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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깊은 악숨의 오벨리스크와 왕릉들(Aksumite Tombs)

By I, Ondřej Žváček, CC BY 2.5,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027150

악숨 왕국이 이스라엘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마케다의 아들인 메켈레 1세에 의해 기원전 10세기부터 시작했다는 전설을 에티오피아인들은 믿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악숨 왕국의 기원은 모호하다. 기원전 300년대에서 500년대에 시작된 것을 추정하고 있고 서기 1세기부터 성장하다가 10세기경 소멸했다. 3, 4세기경 강대국이 된 악숨 왕국은 에티오피아인들에게 매우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나라며 그 왕국의 수도가 악숨이었다. 악숨 왕국은 역사 속에서 최초로 자신들을 에티오피아인이라 칭했고 기독교를 4세기 초에 받아들인 나라였다. 약 900년간 악숨 왕국의 수도였던 악숨에는 왕릉을 비롯한 유적지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악숨은 현재 티아그라주에 속해 있는데 티아그라주는 2020년 11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2년간 에티오피아 연방 정부군과 내전을 벌였으나 지금은 종전이 되었다.

“악숨은 3세기 무렵, 로마, 페르시아, 중국과 함께 세계적인 강대국이었다.”

기원전 약 8세기에서 기원전 4세기에 오늘날의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의 티그라이 지역에 해당하는 홍해 연안에 다못 왕국이 있었다. 그들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보다도 홍해 건너 아라비아 반도쪽의 나라들과 교류가 많았다. 다못 왕국이 멸망 후 서기 1세기부터 악숨 왕국이 이곳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악숨 왕국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많다. 기원전 1000년경에 셈족 계열의 민족이 서아시아의 농법과 철의 기술을 가지고 홍해를 건너 오늘날 에티오피아 지역에 이주했다는 설도 있고, 기원전 300년대 혹은 기원전 500년대에 왕국이 세워졌다는 설도 있다. 구약 성서에 의하면 기원전 1000년경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시바 왕국(Sheba)은 아라비아 반도의 끝, 지금은 예맨 부근에 있던 왕국이었다. 기원전 950년부터 기원전 115년까지 존속했던 왕국이었는데 여왕의 본래 이름은 ‘마케다’이고 이슬람의 ‘코란’에서는 ‘빌키스’로 기록하고 있다. 시바의 여왕은 기원전 950년–930년경 시바의 금과 향료 및 보석을 가득 실은 800마리의 낙타가 이끄는 무리를 이끌고 솔로몬 왕을 방문해 그의 지혜를 시험한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었고 거기서 나온 아들이 메넬리크 1세인데 훗날 아버지 솔로몬을 찾아가서 십계명을 담았던 ‘언약궤’를 갖고 온 후, 에티오피아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있다.(에티오피아인들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검은 아프리카인들과 생김새가 다르다. 그들은 중동 지방의 백인들과 흑인들의 혼혈종이다.)
이런 이야기는 구약 성서 ‘열왕기 상‘ 10장과 ’역대 하‘ 9장에 나와 있고 코란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역사에 비추어볼 때 전설처럼 들린다. 악숨 왕국이 역사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세기 경이었다. 물론 기원전 1000년경에 아주 조그만 왕국을 지배한 왕이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낳은 메넬리크 1세였고 그 왕국이 성장해서 훗날 강대국이 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훗날 악숨 왕국이 4세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자기들 왕국의 정통성과 존엄성을 높이기 위해 기독교 구약 성경책에 나오는 시바왕국의 이야기에 자신들의 선조를 연결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진실이야 어떻든 에티오피아인들은 자신들의 지배자가 솔로몬 왕의 핏줄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어쨌든 악숨 왕국의 기원과 시기는 모호하지만, 이들은 서기 1세기경 에티오피아 고원 이외에 북동부의 사막에서 동부의 소말리아, 홍해 너머 아라비아 반도에까지 그 세력을 확대하였다. 3세기에 활동한 페르시아의 예언가 마니는 당대 가장 강력한 국가 4개로 로마, 페르시아, 중국과 함께 악숨을 꼽을 정도로 번영한 나라였다는데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 이후, 20년이 지난 333년에 악숨 왕국은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339년에는 국교로 선언해서 아르메니아, 조지아와 함께 로마 이외의 나라에서 2번 째 혹은 3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악숨인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을 ‘에티오피아인’이라고 밝혔고, 기독교를 초기에 받아들인 나라였기에 현재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악숨 왕국은 매우 중요하며 많은 왕릉 등 유적지가 남아 있다.
악숨 왕조는 6세기경 이슬람의 발흥으로 영토를 빼앗기면서 기독교 나라들과의 무역이 점점 멀어지며 고립되다가 10세기경에 망한다. 훗날 ‘자그웨 왕조’가 등장하는데 자그웨 (Zagwe) 왕조는 랄리벨라에 독특한 ‘스톤 처치’를 세운 왕조였다.

