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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빈의 암살자 요새 ‘알라무트 성’ 하이킹

c.pixabay.com/Javad_esmaeili

카즈빈(Qazvīn)은 이란의 중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카즈빈 주(ostān)의 주도다. 인구는 약 40만 명으로 해발 1,278m에 위치한 고산 도시다. 카즈빈은 이란의 동서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며 사파비 왕조를 비롯한 다양한 왕조의 수도였고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로서 이란의 다양한 문화적, 예술적 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박물관, 바자르, 모스크 등이 있는데 주변에는 요새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어서 이곳을 하이킹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발달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카즈빈 근처 산맥에 있는 알라무트 성(Alamut Castle)이 가장 유명한 요새다.

“카즈빈의 50개 성과 요새 하이킹”

이란에는 야즈드, 에스파한, 시라즈 등 멋진 도시들이 있지만 테헤란에 왔다면 테에란 사람들은 그곳에서 150km 정도 떨어져 있고 차로 2, 3시간 걸리는 도시 ‘카즈빈’에 가서 근처의 산맥을 하이킹하라고 권한다. 테헤란의 여행사에서도 이런 성과 요새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어떻게 프로그램을 짜는가에 따라 일정은 달라지는데 테헤란에서 출발하는 경우 하이킹도 하지만 카즈빈 도시에 있는 유적지와 문화도 탐방하고 바자르도 돌아보며 근처의 에스파한(Esfahan)도 방문하는 일정이다. 테헤란의 여행사들에서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 1일차 : 카즈빈 도착, 아프샤르 왕조의 성 방문
• 2일차 : 아부 나수르 파르주반 왕조의 성 방문
• 3일차 : 사파비 왕조의 성 방문
• 4일차 : 카즈빈 바자르 방문
• 5일차 : 카즈빈 궁전 방문
• 6일차 : 에스파한으로 이동
• 7일차 : 에스파한의 주요 관광 명소 방문
• 8일차 : 에스파한에서 카즈빈으로 이동
• 9일차 : 카즈빈의 자연 경관 감상
• 10일차: 카즈빈 출발

좀더 하이킹을 하고 싶다면 카즈빈 하이킹에 더 집중하는 프로그램을 택할 수도 있다. 카즈빈 주의 성과 요새의 수는 약 50개에서 100개 정도가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성과 요새들은 다양한 시대에 지어졌으며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카즈빈 주의 대표적인 성은 알라무트 성(Alamut Castle)이다. 알라무트 계곡(Alamut Valley)에 위치한 성이다. 주변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아프샤르 왕조의 성(17세기에 지어진 아프샤르 왕조의 요새), 사파비 왕조의 성(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지어진 사파비 왕조의 요새), 아부 나수르 파르주반 왕조의 성(9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지어진 아부 나수르 파르주반 왕조의 요새) 등도 있다. 루드칸 성(Rudkhan Castle)은 하이킹과 탐험을 즐기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성은 산림 지역에 자리하고 있어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 헤르마제 성(Hermazeh Castle), 아르디스탄 성(Ardistan Castle)도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카즈빈의 댐과 호수 근처에 위치한 요새들(카즈빈의 댐과 호수 주변에는 수많은 요새들)이 있다. 50개의 성과 요새를 모두 하이킹하기는 쉽지 않다. 몇몇 중요한 요새와 성을 보는 가운데 하이킹하며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알라무트 성의 역사”

