폭행했다. 이에 엘살바도르 공군이 온두라스 테구시갈파의 공군 기지를 선제공격하고, 7월 14일 보병 1만 2,000명을 동원하여 온두라스를 침공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4일만에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OAS)’가 개입하여 휴전이 된다. 7월 29일까지 엘살바도르 육군이 완전히 철수함으로써 축구 전쟁은 끝났는데 총 4일간의 전쟁으로 양국에서 총 1만7,000여 명의 사상자와 15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사상자는 대부분 온두라스 농민이었다.
더 큰 문제는 엘살바도르는 안에서 일어난 내전이었다. 엘살바도르는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즉 12년 동안 내전을 겪는다. 우익과 좌익 사이에 소규모 분쟁이 일어나며 치안이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다혈질적인 국민과 고질적인 빈부 격차로 인해 불만들이 많았으며 근처 나라인 니카라구아에서 1979년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서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엘살바도르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니카라과, 온두라스와 함께 중앙아메리카 연방공화국을 성립했으나 다시 해체되어, 1841년 엘살바도르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당시 ‘카토르세(Catorce)’라는 14가문의 과두 지배층이 토지를 점유하고 주요 수출작물인 커피 무역을 통하여 정치 및 경제력을 독점하였다. 특히, 멜렌데스 가문 일가가 1907~1931년까지 정치 권력을 장악하여 소수 귀족이 토지를 늘리고 부를 창출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25년 공산당이 창당되었고 무장봉기가 일어났으나 실패했다. 이후 좌익 정권을 두려워한 미국은 군부 체제를 후원했다. 반면에 소련과 쿠바, 그리고 1979년 좌익정권을 창출한 니카라과는 엘살바도르의 좌익 게릴라 5개의 단체의 통합으로 결성된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 전선(FMLN)을 지원했다.
그러던 중 1980년 3월, 1980년 독점적 경제 구조와 군부의 인권 침해를 비판한 해방신학자 오스카 아르눌포 로메로 주교 암살사건이 발생하면서 좌익 연합체 FMLN은 1981년 1월부터 정부군과 충돌한다. 정부는 1981년 ‘엘모소테 학살 사건’과 1982년 ‘엘 칼라보소 학살 사건’으로 반대파들을 진압한다. FMLN반군도 1980년 4명의 미국인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테러와 암살을 자행했다. 이 전쟁은 12년 동안이나 끌다가 1992년 평화협정으로 마무리되었다. FMLN은 그후 정치 세력화하여 정당으로 변신했고 1994년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2000년대부터 양대 정당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내전 기간 중 약 10,000여명이 실종되었고, 사망자가 75,000명에 이르렀으며, 500,000명 이상의 난민을 양산했다.
이런 끔찍한 과정을 통해 얻은 오늘날의 평화다. 이제 전쟁의 흔적은 ‘투어’를 통해 볼 수 있다. 투어에 참가하면 이전 FMLN 게릴라 캠프까지 하이킹을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역사 공부도 하고 그곳의 흥미로운 동식물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