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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의 도시 베네치아(베니스)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다.

돌로미테 트레킹 후,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를 빼먹으면 너무 섭섭하다. 꼭 가볼만한 가치를 지닌 도시이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베니스(Venice)인 이 도시는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국제공항과 산타 루치아 기차역이 있어서 접근성도 좋다. 이름에서 보듯이 베네치아는 13세기에 실크로드를 여행했던 여행가 마르코 폴로의 고향이기도 하다.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
이곳의 구도심지는 잘 알려진 대로 ‘운하의 도시’다. 지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지금은 다리로 이어져 있고 기차까지 들어오지만 이곳은 원래 작은 섬이다. 그 섬 또한 작은 바닷길에 의해 갈라져 있는데 작은 118개의 섬들은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이곳은 차가 다니지 못한다. 보행자 도로도 좁은 다리, 골목길, 계단이다. 새벽에도 차량 소음 등은 전혀 없고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벌금을 문다. 결국 구도심지에서는 직접 걷거나 수상택시, 수상버스(바포레토)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베네치아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다.”
여행자들은 운하 건너 빤히 보이는 곳에 가고 싶어도 멀고 먼 곳으로 가서 다리를 건너야 하니 힘들 때도 있다. 그러니 뭘 찾아다니려면, 즉 목적지를 정하고 무언가를 하려는 순간, 골목길을 돌고 도는 운하길이 피곤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길을 잃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발길 닿는 대로 길을 걷는 것이 좋다. 그때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햇살에 비치는 파란 물, 하늘에 떠가는 구름,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 우연히 들르는 카페...혹은 인파에 떠밀려 몰려다니는 시간조차 마음을 비우면 낭만이 된다.

“베네치아에 운하의 도시가 만들어진 까닭”
본래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이탈리아 동북부에 거주하던 베네티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오랜 옛날부터 베네치아 해안가 지대에는 어부들이 살았는데 습지대였다. 5세기경, 로마를 고트족과 훈족등이 침입하자 사람들은 해안가에 있는 작은 섬, 베네치아로 피신을 했다. 이곳은 습한 곳으로 땅이 물러서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없는 곳이었기에 그들은 영구히 정착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외부에서 침입한 고트족이 서로마를 멸망시키자 섬의 주민들은 영구 정착지를 늪지대 위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토양이 습한 곳이었지만 단단한 나무 기둥을 밑바닥까지 박았다. 계속 내려가다 보면 단단한 층이 나오는데, 거기서 더 깊이 나무 기둥을 박았다. 그리고 점토를 붓고 위에 석회암 판들을 깔았다. 작은 집들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성당들도 만들었으니 이 구도심지에 박힌 말뚝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그런데 그 숫자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수백만 개라고 추정할 뿐. 대단한 작업이고 지혜였다. 개펄 속에 박힌 나무 기둥은 공기와의 접촉이 없어서 나무가 썩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를 수복했지만 베네치아는 자치적으로 운영된다. 난민들이 계속 유입되었으며 도시는 점점 성장했다. 훗날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가 이곳을 탐내서 프랑크 왕국과 동로마 제국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베네치아는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도시 국가로서 발전한다. 11세기~12세기에는 십자군 원정에 나섰고, 4차 십자군 원정에서는 콘스탄티노풀을 공격하여 함락시킨다. 그후 북부 이탈리아 도시들과 지역 패권을 두고 치열한 전쟁을 하게 된다.
16세기에 서유럽 국가들의 신항로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지중해 항로의 중요성이 흔들렸지만 베네치아는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그 후 신대륙 무역으로 인해 동방 무역 독점이 깨지고 오스만 제국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이 서서히 약해진다.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베네치아 공화국이 폐지된 뒤, 베네치아는 합스부르크 제국에 넘겨지고, 그후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언되었어도 베네치아는 여전히 오스트리아 영토였다. 그후, 1866년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를 공격해서 이탈리아 영토로 만들었다.
현재 베네치아 구도심지는 전기, 수도, 통신, 가스 등의 인프라는 물속이 아닌 현재 길의 바로 아래의 습지대인 지하에 묻었다고 한다. 문제는 1년에 2, 3mm의 속도로 모든 건물이 가라앉고 있으며 베네치아 운하(바닷길)에 면한 건물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갈수록 약해진다는 것. 바닷물에 의해 벽돌들이 점점 침식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 배가 운행할 때 발생하는 파도로 인한 건물 벽의 손상을 막기 위해 좁은 운하에서는 7km/h, 넓은 곳에서는 11km/h 정도로 속도 제한을 두고 있다.

“베네치아의 상징 곤돌라”
곤돌라는 베네치아의 상징이다. 과거에는 운송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한 관광 운송 수단이다. 실질적인 운송 수단은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나 수상택시다. 곤돌라 뱃사공이 되는 것은 힘들다고 한다. 관련 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적어도 4개 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하며 베네치아 출생으로 현재 베네치아에서 사는 사람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몇 년만 일하면 그동안의 교육비, 곤돌라 비용을 쉽게 벌고 고급 별장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게 된다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곤돌라는 웬만한 고급 자동차 가격이라 한다. 현재 관광용으로 쓰이는 곤돌라의 개수는 200-300척 정도지만, 교통수단이 곤돌라밖에 없었던 전근대 시절에는 만여 척이 훌쩍 넘었다고 한다.