카즈빈 근처의 성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알라무트 성(Alamut Castle)’이다. 카스피해 남부 카즈빈 지방의 알라무트 계곡에 위치한 폐허가 된 산성으로 이곳만 하이킹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약 2-4시간 정도 걸린다.
이곳에는 매우 흥미로운 역사가 서려 있다. Alamut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독수리의 둥지"를 의미한다. Ale은 둥지라는 뜻이고 Amoot는 독수리라는 뜻이다. 지금 이곳에 가면 우똑 솟은 돌산 위에 성의 페허가 남아 있고 멀리 하얀 눈덮인 산맥이 보인다. 척 봐도 이곳은 난공불락의 독수리 둥지같은 요새다.
이 성은 훌라쿠(Hulakoo)라는 몽골 칸에 의해 1256년에 무너지기 전까지 페르시아와 시리아에 있는 ‘니자리 이스마일리’ 국가의 본부 역할을 했다. 알라무트 계곡에 있는 60개의 요새, 이란의 다른 지역에 있는 50개의 요새, 그리고 시리아에 있는 140개의 요새는 모두 이 알라무트 성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서기 865년, 알라무트 성을 건설한 사람은 Zeydi Shi'ism의 추종자이자 Deylam의 Justanid 통치자 Wahsudan ibn Marzuban이었다. 그는 사냥 여행을 하다가 높은 바위 주위를 맴돌고 있는 독수리 한 마리를 목격했다. 그는 이 위치의 전술적 이점을 깨닫고 독수리 둥지인 ‘Ale Amoot’ 건설을 시작했다. 그후 1090년에 하산(Hasan Sabbah)이 이 성을 차지하면서 ‘니자리 이스마일리(Nizari Isma'ili)’의 시대가 펼쳐진다. 하산 사바(Hasan Sabbah)는 알라무트 성의 첫 번째 통치자라 할 수 있는데 1090년부터 1124년까지 이곳을 통치했으며 그후에도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이슬람 신비주의 집단인 이스마일파의 거점이 되었다.
하산 사바는 원래 이집트에서 도망온 사람이었다. 이집트에서 이맘 알 모스탄시르(Imam Al-Mostansir)가 사망한 후 두 아들, 즉 니자르와 알 모스타알리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했는데 패한 니자르는 도망을 쳤다. 그 니자르의 합법적인 후계자였던 하산 사바(Hasan Sabah)는 페르시아, 즉 이란의 카즈빈 지방으로 도망했다. 이곳은 셀주크 터키가 힘을 떨치고 있었는데 그들은 수니파였다. 이슬람 역사 초기부터 싸워왔던 시아파와 수니파는 서로를 배척했다. 수니파 셀주크의 고관 니잠 알 물크(Nizam al-Mulk)는 알라무트 계곡에 숨어 있던 시아파 이스마일리스의 지도자인 하산 사바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카즈빈(Qazvin)에 숨어 살고 있던 하산은 알라무트 성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알라무트 성의 통치자는 셀주크 터키와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어서 점령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산은 주변 주민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자기 부하를 건설 노동자로 변장시켜서 성안에 침투시킨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1090년 하산은 성을 접수할 수 있었다. 원래 성주였던 Mahdi는 풀려났고 성을 물려주는 댓가로 돈을 받았다.
성을 접수한 하산은 요새를 재건축했다. 성벽을 강화하고 저장시설을 건설함으로써 알라무트 요새는 더욱 튼튼하게 되었다. 그는 주변 마을에 보리, 밀, 쌀 등을 경작케 했고 계단식 논, 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성안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그후 알라무트 성은 어떤 군사적 공격에도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이곳은 천상의 정원, 도서관, 실험실로 유명했으며 철학자, 과학자, 신학자는 지적 자유 속에서 토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몽골인들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바그다드에서 아바스 왕조 칼리프를 제거한 몽골인들은 계속 서쪽으로 진격해 왔다. 이스마일파에 대한 몽골의 첫 번째 공격은 서기 1253년 4월에 있었다. 당시 알라무트를 지배하던 이스마일파의 이맘 Rukn al-Din Khurshah는 몽골 왕자 훌라쿠 칸(Hulaku Khan)에 대해 강력한 저항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Alamut, Maymundiz 및 Lambesar에서 탑과 흉벽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몇 가지 제스처를 취했고 항복했다. 그리고 자신이 통치하고 있던 알라무트 계곡의 모든 성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당시 알라무트 성의 성주는 Muqaddam al-Din이었는데 그는 Rukn al-Din의 메시지를 받고 항복했다. 알라무트에 진입한 몽골군은 알라무트 성을 해체하고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Imam Rukn al-Din은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몽골군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이곳이 폐허가 된 후, 17세기와 18세기 말, 사파비드(Safavid)가 이란을 통치했을 때, 알라무트 성(Alamut Castle)의 폐허는 감옥으로 쓰였다. 그후 알라무트 성을 방문한 이들은 1832년 영국군 병사들이었다.

“왜 알라무트 성은 ‘암살자의 요새’라고 불리었나?”

