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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는 ‘피사의 사탑’

c.unsplash.com/Andrea Cevenini

피사는 기울어진 탑, 즉 ’피사의 사탑‘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낙하 실험‘을 한 곳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어쨌든 ’피사의 사탑‘은 기울어져 있으면서도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피사는 ’기울어진 탑‘외에도 매력이 넘치는 도시다. 중세 시절 피렌체와 겨루는 도시 국가였고, 토스카나의 중심 도시인 피렌체 다음으로 토스카나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며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있는 도시다.

“피렌체 못지 않게 중세 시절 발전했던 피사(Pisa)”
피렌체 서쪽의 지중해 연안 도시인 피사는 바다와 접하지는 않지만 지중해와 가깝다. 피렌체에는 잘 알려진 ’피사의 사탑‘외에도 수많은 역사적 건물이 있다. 구시가지의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 Pisa)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념물들이 있다. 그 중 피사의 두오모(대성당)와 산죠반니 세례당, 종탑(Leaning Tower, 피사의 사탑), 납골당은 중세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히며, 11~14세기 이탈리아의 기념물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었다. 피사 대학교도 14세기에 설립된 유서 깊은 중세 대학 중 하나이고 아르노강 따라 건설된 많은 역사적 다리와 귀족들의 궁전도 유명한 관광지다. 이곳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은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피사의 역사”
초기에 피사에는 에트루리아인들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루어진 발굴에서 기원전 5세기 에트루리아 왕자의 무덤을 포함하여 수많은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되어 도시의 에트루리아 기원을 입증했다고 한다. 이곳은 지중해와 가까운 탓에 지중해의 영향을 받은 해양 도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고대에는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던 야트막한 섬이었는데 그것이 퇴적 작용에 의해서 흙이 쌓이며 육지화 되는 가운데 지금의 피사가 되었다고 한다. 지중해 가까운 곳에 있던 피사는 오래전부터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다양한 민족이 지중해를 통해 왕래하였으나 기원전 180년 로마 제국에 속하게 된 이후 현재까지 이탈리아의 영토로 남아 있다.
서로마 제국 붕괴 후, 이탈리아는 분열되고 수많은 도시 국가로 남게 된다. 그래도 로마에는 여전히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했었는데 토스카나 지방은 이탈리아와 유럽을 왕래하는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한 숙박업, 식당 등이 발달했고 피사는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 국가로 성장했었다. 중세 이탈리아의 4대 해상 공화국은 아말피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그리고 피사 공화국이었다. 피사는 지중해 곳곳에 교역에 필요한 식민도시를 건설해서 부를 축적했다. 피사가 개척한 해외 식민지로는 코르시카섬과 사르데냐 동부, 발레아레스 제도등이 있었다.
도시국가들은 서로 경쟁했는데 피사는 1290년 제노바 도시 공화국에 공격을 받았고 그후 멜로리아 전투에서 제노바에 패배한 뒤 쇠퇴하였다. 또 피사의 지배자 1405년 이 도시를 피렌체에게 팔아 넘기자 시민들이 봉기를 일으킨다. 그러나 1406년 밀라노-피렌체 측의 군사들에 의해서 피사 시민들은 대대적인 약탈을 당했고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그후 피사는 몰락했으며 수많은 건물 중에서 피사 두오모(대성당)과 피사의 사탑은 살아남았다.

“피사의 랜드마크 피사의 사탑”
피사의 사탑(Torre pendente di Pisa)은 피사 두오모(대성당)에 딸린 높이 55m의 종탑이다. 이 탑은 기울어져 있어서 ’사탑(斜塔)'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피사의 사탑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어서 더 유명해졌다. 만약 피사의 사탑이 반듯하게 서 있다면 당연히 피사의 랜드마크는 두오모(대성당)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지는 바람에 피사에 오는 사람들은 두오모 성당보다 그 옆에 있는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을 먼저 찾는다.
삐딱하게 기울어진 사탑이 쓰러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수많은 형태의 인증샷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예를 들면 자신이 기울어진 사탑을 손으로 받치고 서 있는 모습, 혹은 아이스크림 콘에 피사의 사탑을 올린 것처럼 올린 사진 등, 수많은 사진을 연출하고 있다. 탑이 기울어지기 때문에 보수 공사를 하는 동안 탑 위에 올라가는 것을 금했지만 현재는 안전성이 보장되어 한정된 수의 인원들을 입장시키고 있다. 이곳에서 피사 출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낙하 실험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갈릴레오 제자 중의 한 명이 지어낸 ‘가짜 뉴스’라고 한다.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진 이유와 보수 공사”
피사의 탑을 처음부터 기울어지게 계획하여 건설한 것은 아니었다. 1173년에 공사를 시작하면서부터 기울어졌는데 탑이 기울어진 원인은 원래 피사라는 도시가 있는 지역이 먼 옛날 바다였고, 아르노 강에 실려온 퇴적층이라서 지반이 매우 약했었다. 또한 탑을 쌓으면서 지하로 3m밖에 파지 않아 하중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부실 공사였던 셈이다.
1173년부터 1178년까지 공사 도중 탑이 기울자 약 100년간 건설이 중단되었고 그 세월 동안 올렸던 탑에 의해 지반이 단단해졌다. 이후 기울기에 맞춰 1272년부터 1278년까지 2차 공사를 하다 중단했다. 주변 도시 국가와 전쟁을 하느라 공사할 여력이 없었다. 그후, 1360년부터 1372년까지 3차 공사를 했지만 기우는 것을 막진 못했다. 그런데 묘한 것이 이런 상태의 피사의 사탑은 600년간 4차례 이상 강한 지진을 버텨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수직선에서 4.5m로 탑이 기울면서 붕괴 위기에 처했었다. 1990년도부터 11년간의 공사를 진행해 2001년 11월 탑을 일반에 재공개 했는데 이탈리아 정부는 기울어지는 반대쪽 지반에 구멍을 내 흙을 파내는 공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 기울기는 수직선에서 4.1m인데 향후 200년 정도는 안전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공사 후에 탑이 1년에 2mm 정도씩 바로 서고 있어서 앞으로 2, 3백 년 후에는 피사의 사탑이 지금과 달리 반듯한 탑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이것은 또 고민이라고 한다. 피사의 사탑은 기울어져서 관광 명소가 되었는데 바로 선다면 그 매력이 사라진다는 것. 어쨌든 1987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피사의 사탑’은 아무리 바로 선다 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기울어진 상태에서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피사의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
미라콜리 광장(Piazza dei Miracoli) 즉, ‘기적의 광장’으로도 불리는 피사의 두오모 광장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이곳에는 두오모(대성당)와 세례당, 종탑(피사의 사탑) 등이 함께 모여 있는데 기울어지는 바람에 두오모(대성당)보다 종탑인 ‘피사의 사탑’이 더 유명해졌지만 웅장하기로 말하면 단연코 두오모(대성당)가 중심이다. 그 시절 사라센과의 전쟁에서 많은 전리품을 챙긴 피사는 그것을 바탕으로 이런 멋진 건축물을 만든 것이다. 두오모(대성당)은 1063년부터 약 30년에 걸쳐 완성된 로마 가톨릭 성당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성당의 외관은 검은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성당의 내부는 화려하기 이를데 없다. 돔 형태의 천장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화가 그려져 있고 피사 출신인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관찰하던 램프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