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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에티오피아의 근, 현대사

근대에 들어 에티오파아는 많은 시련을 겪는다. 우리에게 6, 25 때 파병도 해주었지만 수많은 인종 갈등, 지역 갈등, 사상 갈등 그리고 이웃 국가들과의 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나 엄청난 희생을 치른다. 그런 가운데 국가 발전은 더디게 되고국민들은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이들의 현대사를 알면 현재 에티오피아의 가난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면 이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자라나고 여행 중의 불편함도 참을 수 있는 관용심이 생긴다.

“이탈리아에 의해 한 때 점령당했던 에티오피아”

1855년 테워드로스 2세에 의해 에티오피아는 재통일된다. 1876년 이집트의 침략과 1896년 이탈리아 침략을 물리치고 유럽 열강들에 의해 합법적인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는데 그후, 메넬리크 2세와 하일레 셀라시에에 의해 에티오피아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1930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1931년 에티오피아 최초의 성문 신헌법을 채택하고 입헌군주제를 실시하며 여러 근대 문물을 들여왔다. 그는 한때 근대화의 상징으로써 존경받았다.
그러나 1935년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을 일으키면서 에티오피아를 침공한다. 이탈리아는 1936년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고 이탈리아령 식민지로 삼는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고원 지역 일부는 에티오피아 저항 세력이 장악했다. 훗날 에티오피아 저항군과 연합군이 이탈리아군을 쫒아 내자 영국에 망명해 있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1941년 12월, 권좌에 복귀한다.

“6,25 파병을 해준 에티오피아는 내전에 시달렸다.”

셀라시에 황제는 6,25 전쟁 때 한국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파병했다. 그러나 경제 정책이 실패하고 빈곤과 기근 속에서 국민들의 불만은 쌓여갔고 1973년에는 대기근이 발생한다. 오로모인, 소말리아인, 티그라이인들의 원성을 사면서 이들의 분리 운동이 일어나고 마침내 1974년에 군부 쿠데타로 공산 독재 정권이 들어온다.
에티오피아의 새로운 지도자 멩기스투는 오로모인이었는데 그는 사회주의 정책을 채택하고 소련과의 긴밀한 관계를 갖고 미국과 멀어지게 된다. 멩기스투는 귀족들의 땅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반동분자들을 탄압하며 산업시설을 국유화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실패했다. 또한 1977년에 소말리아를 침공하고 1978년에 수십만 명의 적을 고문하거나 살해한다. 1984년의 대기근은 1973년 대기근 못지않아서 100만 명이 사망한다. 2등 민족 취급받던 오로모인 출신이었던 멩기스투는 에티오피아내의 각 민족 사이의 평등을 주장했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종족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결국 다른 소수민족들의 불만을 샀고 그들은 대대적으로 봉기한다.
특히 에리트레아 독립 전쟁이 터진다. 에리트레아는 19세기에 이탈리아 식민지였다가 1952년에 에티오피아와 연방을 이루었으나 1962년에 에티오피아가 자기 나라의 주로 병합하자 이에 항거하여 투쟁한 것이다. (이들은 결국 1993년 분리 독립했다.)

에티오피아 공산 정권에 맞서 여러 성향의 반군들이 합세해서 싸우고 1990년 소련이 지원을 중단하자 위기에 빠진 멩기스투는 시장 경제,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했지만 정권은 흔들린다. 결국 1991년 멜레스 제나위가 이끄는 ‘에티오피아 인민혁명 민주 전선(EPRDF)’이 멩기스투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에티오피아 연방 민주 공화국’이 수립된다. 이 과정에서 EPRDF에 속해 있던 TPLF(티그라이 자유 인민 투쟁)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티그라이인들은 에티오피아 인구의 5-10% 정도밖에 안되는 소수민족이었으나 조직력이 매우 강했다. ‘에티오피아 인민력명 민주 전선’의 지도자는 멜레스 제나위였다. (에티오피아 북부에는 ‘티그라이 왕국’이 있었다. 19세기에 에티오피아에 합병되면서 에티오피아를 이끄는 원주민 암하라인과 티그라이인들은 갈등을 빚는데 티그라이인들이 이제 전 에티오피아를 지배하는 권력 실세가 된 것이다.)

1993년, 북부지역의 해안가에 있던 에리트레아가 내전과 평화 협상 끝에 독립하자 에티오피아는 내륙국이 되면서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에리트레아 측은 항구 이용 금액을 마음껏 올리자 에티오피아는 타격이 엄청났고, 에티오피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에리트레아에 대해 경제 제재를 단행하면서 서로 원한이 쌓여 갔다. 여기에 국경분쟁까지 곁들어서 결국 두 나라는 원수지간이 되었다. (1998년부터 2년 동안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전쟁을 치르다가 2018년경 마무리되었다.) 에티오피아는 또 2007년 해적 소탕 명분으로 소말리아의 몇몇 항구도시를 공격했지만 결국 2009년 철수하면서 소말리아와도 원수가 되었다.