“악숨의 왕릉들”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곳에는 무덤이 있다. 현재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밑으로 내려가면 돌들이 쌓인 실내의 지하 중앙 통로를 걸어갈 수 있다. 통로 양옆에 작은 방들이 마련되어 있고 지금은 텅 비어 있다. 어떤 곳에는 석관도 놓여 있다. 바젠 왕의 무덤(tomb)은 고분을 쌓지 않고 단단한 바위를 대충 깎아 만든 가장 투박한 무덤이다. 에티오피아인들의 신앙에 따르면 바젠 왕은 그리스도의 탄생 당시 통치했고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에티오피아에 전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근처에서 발견된 오벨리스크로 판단하면 매장지는 한때 상당히 크고 중요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칼렙과 게브레 메스켈(Kaleb & Gebre Meskel) 왕의 무덤들은 북동쪽으로 1.8km 떨어진 작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6세기 칼렙(Kaleb) 왕과 그의 아들 게브레 메스켈(Gebre Meskel) 왕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게브레 메스켈(Gebre Meskel) 무덤은 한 개의 방과 다섯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안에는 세 개의 석관이 있다. 칼렙왕(King Kaleb)의 무덤도메스켈(Meske)의 무덤처럼 긴 직선 계단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칼렙 왕은 이곳에 묻히지 않고 Abba Pentalewon 수도원에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또 이곳에서 홍해로 이어지는 비밀 터널이 있다는 소문도 있다.

Dungur 궁전

Dungur 궁전은 시바의 여왕이 세운 궁전으로 알려져 있다. 궁전은 남아 있지 않고 돌들이 쌓인 터전만 남았는데 고고학자들은 그것이 그 위대한 여왕의 궁전인지 또는 6세기 귀족의 저택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있다. 대부분은 후자 쪽으로 기울었지만 최근 발굴 중에 시온 교회의 성모 마리아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여성을 묘사한 부조를 본 사람들은 시바의 여왕 궁전이 폐허 아래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그런데 사실 시바의 여왕은 기독교 구약 성경에 의하면, 기원전 1000년경에 이곳이 아닌 사우디 아라비아 반도의 남쪽에 있는 예맨 지방을 다스렸던 여왕으로 현재 악숨 왕국에 많이 남아 있는 6, 7 세기의 유적들에 비하면 너무 오래 전의 이야기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정교를 믿는 사람들은 시바 왕국의 여왕과 솔로만 사이에서 태어난 메네리크 1세가 악숨 왕국을 건국했다고 믿고 있다. 뒤쪽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면 50개의 방이 배치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궁전에는 숨겨진 보물 방, 개인 목욕 공간 및 대형 벽돌 화덕이 보이는 주방이 있다.
‘가짜 문의 무덤(Tomb of False Door)라고 하는 무덤은 4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지배자였던 람하이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는데 가짜 문과 문고리 모양을 새겨 놓아 입구를 속이려 했던 것같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유적지 안에는 작은 박물관도 있는데 고대 에티오피아에서부터 내려오는 다양한 유적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