“관광객에 대한 피로감과 소매치기 조심”
과거, 수십 년 전에 베네치아에 들렀던 사람들은 좋은 추억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동양인들 관광객이 유럽에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주민들이 그래도 친절한 편이었다. 그러나 세계 각지. 특히 아시아에서 엄청나게 관광객들이 몰려 들자 엄청난 피로감을 표현하고 있다. 베네치아 전체 인구는 약 26만 명이고, 그 중에 운하의 도시라 일컬어지는 구시가지 인구는 약 6만 명인데 연간 관광객 수가 무려 3천만 명이라니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거기다 높은 물가, 거주의 불편 때문에 베네치아 구시가지를 떠나는 시민들이 계속 늘고 있다.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집수리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아주 사소한 것도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런 불편함, 생필품의 인상 등으로 인해 구시가지에 살던 사람들이 베네치아의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므로 구도심지의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그 자리에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있다. 거기다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도시의 노후화로 매년 몇 cm씩 도시가 침수되고 있으며, 폭우라도 오는 날에는 해수면이 급속히 상승해서 침수가 상습적이라고 한다. 2019년 11월 15일에도 해수면 상승으로 시가지 대부분이 침수되었다고 하니 그들의 고충을 알 수가 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소매치기도 극성이다. 소매치기들은 집단적으로 조직적으로, 밀려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기에 자칫하면 당한다. 또한 뉴스에도 보도되었지만 베네치아에서 악명 높은 식당인 'Osteria da Luca'에서 일본인 학생 4명이 스테이크 3인분과 생선튀김, 와인 한 병, 물을 먹은 후에 1100유로, 한화로 150만원 정도의 계산서를 받았다고 한다. 1인당 약 40만원 식비인데 터무니없는 바가지였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은 경찰에 신고했고 해당 가게는 2만 유로(한화 2,550만원)의 벌금을 냈지만 아직도 멀쩡하게 영업하고 있으며 여전히 피해를 입는 관광객들은 생겨나고 있다 한다. 이런 예는 곳곳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다. 또 메뉴판에는 100그램당 가격으로 적혀 있지만 실제로 나오는 음식이 1kg이라면 결국 예상했던 것보다 열 배의 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종업원들은 이런 것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베네치아 뿐만 아니라 유럽의 관광지에서 종종 발생하는 현상이다. 오버투어리즘의 문제다. 단체관광으로 간다면 경험 많은 인솔자의 도움으로 이런 것을 피해갈 수 있지만 그래도 자유시간에 소매치기나 바가지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다. 요즘, 인터넷 시대가 아닌가? 관광객들도 대항한다. 바가지 씌우는 곳은 소개하고 있고, 바가지 안 씌우는 곳, 괜찮은 곳에 대한 정보도 수없이 많다. 느긋하게 산책할 때는 길을 잃어도 좋지만 적어도 식당이나 카페, 상점에 대한 정보는 잘 검색하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는 꼭 가 볼만한 도시다”
관광객에 대해 짜증 내고, 소매치기가 많고, 바가지를 씌운다는 소식이 들려도 관광객들은 밀려든다. 화려한 두칼레 궁전이 있고, 나폴레옹조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감탄한 산마르코 광장, 산마르코 대성당이 있다. 대성당 종탑에 오르면 베네치아 구도심지 풍경이 펼쳐진다. 르네상스 시절, 이 도시가 이룩했던 번영을 웅장한 건축물을 통해 감상하고, 문화, 예술의 분위기를 음미하며, 운하 옆길을 걷고 곳곳에 들어서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구경하고, 쇼핑도 하고, 카페에 들러 명물인 젤라또도 먹고, 커피도 마시는 시간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수상 버스 ‘바포레토’를 타고 이곳저곳에 들러볼 수도 있고, 곤돌라를 타고 낭만을 즐겨 볼 수도 있다. 시간이 더 남는다면 ‘바포레토’를 타고 알록달록한 집들이 들어선 부라노 섬도 방문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작가인 Luigi Darzini는 뉴욕 타임즈에 베니스(베네치아)를 ‘의심의 여지 없이,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묘사했다. 애국심에 넘치는 말이다. 세계에는 여기 말고도 아름다운 도시들이 많다. 하지만 분명히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수백만 개의 나무 말뚝을 박아서 섬 위에 건설한 이런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는 이 세계에 여기 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운하 옆길을 거닐며 문화, 예술, 음식, 낭만을 맛볼 수 있는 도시는 베네치아밖에 없다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불편함과 바가지를 각오하고도 밀려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계에서 이런 곳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와 문화를 알면 더욱 그렇다. 지금 점점 침수하고 있는 중이니 언젠가 가볼 수 없는 도시가 될 수도 있다. 그전에 꼭 가볼 만한 가치 있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