이런 전쟁을 주도한 이가 멜레스 제나위였다. 그는 1995년부터 2012년까지 장기집권 했는데 부정부패와 인권유린 등으로 정치적 혼란은 계속되었고 2016년에는 최대 민족 집단인 오로모인들이 그에게 저항하여 시위를 일으켰다. 에티오피아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혼란을 거치다가 결국 2018년 4월 2일, 오로모 출신의 아비 아머드가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감옥애 갇힌 야당 정치인들을 석방하고, 에리트레아와의 20년 동안의 국경분쟁과 2년 동안의 전쟁을 끝내고 화해한다. 그 공으로 그는 2019년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이제 야당이 된 티그라이인들이 이끄는 TPLF와 갈등이 고조된다. 그러다 2020년 8월 총선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정부는 연기를 발표한다. TPLF과 티그라이인들은 크게 반발했다. 새 정부에 의해 자신들이 부패세력으로 몰렸고,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 총선을 벼르고 있었는데 연기하니 총리의 임기도 연장될 상황이었다. TPLF는 연방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티그라이에서 독자적인 투표를 한다. 이런 것을 에티오피아 상원은 위헌으로 보았고 연방정부도 티그라이 행정에 대해 재정지원을 거부했다. 반발이 심화되자 총리는 TPLF의 여당 세력을 반란 세력으로 규정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드디어 2020년 11월 4일, 정부군과 티그라이 군 간에 교전이 발생한다. 이란 가운데 총선이 2021년 7월 치뤄졌고 에티오피아 정부는 재집권에 성공한다. 그러나 부정선거였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해 193명이 사망하고 전국적으로 6만명이 체포되었다. 그 와중에 전쟁은 이어졌다. 2019년 9월, 만 명 정도가 숨지고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정부군에 의한 티그라이인들의 학살, 인권탄압, 인종차별이 발생했다고 비판받았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비 아머드가 총리는 독재자, 인종차별주의자로 비난을 받았다.
2022년 11월 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에티아포이 연방 정부와 티그라이 대표는 협상 끝에 ‘내전 중지 합의’를 했다. 이 합의에서 TPLF 측은 무장해제를 하기로 했고 연방 정부가 티그라이 지역내의 모든 시설을 통제하기로 하면서 연방 정부가 승리했다. 그동안 티그라이 지역은 전기, 통신, 금융이 차단되었으며 식료품과 의료품 반입도 제대로 되지 않아 수십만 명이 기아선상에 있었다. TPLF 측은 주민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중대한 양보를 했다고 발표했다. 휴전은 이루어졌지만 그 상처는 너무 컸다. 약 2년간 죽은 사람은 50만 명으로 수백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으며 그 과정에서 군인들의 민간인에 대한 고문, 학살, 성폭행들이 발생했었다. 그 상처는 오래 갈 것 같다.

이처럼 에티오피아는 그동안 하나로 통합되기 힘든 상황이었다. 국교인 에티오피아 정교(약 45%)과 이슬람교(약 40%)의 차이, 출신이 다른 부족 간의 지역 분쟁, 사상적인 문제, 소말리아와의 전쟁, 에리트레아와의 분쟁, 국내 정치 혼란, 내전, 경제 빈곤화, 사막화 문제, 극심한 가뭄과 식량 부족 문제, 에이즈 환자 폭증 등이 중첩되어 에티오피아는 힘든 길을 걸어왔다.

“한국과의 관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6, 25 전쟁이 일어나서 한국에 파병할 때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있다면 마땅히 도와줘야 한다’고 말하면서 최정예 부대인 황실 근위대를 파병했다고 한다. 먼 나라 에티오피아는 한국과 그런 관계에 있다. 그 시절 파병으로 한국에 참전했던 젊은이들은 이제 노인이 되었다. 그들은 그 폐허 속에서 이렇게 성장한 한국을 보면서 감격하고 감탄한다. 그리고 현재 한국 정부가 자신들에게 베푸는 도움에 감사하고 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658/0000044689?cds=news_media_pc&type=editn

에티오피아 여행을 하다가 만나는 사람들, 아이들이 혹시라도 돈을 요구하고, 궁색한 모습을 보이고, 바가지를 씌운다 하더라도 이런 역사를 알고 나면 가슴이 아파지고 이해하게 된다. 수많은 전쟁, 고통, 빈곤...이런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또 수십년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