알라무트 성은 ‘암살자의 요새’라고도 불려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오늘날에는 이곳은 폐허가 되었고 탑이 10개 미만만 남았는데 예전에는 암살자들의 요새로서 명성을 떨쳤다. 이곳을 지배하던 11세기에서 13세기에 번성했던 이슬람 신비주의 집단인 ‘니자리 이스마일파’는 대체로 젊고 건강한 청년들로 구성되었으며, 철저한 훈련을 통해 뛰어난 무술과 암살 기술을 익혔다. 그들은 암살 대상을 미행하고, 적절한 기회를 노려 암살을 감행했다. 그들의 암살 활동은 당시 중동의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셀주크 제국, 호라즘 제국, 몽골 제국 등 강대국들의 지도자들을 암살하여, 중동의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시아파는 알리 알라가 칼리프 자리를 억울하게 빼앗겨서 수니파에게 원한을 갖고 있었는데 시아파 중에서도 이스마일파는 그것을 위해서 암살 투쟁을 한 것이다. 더군다나 알라무트 성은 험준한 지형에 있어서 외부 침입을 막는 데 유리했고, 이스마일파는 알라무트 성을 거점으로 삼아 자기들에게 반대되는 정치적, 종교적 요인들을 암살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당한 암살’을 통해서 악을 물리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알라무트 성이 1256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파괴된 후에도 이스마일파의 암살 활동은 계속되었다. 그런. 이스마일파의 암살 활동은 유럽에서도 알려지게 되었고, 이들은 '암살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카즈빈의 알라무트 성이 이스마일파의 암살 활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현재도 '암살자의 요새'라고 불린다.

“알라무트 성 하이킹”

하이킹은 약 5km 거리를 2, 3시간 정도 한다. 멋지고 황량한 산맥을 감상하면서 알라무트 산(Alamut Mountain)의 정상을 향해 가면 이 장엄한 성에 도달하게 된다. 카즈빈의 여행사에서 하는 일정을 보면 알라무트 성만 가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카즈빈의 숙소에서 픽업한 후, 먼저 오반 호수(Ovan Lake)를 방문한 후, 산을 하이킹하면서 알라무트 성을 방문한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카즈빈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알라무트 성까지 오르는 길에는 멀리 하얀 눈덮인 해발 4천미터 이상의 산들이 보이고 황량한 산맥이 펼쳐진다. 이란의 독특한 풍경을 보는 순간이다. 막판에 약 600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전설적인 암살자의 성이 나온다. 멋진 유럽 스타일의 성이 아니라 폐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풍경과 전망은 기가 막히다.

“알라무트 계곡(Alamut Valley) 트레킹”

알라무투 성만 보고 오는 하이킹은 풍경은 멋지지만 한나절 여행이어서 아쉽다. 알라무트 계곡을 트레킹하면 황량한 풍경뿐만 아니라 초원도 보고, 호수도 보고, 산도 올라갈 수 있다. 해발 4천 미터 이상의 산이 네 개나 있는데 그 산의 정상에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면서 해발 1800미토 정도 되는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트레킹을 즐겨도 된다.
알라무트(Alamut) 계곡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서부 알라무트(West Alamut)와 동부 알라무트(East Alamut)다. 두 지역 모두 트레킹 할 수 있다. 알라무트 계곡에서 하루나 이틀 동안 트레킹한 후 카즈빈으로 돌아올 수 있고 아니면 알라무트 계곡에서 카스피해까지 하이킹하는 카스피해 횡단 하이킹도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트레킹에만 최소 2일이 필요하다.
알라무트 계곡에서 시작하여 카스피해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3개의 주요 트레일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알라무트 서쪽, 라즈미안(Razmian)과 가까운 지점에 있다. 나머지 두 개는 동부 알라무트에 있다. 그 중 하나는 ‘오반’ 호수 옆에 있는 오반 마을에서 시작된다. 다른 하나는Garmaroud마을 (Qazvin과 Mazandaran 지방의 경계에 가까운 위치)에서 시작된다.
또한 길게 하는 트레킹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마을 집에서 자거나 텐트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그것은 계절과 여행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마을에서 잘 경우 방은 공용이고 공용 욕실이며 침대가 없다. 잠은 바닥에서 매트리스와 담요를 덮고 잔다. 큰 짐은 카즈빈의 호텔에 맡기거나 차에 맡기면 되고 작은 배낭만 들고 다니면 되고, 텐트에서 잘 경우 텐트와 요리 시설은 노새가 운반한다.

“안다즈 협곡과 오반 호수”

알라무트 계곡에 있는 안다즈(Andaj) 협곡에는 수백만 년 동안 만들어진 사암 동굴들이 있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먼 옛날부터 살아왔었는데 그곳을 보면서 초목, 강, 아름다운 산과 협곡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알라무트 계곡의 오반(Ovan) 호수 또는 에반(Evan) 호수는 알라부트 계곡의 호수다. 다른 호수들은 너무 작아서 연못같아서 당일치기 여행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오반 호수도 그리 큰 거대한 호수는 아니다. 해발 1,800미터에 있는 325*275미터 정도의 호수로 가장 깊은 지점은 최대 10미터에 이른다.

“알람 쿠(Alam Kuh)산 등반”

알라무트 계곡에는 해발 4000m가 넘는 봉우리 4개가 있다. 그중에서 알람 쿠(Alam Ku)산은 이란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며 정상까지 트레킹을 할 수도 있다. 페르시아어로 '알람'은 '깃발', '멀리서 보이는 것'을 뜻한다. "쿠(Kuh)" 또는 "쿠우(Kooh)"는 "산"을 의미한다. 이란 최고봉인 다마반드(5,671m)에 이어 알람쿠(Alam Kuh)는 해발 4,850m로 두 번째로 높은 정상이다. 이 험준한 산은 이란 북부 그린벨트인 마잔다란 지방에 위치해 있지만 카즈빈(Qazvin) 지방의 알라무트 계곡(Alamut Valley)에서도 볼 수 있고 접근할 수도 있다. 이곳은 이란에서 고대 빙하가 있는 유일한 곳이다.
최초로 기록된 알람 쿠(Alam Kuh) 등반은 1902년 독일 보른뮐러(Bornmüller) 형제가 해냈다. 그들은 남쪽 면의 하자르찰(Hazarchal)을 통해 등반했다. 그후 영국의 산악인 더글러스 버스크(Douglas Busk)는 1933년과 1934년에 알람 쿠(Alam Kuh)를 두 번 등정했다. 북쪽 면에 있는 800m 높이의 가파른 화강암은 이란 전체에서 가장 어렵고 흥미로운 등산로서 특히 유럽 등반팀의 관심을 끌고 있다. 북쪽에서 첫 번째 등반은 1936년 독일인이 북서쪽 능선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프랑스와 폴란드 팀은 1960년대와 1970년에 북벽에 다른 루트를 개설했다. 영국 팀은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기 불과 1년 전인 1978년에 성공적으로 등정했으며 북벽의 첫 번째 겨울 등반은 모하마드 누리(Mohammad Nouri)라는 이란 산악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현재 이 산을 등반하려면 5, 6일 정도 걸린다. 물론 산악 가이드가 필요하다. 유럽의 트레일과 달리 이란에서는 트레킹 트레일에 표지판이 없다. 항상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Maps.me를 사용하여 트레킹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길을 잘 아는 현지 가이드가 필요하다. 또한 텐트와 기타 트레킹 장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여행사를 통해서 가야만 한다. 차량 이동, 숙소, 필요한 장비, 노새 등이 다 제공된다.

“알라무트 계곡 트레킹과 등반 시기”

이곳의 기온은 봄철 낮에는 15~25도, 밤에는 5~15도의 기온이다. 여름철 낮에는 25~35도, 밤에는 20~30도다. 가을의 낮의 기온은 10~20도 밤에는 0~10도다. 겨울에는 영하로 내려간다. 3, 4, 5월에는 녹색 계곡이 펼쳐지고 2월과 3월에는 눈덮인 산을 볼 수 있다. 체리와 여러 과일을 맛보고 밀밭이 있는 멋진 풍경을 보고 싶다면 6월, 7월, 8월이 좋다. 9월, 10월, 11월 가을에는 단풍 든 것을 볼 수 있다. 트레킹의 짐은 노새의 힘을 빌릴 수 있고 마을에서 자면서 그들의 생활을 관찰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